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사건은 우리를 수난이라는 드라마로 초대합니다. (중략) 수난은 너무나 섬세하고 변혁적인 하느님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 우리가 아는 모든 정의를 넘어서고 전복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중략) 이 이야기는 위험하며 우리에게 우리의 삶 전체를 건 여정에 동참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 여정에서 우리는 고통을 지나야 하며 죽음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과했을 때 비로소 새로운 생명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15쪽)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십자가 - 사랑과 배신이 빚어낸 드라마>(비아)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둘러싼 배신과 사랑의 드라마를 담고 있다. 유다의 배신, 나아가 인간의 배신이 빚어낸 십자가에 담긴 급진적이고 신적인 사랑을 한 편 한 편의 드라마로 그려 낸다. 책 뒷부분에 수록된 '해설'에 따르면, 이 책은 2013년 3월 영국 솔즈베리대성당에서 저자 새라 코클리(Revd Canon Prof. Sarah Coakley, 1951~)가 인도한 성주간(고난주간) 묵상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사순절, 고난주간에 읽기 좋은 책이다.

<십자가>는 성경 속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을 본문 삼아, 초대‧선물‧배신‧사랑‧두려움‧모욕‧용서‧희생‧죽음‧부활이라는 열 가지 테마로 십자가를 살핀다. 각 장 앞에는 컬러 삽화와 성경 구절을, 뒤에는 기도문을 배치하고 있다. 사순절, 고난주간 묵상을 위해 분위기를 살린 것이다. 이 책은 '비아 문고 시리즈'로 출간됐다. '얇고 단단한 안내서'를 지향하는 같은 시리즈의 다른 책들처럼, <십자가>는 얇지만(128쪽) 충분히 곱씹을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이 책은 영국 신학자 새라 코클리의 첫 한국어 번역서다. 새라 코클리는 잉글랜드성공회 사제이자 케임브리지대학교 노리스헐스신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학자들에게 맡겨지는 가장 유명한 강좌 '기포드 강연'에 2012년 연사로 나선 적이 있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적인 학자이다.

미국 유학 당시 새라 코클리에게 지도를 받은 김진혁 교수(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가 독서를 심화할 수 있도록 17쪽(111~127쪽) 분량 '해설'을 썼다. 그는 코클리를 신비에 대한 감각과 지적 엄밀성을 보여 주는 신학자라고 평한다. 코클리가 자신의 저서들을 통해 "인간 됨의 의미를 가식 없이 응시하고, 일상에서 신비에 잠기는 법을 안내하고, 우리를 옭아매던 선입견을 거북하지 않게 뒤틀며, 현대사회에서 그리스도교의 의미를 묻는다"는 것이다. <십자가>에는 본문에 대한 날카롭고 깊은 묵상, 신앙과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어우러져 있다.

<십자가 - 사랑과 배신이 빚어낸 드라마> / 새라 코클리 지음 / 정다운 옮김 / 김진혁 해설 / 비아 펴냄 / 128쪽 / 9000원. 뉴스앤조이 경소영

<십자가>는 '십자가'를 둘러싼 드라마의 다층성을 조명한다. '드라마'에 주목하는 저작답게, '마지막 일주일'을 따라가며 먼발치에서 예수를 바라보거나, 직접 수난 여정에 개입하는 배역들 모습에 주목한다. 예수의 발에 입 맞추며 향유를 부은 여인, 예수를 수난에 넘겨준 유다, 십자가 발치에 머무르며 부활의 빛을 기다린 여인들 등이 그 배역들이다.

단지 성경 속에 등장하는 배역들을 멀리서 방관하듯이 바라보지 않는다. 십자가 여정 가운데 있는 배역들의 자리로 읽는 이를 인도한다.

"먼저 우리는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그리고 타인에게 도사리고 있는 두려움과 직면해야 합니다. 이는 길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소망을 접은 채, 그럼에도 두려움 가운데 십자가를 바라보고자 하는 이들, 남에게 보이는 현란한 사랑이 아니라 순전한 사람, 예수를 좇은 여인이 보여 주었던 당혹스럽지만 흘러넘치는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58쪽)

"예수가 죽음을 맞이한 이 순간, 그리고 부활의 빛이 움트기 전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의미가 되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신비를 기다립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시간, 십자가 발치에서, 우리가 신앙의 여정을 시작했던 바로 그곳에서, 여인들과 함께 머물러야 합니다." (90쪽)

유다가 배신한 밤을 조명하는 3장 '배신'에서 주목하는 죽음의 풍경이 이 책의 묵상 방식을 잘 드러낸다. 코클리는 유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언급하면서, 이 비극이 베드로와 달리 배신 이후 유다가 하나님의 사랑에 담긴 용서의 가능성을 믿지 못하고 절망했다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사랑을 빚으실 수 있으며 그 사랑을 흘러넘치게 하실 수 있다"(39쪽)는 것이다.

더 나아가 코클리는, 몸서리치는 고통을 겪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에게도 주의 사랑이 미칠 수 있다고 믿는다는 말로 이를 정리한다. 유다라는 배역과 이를 읽어 내는 그리스도인을 거쳐 고통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을 조명한 뒤, 다시 십자가가 있는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은 드라마를 '보는' 고통을 감수할 때,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유다와 함께 있습니다. 그는 균형을 유지하려는 자였으며, 그리스도를 수난에 '넘겨준' 자였습니다. 그는 절망에 빠진 비극적인 인간이었습니다. 그를 바라보십시오. 오늘은 유다의 밤입니다. 또한 우리의 밤이기도 합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는 잘못된 갈망으로 점철된 밤,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자비를 잘못 이해한 나머지 절망에 빠진 밤입니다. 이 밤을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는 이는 오직 하느님의 아들뿐입니다." (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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