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연 목사는 교회가 교회 내 성폭력 피해자들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교회는 물론이고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 사건이 터질 때마다, "좋아서 한 거 아니냐", "꽃뱀 아니냐", "사생활이 문란하다",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 등 피해자 여성을 비난하는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피해자는 2차 피해를 입고 더 큰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한국 사회가 피해자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과 믿는페미, 감신대 총여학생회 등이 주최하는 '하나님 가라사대 미투' 공개 워크숍 두 번째 시간이 4월 3일 삼일교회(송태근 목사)에서 열렸다. 홍보연 목사(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장)가 '피해자 중심주의'를 주제로 강의했다.

홍보연 목사는 교회 내 성폭력이 '권력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목사와 교인 간 힘의 불균형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우위에 있는 목회자가 교인과의 경계선을 지킬 책임이 있다"고 했다. 설사 화간이라 하더라도 목회자의 책임이 크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사건이 발생하면 목사는 숨고 피해자만 남아 추가 피해를 입는다고 했다. 홍보연 목사는 기독교여성상담소에서 8년간 일하면서 제보받은 교회 내 성폭력 사례 103건 중, 실제 목사가 처벌받은 사례는 1건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마저도 간통죄가 폐지되기 전, 피해 여성이 어떻게든 가해자 남성을 벌주기 위해 자신도 처벌받을 것을 각오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고 했다.

"교회 성폭력 피해자들은 (그루밍이라고 불리는) '영적 길들임'으로, 목회자를 특별한 방식으로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은 강간이 아닌 화간의 형태를 띤다."

이날 워크숍에는 30명가량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피해자들이 도움을 요청해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주제로 토론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전면에 나서도 교인들은 '사탄', '꽃뱀'으로 치부하고 담임목사와 조직을 보호하려 한다. 교회 내 분쟁으로 번져도 피해자 인권은 등한시한다. 수많은 피해자가 이런 이유로 위축되고 피해를 공개하지 않으려 한다.

홍보연 목사는 피해자 중심주의 관점에서 사건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피해자 중심주의란 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술과 관점을 우선하는 것을 말한다. 성폭력은 증거가 남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해자 진술 자체가 중요한 증거가 된다. 성폭력 자체가 '피해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는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이기도 하다.

홍보연 목사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피해자 말을 들어 주다가 나중에는 '남자 말도 들어 봐야 한다'면서 객관성을 유지하려 하는 태도를 보인다"고 했다. '객관성'이라고는 하지만, 한국 사회가 젠더 문제에 지나치게 경직돼 있어 사건을 '남성의 시각'과 '남성의 언어'로 이해하려 한다고 했다. 가해자의 시각과 언어를 객관성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홍 목사는 "피해자에게 '왜 거절하지 못했나. 왜 몇 년 동안 당하고 있었나'라고 묻거나 '그런 의도가 없었는데 왜 예민하게 받아들이나'라는 식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피해자가 사실을 진술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가 '피해자 중심주의'다"고 했다.

홍 목사는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는 없어져야 한다"면서, 피해자는 문제 발생 원인이 아니고, 문제 발생을 막을 의무도 없으며, 권리를 침해받은 자로 공감받을 자격이 있다고 했다.

단순히 드러난 사실만 볼 것이 아니라, 사건이 발생하게 된 근본적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고도 했다. 홍 목사는 "교회 내 성폭력은 교인을 '영적 아버지'에게 순종하게 하는 등 '권력 관계'의 맥락이 있다. 그런 맥락을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때로는 선한 의도로 한 일에도 상처받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가해자의 의도보다 피해자의 감정과 느낌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했다.

홍보연 목사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피해자 절대주의'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피해자의 말을 무조건 옳다고 믿거나, 피해자에게 사건의 모든 판단 기준을 위임한 것이 아니다"고 했다.

교회 내 이런 문화가 정착하려면 피해자 말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목사와 교인들이 의식을 가져야 한다. 동시에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홍 목사는 "교회 내 성폭력 피해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 가해자 처벌과 상담 및 치료, 예방 교육, 전문 상담소 설치, 피해자 치유·보호 시설 설치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