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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rchToo] 미성년자 자매 성추행한 삼촌 목사

[인터뷰] "20년 지나도 기억 생생…이런 사람이 목회하면 안 돼"

이용필 기자   기사승인 2018.04.09  14:3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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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나현진 씨(가명)는 1995년 중학생 시절, 미국에서 처음으로 '삼촌' 전 아무개 목사를 만났다. 정확한 촌수는 모르지만 아버지와 항렬이 같다는 이유에서 그를 삼촌이라고 불렀다. 자상하던 삼촌은 몇 달도 안 돼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였다.

미국 LA에서 목회를 하던 전 목사는 조카 나 씨를 상대로 수차례 성추행을 저질렀다. 나 씨의 언니도 전 목사에게 비슷한 일을 당했다. 청소년 시기 당한 성추행은 한창 커 나갈 두 자매의 발목을 잡았다. 언니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나 씨도 대학 시절 이유도 모른 채 2년을 방황했다. 트라우마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한참 지난 뒤에야 알았다. 나 씨는 지금도 상담을 받고 있다.

2006년 한국에 들어온 나 씨는 전 목사가 서울에서 목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전 목사는 수천 명이 다니는 대형 교회를 담임으로 시무하고 있다. 전 목사가 한국에서도 성추행 의혹을 받았다는 소문도 듣게 됐다.

4월 4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나 씨는 "나 말고도 또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말에 눈물이 났다. 피해 당시로 돌아간다면 전 목사를 미국 경찰에 신고하고 싶다. 전 목사 같은 사람이 목회를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나 씨가 20년 전 겪었던 일을 언론에 털어놓게 된 이유다.

생전 처음 미국서 만난 삼촌 목사
나 씨 자매, 상습 성추행 시달려
부적절한 신체 접촉, 겁탈 시도까지

목회자의 성범죄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미투 운동에 동참한 나현진 씨(가명)는 오래전 삼촌 목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 가해자로 지목한 전 목사와는 어떤 관계였나.

아버지와 항렬이 같은 분으로, 먼 친척 정도로 알고 있다. 미국에 가기 전까지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아버지가 통신사 미국 주재원으로 발령 나면서 가족 전체가 미국 LA로 가게 됐고, 그때 처음 만났다. 언니와 나는 그를 삼촌이라고 불렀다.

미국에 갔을 때가 1995년 초여름 무렵이었고, 당시 중3이었다. 가족 중 어머니와 언니, 나만 교회에 다녔다. 유교 집안에서 자란 아버지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미국에서 사회생활하려면 교회에 다녀야 한다"면서 전 목사가 담임으로 있는 A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전도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기도했는데, 응답을 받은 것 같아 정말 기뻤다.

- 당시 A교회 분위기는 어땠나.

교회는 프리웨이 근처에 있었는데,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 걸렸다. A교회는 다른 교회 예배당을 빌려 사용했다. 교인은 70~80명이었고, 막 성장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찬양 대회에서 대상을 탄 사람과 음악 담당 목사님을 모셔 오는 등 활발했다. 또 당시 한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모 가수 부모님이 A교회에 다녔다.

- 전 목사에게 당한 피해 사실을 이야기해 달라.

나보다 두 살 많은 언니가 먼저 당했는데 횟수는 세 차례 정도 된다. 1995년 8월경, 전 목사가 차 조수석에 있는 언니의 허벅지 안쪽에 손을 집어넣었다. 뒷좌석에는 전 목사의 어린 딸과 아들이 타고 있었다.

우리는 숙모(전 목사 아내)가 잘해 줘서 그 집에 자주 놀러 갔다. 언니가 화장실에 갔는데, 전 목사가 따라 들어온 적도 있었다. 언니가 강하게 항의하자 바로 나갔다. 전 목사가 우리 집에 온 적도 있었는데, 언니 바지 속에 손을 집어넣기도 했다. 전 목사는 언니에게 "너 때문에 잠을 못 잤다"는 징그러운 말을 하기도 했다.

나도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다. 하루는 전 목사가 교회 담임목사실로 나를 불렀다. 2인용 소파에 앉아 있는데, 전 목사가 갑자기 다가와 발기된 성기를 내 상체에 비비기 시작했다. 나는 당시만 해도 남자에 대해 알지 못했고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나는 교회에서 반주로 봉사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픈 남동생을 챙겨야 해서 새벽 예배나 주일예배가 끝나면 일찍 교회를 떠났다. 나는 주로 전 목사 차를 타고 이동했다. 하루는 늦은 밤 차를 얻어 타고 가는데, 공원에 차가 멈췄다. 갑자기 전 목사가 나를 껴안고 뽀뽀를 했다. 이 일을 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당시 순찰 중이던 경찰이 와서 입구를 폐쇄해야 하니 나가라고 했다. 극장에서도 성추행을 당했다. 음악 교사가 합창단을 잘 지도해 나가는 줄거리의 영화였다. 영화를 볼 때 전 목사가 내 가슴을 수차례 만졌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까 너무 당황스러웠다. 나는 청소년이었는데도, 나중에는 '이게 호의일까', '이 사람이 가족을 버리고 나랑 결혼하겠다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너무 혼란스러웠다.

전 목사 집에서도 성추행을 당했다. 과제 프린트를 하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았을 때였다. 방 2개짜리 집인데, 마침 숙모가 옆방에서 아이들을 재우고 있었다. 다른 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 나를 전 목사가 갑자기 침대에 눕히더니 "바지를 벗으라"고 요구했다. 내가 저항하고 있을 때 숙모가 방에 들어왔고, 상황은 일단락됐다.

집에 돌아왔을 때 전 목사한테 전화가 왔다.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다 말해 버릴 거다"고 소리를 질렀는데, 전 목사는 "다 말하라"며 안하무인 태도로 나왔다. 당시 전화 내용을 아버지가 들었고, 결국 가족 모두 이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별 반응이 없었다. 체면을 중시하는 스타일어서 그런지 계속 그 교회에 다녔다. 나와 언니는 다른 교회에 다녔다. 그러던 중 새 교회에서 바이올라대학교 신학대학원에 다니는 한 언니를 알게 됐다. 내가 겪은 일을 이야기하니까, 그 언니가 곧장 어머니를 찾아가 A교회에 다니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결국 부모님은 몸이 아픈 남동생 핑계를 대면서 자연스럽게 그 교회를 나오게 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A교회에 20대 청년 언니가 있었다. 전 목사가 차 안에서 그 언니의 가슴을 만졌다고 하더라. 어른들은 전 목사의 이런 행태를 전혀 몰랐다. 어린 여자들 사이에서 전 목사는 '징그러운 목사'로 통했다.

극심한 스트레스 시달려
"너에게 죄성 있어서 그렇다" 
또 다른 피해자 있다는 말에 '분노'

나 씨는 자신 말고 또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 삼촌 목사에게 성추행을 당해 상처가 더 컸을 것 같다.

언니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때로는 남자를 성에 사로잡힌 존재로 바라봤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학에 진학한 뒤 내 전공과 관련 없는 미술 수업을 2년이나 들었다. 소질이 있는 것도, 평소 관심 있는 것도 아니었다. 왜 그랬는지 몰랐는데 나중에 상담을 통해 알게 됐다. 그림을 그리며 스스로 치유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성폭력의 가장 안 좋은 점은, 한 존재의 미래를 무너뜨린다는 점이다. 자기 자신을 가꿔 나가야 할 시간에 치유를 해야 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 오랫동안 숨겨 온 아픔을 꺼내 놓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주변에 피해 사실을 알렸는데, 세 가지 반응이 돌아오더라. "너한테 죄성이 있어서 그런 거다", "너보다 힘든 일 겪은 사람 많다", "성폭력은 육체 문제로 스쳐 지나가는 일인데 왜 그렇게 민감하게 구느냐"는 식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나나 전 목사나 같은 죄인이니까 그럴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됐다.

올해 2월 만난 상담 선생님은 달랐다.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 중 처음으로 '분노'해 줬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은 목회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나는 "내 인생도 복잡한데 나서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그 다음 선생님의 말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선생님은 "이런 사람은 고질적이라서 너 말고도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상담 이후 교회 목사님을 통해 교회개혁실천연대(개혁연대)를 소개받았다. 개혁연대도 이미 전 목사 성추행 의혹을 알고 있었다. 나 말고도 또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눈물이 나더라. 만약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부모님 의사와 상관없이 바로 미국 경찰에 신고했을 거다.

- 실제로 전 목사에게는 여러 의혹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대형 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언니와 나 말고 또 다른 피해자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분노했다. 이런 사람은 목회하면 안 된다. 두 미성년자 조카를 성추행한 사람이 담임하는 교회는 과연 괜찮을까 싶다.

그렇게 큰 교회에서 목회하는지도 몰랐다. 그분이 한 설교를 찾아 들어 봤다. 한 대회에서 "30만 어린이의 영혼을 구해야 한다"고 부르짖더라.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게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 전 목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 일을 당하고도 '천국 가면 전 목사를 계속 봐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해 왔다. 이제는 그런 쓸데없는 걱정 안 한다.

전 목사는 지금까지 언니와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 혹시 오래전 일이라고 기억 안 난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는 그 사실을 잊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전 목사, 성추행 부인
"교회 잘되니 주변서 시샘"

전 목사는 성추행을 한 적이 없다고 전해 왔다. 기자는 4월 7일, 전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 B 장로회장을 만났다. B 장로는 "목사님은 그 가족을 힘들게 돌본 기억만 있다. (두 조카를) 성추행한 적 없다"고 말했다.

애당초 전 목사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기로 했지만, 만남 장소에는 B 장로만 왔다. 그는 "목사님이 과거 다른 의혹으로 언론과 인터뷰했다가 고소당한 적 있다. (제보자 측이) 인터뷰 내용을 빌미로 문제를 삼았다. 재판에서 이겼지만 득 된 건 하나도 없었다. 차라리 대응 안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B 장로는 전 목사를 상대로 한 의혹이 계속되는 이유로 '목회 능력'을 들었다. 그는 "목사님이 목회를 잘해 교회가 성장하니까 주위에서 시샘을 많이 한다. 실제 목사님을 무너뜨리기 위해 음해를 한 사건도 있었다. 그럼에도 교회는 안정적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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