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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위한 영적 고전 읽기

[빅퍼즐의 기독 인문학 칼럼] 홀로 그리고 함께

이원석   기사승인 2018.03.29  15: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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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상품화

너도나도 독서를 강조한다. 원래 그랬지만, 요새는 특히 그렇다. 물론 책 읽기는 좋은 것이다. 독서를 하지 않아도, 그게 좋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마치 공부가 그렇듯이. 더욱이 고전 독서가 좋다는 건 누구나 다 안다. 누구나 말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고전이라고 마크 트웨인이 말하지 않던가. 개인의 취향과는 무관하게 고전의 유익을 반박하는 이를 찾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심지어 고전을 열심히 읽으면, 천재가 된다는 자기 계발 상품이 등장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형편이다. 저자들이 천재라서, 고전에 열성 독자의 뇌를 천재의 뇌로 바꾸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신경 가소성(neuroplasticity) 이론까지 끌어 들여오는 판에 무슨 소린들 못할까 싶다. 뇌과학자들에게 던져 주면 퍽 좋아할 법한 먹잇감이겠다. 물론 아직까지도 고전 성공학을 신봉하는 분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으리라 본다.

이는 자본주의의 꽃이라 할 경영에서도 이미 주목받고 있다. 독서 경영을 강조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고전 경영으로 진행된 지도 한참되었다. 독서, 그중에서도 고전에서 경영의 진수를 건져 올린다는 것으로 그 취지를 이해하고 있다(<CEO의 독서 경영 : CEO, 책으로 날다>의 문장을 빌리자면). 고전 경영의 등장은 결국 고전 독서의 상품성 인정에 다름 아닐 게다. 요새 흔히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고전은 돈이 된다.

고전 열풍의 함의

돈이 된다는 표현에는 중요한 함의가 있다. 마음이 가는 데에 돈이 따라간다. "네 보물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태복음 6:21)." 어디에 돈을 쓰는지를 확인하면 그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드러난다. 그저 따스한 말 몇 마디나 토닥토닥해 주는 손길로 진심을 알 수는 없다. 마케팅의 측면에서 봐도 마찬가지다. 소비자의 필요와 욕망에 접속되는 상품에 지갑이 열리게 마련이다.

이는 개인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마찬가지다. 가령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자극적 표현은 그 이면에 우리 사회가 예전에 비해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에 귀를 기울인다는 점을 함축하고 있다. 혹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흥행(21세기에 출간된 인문학 저서로서는 최초로 밀리언 셀러의 자리에 등극했다)도 명백히 우리 사회의 불의한 현실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보여 주고 있다. 정의를 다루는 책이 한동안 봇물 터지듯 쏟아지던 이유다.

고전에 대한 관심도 마찬가지다. 대중의 고전 주목은 자기 계발 열풍에 뒤잇는다. 고전 열풍의 이면에는 허망한 성공학의 소비자로서 많은 돈과 시간과 정력을 소진한 데에 따른 피로감이 도사리고 있다. 자기 계발이 제공하는 성공의 약속이 거짓 복음이라는 사실이 자명해지자(수저 계급론 확산이 이를 보여준다) 성숙을 독려하는 오래된 그러나 새로운 가르침에 눈과 귀를 열게 된 것이다(이는 대안적 삶의 방식 추구와 궤를 같이한다).

한국교회와 영적 고전

한국 교계의 영적 고전에 대한 관심 또한 마찬가지다. 일반 출판계에 비해서는 다소 미진하지만, 기독교 출판계(와 기독교 독자층) 안에서 고전에 대한 관심이 점점 증대하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의문의 여지 없이 한국교회의 현실에 대한 불만족에 기인하는 것이다. 현실 교회에 대한 불만이 교회 전통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교회 전통의 일부로서 영적 고전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다. 예전(ritual)에 대한 관심도 이런 흐름에 포함된다(성공회나 루터회에 대한 관심으로 드러난다). 또한 교회 전체적으로 보면, 가나안(←안 나가) 교인의 증가와 연동되어 있다고 판단된다. 개인적 소견이지만, 상당히 많은 가나안 교인들이 교회 제도보다 영성에 관심을 갖고 있다(SBNR, Spiritual but not religious). 서구 교회의 상황과 유사하지만, 근본 이유는 한국교회의 타락에 있다.

개독교로 불리는 상황이 개혁되지 않는 한, 제도로서의 교회는 갈수록 쇠락하고 영적 고전과 예전 등 오랜 교회 전통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증폭될 것이다. 영적 고전의 출판은 양적으로나 (정확 유려한 번역, 상세한 역주와 해제 등) 질적으로 향상될 것이다. 고전이 번역되었다는 것만으로 기꺼이 돈을 내지는 않으리라. 기독교 대중의 교회론적 문제의식만큼이나 전통(고전)에 대한 안목 또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과 해설 사이

분명 교회와 사회 안에서의 고전 읽기 열풍은 현재진행형이다. 그 유행은 제법 오래갈 것이라 본다. 하지만 고전 자체를 직접 읽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고전에 대해 잘게 씹어 다져 놓은 인스턴트 상품을 구매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고전 요약 및 해제집의 출간이 끊이지 않으며, 고전 해설 강좌도 도처에서 열리고 있다.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 고전 열풍이란 결국 그 해설의 도움에 기대는 현실을 가리킨다.

오랜 기간 독자 대중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던 <미움받을 용기>도 실은 아들러 사상에 대한 해설집이 아니던가. 아들러의 원전을 직접 읽는 대신에 일본의 연구자와 자기 계발 작가가 재구성한 아들러를 소비한 것이다. 사실상 자기 계발 사상가로 재구성한 이런 시도에 나는 비판적이다. '<미움받을 용기>를 미워할 용기'라는 제목으로 서평을 썼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최근 출간한 <대한민국 자기 계발 연대기>(필로소픽)에 실려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상품을 소비하는 현상을 비판하지 않는다. 외려 좋은 해설 자료나 강의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전 성공학을 전파하던 모 자기 계발 강사의 경우, 고전 독자들에게 해설집조차도 멀리하라고 조언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 조언은 고전을 물신화하는 것이다. 성경을 읽는 태도를 생각해 보라. 성경을 잘 읽기 위해서 성경만 읽어서는 곤란하다. 그러다 주화입마에 빠진다.

고전을 함께 읽기

이 모든 논의에 있어서 방향을 바로 설정해야 한다. 그 초점은 어디까지나 고전을 잘 읽는 것에 있다. 제대로 독서해야 제대로 적용하지 않겠는가. 심지어 요약집을 통해서 그 고전의 맥을 짚는 것도 독서를 심화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고전이라 하더라도 난이도가 제각각이다. 특별히 맥락 잡기가 어려운 경우에는 선행 연구자가 제시(재구성)하는 큰 그림을 보족물로 활용할 것을 권한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서 고전을 더 잘 읽기 위한 또 다른 제안을 하고자 한다. 혼자 읽기보다 함께 읽자는 것이다. 이는 고전 독자가 앞서 말한 주화입마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고전에 대해 탐독하는 가운데 자기 혼자의 사유 회로 속에서 공회전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물론 먼저는 혼자 읽어야 한다. 홀로 고전을 붙들고 씨름해야 하는 부담을 회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음으로 함께 나누는 가운데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러니까 고전을 함께 읽으라는 제안은 읽은 바에 대해 함께 나누라는 뜻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고전을 매개로 자기 이야기를 하라는 뜻이다. 고전을 빙자하여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라는 것은 아니다. 고전을 곱씹어 내 삶을 반추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책의 이야기를 통해서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자신에 대한 바른 성찰에 이르게 된다. 그럴 때에 아집을 버리고 내면의 자유와 환대의 기쁨을 향유할 수 있으리라.

함께 읽기로의 초대

지금껏 장황하게 풀어놓은 이야기가 바로 빅퍼즐문화연구소에서 '21세기를 위한 영적 고전 읽기'를 주제로 6회에 걸쳐 (매 회 한 권씩) 6권의 고전을 읽기로 결정한 이유이다. 진행 방식은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먼저 매 회 각 권의 배경과 맥락, 구조와 함의를 안내하는 강의를, 이어서 구성원들이 직접 읽은 소감에 대해서 (위에서 논의한 바를 따라)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하나 소감의 나눔을 의무적으로 요구하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읽는 책은 다음과 같다: 동방교회의 영성을 잘 보여 주는 <모세의 생애>, 서방 교회의 위대한 스승인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스콜라주의 이전의 위대한 중세 교부(이른바 마지막 교부)인 베르나르두스의 <하나님의 사랑>, 중세 후기 신앙 쇄신 운동의 걸작인 <그리스도를 본받아>, 종교개혁의 시조인 루터의 <그리스도인의 자유>, 신구교를 막론하고 널리 사랑받은 로렌스(로랑) 수사의 <하나님의 임재 연습>.

물론 몇 권 안 되는 고전 읽기로 단번에 많은 것을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참된 내적 자유로의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될 것이다. 함께 나누고 서로에게 배우는 시간을 통해서 내면세계가, 더 정확하게는 내면의 이야기가 풍성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풍성해진 이야기를 통해 나를 새롭게 규정하고, 세상을 더 깊이 통찰할 수 있다. 두세 사람이 함께 모여 영적 고전을 나누는 자리에 주님이 함께하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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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퍼즐문화연구소'가 격주 간격으로 기독 인문학 칼럼을 연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뷰 기사(바로 가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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