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제 곧 '제주 4·3 사건' 기념일이 다가온다. 관련 기사와 사진들은 봄날의 희뿌연 미세 먼지보다 더 우리의 마음을 착잡하게 만든다. 70주년을 맞이한 '제주 4·3 사건'은 아직까지 정부에 의해 정식 명칭正名이 결정되지 않았다. 1948년 5월, 분단국가 탄생에 동조하지 않으려고 5·10 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제주도민의 주체적인 저항인지, 아니면 당시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 규정한 대로 좌익이 주축이 된 반란인지 아직까지 그 정체성도, 그에 걸맞은 이름도 규정되지 않았다.

정체성의 규정은 그 당시 저항의 맥락을, 70년간 한국 정부가 강제한 안보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이 아닌 새로운 관점으로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제주 4·3 사건'의 정식 명칭이 어떻게 결정되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이 사건으로 너무나 많은 우리 이웃이 무참히 죽었다는 사실이다. 이후 '제주 4·3 사건'은 진압 명령을 받은 제14연대의 진압 거부 및 반란이라는 '여수·순천 10·19 사건'으로 이어진다. 이승만 정권은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보안법을 만들고 군부대 내의 좌익계 군인들을 '청소'하고, 좌익 계열의 저항을 더욱 강하게 진압한다. 그리고 갈등은 1950년 6·25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해냄출판사)은 이러한 과정을 전남 보성군 벌교를 배경으로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이 후반부에서 사회주의혁명을 미화했다는 비판도 받지만, 필자가 보는 이 소설의 핵심은 민중의 생명을 담보로 이념 논쟁과 전쟁을 도모하지 말라는 것이다. 민중의 생명은 특정 정권이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금 더 강조하면 그 자체가 최고의 가치인 것이다.

이러한 가치는 오늘날 헌법과 법률, 정치 및 학문 영역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에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엄마 젖을 먹는 아기의 눈동자에서, 식탁에서 밥을 먹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학업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학생들의 고된 몸짓에서, 주택을 마련하느라 가계 부채와 씨름하는 부모의 어깨에서, 이제 곧 이 땅의 삶을 마감하고자 침상에서 마지막 씨름을 하는 노인의 고통스런 얼굴에서 소중한 생명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 삶의 언저리에 있는 노인은 엄마 품에 안겨있는 아기의 웃는 얼굴을 보고는 자기의 생명이 이어졌음에 감사하며 눈을 감는다. 이것이 어찌 여기 남쪽 땅의 삶뿐이겠는가.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는 1945년 일본에 투하된 원폭으로 인해 피해를 당한 한국 부모의 2세 피해자인 고故 김형율이 품은 생전의 소원이었다. 김형율의 삶과 그가 남긴 말은 삶의 방향성을 놓고 고민하던 필자에게 큰 울림을 준 기억이 있다. 그런데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한 공동체, 더 나아가 한 국가의 삶 역시 계속되어야 한다.

이 명제는 논쟁의 여지가 전혀 없다. 그렇다면 이웃하는 공동체와 국가 역시 동일한 숙명을 안고 있고,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한다. 이것이 평화의 핵심이라고 본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당연한 것들이 역사 속에서 당연시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새로운 영토에 대한 지배욕을 넘어, 이데올로기와 종교의 차이가 첨예한 갈등을 가져왔다.

이데올로기와 종교는 어느 측면에서는 소중한 가치인데도 안타깝게 자신을 선으로 규정하면서 타자를 '악'이나 '적'으로 규정하는 오류에 빠지고는 한다. 서로 대화가 안 되고 오해가 쌓이면 어떤 촉매제에 의해 분노와 갈등이 심화된다. 그 결과는 전쟁으로 비화하기가 쉽다. 이렇게 평화는 너무도 쉽게 부정된다. 남북 간의 대립은 이데올로기와 종교가 비극적으로 융합된 사례다.

삶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평화가 필요하다. 평화는 필수고 통일은 선택이다. 우리는 중국과 대만이 반드시 통일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별개의 독립국가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같은 잣대를 스스로에게 적용하지 않는가. 우리는 반드시 통일해야 하는가. 관점의 모순이다. 평화가 중요한 것이지 통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개인과 사회의 생물학적 삶, 경제적 삶 및 문명과 정신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어느 일방의 폭력에 의한 강압적인 평화가 아닌 새로운 차원의 평화와 이를 뒷받침하는 상생의 철학이 필요하다.

그 가능성을 프랑스 사회학자 뒤르켐(Emile Durkheim, 1858~1917)의 '불평등이 없는 사회적 연대로서의 평화'에서 찾아보자.

"불평등이 없는 사회적 연대로서의 평화"

1953년 7월 27일에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말 그대로 전쟁을 쉬는 상태인 것이다. 이를 '정전'이라고도 표현한다. 이런 의미에서 정전 체제란 교전 당사자 간의 정치적 해결로 나아가지 못한 가장 낮은 단계, 즉 전쟁이 부재하다는 부정적 의미에서의 평화 상태이다. 반면 전쟁을 완전히 멈추는 상태인 '종전'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종전을 다르게 표현하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려는 새로운 단계의 항구적인 '평화 체제'인 것이다. 정전 체제에서 평화 체제로 넘어가야만 그 다음 단계로 통일을 생각할 수 있다.

뒤르켐의 이론에 기초해 정전 체제, 즉 현상의 판문점 체제를 분석하고 평가한 김학재[<판문점 체제의 기원>(후마니타스)]는 이 판문점 체제를 '권위에 의한 평화'가 아닌, '힘에 의해 강요된 임시적 평화'로 규정했다. 즉, 안정적인 영구 평화 체제가 아니라 합의의 수준이 매우 낮은 군사 정전 체제이고, 지난 60여 년간 현존 질서유지에 대한 주변 강대국들의 강박에 의존해 겨우 유지된 불안하고 유동적인 체제라는 것이다.

불안하고 임시적인 평화 상태는 당연히 더 안정적인 평화 체제로의 변화를 도모하기 마련이다. 이런 차원에서 다양한 차원의 접근법이 제시되었다. 크게 유형화하면 '보수적 자유주의 평화 모델', '단일 민족국가 건설 모델', '분권형 연방제 모델', '경제 지원과 협력 모델' 등이 있다.

이들을 간략하게 평가해 보면, '보수적 자유주의 평화 모델'은 북측의 붕괴를 기대하면서 제재와 압박을 주장하는 것으로, 한미일 정부가 그동안 고수했던 지배적 관점이다. 이는 미래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바람직한 선택이 아님이 분명해졌다.

'단일 민족국가 건설 모델'은 그 당위성에도, 냉전과 한국전쟁이 초래한 복잡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할 뿐만 아니라 이미 남과 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두 국가임을 고려할 때, 당위성만으로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크다. 민족주의를 넘어 새로운 시대적 가치를 포섭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분권형 연방제 모델'은 남과 북의 중앙 집중적인 정치체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주목할 만하다. 그런데 남측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려는 분권형 지방자치제에 대한 경험이 더욱 축적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북측 역시 지방정부에 경제적 자율권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자율권이 확대되는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즉, 양측이 성숙한 분권화의 경험을 축적해야 선택할 수 있는 모델인 것이다.

'경제 지원과 협력 모델'은 경제협력을 통한 평화의 실현을 도모하려는 접근법이다. 이는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들어서서 개성 공단, 금강산 관광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던 것으로, 최근 들어 다시 재개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모델은 평화 체제 전후로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지만, 한국 사회의 발전주의적 경제성장 모델을 북한에 이식했다는 부정적 평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정리하면, '보수적 자유주의 평화 모델'은 지양해야 할 선택지이며, 나머지 세 가지 유형은 장점과 한계를 가지고 있기에 더 많은 창조적 고민이 필요하다.

앞에서 네 가지 유형의 모델들을 살펴보면서 강조되지 않은 것이 있다. 네 가지 유형은 주로 군사, 정치, 경제적 관점을 중시하는 것으로, 분단을 초래한 역사적 맥락인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지주-소작제)에 대한 해결책과, 미래 사회의 보편 가치를 지향하려는 사회적 협력 내지 연대를 제대로 포섭해 내지 못했다.

뒤르켐은, 역사 과정에 있어서 계급투쟁의 의의를 이해하지 못한 한계를 지닌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불평등이 없는 사회적 연대로서의 평화론'을 제기하여 기존 평화 담론의 부족한 공간을 메워 주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현대사회가 구성원들이 연대 의식을 가져야만 유지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현대사회에서 불평등의 문제는 문명의 생존 자체가 걸려 있는 사안이라고 보았다. 그는 "모든 불평등은 자유 자체의 부정이다"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안정적인 사회적 평화는 교류와 접촉을 통해 관계와 사회를 형성하고, 관계의 구조적 불평등을 극복하며 사회정의라는 가치의 달성을 지향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접근법은 인식론적으로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역사적 과오에 대해 반성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남과 북에서 공히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를 무시한 채 평화 내지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를 각성하게 해 준다. 실천적으로는 시민과 NGO, 사회적 경제 주체 등 민간 차원과, 지자체 등 다양한 주체들이 문화, 체육을 넘어 인도적 지원과 미시 차원의 경제 협력 등을 통해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이 진행되어야 함을 일깨워 준다.

뒤르켐은 협력 관계를 특히 "분업과 사회적 연대"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렇게 하여 새로운 사회가 형성된다고 말한 점이 인상적이다. 그 결과 남과 북 사이에 단절된 사회가 아닌 공정성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가 창조되어 '사회적 연대로서의 평화'가 가능하게 된다. 필자는 뒤르켐이 제시한 평화 모델이 앞서 평가한 '분권형 연방제 모델' 및 '경제 지원과 협력 모델'과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새로운 관점이 변화를 이끌어 낸다

"아! 저 까마귀를 보라. 그 날개보다 더 검은색이 없긴 하나 얼핏 옅은 황금색이 돌고, 다시 연한 녹색으로 반짝인다. 햇볕이 비추면 자주색으로 솟구치다, 눈이 어른어른하면 비취색으로 변한다. 그러므로 내가 비록 푸른 까마귀라고 말해도 괜찮은 것이고 다시 붉은 까마귀라고 말해도 상관없는 것이다. 저 사물은 본디 정해진 색이 없는데도 내가 눈으로 먼저 정해 버리는 것이다. 어찌 그 눈에서만 판정할 따름이랴? 보지도 않으면서 마음속에서 미리 판정해 버린다."

검은색 까마귀 보고 검은색이 아니라고 이야기한 사람은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이다. 이렇게 대담한 주장을 펼 수 있었던 배경에는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는 태도, 사회 개혁적인 자세, 직접 보아야 한다는 실증적인 자세가 자리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박지원의 이러한 관점은 그에게 풍부한 상상력과 사회 개혁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남북 간의 새로운 평화 시대 역시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관점을 요구한다. 관점이 새로워져야 평화 체제, 더 나아가 통일이라는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래야 진정한 해방 공간이 만들어지고 그 공간에서 지속 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필자는 본 칼럼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이데올로기보다 생명의 중요성, 권력 독점과 토지 독점에 따른 민중의 억눌린 삶이 남북 분단의 자양분이 되었다는 점, 평화는 필수이고 통일은 선택이라는 점, 불평등 없는 사회적 연대로서의 평화가 보완적인 평화 모델로 추가되어야 한다는 점들을 제시했다.

이러한 관점 역시 필자의 고정관념이 아니냐고 반응하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한 반론에 설득력 있는 대응을 할 자신은 없지만, 독자가 아주 강경한 입장이 아니라면 이어지는 연속 칼럼을 통해 함께 새로운 관점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 좋겠다. 본 칼럼은 그 출발로서, 담론적 성격이 강하다. 다음 칼럼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토지 독점 등에 따른 불평등의 문제가 남북 분단의 출발점이자 본질이었다는 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필자 소개 이미지를 클릭하면 '조성찬의 평화가 살길이다' 전체 기사 목록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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