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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 4주기 기억 예배 설교

박인환   기사승인 2018.04.16  17: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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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안산 화정교회 박인환 목사가 4월 15일, '세월호 참사 4주기 기억 예배'에서 전한 설교문['다시 식탁으로 부르시는 예수(요 21:9-13)']입니다. 허락을 받아 전문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몇 주 전 광화문 거리를 지나가는데 어떤 청년이 다가오더니 "죄송하지만 스티커를 하나만 붙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청년이 내민 보드에는 "생존 '위안부' 피해자들이 몇 분일까요?"라는 질문이 있고, 그 아래에는 10명, 20명, 30명이라는 숫자와 큰 네모 칸들이 있었습니다. "스물몇 분인 것은 알겠는데 20명에 가까운지 30명에 가까운지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더니 그 청년이 "세월호 배지를 달고 계시는 분이셔서 그런지 다행히 알고 계시네요. 스물아홉 명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잊혀지는 것이 안타까워 이렇게 나왔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생존 '위안부' 피해자 숫자도 기억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고, 그렇게 거리에 나와서 "피해자들을 잊지 말라"는 캠페인을 하는 젊은 청년들이 참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억하는 것이 선한 역사의 시발점이 된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제가 지난 4년 동안 세월호를 위해 무언가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었던 것은, 세월호 참사 사흘 전까지, 주일마다 교회 마당에서, 예배실에서 만났던 우리 교회의 예은이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착하고 미소가 예쁜 아이였지요.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 아이가 살짝 미소 지으며 다가와 "목사님 왜 가만히 계세요?"라고 말할 것만 같아서 가만있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단원고 학생 희생자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 아이들 모두를 '250명의 예은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인환 목사가 4월 15일, 안산 합동 분향소가 있는 화랑유원지 노천극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4주기 기억 예배' 설교를 맡았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나치에게 학살당한 600만 유대인을 기억하기 위해 세운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기념관의 이름은 야드바셈(Yad Vashem)입니다. 히브리어 '야드'는 '기억'을 뜻하고 '바셈'은 '이름'을 뜻합니다.

'야드바셈'은 '희생자 600만 명'이라는 집단이 아니라 '희생자의 이름을 기억하자'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름은 한 개인의 전부를 나타냅니다. 한 사람의 이름에는 그 사람 얼굴이 있고 그 사람의 삶이 녹아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면 그의 삶이 내게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집단화하면 개개인의 이름은 사라져 버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와 별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홀로코스트 이후 80년이 지났지만 그때 희생된 사람들은 여전히 80년 전 모습으로 기억됩니다.

어린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캄캄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더니 머리 위에 수만 개의 별이 반짝이고 있었는데, 그 별의 수는 나치에게 희생된 어린이 수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스피커를 통해 어린이들 이름이 불리고 있었고 한쪽 벽면에는 이름이 불리는 어린이 이름과 사진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24시간 계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희생당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이미 거의 모두 고인이 되었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을 80년 전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의 다짐과 기억이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큰 힘인 것 같습니다. '야드바셈' 출구 쪽에는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망각은 우리를 노예로 이끌고 기억은 우리를 구원으로 이끈다."

그렇습니다. 기억이 힘입니다. 기억은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관념이 아니라 우리를 움직이는 힘, 우리를 움직이는 에너지입니다.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힘이며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합니까.

귀한 생명들이 죽어 가는 순간에, 구조에 책임이 있는 정부는 살릴 수 있었음에도 살리지 않았으며 "왜 구조하지 않았느냐"며 울부짖는 유족들에게는 폭력을 행사하였습니다. 그래서 세월호 희생자들의 죽음은 단순히 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라 나치에 의해 학살당한 유대인들의 죽음과 닮았습니다.

가해자들은 세월호를 빨리 지워 버리려고 하였지만, 자기의 아들딸을 잊을 수 없는 유족들은 국민들에게 '잊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 그들의 호소는 나의 아들 나의 딸을 한 사람 한 사람으로 기억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월호 유족들이 켜기 시작한 몇백 개의 촛불 곁에,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 아니 세월호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였을 때 촛불이 10만이 되고 100만이 되고 1000만이 넘어서게 되더니 악한 정권이 무너졌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이 촛불로 부활하여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준 것입니다. '왜 가만히 있으라 하며 구조하지 않았는지, 왜 유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였는지'를 밝힐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나 유족들은 아직도 불안합니다. 합동 영결식이 끝나면 분향소는 철거될 것이고 416생명안전공원이 건립되기까지는 또 몇 년이 걸립니다. 그 몇 년 동안 혹시라도 잊힐까, 혹시라도 시민들이, 국민들이 잊어버릴까 걱정합니다. 잊어버리는 순간 모든 것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4월 3일에는 제주 4·3 추념식이 있었습니다. (미국을 등에 업고) 정권을 잡은 정통성이 없는 불의한 친일 부역 세력들이 자기들의 정권을 유지하고 공고히 하기 위해 반공이라는 이름 아래 죄 없는 양민을 학살한 것이 4·3의 본질입니다. 경찰이나 군인이나 서북청년단에게 죽임당하면 그 가족은 그날부터 빨갱이 가족이 되었고 빨치산에게 죽임을 당하면 그 가족은 그날부터 반공 투사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국가 폭력에 의한 희생은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의 징용과 군 '위안부' 강제 동원이 그렇고 해방 후에는 제주 4·3과 죄 없는 사람 8명을 간첩으로 몰아 죽인 제2인혁당 사건, 광주 5·18의 학살, 용산 참사가 그렇습니다. 그 외에도 수도 없이 많습니다. 세월호 참사도 국가 폭력에 의한 희생입니다.

국가 폭력의 특징 중 하나가 "잊으라"는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4·3희생자 유가족들은 70년 동안 자기 가족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5·18 희생자 가족들 역시 최근까지 폭도의 누명을 뒤집어쓴 채 죽어 간 가족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시민들도 그 이야기를 하면 안 되었습니다. 말하는 순간, 빨갱이가 되고 종북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들이 잘 기억해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에 책임이 있는 자들이, 아이들에게는 "가만있으라"고 강요하여 죽이더니 유족들에게는 "잊으라"고 하였습니다. 아들, 딸, 형제자매를 잃은 가족들에게 잊으라고 하는 것이야말로 살인과 같은 폭력 아닙니까. 그러나 이미 사람의 마음을 잃어버린 탐욕자들은 자기들의 기득권 유지에만 관심이 있을 뿐 천하보다 귀한 생명의 희생에는 감정이 없었고 유족들 슬픔에는 공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바뀐 오늘도 끊임없이 유족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꽃 같은 단원고 학생 250명이 희생된 이곳 안산에서 정치를 하겠다는 자들이, 제1·제2야당을 한다는 자들이 힘을 합쳐서 외친다는 것이 고작 "세월호 납골당 결사반대"라는 구호입니다. 자기들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몇 표 더 얻겠다고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짓들을 합니다. 우리가 세월호를 잊지 말아야 할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가 잊는 순간 탐욕에 물든 저급한 무리들이 또다시 세월호 참사 진상 조사를 방해할 것이고 유족들 마음을 비수로 후벼 팔 것입니다. 시민이 잊는 순간부터 국가 폭력의 희생자들의 아픔은 더 증대될 것이고 계속될 것입니다.

416생명안전공원 부지가 확정되었지만, 지난 4년간, 정치권은 물론이고 시민사회, 심지어 종교계까지도 세월호에 제대로 응답하지 않는 것을 보아 온 유족들은 여전히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저는 유족들에게, "사람들은 잊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잊지 않고 기억하신다"는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수십 년 동안 이방의 포로가 되어 고통당하며 해방의 길이 보이지 않아 절망하며 "하나님이 우리를 잊으셨나 보다"라고 탄식하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은 예언자 이사야를 보내셔서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잊지 않기 위해 너의 이름을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무너진 성벽을 늘 지켜보고 있다"(사 49:16)고 말씀하셨습니다. 고통받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기억은 해방과 귀환으로 완성되었습니다.

416생명안전공원이 희생자들을 위한 기억의 공간이 되고 오고 오는 세대의 안전 교육장과 생명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응원해야 할 시대적 소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잊지 않고 기억하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본받아서, 희생자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유가족의 아픔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해자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국가의 이름으로 행한 폭력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용서와 화해도 잊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이 힘입니다. 기억해야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억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옵니까. 그리고 어디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이 체포되어 있던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서 곁불을 쬐고 있다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배반하고 도망갔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이전의 어부 생활로 돌아가 동료들과 함께 디베랴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왜 베드로는 디베랴로 다시 갔을까요? 잊고 싶어서였을 것입니다.

자기 한 목숨 살겠다고 어려움에 처한 스승을 배반한 수치스러웠던 자신. 힘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를 잊고 싶어서 그러지 않았을까요.

그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숯불을 피우고 식탁을 준비해 놓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피우신 숯불 앞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하였던 최후의만찬을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했던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기억했을 것입니다.

조반을 먹은 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반복하여 물으셨고, 베드로는 그때마다 "예,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주님의 물음은 "너는 나를 잊지 않았지?"라는 물음이며, "예,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는 베드로의 대답은 "예, 제가 주님을 잊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에는 예수를 버리고 도망갔던 것에 대한 회개의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베드로의 회개와 믿음을 확인하신 예수님은 그에게 "내 양을 먹이라"며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실패를 기억하고 돌이키게 하시기 위해 베드로를 다시 찾으셨던 것이고, 그렇게 하시는 것으로 실패한 베드로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세월호 참사 후 4년간의 우리 모습이 혹시라도,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려는 불의한 권력자의 집에 피운 불 곁에서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친 베드로의 비겁한 모습은 아니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 숯불을 피워 놓으시고, 그 곁에 우리가 먹고 새 힘을 얻게 될 식탁을 차리시고 다시 부르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세월호 아이들, 아파하는 이들, 불의의 세력에 고난받는 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함께하겠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권력자 가야바의 집에서 곁불 쬐던 자리가 아니라 부활의 예수님이 디베랴 호수가에 피우셨던 숯불 곁의 식탁으로 우리의 발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아니, 여러분은 이미 예수님이 피우신 숯불 곁의 식탁으로 오셨습니다. 주님이 베푸시는 식탁은 기억하게 하는 식탁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시는 떡을 먹는 것으로 기억을 이어 가고 다시 시작할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기억하시겠습니까? 같이하실 수 있습니까? 같이 기억하고 마음 모으고 손을 잡으며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합시다.

주여, 이제 다시 시작합니다. 전능하신 주님의 은총을 믿으며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주여 저희들에게 힘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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