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개헌안에 토지 공개념이 포함된 것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토지 공개념 헌법 명기가 나라를 사회주의로 만들려는 시도라는 비난이 있는 반면, 토지 공개념이 사회주의와 무관할 뿐만 아니라 시장경제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 필수라는 주장도 있다. 기독인들 사이에서는 '토지 공개념은 국가가 토지를 강제적으로 몰수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문자가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고 상당수 교인이 이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인 듯하다.

그러나 '토지 공개념=토지 몰수'는 거짓말이다. 기독인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토지 공개념은, 인간이 만들지 않은 토지는 일반 재화와 다르기에 공적 개념을 강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정신을 뜻한다. 이것은 헌법이 말한 재산권 보호를 결코 침범할 수 없다.

성경과 토지 공개념

그렇다면 성경은 토지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할까. 성경과 토지 공개념이 관련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성경이 토지 공개념의 원류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토지가 하나님의 것(레 25:23)이라고 하면서 동시에 토지에 대한 권리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다(시 115:16)는 말씀도 하고 있다. 풀어 말하면, 토지가 하나님의 것임을 구현하는 방법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토지권을 보장하는 것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이 말씀을 보면 의문이 생긴다. 이 세상의 모든 것, 하물며 우리 몸과 우리 자녀들까지도 하나님의 것인데, 왜 토지만을 꼭 집어서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을까. 그것은 토지의 특수성 때문이다. 토지는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 양을 한 뼘도 늘릴 수 없다. 즉 한 사람이 많이 차지하면 다른 사람이 소유할 땅은 줄어든다.

결정적으로, 토지가 없으면 아무도 살아갈 수 없다. 토지가 없는 사람은 토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경제적·정신적으로 예속될 수밖에 없다. 당당하게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펼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모두에게 평등한 토지권이 중요한 것이고,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토지 공개념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시내산 율법과 토지 공개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가나안 땅을 주시고 민족을 이루게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을 '거룩한 나라'로 만들어 온 세계에 모범이 되고 모든 민족이 이스라엘을 본받게 하여, 결국 열방이 복을 얻게 하려는 것에 있었다. 즉, 이스라엘의 존재 의의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거룩한 나라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룩한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거룩한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거룩한 나라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에 잘 나타나 있고 시내산 율법의 정점에는 '희년'이 있다. 희년은 안식일과 안식년을 포함하고 있는데, 희년을 통하여 이루려는 사회는 '공평한 사회'다. 7일 중 하루는 종과 가축들까지 쉬게 하는 나라, 7년마다 종을 해방하고 가슴을 짓누르는 부채를 완전히 탕감하는 나라, 50년마다 토지의 공평한 분배를 실현하는 나라, 그런 나라가 바로 거룩한 나라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거룩한 나라'의 핵심에 토지 공개념이 있는 것이다.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사람들은 레위 지파를 제외하고 모든 지파가 토지를 분배받았다. 지파 안에서는 가족별로 토지를 분배받았다. 당시 율법은 이러한 토지 공개념을 제도화하기 위해서 규정을 두었다.

첫 번째는 토지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는 '지계표 이동 금지 규정'이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네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신 27:17)라고 말씀하셨다. 지계표를 옮기는 행위는 앞에서 다룬 토지의 특성상 다른 사람의 자유, 더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라"(레 25: 23)는 '토지 영구 매매 금지 규정'이다. 본래 성경은 토지 매매 자체를 금하지 않았다. 한시적 매매는 허용했다. 개인 사정에 따라 토지를 팔 수 있었는데, 그 방식은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까지의 사용권만 파는 것이다. 물론 토지는 희년까지 기다리지 않고 근족이 대신 되사 주는 '근족 무르기'나 자신이 되사 오는 '스스로 무르기'도 가능하도록 했다. 이렇게 성경은 토지 공개념 정신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겹겹이 장치를 두고 있다.

그러나 왕정 이후에 이스라엘은 이 시내산 율법과 토지 공개념을 핵심으로 하는 희년에서 멀어져 갔고 결국은 나라가 망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 등의 선지자들은 시내산 율법으로 돌아가라고, 희년으로 돌아가라고 촉구했지만, 이스라엘은 그 말씀을 듣지 않았다.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사 5:8), 즉 땅을 혼자 독차지하려고 하는 자, 토지 공개념 정신을 훼손하는 자는 복이 아니라 화가 임한다는 것이 선지자들의 준엄한 경고였다.

예수님과 토지 공개념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떨까. 우리가 알고 있듯이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율법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시내산 율법이다. 안식일에 걸으면 안 된다,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외출했다가 집에 들어오면 손을 씻어야 한다는 규례는 예수님이 완성하겠다고 하는 율법이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희년은 시내산 율법의 핵심이다. 이런 까닭에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 선언서인 누가복음 4장 18-19절에서 가난한 자, 눈먼 자, 눌린 자, 포로 된 자에게 "은혜의 해", 즉 희년을 선포하러 오셨다고 한 것이다. 가난한 자, 눈먼 자, 눌린 자, 포로 된 자의 공통점은 땅이 없다는 것이다. 땅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대개 각종 질병에 시달린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율법과 선지자를 완성하러 오셨다는 성경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기독인들은 토지 공개념을 이 땅에 구현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성령을 받은 기독인들은 토지 공개념 구현에 앞장서야 한다. 누가복음 4장 18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라는 문구에서, 그리고 성령강림 이후 초대교회 신자들의 창의적인 희년 실천에서 우리는 배워야 한다.

만약 토지 공개념을 헌법에 명기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무엇보다도 부동산 투기를 차단할 수 있는 각종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일이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부동산이 초래한 불평등은 해소되어 분배가 크게 개선되고 부동산에 짓눌렀던 생산의 용수철도 튀어 오를 것이며 부동산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부정부패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부동산 때문에 고통받는 이웃의 수가 현저하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기독인이 앞장서야 할
토지 공개념 헌법 명기

기독인은 성경의 정의로운 말씀이 나라의 법에 반영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물론 제도화하기 전이라도 그 말씀을 창의적인 방법으로 교회에서 실천해야겠지만, 국가 제도화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면 그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나님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가. 희년이 실현되는 것을 꿈꾸는가. 이웃의 고통이 현저하게 줄어들기를 진정으로 바라는가. 불평등이 해소되고 부동산 투기가 없는 역동적인 자유 시장 경제를 원하는가. 이 땅이 '거룩한 나라'가 되게 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토지 공개념이 헌법에 명기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토지 공개념이 헌법에 기록되는 것은 성경의 정신이 나라의 기본 틀이 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남기업 /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희년함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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