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협동목사가 있었다. 그는 10대 후반, 20대 초반 여성들에게만 스킨십을 한다. 격려하고 친밀감을 나누기 위한 포옹이라고 하는데 우려스럽다."
"선교 단체에서 중·고등학생과 스스럼없이 스킨십하고 고민 들어 준다고 둘만 만나서 문제가 된 적 있다."
"교회학교 교사가 초등학교 여학생들을 무릎에 앉혀 놓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꾸 귓속말한다."
"목사님이 여성 청년들만 차에 태우고 다니면서 슬쩍슬쩍 만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목사님이 일대일로 심방하고 상담해 준다면서 말하기 싫은 비밀까지 털어놓게 만들었다."
"딸이 없어서 나를 딸처럼 생각한다며 밥 사 주고, 약 사 주고 자꾸 뭘 사 줬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내가 너에게 사랑을 나눠 준다는 말도 했다. 그러다 사무실로 따로 불러, 아무도 없는 곳에서 포옹하고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사역자가 개인적으로 '네가 나에게 위로가 된다'고 연락했다. 부담스럽다고 하는데도 밥 사 준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결국 '좋아한다'고 장문의 카톡을 계속 보내더라."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교회에서 종종 일어나는 이런 행동들은 그루밍(Grooming, 길들이기) 초기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그루밍은 성폭력 가해자가 피해자를 고르고, 길들이고, 성폭력을 가한 후 고립시키고 통제하는 모든 과정을 일컫는다. 가해자 의도는 어떤지 몰라도, 위에 언급한 행위들은 상대의 동의를 구하고 하는 행동이 아니다.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이 주최한 '하나님 가라사대 미투' 공개 워크숍이 열렸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모든 성폭력은 피해자 중심 관점에서 봐야 한다. 피해자의 동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가 핵심이다. 동의와 합의가 없는 경우, 관계에서 경계를 넘어가면 안 된다. 신체적 접촉이 있어서도 안 된다."

성폭력 피해·가해 상담을 전문으로 해 온 김미랑 소장(탁틴내일연구소)은 3월 27일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홍보연 원장), 믿는페미, 감리교신학대학교 총여학생회 등이 개최한 '하나님 가라사대 미투' 공개 워크숍에서 "교회는 그루밍에 의한 성폭력이 발생하기 최적의 장소다. 교회 내 성폭력 대부분은 그루밍 과정에 따라 발생한다"고 말했다. 삼일교회(송태근 목사)에서 열린 워크숍에는 교회 내 성폭력 문제에 관심 있는 교인 30여 명이 모였다.

김미랑 소장은 그루밍에는 '피해자 고르기 → 피해자의 신뢰 얻기 → 피해자의 욕구 채워 주기 → 피해자 고립시키기 → 관계를 성적으로 만들기 → 통제 유지하기'라는 단계가 존재한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성적 행위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가해자의 길들이는 행위를 사전에 막기 어렵다고 했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약한 부분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조종하고 통제해 나간다. 이렇게 점진적으로 단계를 밟아 나가면 그 과정이 그루밍인지 아닌지 알기 어렵다. 잘해 주는 것을 숨기라고 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기 때문에, 주위에서 더 알아차리기 어렵다. 피해자를 고립시키는 단계에 들어가면 실제로 문제가 된다. 단둘이 몰래 만나는 행위 등은, 잘못하면 피해자가 '가해자가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는구나' 하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와 교인 사이에서 일어나기 쉬운 성폭력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 김미랑 소장은 그동안 성폭력 예방 교육을 잠재적 피해자인 아동·청소년·청년 대상으로만 실시해 왔는데, 이제 그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김 소장은 "앞으로 성폭력 예방 교육은 피해가 아닌 가해 예방 교육이 돼야 한다. 교회로 따지면 목사들이 예방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폭력 발생 원인이 행위자 즉 가해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실에서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피해 사실을 처음 듣는 사람의 태도도 중요하다고 했다. 김미랑 소장은 "처음 듣는 사람이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갖고 있으면 2차 가해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쉽게 '용서'를 이야기하는 것도 2차 가해라고 했다. 김 소장은 "피해자를 상담하다 보면 주변의 용서하라는 말 때문에 가장 크게 상처받는다. 본인은 아직 용서할 수 없는데, 외부에서 먼저 용서하라고 말하는 건 심각한 2차 가해"라고 말했다.

김미랑 소장은 "성폭력 사건에서는 피해자 동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김 소장은, 피해자가 '말하기'를 택한 것은 특별한 대접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처를 털고 일어서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지지자들은 말하기를 선택한 피해자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했다. 김 소장은 "지지자의 역할은 '듣는 것'이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서로에게 의미 있는 타자가 돼야 한다. 최종적인 목표는 피해자가 교회·학교·직장 등에서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랑 소장은 성폭력 피해자가 교회 내 성폭력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의 도움으로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교회에서 의도치 않게 누군가와 상담할 수 있는 일이 발생하는데,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들을지 평소에 생각하면 좋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거룩함을 품은 대리인의 자세로 사람들과 관계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과 믿는페미, 감신대 총여학생회가 공동 주최하는 공개 워크숍 '하나님 가라사대 미투'는 같은 장소(삼일교회 C관)에서 앞으로 두 번 더 진행한다. 4월 3일 오후 7시에는 홍보연 원장이 '성폭력 피해자의 호소에 응답하는 교회'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4월 10일에는 어떻게 교회에서 성폭력 매뉴얼을 만들 수 있는지 참석자들이 함께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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