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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합의 스캔들로 바라본 MeToo

대한민국에 드리워진 홍색 띠, WithYou 운동의 시작

이상철   기사승인 2018.03.17  16:3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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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1일 한백교회 '하늘 뜻 나누기'(설교) 원고를 수정‧보완했습니다.

"그들이 나간 뒤에, 라합은 홍색 줄을 창에 매달았다(수 2:21)"

1. 1968세대 vs 2018세대

올해는 68 혁명이 50주년 되는 해입니다. 1968년 3월 미국 베트남 침공에 항의해 아메리칸익스프레스의 파리 사무실을 습격한 대학생 8명이 체포되자 그 해 5월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대규모 항의시위가 이어졌습니다. 여기에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겹치면서 프랑스 전역에서 권위주의와 보수 체제 등 기존의 사회질서에 강력하게 항거하는 운동이 일어났고 이는 남녀평등과 여성해방, 반전, 히피 운동 등 사회 전반의 문제로 확산되었습니다. 68 혁명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독일 등 국제적으로 번져 나갔습니다.

소련 위성국가였던 체코에서도 68년 봄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모토로 공산주의 내에서의 개혁이 도모되었습니다. 하지만 8월에 소련에 의해 진압당하죠. 유명한 '프라하의 봄'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깔고 있습니다. 체코 출신의 망명 작가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제목으로 당시 프라하 젊은이들의 방황과 좌절과 희망을 누설한 바 있습니다.

20세기 말은 68을 분기점으로 그 전과 이후를 나눌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적어도 현대사상의 지형도를 살펴보면 그렇습니다. 68을 분기점으로 각종 post 담론들이 분출하게 됩니다(Post마르크시즘, Post모더니즘, Post구조주의, Post콜로니얼니즘, Post페미니즘 등). 68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에 의해 급속도로 진행되었던 냉전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강력하게 작동되었던 대타자의 목소리, 하나는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입각한 자유민주주의였고, 다른 하나는 소련과 동부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된 스탈린주의에 입각한 교조적 공산주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 유럽의 지성과 젊은이들은 "양자에게 우리는 속았다. 이제 그 푸닥거리를 멈춰라!" 이것이 68이 우리에게 선사했던 선물이었습니다.

68 혁명은 우리가 페미니즘, 동성애, 인종주의와 같은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68 이후 적어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누구도 여성 차별 혹은 비하, 인종주의나 동성애 혐오를 공공연히 드러내면 지식인의 범주에 끼지 못하는 수준 이하의 사람으로 시민사회에서는 낙인이 찍힙니다. 우리나라에서 빨갱이라는 낙인만큼 서구의 성숙한 시민사회 분위기에서 반동성애자, 인종주의자, 여성비하론자로 찍히면 살기 피곤합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만든 것이 68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68 혁명이 지금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68 혁명 50주년이라는 시의적인 것도 있고 무엇보다 부각되는 것은 요 근래 전 세계적으로 젊은이들이 각종 시위에 적극 가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68 세대와 지금 젊은이들, 그들을 밀레니얼 세대(밀레니얼 세대란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 사이 출생하여 2007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사회생활을 시작한 세대로,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소통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2010년 이후 사회의 주역으로 점점 대두하고 있다)라고 부르는데, 양자 간의 차이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진보 진영의 운동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아울러 요 근래 번지는 MeToo 운동은 이런 흐름 속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

물론, 이런 세대론적 접근은 많은 오류를 내포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여러 변수가 있기 때문이죠. 출생, 지역, 계급, 거주지 등과 같은 것들이 그 변수들입니다. 미국 남부 농촌 지역인 경우는 젊은이들의 투표 경향은 대체로 부모 세대와 같습니다. 미국 남부 같은 경우는 이런 세대론의 적용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대론적 분류가 유효하지 않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유명 사립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청년들의 진보 정당 지지율은 거의 바닥일 확률이 높습니다. 서구 사회 상위 5% 이내에 속하는 고소득자들의 진보 정당 지지율은 어느 사회이건 얼마되지 않습니다. 즉 경도된 근본주의와 최상위 계급에게는 세대론적인 접근이 무용하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예외적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 중산층 이하 밀레니얼 청년 세대들과 이전 세대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68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간 운동의 차이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68은 이데올로기의 세대라 할 수 있고, 현재는 생계형 운동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미국 플로리다 고등학교에서 총기 사고가 있었죠. 그래서 미국 고등학생들이 백악관 앞에서 행진을 하는 모습을 봤는데, 그것의 구호가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이었습니다. 21세기 청년들이 거리로 나오는 이유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입니다. 숭고한 이데올로기를 이땅에서 실현하기 위한 강철 같은 의지와 투철한 신념 때문에 거리로 나서는 것이 아니라, 먹고살기 힘들어서, 최소한의 삶의 안전함을 위해서 거리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요즘 유럽 전역에서 청년들이 대거 시위에 참여한다고 합니다. 17~18세부터 23~24세까지가 대표적인 밀레니얼 세대 청년들입니다. 주된 이슈는 세계 평화, 민주주의 만세, 인류의 존엄 뭐 그런 거창한 구호들이 아닙니다. 유럽 전역으로 지지를 넓혀 가는 보수당 정권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공공 의료 서비스에 대한 민영화 반대, 각종 복지 정책 축소에 따른 불만으로 촉발된 삶에 대한 위기감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이탈리아 총선이 있었는데 보수 우파가 다수당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 복지 정책에서 축소 지향의 시행이 예상되면서 역시 이탈리아 젊은이들이 동요하고 있다고 하네요.

2. 생계형 좌파의 탄생, 그러나 조용한 (한국) 청년들

현재의 밀레니얼 세대들은 전후 최고의 스팩을 갖춘 세대들입니다. 지난 주 김진호 목사님이 하늘 뜻을 나누면서 오늘날 청년을 삼포세대, 오포세대, 칠포세대라 명명한다는 소개를 하면서, 우리 역사상 가장 많은 스팩을 보유한 세대들이 자신을 부르는 방식이 '획득'이 아니라 '포기'라는 절망의 아이콘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 지옥의 묵시록 아닐까, 라는 말도 했습니다.

현재 청년 세대들은 6‧25 이후 최초로 부모 세대보다 못사는 세대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과 유럽의 청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대선에서 샌더스 후보를 많은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들이 지지했습니다. 그들의 실질임금이 부모 세대에 비해 20% 낮을 것이라고 여러 경제지표들이 가리키고 있는 상황에서 샌더스의 발언과 정책이 미국 밀레니얼 세대들의 호응을 얻은 것입니다. 현재 미국 밀레니얼 세대 청년들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평가는 회의적입니다. 거의 과반이 자본주의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재분배와 완전고용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미국이 이 정도이면 좌파의 입김이 강한 유럽은 어떨지 짐작이 갑니다. 이렇듯 68 이후 50년이 되는 시점에서 68 때와 맞먹는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특징이 이데올로기적 좌파가 아니라, 생계형 좌파라는 것이죠.

우리나라 청년들도 이러한 흐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저임금, 부채, 불안정 노동과 주택 마련·양극화에 대한 불만과 제도권에 대한 불신을 한국 밀레니얼들이 해외 밀레니얼들과 그대로 공유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학생운동의 역사는 찬란했죠. 4‧19부터 1970~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 초중반까지 한국의 대학은 실로 사회변혁의 용광로와 같았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어쩌면 1970~1980년대 상황보다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민주화도 되었고 자유롭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실상 그 속을 들여다보면 대한민국은 상위 10%가 전체 부의 50%를 넘게 소유한 파렴치하고도 부도덕한 사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운동의 이력의 화려했던 한국의 대학가는 오히려 조용합니다. 전 세계 밀레니얼 청년들이 봉기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당연히 레드 콤플렉스 때문이다, 라고 변명을 할 수 있겠으나 그건 너무 오래 우려먹는 핑계입니다. 지금 밀레니얼 청년들은 연애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시간과 여유도 없이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알바를 해야 하는 까닭에 정치에 참여할 시간이 실질적으로 없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로 행동하지 않는 청년들을 탓하기에는 어딘가 좀 궁색합니다.

저는 여기에다 한 가지 더 첨가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국내 거의 대다수의 단체(그것이 진보 세력이든 보수 세력이든 간에)들이 갖는 조직 문화의 경직성과 보수성, 폐쇄성, 무감각한 젠더 감수성이 더 이상 청년들로 하여금 어떤 희망과 의지를 가질 수 없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밀레니얼들은 수평적 평등적 관계를 지향하며 젠더 감수성이 발달한 세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한국의 다수 진보 조직들조차(보수는 말할 필요도 없고) 여전히 1980년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위계질서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보스(들)를 정점으로 하는 서열의 논리로 조직이 돌아가고 그런 까닭에 성추행 등과 같은 일상적 인권 문제에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안희정, 이윤택의 예에서 보듯이 말입니다.

청년들이 왜 행동 안 하는가를 지적하기 이전에 한국의 모든 기관과 조직들은 인권과 젠더 감수성에 대한 환골탈태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지금의 세태에 대해 겉옷을 찢으면서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금 번지고 있는 MeToo 운동이 한국 사회를 이전과 이후로 가르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고, 이는 WithYou로 들불처럼 번져 삶의 정치, 삶의 윤리로까지 나아가야 하리라 봅니다.

3. 라합을 아시나요?

오늘 하늘 뜻 본문을 여호수아에 나오는 라합 이야기로 골랐습니다. 라합의 이야기는 MeToo 운동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MeToo와 WithYou 운동을 위한 신학적 상상력을 선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마음이 저에게는 있습니다.

여러분, 라합을 아시나요? 마태복음 1장에 예수의 족보가 나오는데 거기에 5명의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중 1명이 라합입니다. 라합의 여호수아서의 앞부분에 등장하는 여리고의 창녀입니다. 모세가 죽고 나서 이스라엘은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요단강 건너 가나안 진출을 도모하는데 가나안 입성의 첫 관문이 바로 여리고성입니다. 라합은 그 여리고성의 여관집 주인이었습니다. 우리로 따지면 주막집의 주모를 연상하면 될 것 같네요. 이스라엘의 스파이들이 여리고성을 정탐하고 하필 숨어 들어간 곳이 라합의 주막이었다는 것이 뭔가 심상치 않은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전조를 독자들에게 전합니다.

당시 전체적으로 가나안 땅은 중앙집권 체제라기 보다는 성읍 국가 체제입니다. 지형적으로 가나안 지역은 북쪽 갈릴리 호수에 발원한 요단강이 북에서 남으로 흘러 사해까지 이릅니다. 거기만이 유일한 수원지입니다. 그로부터 멀수록 건조한 고원지대입니다. 그마저도 물에 염분이 포함되어 있어 농업용수로는 부적합합니다. 이런 이유로 오아시스나 우물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그것이 성읍 국가가 발달하게 된 원인이라 할 수 있는데, 그중 여리고는 가나안 지역에서 가장 큰 샘을 소유한 풍요로운 성읍이었습니다.

또한 당시 가나안은 또한 이집트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이집트는 느슨하게 가나안을 관리하였습니다. 성읍국가 영주의 권력을 보장해 주는 대신 절대적 복종을 요구하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식민지 지역의 문화를 존중하는 다문화 포용 정책을 펼치는 듯 하지만, 반란이나 조세의 원칙을 어겼을 경우 철저한 응징이 따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나안 민중들은 영주와 이집트 파라오에게 이중으로 약탈의 대상이었고, 라합은 그중에서도 최하층 계급의 여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여호수아 2장은 첩보 영화의 대본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로 긴장과 서스펜스가 넘칩니다. 이스라엘의 스파이들이 여리고 침공에 앞서서 여리고를 정탐하러 온 상황입니다. 가나안의 비밀경찰 조직이 라합의 집에 숨은 이스라엘의 스파이들의 냄새를 맡고 라합의 집에 들이닥칩니다. 그러자 라합이 그 스파이들을 다락방에 숨기고 나서 태연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저에게 오기는 했지만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난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날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떠났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빨리 사람을 풀면 아마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여호수아 2장 4-5절) 아주 대담한 거짓말입니다. 범인은닉죄, 불고지죄, 허위 진술까지. 여리고의 경찰과 사법부의 입장에서 볼때는 아주 중형에 처할 범죄입니다. 어쩌면 내란죄 죄목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라합은 여리고가 자기가 속한 공동체이고 조국인데 무슨 이유로 이런 대담한 거짓말을 했을까요.

요령껏 왕의 병사를 따돌리고 지붕에 마련해 둔 은신처로 올라가 정탐꾼들과 대화를 나누는 라합의 목소리는 아주 분명하고 단호합니다. "우리는 출애굽하면서 이적을 행하시고 당신들을 구한 야훼의 위대함을 안다. (중략) 그러니 우리를 구해달라. 우리를 죽지 않도록 우리의 생명을 구해달라(수 2:9)." 자기가 살고 있었던 공동체 여리고의 위기를 라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곳에 있으면 내가 죽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라합을 계속 짓누르고 있던 때에 라합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버리고 하느님께 자신의 운명을 의지하였던 것이죠. 그리고 나서 도망칠 방도들 정탐꾼들에게 일러 줍니다.

이스라엘의 스파이들은 라합의 성의에 감사의 말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약조를 합니다. "여기 홍색 줄이 있으니 우리가 이 땅으로 들어올 때, 당신이 우리를 달아 내렸던 그 창문에 이 홍색 줄을 매어 두시오. 그리고 당신의 식구들 모두 당신의 집에 모여 있게 하시오. (하략)"(2:18-20) 그리고 나서 등장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하늘 뜻 본문입니다. "그들이 나간 뒤에, 라합은 홍색 줄을 창에 매달았다"입니다.

4. MeToo 운동, 그리고 반론들

라합이 주홍색 줄을 창에 매달았다는 구절을 읽으면서 저는 다니엘 호돈의 <주홍글씨>가 생각이 났습니다. 여주인공(헤스터 프린)과 목사(딤즈테일)의 불륜을 다룬 소설이죠. 작년(2017년) 10월 한백 창립 30주년 기념 연극으로 올린 보스턴 마녀사냥을 주제로 했던 아서 밀러(Arthur Miller)의 <시련 Crucible>과 소설 <주홍글씨>는 엄격한 청교도 사회에서 성직자의 불륜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헤스터 프린의 가슴에 단 주홍 글씨 A는 간음을 뜻하는 Adultery의 머리글자입니다. 당시 청교도의 가혹하고도 근본주의적인 종교적 엄숙성, 광기를 나타내는 장치입니다. 주홍색 줄을 자기 창가에 내건 라합과 주홍 글씨를 가슴에 단 헤스터 프린이 오버랩되면서 그들이 겪어야 했을 고초가 생각이 났습니다. 자칫 발각되면, 자기만 살겠다고 나라를 배신한 요부, 라는 죄목으로 라합은 죽임을 당했겠죠. 그렇게 죽은 후에도 라합과 라합이 창에 단 주홍색 줄은 인구에 회자되면서 배신과 탐욕과 욕망과 저주의 아이콘으로 전승되었을 것입니다.

내부에서 외부를 관조하면서 자기의 관점으로 대상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것, 외부에서 안을 폭넓게 살피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어쩌면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내가 속한 집단과 공동체 안에서 스스로를 바라보고 비판하고 잘못된 점을 발언하는 일은 어지간한 용기와 다짐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라합은 내부 고발자이고 국가를 배신한 반역자입니다. 지금 MeToo 운동의 대열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 역시 그들이 속한 공동체와 집단의 시각에서 볼 때는 내부 고발자이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던 관습을 전복하는 파국적이고 위험한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지현 검사의 발언으로부터 시작된 MeToo 운동이 안희정 수행비서인 김지은 씨의 발언으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요? MeToo 운동을 둘러싼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진보 분열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발언도 있었고, 근대적 인권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잘못된 행동을 한 사람의 인격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봉건시대 인권에 대한 접근이고 근대 이후 시민사회로 접어들어서는 인격 전체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그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으로 인권을 대하는 태도가 전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성폭력을 저지른 인물은 전적 악마와 괴물 취급하면서 마녀사냥식으로 몰아가고 있다. 좀 더 냉철한 접근 방법과 태도는 우리 사회에서는 요원한 것인가, 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조민기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은 이런 우려가 현실화한 경우라 개운하지 않습니다.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이런 성폭력만을 소재로 한 선정적 이슈들이 페미니즘을 호도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음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페미니즘은 단순한 육체적 성과 억압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과 관습과 권력의 차원에서 발생하는 모든 억압에 대한 저항이고 대안인데, 소셜미디어에 돌아다니는 MeToo 소식은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흐르고 있다. 자칫 이런 선정성이 페미니즘의 진면목을 가리고 진정한 페미니즘 운동으로 나가는 데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은 항상 긴장 관계에 있었습니다. 특별히 우리나라 같이 정통 마르크스주의 계열의 입김이 센 곳에서는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시선이 우호적이지만은 않습니다. 현재 진행되는 페미니즘에 대한 과도한 열풍이 중산층, 혹은 고학력 페미니스트들의 전유물 아닌가. 더 가난하고 약한 여성들, 페미니즘이라는 말조차 모르는 여성들을 배제한 페미니즘 아닌가. 지금 MeToo 운동도 검사, 유력 대통령 후보의 비서 등 상층부 여성들의 입을 통해서만 들려지지 않느냐. 이것은 그동안 페미니즘 운동이 변혁의 기본인 계급성을 담보하지 못했던 결과라고 반박합니다.

마르크스주의는 계급의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취급합니다. 하지만 단순하게 계급으로만 포획되지 않는 중요한 문제들이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여성 문제, 소수자 문제, 문화적 문제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정통 마르크스주의 운동권에서는 비계급적 좌파라고 하지요. 범박하게 말하면 계급 좌파는 급진적인 노동운동가를 말하는 것이고, 비계급적 좌파들은 급진적 페미니스트, 퀴어운동가, 급진적 생태주의자, 급진적 문화운동가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좌파의 외연이 넓어질수록 제대로 된 세상, 세련된 세상이 되리라 생각하는데… 이 문제를 갖고 제 오래된 지인과 얼마 전 MeToo 운동을 놓고 이야기를 하다 설전을 벌인 바 있습니다. 사회주의 운동 단체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던 그 친구는 저의 발언이 비계급적 좌파의 계급적 좌파에 대한 비난이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그 친구의 오해에 약간 빈정이 상해 "그런 굳어있고 화석화한 교조주의적 운동의 형태가 얼마나 혁명을 거칠고 무자비하게 만들었는가. 그래서 지금의 사태에 이른 것 아닌가"라고 말을 해 버렸습니다. 그 다음 분위기는 여러분들이 알아서 짐작하십시오.

MeToo를 둘러싸고 현재 다양하게 전선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모두가 보기에 따라서는 맞는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MeToo에 대한 다각도의 접근이 필요하고, 거리 두기도 필요하고, 좀 더 냉철해질 필요도 있겠죠. 이 모든 것들을 감안하고 종합하면서 좀 더 큰 틀에서 지금의 현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식자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합리적인 설명들을 들으면서도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습니다. 이런 고통의 문제는 몸이 기억하고,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면서 진정되지 않은 채 귀환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5. WithYou

문득 이런 상상을 해 봤습니다. 라합이 주홍색 끈을 자기 창에 매단 후에 JTBC 손석희 사장을 만나 지금의 심정을 말하는 장면 말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한국땅에 벌어지고 있는 MeToo 운동의 증언자들과 라합 사이 놓여 있는 2500년 이상의 시간의 차를 뛰어넘어 이원으로 생중계를 하는 장면을 상상합니다. 조민기, 이윤택, 조재현, 김기덕, 안희정 등을 고발했던 미투 동참자들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지금도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혹은 후배들을 위해 나섰다"고 하면서 어렵게 자신들이 당했던 일을 우리들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자기가 속한 법조계, 극단, 학교, 교회, 정치적 동지를 배반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자기가 사랑하는 공동체를 살리는 길이라고 믿었기에 그들은 자기들의 가슴에 주홍 글씨를 새기면서까지 지금 이렇게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고발과 반역은 개인의 영광을 위한 것도 아니고, 화제의 인물에 오르기 위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굴욕적이고도 비참한 삶을 수백 수천년 동안 참고 견디면서 살아왔던 전체 여성들이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에 던지는 경고이자 절규의 메시지다'라는 생각이 저는 듭니다. 그래서 백만 스물한 번, 백만 스물두 번, 백만 스물세 번의 고통과 굴욕을 참아 왔던 그녀들에게 백만 스물네 번째 고통을 왜 못 참느냐고 이번에도 조용히 넘어가자고 저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준 그분들을 지지합니다.

어떻게 그들이 용기를 내고 커밍아웃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 질문에 라합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하나님만이 참하나님이고, 그 신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그 신이 우리가 겪고 있는 압제와 아픔과 절망을 끊어 줄 것이고, 우리가 흘리는 눈물을 닦아 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나의 창에 주홍색 줄을 내린다!"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행을 고발했던 김지은씨는 인터뷰 말미에서 "저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게 방송이라고 생각"해 출연을 결심했고, "국민들이 저를 지켜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국민들이 저를 지켜 줬으면 좋겠다"라는 대목에서 울컥했습니다. 라합이 했던 "주께서 저를 지켜 주십시오, 주께서 저를 지켜 주실 것을 믿기에 저는 주홍색 줄을 창에 내걸겠습니다"라는 말과 겹쳐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국민을 믿고, 우리를 믿고 그녀는 자신의 가슴에 주홍 글씨를 달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우리 국민이 답을 할 단계이죠. 그것이 WithYou 운동의 시작이 아닐까 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백 식구들 한 분 한 분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6. 에필로그

한국 현대사에서 4‧19를 중심으로 이전과 이후 세대가 나누어지듯, 1980년 광주를 중심으로 이전과 이후를 나누듯, 1997년 IMF를 중심으로 이전과 이후를 나누듯, 2014년 세월호를 중심으로 이전과 이후를 나누듯이, 역사는 분명 2018년 MeToo를 중심으로 이전과 이후를 나눌 것입니다. 저는 민주주의만 이룩하면, 경제 정의만 이룩하면, 통일만 되면 세상이 바뀌는 줄 알았습니다. 물론 그것은 아직까지 우리에게 미완으로 남아 있는 현재진행형의 과제이지만, 그것들의 성취를 위해, 그런 대의를 위해 한국의 여성 인권은 그동안 정상적인 가치를 누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억압되어 왔고 그들에게 가해진 폭력은 은폐되어 왔습니다. 남성과 더불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여성들의 인권이 이 정도인데, 성소수자들의 인권은 오죽하겠습니까. 어쩌면 MeToo 운동은 한국 역사에서 최초로 여성(타자)에 대한, 여성(타자)에 의한 자기 목소리가 날로, 집단적으로 울려 퍼지는, 그리고 그 파급력에 있어서 최초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사건이 아닐까 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생활을 청산하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척 중요한 신앙적, 역사적, 정신사적 전환의 사건이었습니다. 광야 시대에서 가나안 시대로 넘어가는 연결 지점에 여리고가 있었고, 여리고는 자신의 창에 홍색 줄을 길게 내린 고난받는 여성의 끝판왕 라합에 의해 무너집니다. 지금 이어지고 있는 MeToo 운동이 홍색 띠로 길게 이어져 대한민국이라는 성에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이곳에 새로운 기운과 분위기가 조성될 것입니다. 그 싸움은 우리가 그동안 민주주의와 통일과 정의와 자유를 추구했던 가치와 투쟁과 노력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소중하고 급하고 간절하다는 사실을, 저는 이제야 깨닫습니다.

*이 글은 웹진 <제3시대>에도 실렸습니다.
웹진 <제3시대> 바로 가기: http://minjungtheology.tistory.com/

이상철 / <제3시대> 편집인, 한백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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