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가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다. 사진 출처 청와대

"큰일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건 저희 어머니와 수많은 사람의 기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발'을 많이 받았어요. 우리 집사람은 예수 안 믿었는데, 나와 결혼하려고 예수를 믿었어요. 그리고 나중에 권사가 됐어요. 우리 집안은 예수 믿고 권사·장로가 됐고, 다 부자가 됐습니다.(아멘)"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2006년 2월 21일,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제33회 초교파 전국 목회자 부부 영성 세미나에서 한 간증이다. 이 전 대통령은 가난한 집안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머니의 기도와 신앙을 통해 성공했다고 고백했다. 그의 성공 신화 종착지는 대통령이었다. 17대 대선 당시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무난히 청와대에 입성했다.

'장로 대통령', '경제 대통령'으로 불린 이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에도 꾸준히 간증을 해 왔다. 레퍼토리는 과거와 다르지 않았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어머니 기도로 신앙에 눈을 떴고, 그 신앙을 바탕으로 사회에서 성공했다는 식이다.

이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 씨도 신앙인이다. 김 씨는 2016년 8월경, 미국 LA 한 교회에서 이 전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할 수 있도록 뒤에서 기도로 도왔다고 간증했다.

"(1995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여리고성 함락을 떠올리며, 매일 밤 10시 7일 동안 시청을 돌았어요. 그해에는 도전도 못했지만, 7년 뒤인 2002년 서울시장에 당선됐어요. 7은 하나님의 숫자죠. 성부·성자·성령, 인간의 숫자 봄·여름·가을·겨울을 더한 게 하나님의 숫자예요. 하나님이 저희를 서울시장으로 만들어 줬어요 (중략) 하나님이 우리를 대통령으로 세웠으니, 중간에 그만두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어요. 5년간 하나님과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고,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어요. 어려운 일을 당해도 걱정하지 않았죠."

기독교인에게 무한 감동을 줬던 이들의 간증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이 전 대통령은 110억 원대 뇌물 수수와 339억 원대 횡령 혐의로 3월 23일 구속 수감됐다. 아내 김 씨 역시 검찰 수사망에 올라 있는 상태다. 6억 원 상당의 뇌물 수수 혐의를 받고 있다.

전직 대통령 내외가 불미스러운 일에 휩싸이면서, 과거 그들이 했던 간증과 교계에 만연한 간증 문화가 재조명되고 있다.

출세자들 전유물 '간증'
비난의 화살 한국교회로

검증 없이 이뤄지는 간증 문화를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간증은 종교적 체험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언하는 일을 뜻한다. 출세했거나, 큰 병에 걸렸다가 치료된 자들이 주로 간증의 주인공이 된다. 간증은 듣는 이에게 많은 자극을 주지만, 위험 요소도 안고 있다. 한 사람의 체험을 일반화할 수도 없을 뿐더러, 간증한 사람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을 경우 비난의 화살은 당사자뿐 아니라 교회와 기독교 전체를 향해 돌아온다.

안태근 전 검사가 대표적이다. 지난 1월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안 전 검사. 논란을 키운 건 그가 작년 10월 온누리교회(이재훈 목사)에서 한 간증이었다. 서지현 검사도, 그가 최근 종교에 귀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성추행 사실을 털어놓게 됐다고 말했다.

안 전 검사는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서 영접할 기회를 주었고, 교만을 회개했으며,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길 가치를 발견했다. 처음 느낀 억울함과 분노가 사라졌다"고 간증했다. 후배 검사들에게 돈 봉투를 살포한 사건에 연루돼 면직되고 4개월 만이었다.

간증 내용이 공개되면서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는 "그의 거짓 간증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일이며 한국교회를 모독하는 일이다. '회개'와 '구원'을 면죄부로 둔갑해 자신의 허물을 은폐하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더욱 큰 '죄'를 짓는 행위일 뿐이다. 안태근은 지금이라도 피해자에게 직접 사죄하며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했다.

정성진 "전도와 행사 도구로 전락"
양희송 "간증자 윤리 검증 안 돼"
손봉호 "할 수 있다면 피하라"
김경호 "간증보다 성찰 필요"
남오성 "성공주의 간증은 적폐"

이 전 대통령은 교회에서 수많은 간증을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진행되는 간증 형식에 대해, 목회자와 교계 오피니언 리더들은 한목소리로 우려를 표했다.

정성진 목사(거룩한빛광성교회)는 간증이 전도와 행사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면서 덩달아 기독교도 천박해졌다고 진단했다. 정 목사는 "간증 자체가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간증의 방향성이 교회 성장과 사람 동원에 있다 보니까, 간증하는 사람도 성공한 사람이나 연예인에게 맞춰졌다. 그러다 보니 간증이 성공 신화에 물들었다"고 말했다.

성공 신화의 대표적 예가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이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당시 많은 교회를 찾아다니며 간증을 전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을 강단에 세웠다가 후회하는 목사도 있다. 한반도평화통일재단 이사장 김원철 목사(여의도순복음소하교회)는 "교회 장로여서 밀어줬는데 후회스럽다. 이렇게 많은 비리가 있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양희송 대표(청어람ARMC)는 "한국교회는 간증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윤리 문제를 철저히 개인에게 맡기고 있다. 검증 없이 마구 돌리는 방식이다. 나중에 문제가 안 터지면 그나마 다행인데, 막상 문제가 터져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다. 개인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양 대표는 "간증을 하다 보면 대중의 반응을 의식 안 할 수가 없다.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거나, 후일담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 심할 경우 사실 왜곡도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예 간증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손봉호 교수(고신대 석좌)는 "도덕적·사회적 수준이 괜찮으면 몰라도,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다. 본인이 도덕적으로 살려고 해도 사회 상황이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간증은 역효과로 나타난다. 간증은 곧 위선이 돼 버린다"고 했다.

손 교수는 "할 수 있으면 (간증을) 피하라 말하고 싶다. (이명박 전 대통령 간증이) 좋은 계기가 됐으면 한다. 안 하니 만도 훨씬 못 하다. 저런 사건이 터져 버리면 모든 게 무효화된다. 참 위험하다"고 말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전 교회와사회위원장 김경호 목사는 "간증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서 간증을 세우거나 해 본 적도 없다. 간증은 대부흥 운동을 할 때나 쓰던 방법으로 재고돼야 한다. 차분하게 성서 위주로 공부하고, 자기를 성찰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의미의 '간증'을 진행하는 교회도 있다. 주날개그늘교회(남오성 목사)는 격주에 한 번씩 교인들이 강단에 선다. 이 자리에서는 "하나님을 잘 믿었더니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삶의 근황을 알리며, 교인들에게 기도를 요청한다.

남오성 목사는 "5분 정도 이야기하는데, 때로는 목사의 설교보다 울림이 크다. 간증은 '성공'이 아니라 고통 중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성공주의 간증은 '적폐'다. 성공과 관련한 간증은 언젠가 뒤통수 맞을 가능성이 크다. 인생은 업 앤 다운의 연속이다. 이번에 '업'됐다고 간증했는데, 나중에 '다운'되면 어떡할 건가. 일희일비하는 간증이 아닌 우리와 삶의 고난을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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