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2018년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 예배는 '쫓겨난 이들'을 위한 시간이었다. 기독교인 450여 명은 투기 자본의 지역 잠식으로 집을 잃은 원주민이나 사업장을 빼앗긴 소규모 임차인들과 함께 예수의 부활을 묵상했다. 고통받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살다 목숨을 잃은 예수. 그의 부활은 예배에 참석한 철거민들에게 소망으로 다가왔다.

부활절 연합 예배는 4월 1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9년 전, 용산 참사로 아버지를 잃은 용산4구역철거대책위원회 이충연 위원장이 타종 소리와 함께 강단에 올랐다. 이 위원장은 "희생된 철거민, 쫓겨난 사람들과 함께 부활을 살고자 모인 여러분. 우리는 쫓겨난 사람으로 오신 예수, 죽음을 가로질러 부활의 소망으로 이끄시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 왔다"며 예배 시작을 알렸다.

"이제 우리, 애통하는 사람이 되어 함께 웁시다. 연약한 사람이 더 행복한 나라를 선포합시다. 고통과 죽음을 가로질러, 고통 없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한 주님을 노래합시다. 쫓겨난 사람을 편드시는 주님의 편이 되어,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출 때까지, 이 고통을 마주하고 기억하며 함께 싸웁시다."

올해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 예배는 '쫓겨난 이들'을 위한 시간이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예배에는 이충연 위원장을 포함해 여러 철거민이 함께했다. 2014년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 아파트 재개발 이후 주민들이 제기한 민원으로 노점상을 잃은 '작은 거인' 조용분 사장, 북아현 뉴타운 사업 당시 곱창집을 잃지 않기 위해 700여 일을 투쟁했던 놀란곱창 이선형·박선희 사장, 서울 종로구 서촌이 신흥 상권으로 부상하자 하루아침에 건물주가 월세를 4배로 올리는 바람에 쫓겨날 처지에 놓인 궁중족발 김우식·윤경자 사장, 서울 성북구 장위동 뉴타운 사업으로 30년 가까이 정든 집이 철거될 위기에 놓인 장위7구역철거민대책위원회 조한정 위원장 등이 객석 맨 앞에 앉아 부활절 예배에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최근 몇 차례 강제집행이 몇 차례 진행됐던 궁중족발과 장위동 7구역 재개발 상황을 들었다. 김우식 사장은 지난해 11월 9일 강제집행 이후로 궁중족발 시간이 멈췄다고 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의 허점을 잘 알고 있는 건물주가 강제집행을 진행했습니다. 2차 집행에서 건물주가 돈을 주고 고용한 사설 용역에게 제 손가락 네 개가 부분 절단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4인 가정을 책임져야 할 가장을 평생 장애인으로 만들었는데도, 건물주는 (제가) 자해했다며 자기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불법과 폭력으로 이뤄진 강제집행은 불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삶의 터전인 가게를 계속해서 지킬 것입니다."

윤경자 사장도 현재 궁중족발 상황이 어렵다고 했다. 건물주가 두 부부는 물론, 이들을 돕는 연대자 40여 명도 고소·고발했다는 것이다. 그는 임차 상인이 쫓겨나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하고, 건물주와 임차 상인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상인을 위한 법이 아니라 오히려 돈 많은 건물주를 도와주는 법입니다. 건물주들이 하루 벌어 생활하는 임차 상인의 생존권과 삶의 터전을 합법으로 가장해 약탈하려 합니다. 내 권리, 내 목숨이 소중하듯 다른 이의 것도 소중합니다. 서로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만이 진정한 상생의 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조한정 위원장은 32년간 살았던 정든 집이 철거될 위기에 놓였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조한정 위원장은 장위동 7구역에 있는 집에서 32년간 살았다. 그곳에 살며 아내를 만나고, 자녀들을 낳았다. 가족과 정겹게 보낸 추억이 골목 구석부터 방 안 곳곳에 쌓여 있다. 평온했던 일상이 일그러지기 시작한 건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장위동 뉴타운 사업을 발표했을 때다. 몇 년 사이 뉴타운 사업은 재개발 사업으로 축소됐고, 이웃들은 대다수 떠나고 동네는 폐허가 됐다. 조 위원장과 몇몇 세입자만 힘겹게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재개발 사업으로 제 삶은 다 망가져 버렸습니다. 우리는 보상금을 받고 옆 동네로 이사 가면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감정평가 금액이 현 시세에 턱없이 부족해 저희가 갈 수 있는 곳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1월 갑자기 강제집행이 들어왔습니다. 법원 용역들이 담을 넘고 현관문을 부술 때,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죽음으로라도 항변해야겠다는 생각에 스스로 제 가슴에 칼을 꽂았습니다. 아주 힘껏요. 한 번에 끝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병원에서 장시간 수술 끝에 살아났습니다. 허탈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저를 다시 살려 내어 이 고통을 다시 겪게 하는지 원망스러웠습니다."

용산 참사로 아버지를 잃은 용산4구역철거대책위원회 이충연 위원장이 기도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날 설교를 맡은 김희룡 목사(성문밖교회)는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성문 밖, 즉 도시에서 쫓겨나고 소외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수는 인간의 존엄을 부정당한 사람들이 있는 곳, 성문 밖으로 나아가 그들을 위해 살다 죽으셨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던 것처럼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당한 사람들 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곳이야말로 그리스도께서 함께하고 있는 곳입니다."

김우식·윤경자 사장(사진 왼쪽부터)이 분병·분장위원을 맡았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놀란곱창 박선희·이선형 사장(사진 오른쪽부터). 뉴스앤조이 박요셉

성찬식이 이어졌다. 이충연 위원장, 김우식·윤경자 사장, 조한정 위원장, 조용분 사장, 이선형·박선희 사장 등이 분병·분잔위원을 맡았다. 이들은 부활을 의미하는 흰 스톨을 목에 두르고 둘씩 짝을 지어 각각 전병이 담긴 잔과 포도주가 담긴 잔을 들었다. 참가자들은 이들이 나눠 주는 전병과 포도주를 먹으며 함께 기도했다.

"쫓겨난 사람들과 희생된 철거민들, 그리고 연대하는 이들을 기억합니다. 또한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희생당한 분을 기억합니다. 길 위에서 여전히 투쟁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 해고된 노동자들을 기억합니다. 국가 폭력, 혐오와 차별로 고통받는 우리의 벗들을 기억합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몫을 기억하며 하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겠습니다."

예수는 성문 밖에서 소외된 이들과 함께 살았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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