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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하기: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서평] 후카이 토모아키 <신학을 다시 묻다>(비아)

김동규   기사승인 2018.03.04  09:2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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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하기란 무엇인가. 신학에 대해 신(theos)에 대한 말(logos) 내지 신-담론(theo-logy)이라는 어원적인 정의를 내리는 시도를 넘어, 참으로 신학을 한다(doing theology)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여러 답변이 가능하겠으나 나는 여기서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신과 신학적 주제에 대해 씨름하는 것이라고 답하고 싶다. 여기서 '냉정'하게 신학함이란 어떤 식으로건 신학이 신'학'이라는 점에서 그것을 학문적 대상으로 삼아 나름 보편적 내지 일반적인 학문적 방법 아래 탐구하는 것을 뜻한다. '열정'으로 신학함이란 학문적 방법론을 적용하기에 앞서 더 근원적으로 신에게 헌신되고 압도되는 마음과 더불어 그분에 대한 탐구에 돌입함을 뜻한다.

신학이 교회만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발언해야 하는 '학문'이라면 우리에게는 반드시 냉정함이 필요하다. '신학'의 '신'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막연한 열정보다 우리의 소망에 대한 차분하고 냉정한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신적 신비에 사로잡혀 신앙인으로 헌신하는 열정이 없다면 그 신학 역시 그저 냉정하고 차가운 고담준론에 불과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후카이 토모아키가 쓴 <신학을 다시 묻다 – 사회사를 통해 본 신학의 기능과 의미>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냉정에 방점을 찍어 신학의 기능과 의미를 밝히는 책으로 보인다. 이는 저자가 그리스도 사건 안에 들어가야만 신학을 할 수 있다고 본 바르트 신학의 한계를 분명하게 지적하면서 논의를 전개하는 대목에서 확인된다.

그가 보기에 신학은 교회라는 담장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학문이 아니다. 신학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만이 아니라 비그리스도인에게도 나름의 영향을 끼칠 수 있고, 끼쳐야만 하는 학문이다(그리고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도 그렇다고 그는 말한다). 저자는 사회 속에서 여전히 어떤 기능을 담당하는 유의미한 학문임을 드러내기 위해 사회사적 맥락에서 "신학의 사회적 기능"(34쪽)이 어떠했는지를 검토하는 시도를 한다. 다시 말해, 신앙의 대상이자 진리로서의 그리스도를 다루기보다 학문 세계에서 수용 가능한 사회사적 탐구라는 '방법적 틀' 안에서 제도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 내지 학문의 대상으로서의 신학이 무엇인지를 담담하게 탐구하는 것이다.

<신학을 다시 묻다 - 사회사를 통해 본 신학의 기능과 의미> / 후카이 토모아키 지음 / 홍이표 옮김 / 비아 펴냄 / 212쪽 / 1만 3000원

이러한 저자의 논의에서 독자들이 최우선적으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아마도 "왜 신학이 탄생하였는가?"(41쪽)란 문제다. 저자에 따르면, 예수는 하느님나라를 선포했지만 그것이 학문의 성격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예수의 삶과 사역이 그가 활동한 시대를 넘어 다양한 문화권, 특별히 서구 헬레니즘 문화 전반에 수용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건 새로운 문명권에 속한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말로 번역되어야 했으며 문화와 삶 전반에 일정한 길을 제시하는 것으로 확장되어야 했다. 이러한 번역의 작업은 중세, 종교개혁과 그 이후의 시대에도 각 시기에 고유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짧은 서평에서 굳이 이 과정들을 세세하게 서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독자들이 시대상의 변화 속에서 그리스도교가 각 시대의 사회적 문화에 적합하게 번역되고 변형되는 방식에 주목하면서 책을 읽는다면 좋을 것 같다.

종교개혁 시대를 예로 들어 보자. 많은 개신교인에게 종교개혁은 영광의 시대로만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루터의 종교개혁과 이후 민족 공동체로서의 독일 사회의 그늘진 결탁을 냉정하게 짚어 낸다. 물론 저자도 루터를 두고 맨 처음에는 그가 "순수하게 자신의 신학적 실존에 바탕을 둔 신앙에 관한 질문을 대주교에게 과감하게 던졌을 뿐"(104면)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의도의 순수성이 언제나 결과의 순수성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루터의 반항과 개혁이 독일 영주들의 지지를 받게 되고, 그로 인해 독일 영주들에게 가톨릭에 반대할 자유의 명분을 준 것 역시 사실이다. 이로 인해 루터로 대변되는 독일의 종교개혁은 정치적으로 독일 영주들과 결합했고, "독일어 및 독일 문화와 결합했으며 종내는 독일 내셔널리즘과 결합하기에 이르렀다."(113쪽)

이처럼 종교개혁을 위대한 신앙인의 결단에서 비롯한 것으로만 생각할 때 놓치기 쉬운 사회 문화와 종교의 결합의 양상을, 저자는 건조하면서도 명료한 필치로 서술한다. 이러한 저자의 서술은, 17세기 영국의 개혁과 18세기 프랑스 혁명과 신학, 19세기 이후 미국식 실용주의 신학의 도래를 논하는 가운데 점점 고조된다. 이렇게 영국 청교도의 과격함이 기존 신학의 가르침에 대한 회의와 비판 속에 이른바 '성서주의'를 낳았고, 미국처럼 소비자로서의 개인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는 바로 그 소비자들이 원하는 매우 실용적인 신학이 각광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냉정한 서술을 접하면서, 혹자들은 신앙의 선배들이 이룩한 신앙과 신학의 순수성이 훼손당하는 것 같은 기분에 불쾌감을 가질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학이 사회적 맥락 속에 기입되는 방식을 보며, 우리가 서 있는 신학의 현주소가 어디인지를 파악하는 가운데 일종의 지적 '정화'를 체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와 함께 신학의 역사를 돌아보며 그저 교회 안에서 순수하게만 통용되는 신학은 없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그 '정화' 말이다.

물론 지적 '정화'가 좀 더 넓고 깊은 앎으로 이어지려면 저자의 냉정한 진술들을 더 냉정한 태도로 검토해야 한다. 강의록을 바탕으로 한 책이라는, 분량의 제약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초대교회와 중세 교회 시기를 다룰 때 저자의 기술은 (이 책을 읽는 우리 대부분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서방 교회에 집중되어 있다. 고·중세를 관통하여 지속된 동방 그리스도교는 어떠한 신학을 형성해 나갔는가. 이는 당대 사회와 어떠한 관련을 맺고 있는가. 영국·독일·프랑스·미국과 같은 이른바 강대국들이 아닌, 다른 국가들, 그리고 다른 문화권에서 그리스도교 신학은 사회와 어떠한 관련을 맺고 어떠한 기능을 했는가.

특별히 미국 신학과 실용주의를 다루면서 저자가 20세기의 중요한 신학 사상인 해방신학을 실용주의라는 맥락에서 간략하게만 언급한 것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현대 교회사와 신학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듯 해방신학은 20세기 남미의 상황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독자들은 저자와 따로 또 같이 위에 언급한 물음을 던지면서 다른 신학사, 교회사, 일반 역사, 지성사 책과 비교하며, 저자가 제시한 틀의 적절성을 검토하고 때로는 확장하면서 '비판적인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계속 이 책의 냉정함만을 강조했지만, 이 책이 순전히 냉정하기만 한 책은 아니다. 모든 신학자의 냉정함 밑에 깔려 있는 것은 결국 열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 주목해야 한다.

"나는 오늘날 세계에 깔려 있는 심층적인 문제를 풀 실마리를 신학을 통해 찾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때는 '아아! 신학마저도'라는 탄식 대신 '과연, 신학은…'이라는 말을 들으며 이 지적인 전통을 활용해 보려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196쪽)

저자가 진실로 바라는 것은 신학이 (교회를 포함해) '이 세상에' 줄 수 있는 희망의 나타남이다. 드러내는 것이다. 다만 이 희망은 신학의 역사, 교회의 역사에 대한 미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자신의 위치를 돌아볼 때 비로소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 '냉정함' 속에 숨어 있는 저자의 강한 '열정'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신학이 사회적으로 수용된 역사적 현실을 저자와 함께 냉정하게 돌아보면서, 왜 이토록 신학이 (많은 경우) 우리 시대에 힘을 잃어 가고 있는지 반성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얻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이 책이 담고 있는 냉정함의 미덕과 그 냉정함 속에 끓어오르는 저자의 열정을 동시에 체험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럴 때에야 우리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우리의 신학을 성찰하고, 더 나아가서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종국에는 냉정을 통해 신학이 모두에게 필요한 것임을 알리겠다는 그 열정으로 새로운 신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동규 / 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 연구원. <선물과 신비 - 장 뤽 마리옹의 신 담론>(서강대학교 출판부, 2015)을 썼고 <후설 현상학에서의 직관 이론>(에마누엘 레비나스 지음, 그린비, 2014), <해석에 대하여>(폴 리쾨르 지음, 공역, 인간사랑, 2013)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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