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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피아, 그 파국의 엘레지

[판타지는 믿음을 배반하는가] '블랙 미러'

장다나   기사승인 2018.03.18  19: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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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문화연구소 필름포스'가 격주 간격으로 6차례 영화 칼럼을 연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뷰 기사(바로 가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는 드라마 '블랙 미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편집자 주


'테크놀로지와 미래'에 대한 우리의 감상은 양가적일 수밖에 없다. 첨단 기술이 가져다준 편의와 여유, 풍요로 의미화하는 낙관적인 감상과, 그것이 인간적 가치를 거부하고 그 고유성을 잠식해 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의 정서가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에 대한 인류의 호기심이 지속되면 될수록 두 감상 간 간극은 점점 더 벌어지겠으나, 최근 기술 문명이 이뤄 낸 눈부신 성과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심지어 21세기를 사는 '나'조차 때론 선진 기술을 따라가기 벅차다) 기술 낙관론보다 두려움에 대한 예견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도 철저한 디스토피아적 파국의 공포 말이다.

기술 문명과 파국에 대한 공포는 대부분 미디어를 통해 재구성되고 투사된다. 각 매체들은 장르적 환상을 입은 채 불안하고도 어두운 최악의 디스토피아를 상상한다. 지극히 한 예로 일찍부터 기술 공포를 탐구한 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인간 신체와 결합된 기계, 혹은 테크놀로지를 경유한 초인(그러나 괴물로 치부되는)이라는 기이한 물성을 창조해 낸 바 있다. 몸속에 비디오 테이프를 삽입하거나['비디오 드롬'(1983)], 인간과 파리의 유전자를 결합시키고 ['플라이'(1986)], 인간의 신체에 회로를 넣음으로써 게임에 접속하는 등['엑시스텐즈'(1999)] 일명 '인간 기계'로 지칭되는 하이브리드 복합물을 창조해 낸다.

실상 여기서 파생되는 공포 중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이미지의 '괴랄함'이다. 생명력을 머금은 인간 신체와 기계적 부산물의 결합은 감각적인 이질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더군다나 몸속에 침투하기 위해 끈적이고 물컹한 분비물을 뒤집어쓴 기계는 마치 미지의 존재로부터 신체를 점령당할 것만 같은 극도의 공포를 경험하게 한다. 하지만 최근 인공신장이나 인공심폐 같은 바이오닉스 기술만 보더라도 2018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하이브리드는 그리 낯선 존재도, 공포의 대상도 아니다. 숱한 염려와 상상을 뒤로한 채, 오히려 테크놀로지는 일찍부터 현대사 저면에 침투해 우리가 인식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편의와 안락을 제공해 왔으니 말이다.

어쩌면 급변하는 기술 문명에 도리어 인간이 박자를 맞춰야 한다는 부담감, 가치관 변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것들이 테크놀로지를 공포의 대상으로 삼게 된 근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 기술 진보의 흐름은 인간이 새로운 개체를 온전히 인식하는 것보다 그 진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기술의 진보는 편의를 가져다주지만, 그에 따른 풍요와 더불어 두려움이라는 양가적 감상을 불러온다. Channel4 '블랙 미러' 트레일러 갈무리

1. 테크노피아의 공포,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블랙 미러'는 고도화된 기술 진보와 더불어 인간의 어긋난 욕망이라는 소재를 다소 어둡고 기괴하게 풀어낸 판타지 드라마이다. 환상적이고 미스테리한 느낌으로 198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환상 특급 The Twilight Zone'과 비교하여 '디지털 시대의 환상 특급'이라고도 불리는 앤솔러지 방식의 시리즈물이기도 하다. 작가이자 TV 칼럼니스트인 찰리 브루커의 기획으로 2011년 영국 Channel4를 통해 시즌1이 첫 방영되었으며 현재 시즌4까지 제작된 상태다. 시즌마다 한 시간 남짓한 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최근 시즌3부터 넷플릭스가 제작을 맡게 되면서 6개의 에피소드로 그 규모가 확대되었다. 더불어 조 라이트, 댄 트랙턴버그, 조디 포스터 같은 실력파 감독들도 대거 투입, 작품성과 완성도 면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겠다는 입장이다(이미 시즌3의 '산 주니페로'는 에미상과 영국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에피소드는 '블랙 미러'에서 몇 안 되는 기계 낙관론적 엔딩을 보여 준다).

'블랙 미러'는 시즌이 거듭할수록 테크놀로지와 인간사에 대한 고민을 확장한다. 시즌1의 경우, 제목 '블랙 미러'와 그 중심축을 일치시켜 '미디어 환경 속 종속된 인간'을 대주제로 삼았다면 이어지는 시즌에서는 디지털 미디어라는 매체성이 부각된 접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공간의 영역, 운명론과 더불어 인간 내면의 불가해적 영역까지 침투한 테크놀로지를 재현한다. 이쯤 던질 수 있는 물음은 '과연 파국의 엔딩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일 것이다.

'터미네이터'의 인공지능 스카이넷이 펼친 인류 멸절 계획과 달리 '블랙 미러'의 수많은 기술적 산물이 품은 욕망의 실체는 사실상 모호하다. 만약 기술의 진보가 '윤택한 삶의 추구'라는 궁극적 에너지로부터 출발했음을 전제로 한다면(이를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는 태곳적부터 품은 인간의 원시적 욕망을 동력 삼아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테크놀로지는 욕망의 방향성에 따라 그에 최적화한 진화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수반되는 가치판단과 윤리의 문제가 이미 테크놀로지 자체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 가능하다. 욕망하는 기술의 심연에는 욕망하는 인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결국 그 욕망의 방향성이 어디를 혹은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이다. 그런 의미에서 '블랙 미러'가 그리는 테크놀로지는 인간의 욕망 추구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작용하며, 복잡다단한 내면의 본질을 비집고 들어가 하나부터 열까지, 순수함에서부터 추한 밑바닥까지 인간 말초를 들춰 내는 폭로의 기제가 된다. 특히 '죄성'이라는 인류 최초의 문제와 맞물리는 순간, 찬란한 테크노피아는 천천히 균열을 일으키며 역으로 인간 삶의 흥망을 결정한다. 이를 담은 몇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2. 디지털 판옵티콘: 기술 집약적 응시와 정밀화한 감시

시즌4의 에피소드 '아크 엔젤'은 '응시', '지켜봄'을 통한 권력의 욕망을 다룬다. 딸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어머니는 최첨단 기계를 딸의 머리에 삽입한다. 이는 시신경을 장악하기 때문에 딸이 보는 것을 어머니가 원격 랩톱을 통해 확인하고, 필터 기능을 통해 잔인한 이미지나 외설적인 이미지가 딸에게 노출되지 않게 한다. 그 영향으로 아이는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며 에로스가 무엇인지 모른다. 청소년이 될 때까지 피 한 방울 보지 않고 자란다. 친구들이 말하는 공포와 잔인함을 이해하기 위해 자해를 시도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은 필터 처리된 붉은 픽셀들뿐이다. 성장한 딸은 감시받고 있음을 눈치채고 극도로 어머니를 거부한다. 급기야 약속을 어긴 어머니의 눈을 향해 광적으로 랩톱을 휘두른다.

'아크 엔젤' 편에서 어머니는 시신경을 장악하는 최첨단 기계를 딸의 머리에 삽입한다. 넷플릭스 '블랙 미러' 트레일러 갈무리

'아크 엔젤'은 감시와 규율을 상징하는 원형 감옥 판옵티콘을 고도화한 현대 버전으로 탈바꿈한다. 여기서 테크놀로지는 한정된 원형 감옥에서 벗어나 분산된 감시 체계로 이행하며 제한된 공간을 뛰어넘는다. 대상을 통제하고(보지 못하게 하고) 무력화하며(감시하고) 권력을 행사한다(타인을 만나지 못하게 한다). 이는 딸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딸의 삶을 지배하고자 하는 어머니의 욕망에 기인한다.

해킹으로 상대의 불법행위를 감시하는 시즌3의 '닥치고 춤춰라', 감추고자 하는 기억조차 감시자에 의해 소환할 수밖에 없는 시즌4의 '악어'는 '아크 엔젤'과 더불어 기술의 풍요로움을 이용해, 더 정밀화한 감시 메커니즘을 쥐고자 한 인간 권력을 날 선 시선으로 바라본다. 실상 우리 또한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스마트폰 위치 정보 서비스부터 CCTV까지.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현대판 판옵티콘에 갇힌 셈이다. 심지어 이것은 판타지가 아닌 리얼이다.

3. 나를 결정하는 화면 너머의 너

'블랙 미러'는 미디어 뒤에 모습을 감춘 '여론'의 추한 민낯 또한 주목한다. 그 여론은 뉴스 너머, '좋아요' 버튼 너머, 혹은 서바이벌 프로그램 너머에 존재하며 한 개인을 규정하고 신화화 혹은 매도한다. 그중 시즌1의 '국가'는 '블랙 미러' 시리즈 중 가장 악명 높은 소재로 유명하다. 영국 공주를 납치한 괴한의 요구는 단 하나, 총리가 돼지와 수간하는 장면을 생중계하는 것이다. 처음에 주춤하던 여론은 사태가 급박해지자 총리의 치욕보다 생명의 우선순위를 내세우며 수간을 종용한다.

그러나 여론 깊은 곳에는 자극적인 볼거리에 대한 욕망과 스펙터클한 사건 사고에 대한 호기심이 일렁인다. 당의 지지율을 빌미 삼은 내각도 마찬가지이다. 당원들의 정치적 야욕은 총리를 매몰차게 돼지우리로 몰아넣는다. 방송 후 치욕에 울부짖는 그는 더 이상 총리가 아닌 돼지와 성관계를 맺은 광대로 전락하고 생방송은 반짝 소비되고 사라진 저질 쇼가 된다.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미미한 지지율과 내각의 냉소 그리고 자신을 괴물 보듯 피하는 아내의 뒷모습뿐이다. 소셜미디어로 인정되는 인간관계를 통해 한 개인이 데이터화하는 과정과 몰락을 치밀하게 그린 시즌3의 '추락', 진실한 고백조차도 엔터테인먼트로 소비되는 서바이벌 방송을 다룬 시즌1의 '1500만 메리트' 또한 그 맥락을 함께한다.

영국 공주를 납치한 괴한은 붙잡힌 공주의 모습을 영상으로 비추며 여론을 자극한다. Channel4 '블랙 미러' 트레일러 갈무리

4. 가상 세계, 살아 있는 죽음

인간에게는 무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다(여기서 무한은 유한의 반대개념으로 사용됨을 알린다. 무한을 '영원'으로 해석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러나 모든 사고 체계와 존재 자체가 시간의 그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유한함을 입은 인간에게 무한은 이해될 수 없는 신의 영역이기도 하다. 이 무한함의 공간에 도전한 테크놀로지는 결코 끝나지 않는 고통의 형태로 재현된다.

시즌2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시즌3의 '게임 테스터', 시즌4의 'USS 칼리스터'와 '블랙 뮤지엄'은 가상현실 속 무한한 시간성에 대한 상상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중 시즌4의 'USS 칼리스터'는 게임 세계 속에 갇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어디서나 무시당하는 게임 개발자는 자신을 괴롭히던 대상 혹은 음욕을 품은 대상의 생체 샘플을 몰래 수집해 가상 게임 공간에 똑같은 형체로 탄생시킨다. 개발자는 월등한 능력치를 스스로 설정한 후 두 공간을 넘나들며 현실에서의 수모를 가상공간에서 푼다.

게임 세계 안에서는 그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다. 미워하던 대상을 영원히 짓밟아 줄 수 있고 원하는 만큼의 키스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공간은 한정된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임 속으로 끌려온 사람들은 희로애락 같은 인간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며 무한을 살아간다. 죽음도 선택할 수 없는 이곳에서 무료함에 괴로워하고 끝없는 시달림에 고통스러워한다. '은하철도 999'에서 영원을 살기 위해 기계 인간이 되고자 했던 철이가 결국 되돌아온 이유도 끝없는 무료함에 젖어 삶의 의미를 잃고 인간의 가치를 망각한 기계 인간들 때문이지 않은가. 무한한 시간 속에 무한한 공포가 함께한다. 역시나 그 중심에는 비뚤어진 욕망을 움켜쥔 인간이 있다.

기억을 기록하는 칩이나 가상현실 속 삶, 인간관계를 데이터화하는 어플리케이션 등 '블랙 미러'에서 파멸의 수단이 되는 근 미래 기술들은 아직까지는 판타지의 영역이지만 실현 불가의 영역은 아니다. 근 10년간의 테크놀로지를 되짚어 보면 상상은 현실이 됐고 이상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알파고의 사고에 놀라고 시를 쓰는 감성 로봇의 존재에 문득 두려움을 느꼈다면 후대에 스스로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마치 1895년 최초 영화 상영 순간에 스크린에 투영된 기차에 놀라 달아났다는 몇몇의 황당한 에피소드처럼 말이다. 결국 판타지는 한 치 앞의 현현이며 곧 만날 현실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이다. '블랙 미러'는 그 위에 테크노피아에 대한 기대과 허망함을 얹은 채 쓸쓸한 파국의 날을 애도한다.

미래 기술은 데이터를 중요하게 다룬다. 넷플릭스 '블랙 미러' 트레일러 갈무리

장다나 / 다큐멘터리 실험 영화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고 현재 영화 이론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제작과 이론의 어중간한 자리에서 버티기 자세를 취하는 중인데 아무래도 끝까지 뭉그적거릴 태세.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 및 99.9mhz 경기 방송 '바운스바운스'에서 영화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현재는 지인들과 도심형 공동주택을 짓고 살며 공동체적 삶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 <코하우스 이야기>를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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