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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그릇, 그릇 하나를 절대화하면 안 돼"

[인터뷰] <신학을 다시 묻다> 저자 후카이 토모아키 교수

강동석 기자   기사승인 2018.03.31  02: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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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의 1%도 되지 않는 일본에서 저서와 역서를 40여 권 출간하며 왕성한 신학 작업을 하고 있는 신학자가 있다. 토요에이와조가쿠인대학교東洋英和女学院大学 후카이 토모아키深井智朗 교수다. 사회사社會史적으로 신학을 성찰하면서, 비기독교 세계에서 기독교와 신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밝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런 그가 최근 <신학을 다시 묻다 – 사회사를 통해 본 신학의 기능과 의미>(비아) 출간을 맞아 방한했다.

<신학을 다시 묻다>는 2000년 기독교 역사를 되짚으며, 기독교와 신학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 살피는 책이다. 기독교가 지중해에서 유럽으로 넘어가면서 신학이 보편 학문으로 자리 잡는 과정과, 보편 학문이었던 신학이 종교개혁을 통해 자기 정당화 수단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비중 있게 담았다.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신학의 기능과 역할이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 오늘날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밝히고 있다. 신학이 단지 교회 안에 갇힌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후카이 토모아키 교수를 3월 20일 홍대입구역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기독교대한감리회 파송 선교사로 일본에서 목회와 연구 활동을 병행하는 홍이표 목사가 인터뷰 통역을 맡았다. 홍 목사는 <신학을 다시 묻다>와 토모아키 교수의 다른 책 <사상으로서의 편집자>(한울) 번역자이기도 하다. 2시간여 인터뷰를 정리했다. 책 이야기와 함께 신학의 변천 과정, 개신교회 특징 등에 대해 들었다.

후카이 토모아키 교수와 홍이표 목사. 후카이 토모아키 교수는 학교법인토요에이와조가쿠인学校法人東洋英和女学院 총장이기도 하다. 홍이표 목사는 최근 출간한 <가가와 도요히코 평전>(신앙과지성사) 번역 작업에도 참여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기독교 신앙을 접하고 신학자로서 활동하게 된 배경을 듣고 싶다.

1964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내 가족·친척들은 다 비기독교인이었다. 우연히 주일학교에 다니면서 기독교 신앙과 만났다. 아버지는 외무성 공무원으로 일했다. 아마 기독교인이 되지 않았다면 나도 공무원이나 법조인을 지향하는 인생이었을 듯하다.

내가 기독교 신앙을 갖고 신학을 배우는 일은, 기독교를 전혀 모르는 교회 밖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과 관련돼 있다. 기독교 신학에서의 배움을 그들과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데서부터 신학 공부가 시작됐다. 내가 받은 사명은 '교회 밖 비기독교인'에게 신학을 최대한 알리는 일이다.

가족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여러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어떻게 설명해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신학과 기독교에 깊은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교회 밖 언어로 이해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렇게 노력하는 과정에서 신학을 더 깊이 공부하게 됐고, 신학자와 목회자가 됐다.

일본은 기독교 미션스쿨이라고 해도 학생의 95% 이상이 비기독교인이다. 기독교를 싫어하거나 거부감을 갖는 학생은 많지 않지만, 교인이 된다거나 세례를 받거나 핵심 멤버가 되는 것에는 부담을 느끼고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신학을 다시 묻다>는 이런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신학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책이기도 하다.

- <신학을 다시 묻다>에서 '사회사적 방법론'으로 신학의 역사를 짚었다.

'사회사적 방법론'은, 텍스트를 읽을 때 그 신학 텍스트를 만든 '사회사적 콘텍스트'와 떼어 놓지 않고 고찰하는 방법을 말한다. 사회사적 콘텍스트를 만들어 낸 신학 텍스트의 존재도 함께 확인한다. <신학을 다시 묻다>는 사회사적 방법론으로 기독교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기독교 이해를 돕는 책이다. '신학이 무엇인가'라는 기본적 질문을 다루고 있다.

비기독교인이 볼 때, 신학은 의미가 없고 필요 없는 학문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나의 일상과 생활에도 신학이 밀접한 관계가 있구나'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다. 비기독교인의 일상에도 신학이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싶었다.

이 책에서 "근대사회의 심층 구조"라는 표현을 썼다. 심층심리학 분야를 응용해 근대를 설명하기 위해 '심층 구조'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간과하거나 놓치지 않으려면, 겉모습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고 마음속 깊은 곳을 간파해야 한다.

근대사회를 보면, 세속과 종교는 전혀 관계가 없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 사회가 탄생하기까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신학적 세계'가 그 토대를 차지하고 있다. 빙산은 수면 위로는 아주 작은 부분만 나와 있지만 수면 아래를 보면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숨어 있다. 수면 아래 거대한 덩어리를 직시하지 않으면 표면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유럽‧미국 영향으로 형성된 근대사회 수면 아래 보이지 않는 구조가 바로 '신학'이다. 오늘날 민주주의 시스템, 삼권분립이나 삼심제도, 인권 개념, 자본주의 시장 체제를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것들은 사실 신학에서 잉태했다. 현대인은 이를 잊고 표면의 형태, 껍데기를 향유하며 살고 있다. 지금 경험하는 모든 시스템이 신학 그 자체라는 점을 이해시키고 싶었다.

한국어로 번역 출간한 후카이 토모아키 교수의 저서는 총 2권이다. <사상으로서의 편집자>와 <신학을 다시 묻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지난해가 종교개혁 500주년이었다. 내가 속한 대학에서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볼링 대회가 열렸다. 볼링 자체는 5000년 전 이집트에서 생겨났지만, 마틴 루터가 볼링 규칙을 만들었기 때문에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으로 대회를 열게 된 것이다. 볼링은 이탈리아반도를 경유해 유럽 전체로 퍼졌는데, 특히 수도원에서 성행했다. 왜 수도원에서 하게 됐을까. 볼링 핀을 사탄으로 상징화하고, 사탄의 유혹을 무찌른다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볼링을 쳤다. 수도원은 긴 복도가 많으니까 볼링하기에도 좋은 환경이다.

마틴 루터도 수도사였다. 종교개혁으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이처럼 결혼하지 않던 사제가 결혼하게 된 것이다. 마틴 루터에게는 자녀가 6명 있었다. 자녀들에게 어떻게 신앙을 계승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사제들에게 생겼다. 그때 볼링을 통해 신앙을 계승했다. 당시 볼링은 핀 9개를 3개씩 놓고, 공을 2번 굴렸다. 루터가 정한 규칙이다. 성서에 나오는 사탄 이름들을 하나씩 볼링 핀에 적었다. 사탄의 이런저런 유혹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아이들에게 그것을 무찌르는 것을 볼링으로 교육했다.

갑자기 사탄이 보여 잉크병을 벽에다 집어던졌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을 정도로, 루터는 사탄을 깨부수는 운동을 했다. 그 일환으로 볼링이 영국으로 전해지고, 청교도에게 넘어가더니 미국에 전파됐다. 미국으로 볼링이 넘어갔을 때는 그 종교적 배경이나 핀이 가진 의미, 유래 등을 다 망각하고 말았다. 미국에서 볼링이 성행했을 때는 점수를 계산하는 등 계량화한 스포츠가 됐다.

심지어 돈을 거는 등 사행성이 되니까 한동안 금지하기도 했다. 종교적 행위가 세속화하면서 타락해 절제 운동의 한 대상이 돼 버린 것이다. 볼링이 금지됐다가 새로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핀이 10개로 바뀌고 지금의 볼링으로 정착하게 된다. 지금 볼링하는 사람들은 볼링 배후의 종교적 의미와 역사적 배경을 모른다. 볼링이 퍼질 수 있었던 것은 볼링의 종교적 의미 때문이기도 한데 말이다. 이런 것이 바로 신학이 근현대 세계의 형태를 구축한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영역에서 이런 예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신학적 동기와 이유로 구축돼 온 것이 껍데기, 형식만 남게 됐다. 우리는 신학적 사고 없이 껍데기만 사용하고 있다. 그 내용을 알기 위해 신학이 필요하다. 신학이 중요한 것은 신학을 통해 비로소 세계를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이 책을 어떤 식으로 읽었으면 좋겠나.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대목이 있다면.

큰 줄기를 놓치지 않고 읽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독교 역사를 돌아보면, 신학이 크게 바뀌는 계기가 두 번 있었다. 하나는 기독교가 지중해 세계에서 유럽으로 넘어가면서 유럽이 기독교화하는 때다. 당시 유럽의 신학은 보편학으로서의 학문이었다. 모든 것을 신학으로 설명해야 했고, 실제로 그렇게 설명했다. 그 시기 신학은 절대 진리로 자리했다.

그 다음, 종교개혁이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하나의 절대 진리가 자리한 사회 안에 또 다른 진리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 준 것이다. 파문을 일으킨 셈이다. 그때부터 신학은 만인을 향한 보편 진리가 아니게 됐다. 자기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수단, 상대방을 누르기 위한 수단이 돼 버렸다. 신학의 새로운 국면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신학의 보편화와 신학의 상대화라는 두 전환점을 놓고, 우리가 신학 작업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각자 기독교 역사와 신학에 대한 고정관념, 편견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이것들을 깨는 데 도움을 준다면 좋겠다. 깨질 때 반발이나 저항감보다는 희열을 느끼며 읽어 주면 좋겠다. 반론을 열심히 쓰면서 읽어도 좋겠다. 결핍된 부분, 과장된 부분을 체크하면서 나중에 문제 제기해 준다면 나도 기쁘겠다. 이런 독서법은 자기 자신과의 대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안에 있는 생각을 재정리하며 읽어 줬으면 좋겠다.

후카이 토모아키 교수는 기독교 역사 가운데 신학이 크게 바뀌는 계기가 두 번 있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한국교회는 '교회 세습'으로 시끄럽다. 지난해가 종교개혁 500주년이었는데, 재적 교인 10만이라고 하는 명성교회가 부자 세습을 단행했다. 교회 세습은 책에서 지적한 '개인'을 강조하는 개신교회 특징과도 연결되는 듯하다.

개신교 목사들은 결혼을 하지 않나. 이는 하나님의 은총이지만 큰 과제를 안겨 준다. 자녀가 생겼을 때 발생하는 부담과 책임이 있다. 내가 신학교를 졸업할 때 총장이 전했던 메시지를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기독교 목사가 될 당신들은, 신학교를 졸업하는 지금 이 시점에 가톨릭 사제의 독신 선언에 대해 다시 한 번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개신교에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자의 길을 가는 것은 자기 몸을 하나님에게 바치는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가족이 있으면 가족의 본령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데서 엄청난 유혹을 받게 된다. 가톨릭 사제 중에서도 그런 욕망이 있는 사람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결혼할 수 없으니까 가족주의적 욕망이 일어나기 힘들다.

나치에 투쟁했던 기독교인 중 가톨릭 사제 비중이 컸다. 독신이었기 때문에 저항이 가능했던 측면이 있다. 개신교 목사는 적었다. 개신교는 루터 이래로 '결혼'에 구속될 수 있게 됐다. 하나의 은혜이지만, 은혜만큼의 부담이 따라오는 것이 현실이다. 그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개신교인은 자신을 상대화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지적할 것은 '법의식'이다. 법의식은 개신교계가 압도적으로 약하다고 본다. 개신교와 비교할 때 가톨릭은 법에 대한 의식이 확실히 다르다. 가톨릭의 교회법은 세계적으로 보편화해 있다. 개신교 교회법은 교파에 따라 제각각이다. 자기 집단 안에서만 올바르면 올바른 것이다. 이상하게 상대화해 버렸다. 제멋대로 해석할 수 있게 만들었다. 법의식에서 개신교가 범하는 잘못이다.

어느 가톨릭의 교회법학자가 개신교 교회법을 두고, 축복은 받았지만 애매한 점이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법은 확실해야 하는데 개신교의 법은 어정쩡하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맞춰 버린 법, 그것이 개신교의 법이다. 개인주의라고 말하면 반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특정 교파나 교회가 자신의 상황에 맞춰서 교회법을 만들었다. 제멋대로 만들면서 성경을 끌어들인다. 가톨릭은 이와 다르다. 세계가 하나의 일원화한 법을 따른다.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와 동시대 교회법학자 루돌프 좀(Rudolph Sohm, 1841~1917)은 '법과 권위'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느 교회를 가도 그 교회를 지배하는 수단으로 법과 권위가 존재한다. 권위가 똑바로 작용하려면, 법을 초월한 (신적) 권위가 필요하다. 권위는 '카리스마' 개념과 유사하다. 하나님에게 부여받는 것이다.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내지 않는다. 하나님의 선택에 따라 받는 피동적인 것이다. 지금 개신교는 권위를 상실하고 권력화했다. 권력은 다른 사람들을 누르면서, 사람들에게서 탈취하는 것이다.

개신교는 권위를 잃고 권력화할 수 있다. 그게 개신교의 약점이다. 좀은 개신교가 엄청난 혼란이 닥쳤을 때 문제를 수습할 방법이 분열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후카이 토모아키 교수는 권위를 상실한 개신교가 권력화하면서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게 됐다고 지적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한국 개신교인이 1000만 명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들 중 상당수가 보수적이며, 자신의 성서와 신학을 절대화한다. 책에서 '상대화'를 강조하기도 했는데, 성서와 신학을 절대시하는 경향을 어떻게 보나.

일본이나 미국도 같다고 생각하는데, 근본주의적 기독교는 단순함과 알기 쉬움을 특징으로 갖는다. 정치로 말하면 포퓰리즘이다. 절대악과 절대선이 확실히 구분돼 있다고 이해하기 쉽다. 미국에서 트럼프나 조지 부시가 얘기하는 방식이다. 상대방은 절대악이고 우리는 선이라는 것. 그러면 정치적으로 아주 쉽게 전달이 된다. 적이 확실해지니까. 종교적 측면에서도 그렇게 설명하면 이해하기 쉽다.

문제는 이 논리를 교회와 신앙 세계 안으로 끌고 올 때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바람직한 신앙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내가 정당하지 않거나 바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기 위한 방법으로 신학을 해야 한다. 자신의 고정관념을 재검토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하지 않는가.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마지막에 얼굴과 얼굴로 마주하는 순간이 온다. 그 종말의 순간에야 선과 악이 확실히 구분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알 수 없다. 현실 세계에서 절대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일은 위험하다. 신학은 그것을 깨닫기 위해 존재한다.

기독교가 근대 이후 들어와 신뢰를 많이 상실한 이유는, "하나님은 하나님이다"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신학·신학자나 교회·목사가 하나님처럼 돼 버렸다는 데 있다. 신학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상대화하는 작업을 하지 못한 것이다. 자신을 절대화한 과정이 신뢰를 상실한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본다.

원래 신학은 자신을 절대화하는 수단이 아니다. 자기 신앙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방법론이었다. 신학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상대화하는 작업이다. 신학 자체는 여러 다양한 형태일 수 있고, 기능과 역할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천해 왔다. "lex orandi, lex credendi"(기도의 법이 신앙의 법이다)라는 유명한 명제가 있다. 기도하는 장소가 신앙이 출발하는 장소라는 뜻이다. (신앙의 법인) 신학에서 예배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반대다. 예배 현장에서 신학이 움튼다.

신학에서 예배가 나온다고 착각하는 순간, 여러 형태의 신학이 스스로를 절대화해 버리는 오류에 빠진다. 그러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신학이란 무엇인가'를 근본에서부터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며, 스스로도 상대화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진리는 변하지 않지만, 그것을 어떤 틀에서 설명할 것인가가 문제다. 그런 틀거리가 바로 신학이다. 틀은 다양할 수 있다. 신학은 그릇에 불과하다. 그래서 상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성서주의에 매몰돼 있는 사람도 어떤 그릇을 통해 성서를 접한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그릇 하나를 절대화하는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 그릇 외에는 복음의 알맹이가 담길 수 없다고 얘기하는 순간, 본질을 망각하게 된다. 이는 위험하다. 예수님도 아람어를 사용해 말씀하셨는데, 복음서는 헬라어로 기록되지 않았나. 2000년 기독교 역사 속에 이와 같이 그릇들에 담기는 작업들이 계속해서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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