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하워드 요더를 신학적으로 재조명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백소영 교수(이화여대)는 요더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20세기 최고의 평화신학자로 알려졌으나, 100명 가까이 되는 여성들에게 성폭력을 가한 요더. 백 교수에게 요더는 더 이상 학자적·천재적 상상력이 풍부한 신학자가 아닌, 자신의 성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논리적 모순을 보인 사람이었다.

'천재 신학자'라 불리던 요더는 1997년 사망할 때까지, 수많은 여학생, 직원, 교인에게 한 성적 실험(Sexual Experiments)이 성폭력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요더 저작들은 오히려 그의 사망 뒤에 더 빛을 발했고 피해자들은 그런 상황을 보며 고통에 시달렸다.

피해자를 돕는 메노나이트교회 내부 그룹과 피해자들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 끝에 요더 성폭력을 파헤친 백서가 2015년 세상에 나왔다. 2년간 관련자 인터뷰, 문서 수집 등을 거쳐 발표한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대장간)가 얼마 전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와 출판사 대장간은 3월 22일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 출간 기념 북 콘서트를 열었다. 왼쪽부터 김복기 선교사, 백소영 교수, 정신실 작가. 뉴스앤조이 이은혜

7월 개소를 앞둔 기독교반성폭력센터는 이 책을 출판한 도서출판 대장간(배용하 대표)과 함께 '요더 성폭력,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를 주제로 북 콘서트를 기획했다. 3월 22일 백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에서 열린 북 콘서트는 정신실 작가의 사회로 진행됐다. 책을 번역한 김복기 선교사(캐나다메노나이트교회), 백소영 교수가 패널로 참석했다. 

평화신학 주장하면서
가부장적 여성 인식
권력 관계에서 일대일 치리 불가능

요더는 '성적 실험', '하나님나라의 친밀감'이라는 이름을 붙여 여성들을 성적으로 학대했다. 백소영 교수는 요더의 생각 기저에 가부장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명저로 꼽히는 <예수의 정치학>(IVP)에서 요더는 평화의 왕 예수의 비전을 살아 내는 삶이 저항 그 자체가 된다고 설명하는데, 실제 그의 삶은 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고 백 교수는 말했다.

"요더는 정확히 가부장적 성애性愛, 가부장적 여성 인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이 마치 새로운 실험을 하는 것처럼 주장했다. 요더의 성 이해는 상당히 왜곡돼 있다. 요더는 가부장제를 뛰어넘지 못했다. 그는 교회론, 그리스도론 자체도 남근적 사고방식으로 뒤틀어서 보고 있다.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 요더가 '새로운 실험'이라고 하는 건 방법론적으로 오류가 있는것이다."

김복기 선교사는 요더가 남긴 신학적 유산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그는 요더의 천재성에 매료된 사람들은 여전히 요더를 학문적으로 붙들고 있다고 했다. 그런 이들 중에는 요더가 성폭력 가해자라는 점이 저술의 어떤 부분에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 작업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김 선교사는 "미국 메노나이트교회 교단 출판사는 요더의 성적 실험이 잘못된 것이라 판단했다. 따라서 그의 신간은 더 이상 출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백소영 교수는 성폭력 가해자 요더를 신학적으로 재조명하는 작업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요더 문제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 메노나이트교회도 비판 대상이었다. 백소영 교수는 "요더 치리 과정에는 메노나이트 공동체가 보여 온 메노나이트 원칙이 없다. 사람 개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서의 권리와 권한을 인정하는 게 메노나이트 아닌가. 하지만 치리 과정에는 희생자들의 목숨값과 요더 목숨값의 경중이 너무 달랐다"고 말했다.

김복기 선교사는 미국 아나뱁티스트성경신학교(AMBS) 밀러 총장이 학교 명성에만 집중한 나머지 요더에게 성경을 잘못 적용했다고 봤다. 메노나이트교회 치리 방식에 따라 일대일로 치리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김 선교사는 "이 같은 일대일 적용 방식이 동등한 관계에서는 가능하지만, 권력 관계에서는 불가능하다. 성폭력 같은 피해가 발생했다면 일대일이 아닌 더 큰 그룹에서 치리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여성들의 연대가 요더 비행 밝혀
폭력·평화 감수성 교육하고
'서로 함께' 세우는 교회 회복해야

수십 년 전 발생해 최근 피해자 회복 단계까지 마친 요더 성폭력 사건이 지금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는 뭘까. 정신실 작가는, 남성들이 요더 치리에 실패한 이후 여성 리더십이 앞장섰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여성들의 연대가 큰 힘이 된 것 같다. 남성들은 모이면 위계와 질서를 부여하는데, 여성의 몸으로 산 사람들은 권력을 나누는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백소영 교수도 여성들이 마음 놓고 서로의 경험을 털어놓을 수 있는 안전한 교회 공간이 확보돼야 한다고 했다. 백 교수는 "얼마 전 기독교반성폭력센터에서 주최한 '말하기 대회'에서 사회를 봤다. 20년, 30년 전 겪은 피해를 말씀하시는데도 어제 일처럼 바들바들 떨면서 얘기하셨다. 그 기간은 생명을 살아 낸 삶이 아니다. 피해자들을 그냥 둔다는 건 교회가 가장 큰 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피해 여성들이 안전한 공간에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복기 선교사는 여성들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김복기 선교사는 당시 요더와 비슷한 나이였던 한 여성 목회자가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고 했다. 여성들 목소리를 누른 것은 요더를 비롯한 가부장적 남성들이지만, 그 견고한 벽을 뚫고 나온 것은 여성들의 목소리였다.

김 선교사는 일상에서 폭력·평화 감수성을 교육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살아 있는 존재가 있는 곳에는 힘과 권력이 있다며, 이 힘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요더는 '신학자'라는 권위로 경계를 뭉개고 모호하게 했지만, 평소 경계가 무엇인지 보는 훈련을 한다면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얼마나 폭력적인지 민감하게 알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백 교수는 사회에서 '미투 운동'이 한창인 이때, 한국교회가 뒷걸음치지 말고 사도 바울의 '교회'를 회복하면 좋겠다고 했다.

"사도 바울은 '서로 함께' 세우는 교회론을 주장했다. 가부장제, 신분제의 한복판에서 출신과 성별 상관없이 그리스도 안에 모두 하나님의 자녀라는 평등 공동체를 지향했다. 지금 한국교회는 다시 그 평등한 공동체로 갈 수 있는 외부 요인이 만들어져 있다. 이 상황에서 교회가 자꾸 뒤로 가지 말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근원, 바울이 말한 교회론을 다시 교회 안으로 잘 끌어오면 좋겠다. 피해자 치유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피해자가 나올 수 없는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