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하민지 기자] 헬멧과 쇠파이프로 무장한 용역이 건물을 부수고, 반대편에서 쇠사슬을 묶고 스크럼을 짜 맞서는 살풍경은 한국 사회의 오래된 역사다. 젠트리피케이션이나 재개발로 강제 철거가 진행되는 모습은 도시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서울시에서 한국전쟁 직후 형성됐던 판잣집들을 철거하면서 당시 주민과 철거 인부 등이 대립하던 때가 1950~1960년대였으니, 강제 철거 역사는 최소 반백 년이다.

강제 철거 현장은 철거 당시에 잠깐 주목받다가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진다. 가게나 집이 철거된 후 주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사람들이 현장을 어떻게 지키고 있는지 세세하게 기록하는 이는 드물다.

박김형준 작가는 2006년부터 13년째 철거 현장을 찍고 있다. 강남 판자촌 포이동홍대 칼국수집 두리반, 용산 철거민들이 농성했던 순화동,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 아현포차를 거쳐 지금은 서촌 궁중족발에 있다. 모두 강제 철거로 피해를 입은 곳이다.

철거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은 박김형준 작가를 굳세고 단단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궁중족발에 연대하는 '옥바라지선교센터' 강세희 씨는 "박김 작가는 균열 사이에 낀 돌 같다. 철거 현장의 힘겨운 투쟁 속에서도 절대 부서지지 않는다"고 말했다.그는 한번 현장에 발을 들이면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강제 철거 상황은 물론, 현장에서 연대자들이 웃고 울고 밥 먹는 모습까지 기록한다. 포이동만 해도 2006년부터 5년을 머물며 촬영했다. 지금도 1년에 한두 번은 꼭 방문해 계속 관계를 맺고 있다.

10년 넘게 도시 한곳이 무너지는 모습을 꿋꿋하게 기록해 온 박김형준. 그를 2월 27일 시청역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철거 현장에서 신앙을 가지고 작업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박김형준. 뉴스앤조이 하민지

선물 받은 카메라로 촬영 시작
회사 사표 낸 후 철거 현장으로

박김형준 작가는 공대생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전자공학 전공을 살려 회사에 다녔다. 그러던 중 생일 선물로 필름 카메라를 받았다. 그가 사진작가가 된 계기였다.

"미놀타X700이라는 카메라를 받았어요. 만지다 보니 '이거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겨레문화센터에 가서 사진 수업을 들었어요. 그렇게 사진을 시작했어요."

회사에 다니면서 취미로 사진을 공부하던 그는 20대 후반, 진지하게 인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회사에 다니면 돈은 벌 것 같은데, 매일 야근과 격무에 시달리는 삶에서 재미를 찾을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본격적으로 시작한 사진이 재밌었다. 사표를 냈다.

"대학 내내 학생운동을 했어요. 당시 비주류 운동이었던 인권·여성·환경 운동에 큰 영향을 받았어요. 회사 다니면서도 인권 단체에서 활동했어요. 인권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글은 잘 못 쓰는 것 같고 사진을 찍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포이동 주민들이 철거 반대 투쟁하는 현장. 사진 제공 박김형준

사표를 낸 뒤 사진을 더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갔다. 공부하면서 돈을 벌어야 했다. 돌잔치와 웨딩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인권재단 사람(박래군 소장)에서 발간하는 잡지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의 표지 사진을 찍게 됐다. 그때 처음 간 곳이 포이동이었다. 포이동을 찍은 사진으로 2009년에 졸업 전시를 하고 2014년에는 개인전을 열었다.

"저는 주거권이나 철거에 관심이 많은데, 그쪽에는 사진기자나 작가가 잘 없었어요. 사실 저는 학생운동할 때 철거 현장을 제일 무서워했어요. 건물이 무너지는 게 공포스러웠어요. 그런데 포이동 깊숙이 들어가서 판자촌 어르신들을 온종일 따라다녀 보니까,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고 계시더라고요. 서로 대화 나누고, 혼자 계시다 식사하시고 그랬어요. 그때부터 '내가 이 사람들을 계속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0대 때까지만 다닌 교회,
30대부터 다시 다니기 시작
현장 지키는 기독 청년들과 연대

박김형준 작가가 다시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지 10년째다. 어렸을 때부터 10대 후반까지 교회에 다니다 대학 진학 후에는 발길을 끊었다. 교회를 향한 불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아는 교회들은 세상에 관심이 없는 곳들뿐이었어요. '내가 성공하게 해 달라, 우리 가족 잘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교회는 봤어도, 사회문제나 소수자를 놓고 기도하는 교회는 없었어요. 친구 따라 한번 가 본 교회에서는 '우리 교회 커지게 해 주세요' 이런 것만 기도하더라고요. 바로 나왔어요."

20대 때는 교회에 가지 않고 학생운동에 매진했다. 사진을 시작한 후 얼마 안 돼, 광화문광장에서는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는 촛불 집회가 열렸다. 운동권인 그가 참석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는 집회 현장에서 명동 향린교회 깃발을 보고 놀랐다.

"사회문제에 동참하는 교회를 처음 봤어요. 향린교회는 제게 많은 울림을 줬어요. 2011년 포이동에 불이 나서 마을 절반이 탔어요. 그때 향린교회가 포이동에서 현장 기도회를 열었어요. '이런 교회라면 계속 다닐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화재로 마을이 소실된 포이동. 사진 제공 박김형준

그는 향린교회 30대 청년부에서 교인들과 페미니즘, 교회 내 권력 등을 같이 공부했다. 향린교회는 교인 수가 500명이 넘어가면 분립 개척을 한다. 향린교회가 분가하면서 섬돌향린교회(임보라 목사)를 만들었고, 박김형준 작가는 30대 청년부에서 같이 공부한 친구들과 함께 섬돌향린교회로 갔다.

현재 그는 강제 철거 문제에 연대하며 사회 선교하는 신학생들의 모임, 옥바라지선교센터(옥선)가 연대하는 현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옥바라지 골목에서 옥선 신학생들을 만났다.

"처음에 옥선을 봤을 때 되게 신기했어요. 이런 사람들을 본 적이 없거든요. 힘없는 소수자에게 관심 가지고 활동하는 기독 청년들이 있다는 게 감사했어요. 제 작업 테마인 철거 현장에 기독인이 함께하는 게 좋아요. 제게 신앙이 있기 때문에 옥선에 더 관심이 가요. 그래서 지금은 옥선 따라다니며 작업하고 있어요."

옥바라지 골목 사진전, 아현포차 요리집 등 옥선이 연대하는 현장에서 찍은 사진으로 전시를 열고 책을 냈다. 최근에는 궁중족발에서 '족발 사진관'을 열기도 했다.

옥바라지 골목이 철거되기 직전의 모습. 사진 제공 박김형준
서촌 궁중족발에서 연 '족발 사진관'. 사진 제공 박김형준

처참한 현장 강조하는 사진에서
'사람' 보여 주는 사진으로
마을 공동체성과 주거권 강조

10여 년을 거치며 그의 사진에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는 철거 현장의 처참함만 담겨 있었다면, 지금은 현장 원주민들과 임차인, 연대인들의 사소한 일상을 포착한다. 사진에 나온 사람들은 강제 철거를 막으며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마냥 울고만 있지 않다. 웃고, 이야기하고, 노래 부른다. 박김형준 작가는 비극의 공간을 지키는 사람들이 씩씩하게 쌓아 올리는 연대의 서사를 기록한다.

"학생운동을 했던 습관 때문에, 처음에는 누군가한테 외치듯이 사진을 찍었어요. '이런 처참한 현장을 봐라' 하듯이요.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했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현장에 사람이 있다'를 강조해요. 사람이 있다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요.

왼쪽부터 아현포차 거인 이모, 강타 이모. 사진 제공 박김형준

한번은 대학원 교수님이 '포이동 사진이 왜 불쌍해 보이지가 않냐. 극한 상황에서 처절하게 싸워 내는 걸 더 보여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으셨어요. 저는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본 포이동은 그냥 사람 사는 동네였거든요.

밖에서 연민의 시선으로 보는 것과 안에서 보는 게 달라요. 철거 반대 투쟁하면서도 같이 음식 해 먹고, 마을에서 돌잔치도 했어요. 그때부터 철거 현장의 마을 공동체성을 강조하고 싶었고, 포기할 수 없는 주거권이 뭔지 보여 주고 싶었어요."

포이동에서 열린 돌잔치. 사진 제공 박김형준

박김형준 작가는 계속해서 도시 재개발 현장을 작업 테마로 가져갈 예정이다. 현장 사람들을 포착한다는 생각도 이어 가려 한다. 철거 현장을 지키는 기독 청년들도 꾸준히 담고 싶다고 했다.

"과연 예수가 지금 한국 사회에 온다면 어디에 계실까요. 저는 철거 현장에 있을 거라 생각해요. 현장을 위해 기도하는 기독 청년이 있는 곳에 예수가 있어요. 이 친구들과 함께 예수가 어디 계실지 함께 고민하며 작업하고 싶어요."

궁중족발 기도회를 촬영하고 있는 박김형준 작가. 사진 제공 옥바라지선교센터 윤성중
강제 철거 문제에 연대하는 기독 청년들. 사진 제공 박김형준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