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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견디는 교회, 생명을 갈구하는 교회

[예배당 건축 기행] 안동교회를 생각하며

주원규   기사승인 2018.03.28  10: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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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주원규 목사가 '예배당 건축 기행'을 격주 간격으로 연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뷰 기사(바로 가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안동교회가 설립된 해는 1908년이다. 정확한 설립 일자는 1909년으로 알려져 있지만, 교회를 이루겠다는 뜻이 최초로 구체화한 해는 한 해 앞선 1908년으로 봐야 할 것이다.

1900년대 초반의 한반도에서 개신교회는 어떤 의미였을까. 교회가 신흥종교와 서양 문물의 도입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사람들에게 막연한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강한 경계심을 낳았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님, 또 다른 의미도 존재한다. 적극적인 수용과 흡수의 의지가 강하게 작동되는 경우 역시 엄존했다. 무조건적 배척과 무조건적 수용, 두 측면의 길항작용 속에서 교회는 한반도, 그 풍운의 근현대사와 운명의 배에 함께 올라탔다. 아마도 교회 역사는 무조건적 수용에 손을 들어 줄지도 모른다. 개신교회는 1900년대 초반을 넘어 21세기에 이르는 오늘날까지. 양적, 질적으로 기하학적 성장과 유의미한 가치를 생산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반대로 개신교회를 무조건적 배척의 결과로 평가하는 시선도 많다. 특히 한국의 개신교회가 미국의 청교도주의, 복음주의란 미명하에 무차별적으로 수용한 근본주의를 받아들이는 데서 온 뼈아픈 상흔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최근 높아졌다. 교회를 한국 근현대사가 낳은 괴물로 평가절하하는 시선도 힘을 얻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안동교회 예배당 외관. 뉴스앤조이 김은석

하지만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 시선이 있다. 교회가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배척과 수용이란 길항작용과 짐짓 무관한 고독의 시간으로 기능해 온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여기서 말한 고독의 시간이란 수용과 배척의 두 측면과 관련한 단순한 양비론, 양시론을 말함이 아니다. 새로운 지평에 대한 모색과 견딤을 말한다. 그렇지만 눈에 드러난 승리와 패배의 관점에서만 보는 역사의 시선으로는 새로운 지평은 짐짓 외면되기 일쑤다. 그렇게 외면받기 쉬운 길을 역사 속에서의 한국교회가 과연 묵묵히 감당해 왔느냐고 묻는다면 어떤 답이 나올까. 안타깝게도 한국교회가 보여 준 태도는 역사의 외연, 과시하는 일에 대해 거의 광분하는 태도로 일관되었다. 역사와 불화하든지, 아님 역사에 편승해 나름의 떡고물을 얻어먹든지. 두 극단적 태도 모두를 한국교회는 무리 없이 추구했다.

그런데 이러한 극단적 태도와 다르게 묵묵히 백 년이 넘는 고독의 시간을 견뎌 온 교회가 있다. 서울시 안국동에 위치한 안동교회가 견뎌 온 한 세기가 바로 그렇다. 필자는 한국 근현대사의 소용돌이에서 나름의 유의미한 태도를 견지해 온 안동교회의 역사와 공간을 들여다보며, 백년의 고독을 견디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안동교회 예배당 내부. 뉴스앤조이 김은석

역사 앞에서 책임을 품다
- 유의미한 고독의 시작

안동교회는 지리적으로는 서울 북촌, 구성원으로는 당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던 사대부 출신인 박승봉, 유성준 등이 주축이 되어 시작되었다. 미국 선교사들의 개입 없이 한민족에 뿌리내린 사대부 양반들이 주역이 되어 교회를 결성하는 일은 당시 신흥종교로 평가받던 개신교회 포교 과정에선 이례적인 일로 회자된다.

한학과 유학을 공부하던 사대부 출신들이 세운 교회라면 어떤 이미지가 생각나는가. 우리 민족의 고유문화, 학문의 고상함을 보존하는 차원의 교회를 떠올릴 듯하다. 그런데 안동교회 1대 목사 한석진은 그와는 다른 개혁적 비전을 제시했다. 초대 교회 건축 설립을 주도하기도 했던 그는 전통을 앞세우는 태도보단 민족 정서를 개혁하는 방법론으로서 모던한 종교 건축을 지향했다.

중국인 건축사의 건축설계를 바탕으로 1912년에 건립한 옛 안동교회 건물은 호방하게 전개된 정면의 곡선 처리 마감과 클래식한 서양식 건물 형태가 돋보였다. 이를 두고 민족성을 저버린 서양 문물의 무조건적 수용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기도 했지만 안동교회 설립 주역들의 주장은 오히려 더 진보적이었다고 한다. '옛 전통을 고집하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라고 말이다.

그들이 말하는 새로움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전통의 이름으로 박제화하기 일쑤인 정형화한 문화로부터의 탈피를 말함이다. 나라의 미래, 민족 자주성을 염려하던 그들에게 교회의 근본인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날마다 새로운 생명 선포의 보루로 다가왔다. 그 생명이 곧 차별과 편견을 넘어서는 힘이기도 했다.

안동교회 옛 예배당. 사진 제공 안동교회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1912년에 설립된 첫 예배당에서 한석진 목사는 편견을 넘어서는 새로움을 실천했다. 외형적으로 화려하고 웅장한 분위기를 잃지 않는 건물 분위기에 이어, 한석진 목사는 당대에 만연한 보수적인 교회 분위기를 일소하기 위해 남녀가 유별하던 좌석을 남녀 구별이 없도록 철폐하는 남녀평등의 한 걸음을 이끌어 낸 것이다.

남녀가 장의자 구별 없이 앉는 것 정도가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타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간의 엑스테리어(exterior)와 인테리어는 그 코드가 하나의 공통분모를 이룰 때, 내적 평가가 단호하게 나오는 법이다. 화려하고 웅장한 벽돌조 2층 예배당 건물이 가진 혁신이 진정성 있게 다가오려면 그 혁신의 의지가 인테리어, 예배당 안에 참여한 구성원들의 의식 표현과 맥을 같이해야 할 것이다. 안동교회의 초기 모습은 참여 구성원들이 남녀 구분을 철폐하는 의식의 표현을 적극적으로 개진함으로써 교회 건물 안팎의 개혁적 의미를 충족했다.

그런데 이 새로움을 안동교회는 격동하는 한반도의 역사 앞에서 어떤 방식으로 담아냈을까. 민족과 나라 없이 교회도 있을 수 없다는 강한 민족주의 노선을 견지하던 안동교회는 교회가 가진 빛과 소금의 의미를 무명의 뒷받침에서 찾았던 것이 분명하다.

이후 안동교회는 한반도 역사의 뒤안길에서 소멸되지 않고 묵묵히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역사의 숱한 잡음 속에 섣불리 나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돌출 행동을 감행하지도 않았다. 한 세기 동안 안동교회가 붙잡은 것은 역사 앞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관심 종자 같은 행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체험하는 복음의 충실함, 그로 인한 고독과의 대좌일 것이다.

현 예배당 내부. 1층 측면(위)과 2층(아래). 뉴스앤조이 김은석

역사를 견디며 역사를 품다
- 현 예배당이 지닌 종교 공공성의 가능성

수많은 애국지사와 선구자를 배출한 혼돈의 구한말 '정신의 요람'으로 기능하던 안동교회의 21세기는 어떠했을까. 안동교회는 묵묵히, 한국교회에서 피하지 않고 이끌어 갈 법한 선교의 본질과 이웃 사랑에 대한 기초를 다져 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기초는 오늘날 고도 산업화와 도시 공동화로 몸살을 앓는 서울시에서 종교 공공성을 지속할 수 있는 한 가능성으로 이해된다.

종교는 신성을 통한 인성의 부박함을 어루만지는 초월적 기능으로 자리한다. 이때의 신성은 신의 존재나 의미를 수용하거나 배척하는 이들 모두를 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인간을 향한 무한한 자비와 긍휼의 동기를 제공하는 것, 그것은 연령·인종·성별·환경 차이를 넘어서서 모든 인간에게 열린 평등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행복은 지난한 삶이 계속되는 이 땅, 우리의 시간에서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다. 견디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1900년대 초반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 이후, 격동의 한반도, 그 시간의 풍상을 견뎌 온 안동교회는 오늘의 예배당을 통해 기독교 고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함과 동시에 종교 공공성으로의 역할을 외면하지 않고 있다.

서울 북촌이란 장소성, 종로구 안국동이란 지리학적 의미가 가진 공공성이 단지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오가는 관광명소로만 이해되는 건 아닐 것이다. 질곡의 역사 속에서 민족의 어제를 돌아보고 새롭게 제시되는 내일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고독하지만 담담하게 그 자리를 지키는 민족정신의 성스러운 위무로 남아 있는 것. 한 번의 철거와 한 번의 신축을 통해 오늘에 이른 안동교회는 그러한 점에서 이제 종교 공공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한옥 양식으로 지어진 안동교회 별관 소허당(아래). 뉴스앤조이 김은석

그리고 여기, 그 공공성의 끝자락에 죽음과 생명의 혼재가 자리한다. 오랜 시간의 풍상을 겪어 온 죽음과 생명의 기념비인 추모의 벽이 그렇다.

생명을 갈구하는 교회
- 추모의 벽을 바라보며

안동교회를 답사했을 때는 한겨울이었다. 시린 바람이 온몸을 움츠리게 했던 그때, 필자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 건 바로 교회 뒤편에 자리한 추모의 벽이었다.

백 년 가까운 역사를 견뎌 온 안동교회와 뜻을 같이한 교우들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의 벽은 교회를 대표하던 목사나 장로의 이름만 기억하지 않았다. 직급과 상관없이 안동교회의 역사, 한반도의 질곡 많은 역사와 함께 부대끼면서 신성의 자비를 향유해 오던 그리스도인의 이름 하나하나를 기억하는 추모의 벽은 필자의 마음에 죽음보다는 생명을 향한 갈구로 다가왔다.

짙푸른 잔디 위에 세워진 추모의 벽, 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생명나무를 상징하는 대리석 나무의 소박해 보이지만 묵직한 질감이 느껴지는 이곳에서, 종교가 궁극적으로 갈망하는 것은 생명이란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 것이다.

추모의 벽. 뉴스앤조이 김은석

안동교회의 현재가 어떤 방향을 향해 걷고 있는지 필자는 잘 알지 못한다. 그 길이 또 한 번 굽이치는 험난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변하게 될지 자신할 수 없다. 하지만 종교 공공재로 자리 잡은 안동교회의 어제와 내일이 쏟아 내고 있는 메시지만큼은 분명하다. 종교는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살아 있어야 할 정신을 갈망한다는 것,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를 기억하고 앞으로 다가올 역사를 살아가야 할 이들을 보듬는 것이 바로 생명을 갈구하는 교회의 본령이란 사실 말이다.

교회는 이 생명 앞에서 고독해진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십자가와 부활의 말씀으로 견뎌 온 안동교회는 그 고독의 틈새에서 숨 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자 한다. 오늘의 한국교회 역시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호흡과 함께하길 기대해 본다.

안동교회는 백 년의 고독을 견뎌 왔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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