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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탈교리화

죽음-사랑으로부터 생명-사랑의 사건으로

강남순   기사승인 2018.03.31  13:3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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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2018년 3월 31일 강남순 교수(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브라이트신학대학원)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허락을 받고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1.

기독교문화권에서 가장 중요하게 간주되는 절기는 부활절과 성탄절이다. 그런데 신학대학원에서 교수로 가르치고 있는 직업을 가진 나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이 두 절기 때마다 매우 근원적인 불편함을 느끼곤 한다. 특히 부활절 때마다 세계 곳곳의 교회들에서 외쳐지는 "그리스도가 살아나셨다(Christ is risen)"는 구호, 그리고 예수의 '육체적 부활을 믿는가 아닌가'라는 지칠줄 모르고 반복되는 클리셰 논쟁들을 접할 때마다, 나는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이 지독한 교리의 감옥에 점점 더 깊숙이 가두고 왜곡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수난절은 승리의 부활을 장식하는 액세서리일 뿐, 그 죽음의 수난이 이 구체적인 현실 세계 속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한 성찰은 이 상업화되고 교리화된 부활절로 인해 부재하다.

2.

3월이 되자마자 곳곳에 장식된 부활절 토끼 모양의 초콜릿과 갖가지 달걀 모양의 초콜릿들이 이 미국의 상가를 가득 채우면서, 예수의 '수난(Passion)'이 상징하는 죽음-사랑(necrophilia)의 파괴적 가치들이 뿜어내는 어두운 응어리들에 대한 성찰이 사라진 채, 수난은 '달콤한' 사건으로 포장되고, 부활절로 거쳐 가는 '간이역'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이러한 정황에서 볼 때, '부활'은 종교적 교리화가 아니라, 이 삶의 근원적 물음과 연계시키는 '탈교리화'를 통해서 그 심오한 의미가 오히려 더 풍성하게 드러나게 된다고 나는 본다.

3.

여기서, '예수가 '육체적으로' 부활했는가를 믿는가 안 믿는가'라는 물음은 사실상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설사 누군가가 '나는 예수의 육체적 부활을 믿는다'고 선언한다고 할 때, 그 선언은 도대체 이 구체적 현실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그 선언 자체보다, 그 선언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그 선언의 실천적 '기능성(functionality)'이다. 예를 들어서, 예수의 육체적 부활에의 확신이 다른 종교들을 열등한 종교로, 기독교만이 유일한 우월한 종교로 확신하는 '기독교 우월주의'를 절대화하는 기능을 한다면, 그 육체적 부활의 맹목적 확신과 선언은 사실상 예수가 자신의 삶과 메시지로 전하려고 했던 가치들을 배반하는 것이다.

4.

부활했다는 예수를 처음에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성서는 전한다. 이 성서의 이야기가 암시하고 있는바는 무엇인가. 지금으로 말하자면 예수의 부활은 TV나 라디오방송, 또는 신문에서 언급조차 될 수 없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사건이었다. 하다못해 그와 3년을 동고동락했다는 예수의 제자들조차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부활했다는 예수는 영광의 승전가를 부르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정원사로, 길 가는 나그네로, 알 수 없는 낯선 이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그들과 함께 걷고, 먹고, 이야기 나누면서-즉 그들의 삶 깊숙이 들어가서 생명-사랑의 에너지를 주는 사건속에서 비로소 사람들은 예수의 부활 사건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5.

부활은 객관적으로 '보이는' 광경이 아니다. 다양한 양태의 죽음 사랑의 가치와 폭력들이 난무하는 이 삶 깊숙이에서, 그 파괴성과 폭력성을 넘어서는 생명 긍정과 생명-사랑의 가치를 확산하고, 그 생명 사랑의 에너지를 분출하는 이들만이 '경험'하는 '생명-사랑의 사건' '생명-긍정의 사건'이다. 이렇게 탈교리화된 해석을 통해서, 신화적 세계를 벗어난 이 21세기에도 '부활 사건'은 그 유의미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 부활의 의미는 그의 '육체적 부활을 믿는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통해서가 아니라, 또는 화려한 장식과 음악이 가득 찬 교회들이 아니라, 아무도 눈 돌리지 않는 주변부에 있는 이들, 다층적 폭력과 배제와 억압을 경험을 하고 있는 이들과 함께 생명-사랑의 가치와 에너지를 나누는 현장 한가운데에서 끊임없이 경험되는 사건이 되어야 한다. 절망적인 죽음 사랑의 문화 한가운데에서, 그 죽음의 문화를 넘어서는 생명 사랑의 세계를 향한 새로운 희망의 경험이 기적 같은 부활의 경험과 사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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