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주원규 목사가 '예배당 건축 기행'을 격주 간격으로 연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뷰 기사(바로 가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최근의 한국교회를 구분 짓는 방식 중 가장 핫한 방식은 아마도 대형 교회와 작은 교회 간 구분일 것이다. 이러한 유형 구분에는 비대화한 대형 교회의 각종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의미에서 작은 교회란 구분 짓기 의도가 담겨 있음을 피하기 어렵다. 실제로 메가 처치(mega church)로도 알려진 대형 교회가 보여 준 현상적이고 사회학적인 한계가 분명히 탄로 난 부분에 있어서도 이러한 구분이 유의미한 성찰 기제로 개신교계에 작동한 사실을 간과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교회를 사회학적, 의미론적으로 구분 지을 때 또 한 가지 빠뜨려선 안 되는 유형이 있다. 대학 교회에 대한 유형 구분이 그렇다.

이화여자대학교대학교회 예배당. 바로 옆에 국제교육관 건물이 우뚝 솟아 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대학 교회란 무엇인가

대학 교회는 일반 교회와는 달리 대학 관계자들이 주체가 되어 설립한 교회다. 학문의 최선봉에 선 이들이 스스로 학문과 신앙의 성숙한 조화를 위해 설립된 의도가 오롯이 묻어난 교회가 바로 대학 교회인 것이다. 물론 학원 선교라는 구심점으로 사용되는 교회가 대학 교회 기능 중의 한 부분을 차지하긴 한다. 하지만 본래 대학 교회의 본질적 정신은 선교적 목적보다는 신앙이 어느 교단, 교파의 분위기에 휩쓸리기보단 학문적 성취와 이를 확장하게 하는 연구 풍토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의도가 더 깊게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대학 교회는 조직 구성체를 최소한 간소화하며, 기능 면에서 매우 미니멀(minimal)한 특성을 갖는다. 여기서 주목할 수 있는 미니멀함은 흔히 이야기하는 전도와 성장을 교회의 존재 목적으로까지 생각하는 일반 교회가 추구하는 구령 위주 조직 구조의 최소화를 도모한다는 데 용이한 기능적 특성을 보유했다는 점이 강조된다. 대학 교회는 그렇게 간소화한, 기능의 배제로 확보된 여백에 지성 공동체가 가진 풍부한 지적·인적 자원을 활용해 신학 속에서의 신앙을 추구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진 교회로 존립한다. 이는 갈수록 신학적 성찰이 고갈되어 가는 개신교에 새로운 존재 양식을 선보일 수 있는 강점을 제공한다. 일반 교회에서는 쉽게 시도하기 어려운 교회 공동체의 다양한 존재 양식과 기능을 허용하거나 개발할 여지를 가졌기에 가능할 것이다.

필자는 그런 의미에서 미니멀한 특성을 가장 입체적이며 확장 가능성으로 구현하는 이화여자대학교대학교회(이화여자대학교회)를 주목했다. 1935년에 설립되어 오늘에 이르는 이화여자대학교회는 어느새 약 80년의 역사가 담긴 교회가 되었다. 80년이란 시간이 주는 한국사적 의미는 상당할 것이다. 그 기간에 이화여자대학교회는 단순히 학교 내 교회에만 머무르지 않고 복음과 사회를 향한 예언자적 지성의 통로로 기능해 왔다.

이성과 감성의 소통, 복음과 예언의 적절한 조화와 병행이란 특징을 갖는 이화여자대학교회는 여기에 또 하나의 특징을 얹는다. 그중 하나는 대한민국 최초의 대학 교회란 점이다. 거기에 또 하나, 여성 대학 안에서 여성 인권과 젠더 인식의 사상적 상승에 기여하는 태생적 특징을 지녔다는 점이 그렇다.

초교파적이며 탈권위적 입장을 표방하며 그 노선을 지속적으로 견지한다는 의미에서 이화여자대학교회는 최초의 대학 교회란 타이틀의 유의미성을 이어 가고 있다. 아울러 여성 인권 향상에 애쓰고 탈권위적 태도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 여전히 만연해 있는 남녀 차별에 대한 혁신의 통로로 쓰임 받는다는 점에서도 그 존재 가치는 확실하다고 보인다. 모든 대학 교회가 이런 두 가지 특징의 유의미성을 지속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를 지속케 하는 이화여자대학교회는 어떤 힘을 갖고 있을까. 필자는 그 특성을 의외의 맥락에서 짚어 보고자 한다. 바로 미니멀리즘의 맥락이다.

예배당 내부. 2층 측면에서 내려다본 모습. 뉴스앤조이 김은석

미니멀리즘의 맥락

미니멀리즘은 통상 최소의 것을 지향해 가장 근원적인 사물, 그 자체의 리얼리즘을 찾으려는 미학 사조로 이해된다. 이러한 미니멀리즘은 본래의 예술 행위, 미학적 표현에 전용되는 경향이 있지만 미니멀리즘의 적용 예는 사실 종교의식의 최소성에 가장 적합하게 구현된다는 게 필자의 견해다. 개신교의 정체성 중 하나가 의식의 화려함보단 오직 믿음이란 정신적 일체성 지향에서 비롯되었음을 외면할 수 없다면 미니멀리즘은 공간의 단순함을 통해, 종교의식을 마치 신을 향한 인간 행위의 계급 지향적 정성으로 오해할 수 있는 형식적 요소를 걷어 내는 기능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개신교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 예전과 예식에 있어서 거품처럼 따라붙는 허위와 위선의 과잉을 선제적으로 걷어 내는 미적 활동인 미니멀리즘의 시작은 공간 구성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이화여자대학교회의 건축과 그 내부의 예배당 공간은 미니멀리즘의 향연이란 키워드로 대표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화여자대학교대학교회
미니멀리즘의 향연

대학 교회 건물은 공간 활용의 폭이나 그 쓰임새를 최대치로 확대한 바로 옆 국제교육관 건물과 기능 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외관상 보이는 비효율성이 그렇다는 건데 이때 언급한 비효율성은 기능주의 측면에서 그렇다는 점이다. 대학 교회 건물은 국제교육관 건물과 규모, 용적률 면에서 거의 비등한데 반해 층고나 구성체의 모습이 수직성을 강조하고 용적률 활용을 극대화한 국제교육관 건물과 비교했을 때, 현저한 여백을 보여 준다.

이러한 대학 교회 건물은 사실 주변 건물의 쓰임새나 도시환경 전체 흐름에서 보면 부조화의 맥락으로 읽히기 십상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비효율성의 맥락을 최소화를 통한 여백의 미학에 집중하는 미니멀리즘 관점으로 전환해 본다면 그것은 더 이상 비효율, 비합리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소통과 성찰의 가능성 확대로 읽히는 게 정확하다.

천장을 올려다보면 십자가가 나타난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내부 예배당에서 보여 준 무채색 계열의 마감 역시 배후 장식이나 공간의 변형 및 종교의식을 강조하는 장식을 통한 예배 감정의 고조가 최대한 억제된다는 점에서 미니멀리즘의 흔적이 강하게 체감된다. 무엇보다 이화여자대학교회 안팎을 미니멀 지향으로 마감하는 건 창의 모양과 그 쓰임새다.

가로세로, 기하학적으로 분할된 전체 규모에 비하면 매우 협소한 폭을 지닌 직사각형으로 된 창의 틈새가 이화여자대학교회 건물의 대표 특징이다. 이는 벽면의 한쪽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존 건물의 넓은 창문과 다르게 빛의 틈입을 세밀히 통제한다. 공간 돌입의 시작부터 빛을 통제하는 것인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황홀하리만치 철저하게 빛의 신비를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신학적 통찰의 계기를 제공하는 데 그 의의가 있으며, 이는 미니멀리즘의 궁극적 신비와 궤를 같이한다.

가로세로 직사각형 창들이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이러한 신비의 여흥은 대학 교회 건물을 지나 이화여대 ECC관 안에 위치해 있는 기도실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끝 모르고 치솟는 상승 욕구를 단호히 억제하고 밑으로 하강하는 겸손의 성찰을 공간 축조 과정에 그대로 녹아 낸 ECC관 내부에 위치한 한 평(3.3㎡) 남짓한 기도실 역시 성찰하는 공간으로서의 미덕을 극대화한다.

나선형으로 구성된 외관과 입구를 들어서서 기도실 내부에 거하면 좁은 느낌보다는 우주의 한복판에 선 것 같은 경외심이 긍정적 의미에서 선동한다. 그 선동에 취해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으면 최소화한 상태지만 가장 넓고 공활한 지평으로의 절대공간으로 나아감이 경험된다. 대자연의 바람 소리가 들려오는 듯 육체의 감각에서 영적 감각으로의 감각 전이가 실감된다. 대학 교회 건물 창문이 보여 준 빛의 세밀한 틈입과 같은 동일한 신비가 느껴지는 것이다.

이화여대 ECC관 내부에 있는 기도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인간이 자연환경을 통해 빛을 느낄 수 있는 여지는 다양하고 편리하다. 그러다 보니 인간은 도리어 자연현상의 풍요를 통한 자연, 창조, 신성의 편재와 그 지속에 대해 무심해지는 무감각의 악마와 친구가 된다. 문명은 이러한 인간의 무심함에 오만한 지배와 권력의지를 덧씌워 자연현상의 빛이 가진 소중함, 더 깊이 들어가 인간 역사를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생명 가치를 더없이 대수롭지 않고 비루한 것으로 전락하게 한다.

이화여자대학교회 공간은 빛을 최소화하고 예배 감정을 공감각적으로 선동하는 색채나 장식을 철저히 배제한다. 이로써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의 실존을 더없이 최소화한다.

무궁한 자연, 창조의 중심 앞에 선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창조주의 임재를 느끼는 순간, 인간에게는 무엇을 다가올까. 신의 위엄에 대한 맹목적 두려움일까. 아니다. 신, 곧 하나님의 무한한 포용과 끌어안음이다. 최초의 대학 교회, 여성 젠더를 향한 치열한 인식을 지속하는 이화여자대학교회가 이끌어 내는 여성성의 궁극은 권력, 계급, 욕망이 최소화한 미니멀한 공간에서 오직 신의 임재만을 느끼는 인간 이해, 하나님 이해인 것이다.

대학 교회, 새로운 교회론을 향해

우리는 작년, 지성의 상아탑이며 여성 의식화의 선두로 알려진 이화여대가 겪은 치욕의 사건들을 결코 잊지 못한다. 작년 이화여대는 국정 농단의 주역들을 낳고 탄핵이란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서도 여전히 희생자 코스프레에만 남은 인생을 거는 일그러진 영웅들의 파괴적 만행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그로 인해 수많은 학생과 시민은 분노했고 절망했다.

필자는 진정 묻고 싶다. 최소주의 의지를 피력한 이화여자대학교회의 미니멀리즘은 한낮 공간의 유희에 지나지 않았는가. 기독교 학교임을 주장하며 한국 근현대사에 여성 젠더의 발전과 선도를 이끈 대학의 기본 정신을 다잡아 주는 최후 성찰의 보루였던 대학 교회는 그저 허울뿐인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단 말인가.

이는 비단 필자 혼자만의 질문이 아닐 것이다. 이 땅의 대학 교회가 지성과 영성의 건강한 보루로 남아 주길 바라는 한국 크리스천 모두의 질문인 것이다.

이제 이화여자대학교회는 한국 크리스천 모두에게 대답할 때가 되었다. 대학 교회 건축물과 예배당이 보여 준 것과 같이 진리와 본질에만 집중하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영적 가치를 보여 줄 것인지, 아님 잔해만 남아 버린 상아탑. 비루한 과거 영광에만 사로잡힌 노욕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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