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 / 백소영 지음 / 뉴스앤조이 펴냄 / 299쪽 / 1만 3000원. 뉴스앤조이 김은석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남자가 여자를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해 창조되었습니다(고전 11:8-9)."

"여자들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으니 조용히 하십시오. 율법에도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하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4:34)."

"아내들은 주님께 순종하듯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것처럼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자기 몸인 교회의 구주가 되십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 아내들도 모든 일에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엡 5:22-24)."

[뉴스앤조이-하민지 기자] 여성 크리스천이라면 한 번은 고민해 봤을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저 성경 구절들은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나님 말씀에 감히 반감을 느끼는 나는 불신앙인일까. 페미니스트가 되면 하나님이 싫어하실까.

백소영 교수(이화여대)는 오래된 질문에 사이다를 준다. 그는 "하나님은 페미니스트"라고 단언하고, 페미니즘을 실현하는 게 곧 하나님나라이며 크리스천이라면 모두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고 강변한다. 최근 저작에서, 백 교수는 페미니즘을 기독교 관점으로 설명하는 동시에 성경도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잃은 양 한 마리도 배제하거나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 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 내신 분입니다. 하물며 '여성'은 어떻겠습니까? (중략) 하나님의 사랑 안에 제대로 거하는 사람에게 배제나 포기는 '이론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으려면 남자도 페미니스트여야 합니다." (18쪽)

"진정한 페미니스트 선언은 하나님나라의 통치 질서를 선포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하나님나라에는 배제되는 자가 없잖아요.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자매요, 형제잖아요. 바벨탑처럼 높이 쌓아서 이루는 나라가 아니라 수평적 마주함으로 이루는 나라잖아요." (51쪽)

백소영 교수는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정신이 맞닿아 있다고 설명하면서도, 진정한 여성 해방을 위해서는 기독교가 이상화하는 여성상을 타파하고 기독교라는 제도 종교를 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성경적인 포용과 평등의 정신보다 남성 중심 가부장적 관습이 한국 기독교에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남성으로 여기는 것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하나님은 남성인가. 백소영 교수는, 그동안 남성 이미지로만 여겨 왔던 하나님 '아버지'라는 이름을 버리고, 우주에 꽉 차 계시는 하나님 자체를 드러내자고 했다.

"남자들의 '낭만적' 통제 아래 있는 사랑스런 바보, 거기에 더하여 신앙적으로는 '경건한 여성'이 개신교가 이상화하는 아내요 엄마일 테니까요. (중략) 교회의 금욕주의적 신앙 수행의 시스템 안에서 거룩하다고 구별될 수 있는 여성들은 수녀의 형태로 자기들의 여성성을 될 수 있는 대로 '거세'하면서 살아갔죠." (113쪽)

"여성 신학자 메리데일리는 결국 진정한 여성해방은 '기독교'라는 가부장적 종교를 넘어서야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중략) 데일리는 '우리 여성들의 언어에서 '남성 기독교 전통'은 모두 '거세'해 버리자. 우리 안에서 여신성을 찾고 우리 안에 있는 여신들의 언어를 발현하게 하는 데 힘쓰자'고 했어요. 데일리는 결국 '하나님 아버지'를 넘어서, 남성 언어와 상징을 거세하자고 선포하게 된 것이죠." (116쪽, 125~126쪽)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에서, 백소영 교수는 발굴되지 않은 성경 속 여성 리더들을 알려 준다. 그는 책에서 "성경 본문 안에서 여성 리더십을 찾는 일은 남성 신학자들이 충분히 강조하지 않았거나 왜곡한 부분을 찾아 드러내는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백 교수가 첫 번째로 전하는 성경 속 여성은 최초 여성 선지자 미리암이다. 미리암은 출애굽기에서 모세와 함께 홍해를 건너는 등 공동체 지도자로서의 활약했지만, 많은 이가 모세만 강조하지 미리암은 주목하지 않는다.

드보라는 이스라엘의 사사·선지자·예언자·재판관이었다. 군사적 위기 상황에서는 전장에도 직접 나갔다. 백 교수는 드보라가 "자신의 공적 역할에 주체적으로 책임 있게 답하고 주저 없이 전장까지 나가는 여성으로 그려져 있다"고 설명한다.

성경에 한 줄밖에 나오지 않는, 야곱의 외동딸 '디나'의 이야기를 그린 미국 드라마 '레드 텐트'. 백소영 교수는 성경을 읽을 때 남성 중심적 시각에 갇히지 말고 풍부하게 상상하라고 말한다. 사진 출처 넷플릭스

페미니즘으로 성경을 읽는다는 건 무엇일까. 백소영 교수는 성경의 '경'經을 주의 깊게 본다. 세로를 나타내는 經 자는, 베틀 위에 실을 세로로 올려놓고 직물을 짜는 작업을 묘사하고 있다. 백 교수는 세로줄인 경줄을 하나님 말씀에, 가로줄인 위줄을 여성의 삶과 언어에 비유한다.

"성경은 우리 신앙 선배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초월적이고 보편적인 진리의 말씀을 경줄 삼아, 자신들의 삶과 언어로 위줄(가로줄) 짜기를 해 놓은 책이죠. (중략) 위줄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을 철저히 해야, 신학적 성찰의 내용인 경줄을 제대로 찾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13쪽)

그동안 성경 해석과 교회 설교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이를테면 많은 남성 목회자가 창세기 2장 18절을 인용하며, '돕는 배필'을 강조하고 여성이 남성을 돕는 게 신의 뜻이라고 말해 왔다.

백소영 교수는 히브리어 '에제르'(도움)라는 단어가 잘못 해석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에제르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적 명사지, 제한된 역할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많은 기독교인은 창세기 2장 18절에 나온 '돕는'을 위계적 의미로 해석해, 마치 남성이 여성 위에 있다는 의미로 알고 있다.

백소영 교수는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뉴스앤조이)에서 "하나님은 태초부터 페미니스트"라고 이야기한다.

글 맨 앞에 인용한 사도 바울의 권면을 해석하려면 어떤 위줄을 끼워야 할까. 위 구절들은 바울이 지역 교회가 처한 문제에 대해 목회적으로 쓴 편지 중 일부다. 백소영 교수는 사도 바울의 말을 문자 그대로 신성시하는 한 페미니즘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바울이 당시 현존하던 가부장적 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인 채 편지를 쓴 것이기 때문이다.

그간 많은 남성 신학자·목회자·교인은 성경을 근거로,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주지 않거나 여성이 교회 내에서 순종적 역할을 맡도록 강요했다. 그들은 성경이 원래 그런 것처럼 이야기해 왔다. 그러나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백소영 교수는, 성경을 읽을 때 자신을 남성 중심적 위줄 안에 가두지 말고 풍부하게 상상하라고 말한다

"데일리는 성경이 그동안 '여성의 것'이 아니었던 게 문제이지 성경 자체를 버릴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성경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자'는 겁니다." (144쪽)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