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사건이 70주년을 맞습니다. <뉴스앤조이>는 올 한 해 이 비극적인 사건을 구체적으로 돌아보며, 특별히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이 4·3 사건과 어떻게 관련돼 있는지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많은 이가 제주 4·3 사건을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잘 모릅니다.

한국교회는 이 사건과 깊이 연루돼 있는데도 그동안 4·3의 진실을 규명하거나 아픔을 어루만지는 데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외면해 온 역사를 직면하면서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며, 우리 신앙을 어떻게 재정비할지 함께 성찰하고자 '4·3과 그리스도인'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 4·3특별취재팀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최기학 총회장) 제주노회는 지난해 가을 노회에서 작은 소동을 겪었다. 한 노회원이 청원한 안건이 발단이었다. 그는 2018년에 4·3 사건 70주년을 맞아 연합 예배를 열자고 제안했다. 좌중에 긴장이 돌았다. 제주 교계에서 4·3을 말하는 건 뇌관을 건드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발언이 끝나자 노회원 간에 논쟁이 시작됐다. '어떤 목적이냐', '교회가 희생자 가족을 위로해야 한다', '누구를 위한 예배냐', '교회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등. 그칠 줄 모르던 언쟁은 한 장로의 말 한마디로 끝났다. "누구를 위로하겠다는 건가. 우리 아버지가 폭도들에게 희생됐다."

올해도 그렇게 4·3 연합 예배를 못 하는 듯 했다. 몇몇 목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공을 제주기독교교단협의회(제주교단협·신관식 회장)에 넘겼다. 예장통합을 비롯해 17개 교단, 450여 개 교회가 가입해 있는 제주교단협은 '치유와 회복을 위한 4·3 70주년 연합 예배'를 여는 데 동의했다. 고난주간 성금요일인 3월 30일 성안교회에서 진행할 계획이다.

기대와 우려 교차하는
4·3 발발 70년 만의 첫 연합 예배

4·3평화공원 내 위령탑. 뉴스앤조이 박요셉

일찍부터 교회가 4·3 사건 희생자를 위로하고 같이 아파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목회자들에게는 이번 4·3 70주년 연합 예배가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정확히 말하면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이번 기회에 그리스도의 용서와 위로가 교회 안에 묵은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길 바라는 기대, 그리고 어렵게 마련한 자리가 분란으로 끝나지 않을지 하는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치유와 회복을 위한 4·3 70주년 연합 예배를 앞두고 <뉴스앤조이>는 제주 교계 목회자들과 좌담을 진행했다. 패널로는 평소 4·3 사건에 관심을 보여 온 서성환 목사(사랑하는교회), 이상구 목사(서귀포충일교회), 이정훈 목사(늘푸른교회), 류정길 목사(성안교회)가 참석했다.

1998년 제주에 온 서성환 목사는 현재 사랑하는교회를 목회하고 있다. 2002년 제주 지역 목회자들의 초교파 모임인 제주사랑선교회 창립을 주도하고 초대 회장을 역임하는 등 제주 선교의 지평을 확장하는 데 힘써 왔다. 이상구 목사는 1991년부터 서귀포충일교회를 목회하고 있다. 지난해 창립한 제주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제주기독교교단협의회 부회장이기도 하다.

제주 출신으로 늘푸른교회를 목회하는 이정훈 목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제주노회장을 역임할 때 강정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다 구속되는 등 사회참여에 앞장서 왔다. 1990년 중후반 모슬포교회를 담임했다. 제주 선교 역사와 태동 시점을 공유하는 성안교회를 2009년부터 목회하고 있는 류정길 목사는 제주 선교 110주년을 맞아 6월 CCC와 함께 개최하는 EXPLO 2018 제주 선교 대회 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들은 제주 교회가 더 이상 4·3을 침묵·외면하지 말고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교회에서 4·3을 거론하기만 하면 입을 닫거나 화부터 내는 반응을 겪은 경험도 들을 수 있었다. 4·3 사건에서 교회가 가해자 편에 선 부분에 책임을 지고 죄 고백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좌담에서 나온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이정훈 목사(늘푸른교회)는 제주에서 태어났지만 정작 4·3을 알게된 건 대학교를 다닐 때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4·3을 언제 처음 알게 됐나.

이정훈 / 제주에서 나고 자라면 어릴 때부터 4·3에 대해 많이 들을 것 같겠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당시 제주에서 4·3은 금기어였다. 우리 가족은 성내(제주시)에 살아서 피해가 없었기 때문에 들을 기회도 없었다.

1978년, 대학에서 처음 4·3을 알았다. 기독 대학생 모임에서 북촌리 학살을 다룬 소설 <순이 삼촌>(창비)을 읽었다. 학생들과 실제로 북촌리를 답사하고 주민들을 인터뷰했는데, 피해 사실을 잘 얘기해 주지 않았다. 이상했다. 피해가 컸는데 다들 왜 말을 안 하려고 할까. 그때부터 4·3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상구 / 전북에서 인권·노동 운동을 하다가 1991년 제주로 내려왔다. 처음 왔을 때 제주는 평화로워 보이는 섬이었다. 그런 슬픈 역사가 아름다운 풍경 뒤에 가려져 있는지 전혀 몰랐다. 4·3 사건을 처음 안 건 50주년(1998년)일 때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 제주지방과 민족선교연구소(한도전 이사장)이 50주년을 맞아 '4·3 해결의 과제'라는 주제로 간담회를 열었다. 양조훈 이사장(4·3평화재단)과 역사학자 서중석 명예교수(성균관대) 발제를 들으면서, 이름만 알고 있던 4·3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

당시 내가 '4·3 정신'이라는 말을 언급하자 난리가 났다. 제주 출신 목회자가 격하게 항의한 것이다. 이후에도 감리회와 기장이 공동으로 4·3 추모 기도회를 열었는데, 이때도 교회 입구에서 일부 사람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기도회에 참석하려는 교인들이 아주 애를 먹었다. 오늘날 70주년을 맞아 제주교단협이 특별 예배를 준비하고, 이렇게 목사들이 모여 4·3을 논할 수 있어 격세지감을 느낀다.

서성환 / 1998년 제주에 왔는데, 나 역시 그때까지 4·3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한국 현대사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상상도 못했다. 제주에 오기 전까지 독일에서 선교사로 지냈다. 선교지에 가면 기본적으로 그 지역을 연구한다. 그게 몸에 배여 있어서 제주에 왔을 때도 제주 역사와 문화 등을 공부했다. 그러면서 4·3을 알게 됐다.

4·3은 마치 암호 같았다. 많은 사람이 "4·3", "4·3" 하고 얘기를 하는데 정작 물으면 그게 무엇인지 내용을 얘기해 주지 않았다. 그 실체를 알았을 때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그러고 보면, 역사에서 일어난 사건을 발발일로 명명하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4·3 사건에서 4·3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름만 듣고 제대로 알 수 없다. 차라리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알리는 용어로 대체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4·3 사건을 '제주 주민 학살 사건'으로 부르는 것이다. 날짜를 기억하는 것보다 무고한 주민이 학살됐다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류정길 / 대학교에서 선배들이 부르는 노래를 우연히 들었다. 곡조가 슬프고 가사가 비장했다. 아픈 노래였다. '녹슬은 해방구'라는 제목의 노래로, "그해 철쭉은 겨울에 피었지"라고 시작한다. 선배에게 어떤 의미가 담겼냐고 묻자 4·3 사건과 관련한 노래라고 했다. 4·3 사건이 무엇이냐고 다시 물었다. 선배는 <순이 삼촌>을 소개해 줬다. 인생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게 독일 기자가 촬영한 5·18 민주화 운동 영상을 봤을 때였는데, <순이 삼촌>을 읽었을 때 받은 충격은 그 다음으로 컸다.

2003년 제주영락교회 부목사로 부임했을 때 4·3을 다시 떠올렸다.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제주에서 유명한 관광지를 거의 다 돌아봤다. 그렇게 아름다운 송악산 뒤쪽 알뜨르비행장에 백조일손묘이 있고, 북촌리 인근 너븐숭이가 학살터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그때부터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유적지에 있는 사료를 읽고 부족하면 인터넷에 자료를 검색하며 4·3을 공부했다.

목회자들이 4·3을 말할 수 없었던 이유

류정길 목사가 시무하는 성안교회에서 4·3 70주년 연합 예배가 열린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이번 예장통합 제주노회에서 4·3 70주년 예배 관련 이야기가 나왔을 때 논쟁이 있었다고 들었다. 지금도 제주 교계가 4·3 사건을 금기어로 여기는 것 같다.

류정길 / 비슷한 경험이 있다. 제주영락교회에서 부목사로 지낼 때, 교역자들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 적이 있다. 북촌리 학살터를 다녀온 경험을 얘기하면서 어떻게 그런 비극적인 일이 벌어질 수 있냐고 부교역자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어떤 한 분이 노발대발했다. 우리 교회가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데 지금 누구 편을 들고 있느냐며 화를 내는 것이었다. 평소 성품이 인자하고 따뜻해 존경하는 분이었는데,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이후, 자연스레 4·3을 공개 석상에서 얘기하는 것을 피했다.

이상구 / 목회자들 인식이 정말 심각했다. 이전에 같이 서울에서 공부하러 다니면서 친해진 제주 출신 목사님 두 분이 있었는데, 크게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 어느 날, 그분들에게 한국교회가 4·3 사건 희생자들과 아픔을 공유하고 갈등을 해결해야 하지 않느냐고 속내를 얘기했다. 그 말을 듣고 그분들이 갑자기 "우리도 가만히 있는데 육지에서 온 것들이 왜 나대느냐"며 화를 내더라. 깜짝 놀랐다. 얼굴을 붉히고 언성을 높이며 삿대질을 하는데,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서성환 / 이런 심정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그렇게 처참하게 당했는데 너희 육지 것들이 뭘 알아." 솔직히 그런 말을 들으면, 더 이상 어떤 말도 꺼내기 어렵다.

- 4·3 사건이 목회자뿐만 아니라 교인들에게 주는 영향도 클 것 같다.

이정훈 / 육지에서 온 교역자들과 이야기하면 다들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다. 도민들이 자기 속사정을 얘기하지 않고, 마음을 잘 안 준다는 것이다.

나는 제주도에서 태어났으니 그 이유가 뭔지 대충 짐작한다. 어른들은 평소 아이들에게 어디 가서 함부로 얘기하지 말고 입을 다물고 있으라고 가르친다. 4·3 사건 당시 어느 편에 서서 자기 의견을 얘기했을 때 잔혹하게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피해 의식이 누적돼서 그런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너는 항상 가운데 서 있어라" 라고 말한다. 외지인에게도 자기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제주에서 목회하는 교역자들은 먼저 이러한 도민들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제주도가 옛날부터 당이 많고 절이 많다고 한다. 이재수의 난이나 4·3 사건과 같은 아픈 역사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신들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한 무당이 많이 필요했던 것이다. 교회가 4·3 사건을 논할 때 무조건 침묵하고 외면할 게 아니라, 피해 의식에 잠겨 있는 도민을 어떻게 치유하고 회복할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

류정길 / 목회 현장에서 제일 힘든 일이 교인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반응하면 일반적으로 이렇게 반응이 올 거다 예상을 하는데, 제주에서는 소위 멘붕이 올 때가 많았다. 예상하지 못한 엉뚱한 반응이 오니까 이해가 안되고 서운할 때가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4‧3 사건을 알게 되면서 교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죽음의 광기가 제주 전역을 휩쓸었다. 남은 사람들의 말할 수 없는 처절한 슬픔과 찢긴 마음을 우리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정부나 어떻게든 달래 주고 풀어 줘야 하는데, 그게 전혀 안 되지 않았나. 도민들이 겪은 상처는 오랫동안 치유되지 못한 채 집단적으로 내재화됐다. 한 개인이 아니라 제주 사회 전체가 말이다. 그렇다 보니 속을 잘 드러내지 않거나 반응을 잘 보이지 않는 식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 같다.

참석자들은 교회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서성환 / 풀어 주는 일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지난해, 제주에서 목회하다가 은퇴하신 목사님 내외가 우리 교회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다. 4월 3일을 앞둔 때라 4·3과 관련한 설교를 했다. 예배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는데, 그 사모님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오늘 처음으로 설교에서 4·3에 대해 들었어요." 지난 30년간 교회에서 한 번도 4·3에 대한 설교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두 분은 모두 희생자 가족이다. 사모님이 계속 말했다. "목사님, 오늘 예배하면서 비로소 마음에 응어리지어 있는 것들이 풀리는 것 같았어요. 고마워요."

사모님 말씀을 들으며 마음이 아팠다. 선배 목사님은 왜 30년 동안 단 한 번도 4·3과 관련한 설교를 하지 않았을까. 당신도 4·3 사건에서 피해를 입었던 사람이면서 왜 거론하지 않았을까.

두 분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 같다. 제주에 있는 많은 목사가 설교에서 4·3을 다루지 않는다. 목사들이 너무 교인들을 의식하는 것 아닐까. 어쩌면 교인들 중에는 자신들의 응어리진 아픔을 풀어 주길 바라는 교인들이 있을 텐데 말이다. 우리가 믿는 복음은 아프고 병든 이들을 위한 말씀이 아니었나. 우리가 믿고 전하는 복음은 과연 무엇인가? 그런 질문이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이상구 / 그러한 지적에 공감한다. 4‧3을 설교하기 어려웠던 건 내가 과연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자신이 없어서였다. 다음으로는, 팩트를 잘 알았다 하더라도 용기가 부족했다. 1991년 교회에 부임한 뒤 취임 설교를 했을 때 군부 정권을 비판한 적이 있다. 이후 심방을 갔는데 교회 장로님 아들이 당시 청와대 경비 지휘관이었다. 집에는 대통령과 청와대 직원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이후 다른 입장을 갖고 있는 교인들이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류정길 / 부교역자로 지낼 때, 한 목사님이 우익 입장에서 이승만 정권을 찬양하는 설교를 한 적이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강단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설교는 보통 목사가 일방적으로 말하고 교인은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수나 진보나 다른 생각을 가진 교인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

4월 3일이 주일인 적이 있었다. 그때 설교를 하면서 올해가 몇십 주년이라고 하며 운을 뗀 적이 있었다. 교인들 중에는 4·3과 관련한 분들이 있었고, 이북에 고향을 둔 분도 많았다. 바닥에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예배당이 순간 고요해졌다. 교인들이 내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집중하는 게 느껴졌다. 그만큼 4·3이 민감한 주제이니, 설교할 때 주의해야겠다고 깨달았다.

가해자·피해자 프레임 벗어나
4‧3을 객관화해서 바라봐야

이상구 목사는 교회가 더 이상 4·3을 쉬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4·3 사건 때문에 교인들이 직접적으로 갈등을 겪은 적은 없나.

서성환 / 목회 현장에서는 평소 갈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어떤 일이 계기가 될 때, 4·3이나 그 비슷한 주제가 나오면 첨예하게 갈라진다. 분위기도 완전히 바뀐다. 그래서 다들 4·3을 더 얘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그게 오히려 기회인 것 같다. 수술받을 때 누구나 다 아프다. 아프다고 해서 계속 피할 수만 없지 않나. 그렇게 피하고만 있으면 병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누구나 목회 현장이 평안하길 바라지만, 이런 본질적인 문제는 한 번은 정리를 해야 한다. 사실 공교회 역할이 여기서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 개교회가 진행할 수 없는 일을 노회나 총회에 기대어 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적 사건에서 발생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기 객관화가 필요하다. 가해자·피해자 프레임을 넘어서야 한다. 하지만 제주 교회는 여전히 4·3과 관련한 얘기만 나오면 민감하게 반응하고 반대부터 한다. 목사들이나 성도들이 가해자·피해자 프레임에 갇혀 자기 객관화가 덜된 거다.

이상구 /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화해하고 상생하자는 얘기를 솔직히 우리 같은 제3자가 먼저 얘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본인들 입에서 이 얘기가 먼저 나오는 게 중요하다. 교회가 비록 밖에서 화해를 강요할 수는 없지만, 대신 목회 현장에서 대화의 물꼬를 열어 줄 수는 있을 것 같다.

교회나 노회에서 목사들이 누가 가해자냐 누가 피해자냐 따진다는 게 부질없는 일이 아닌지 모르겠다. 70년이 지났다. 고통 속에서 살았던 도민들이 이제는 서로 아픔을 부둥켜안고 치유할 수 있도록 교회가 나서야 한다.

- 피해자를 감싸야 할 교회가 오히려 가해자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서성환 / 객관화를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 해방 직후 우리 민족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제주도 사회가 어떤 일을 겪고 있었는지 진지하게 배워야 한다. 지난해 가을 노회에서 특별 예배를 놓고 논의했을 때 "내 아버지가 폭도들에게 희생됐다"는 말로 결국 모든 논의가 종결됐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무장대보다 국가 폭력(군경, 서청 등)에 희생된 이들이 더 많지 않나. 86%가 군경, 서청 등에 학살을 당했고, 14%가 무장대에 목숨을 잃었다. 교회가 14%에 속했다고 해서 교회의 억울함만을 애기하고 86%의 고통과 아픔은 침묵해야 하는지 정말 묻고 싶다.

이정훈 / 교회가 하지 않으니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4·3 사건을 기억하는 활동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치유와평화를기원하는그리스도인모임(송창권 대표)이다. 2014년에 결성된 이들은 몇 년째 4월 3일을 앞두고 제주 곳곳에 있는 학살터를 순례하며 사람들에게 4·3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평신도 모임이 구성됐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교회가 4·3에 대해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는 기독교인들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아닐까 싶다. 이런 모임이 자생적으로 계속해서 생겼으면 좋겠다.

제주 교회에는 과제가 있다.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가해자 편에 섰던 부분을 사과해야 한다. 수많은 도민을 학살한 서북청년회가 개신교와 깊이 연관돼 있다. 세월이 지나 오늘날 서북청년회가 도민에게 용서를 구할 수 없다면, 제주 교회가 이를 대신해야 한다. 같은 그리스도 지체로서 먼저 엎드려 사죄해야 한다. 모르고 했든 알고 했든, 일부의 짓이든 전체의 문제든, 제주 교회가 이름을 내걸고 입장을 밝혀야 한다.

제주 교회가 회개하고
대화의 자리 마련해야

서성환 목사는 교회가 도민들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서성환 / 거기에 동의한다. 제주 교회는 4·3 사건에 대해 반드시 죄책 고백을 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를 한 잘못을 고백했던 것처럼 4·3에 대해서도 죄책 고백을 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가해자‧피해자 프레임에서 말하는 게 아니다. 제주 교회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시대의 광기에 휘말려서 무고한 주민을 학살하는 데 동참하고, 미움을 재생산하는 구조에 동조하고, 미움과 갈등을 후손들에게 계속 떠넘긴 데에 책임을 지고 죄책 고백을 하고 참회하고 회개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 70주년을 맞이하며 제주 4·3을 보는 전체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몰트만의 종말론적 선취의 패러다임을 제주 4·3에도 적용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4·3의 원인 규명이나 귀책 논쟁에 집착하지 말고,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생명·평화·복음의 삶에서 역으로 다가가자는 말이다. 과거에서 시작하지 말고 미래에서 시작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거기에서 진상이 밝혀지고 서로를 보듬고 치유하고 함께 살아가는 길이 열린다고 본다. 참다운 죄책 고백과 참회도 이런 패러다임 전환에서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한다.

류정길 / 제주 교회가 회개를 얘기할 때, 교인들 입장을 이해하고 이들의 방식과 언어로 다가갈 필요가 있다. 교인들은 성경의 권위를 인정한다. 성경을 근거로 회개를 촉구했으면 좋겠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지을 때 조상들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께 회개했다. 에스라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회개했다. 목회자들이 교인들에게 잘 풀어서 얘기해 주면 좋겠다. 4·3 사건 당시 모든 사람의 잘못을 교회가 짊어지고 하나님께 죄를 고백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상구 / 교회가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기독교·비기독교인 구분 없이 교회가 이들이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줘야 한다. 사람들이 계속 만나고 대화하다 보면 같은 눈높이를 찾고, 상대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 교회가 4·3을 계속 외면하지 말고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해야 한다.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를 자꾸 드러내야 한다. 제주 교회는 언급 자체를 금기시했다. 무엇이 진실인지 잘 몰랐고 용기도 없었다. 이제부터라도 교회가 태도를 고치고 대화부터 시작해야 한다.

화해와 용서, 대화의 시작점 되기를

제주 교계가 도민들이 심각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주제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제주교단협이 4·3 70주년 연합 예배를 주최한다. 예배에서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이상구 / 일단 적게라도 우리가 모여서 함께 예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솔직히 많은 교단이 관심을 찾고 참석하면 좋겠다. 서로가 4·3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 차이를 좁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거기서 부터가 화해와 용서가 시작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류정길 / 제주 교계를 대표하는 제주교단협이 4·3 사건 70주년을 맞아 예배를 연다는 것 자체에 일단 의미가 있다고 본다. 4·3 사건이 발생한 이후 최초가 아닐까 싶다.

이정훈 / 제주교단협이 예배를 주최한다는 얘기를 듣고 사실 뜻밖이었다. 지금까지 아무도 못한 일을 제주교단협이 해냈다. 하나님 은혜라고 생각한다. 일단 큰 욕심을 내기보다는 함께 잘 모였으면 좋겠다.

서성환 / 제주 교회나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진영·이념 논리나 가해자‧피해자 틀로 4·3 사건을 다루지 않았으면 좋겠다. 용서와 화해, 생명과 평화의 복음으로, 용기와 지혜를 가지고 다루어야 한다. 지금까지 제주 교계는 제주 사회 중심 의제와 이슈에서 늘 비켜 서 있었다. 이는 제주 복음화를 위한 선교적 과제에서 너무나도 중요 문제다. 제주도민들이 가장 심각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주제를 함께 고민하고 풀어 가는 데 적극 참여해야 한다. 4·3이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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