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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종교, 종교 속의 역사

[예배당 건축 기행] 경동교회를 통해 본 역사 속 종교

주원규   기사승인 2018.02.24  23:5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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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주원규 목사가 '예배당 건축 기행'을 격주 간격으로 연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뷰 기사(바로 가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주


경동교회와 관련한 칼럼을 준비하면서 필자의 머릿속엔 두 가지가 맴돌았다. 하나는 역사의 한가운데서 기독교의 역할을 고민하던 대표 인물의 이미지이며, 또 하나는 한국 근대사를 대표하는 건축계의 거장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 대표 인물은 한명숙, 신인령, 김세균 등 1970~1980년대를 관통하며 정치, 학계의 기린아들을 배출한 크리스챤아카데미의 강원용 목사다. 정치적 진보와 종교적 엄숙성이란 두 키워드의 공존을 가능케 한 한국 개신교의 거장 강원용 목사는 서울시 중구 장충동에 위치한 경동교회를 탄생케 한 주역이기도 하다.

한국 근현대사의 한복판을 걸어온 강원용 목사는 민주화와 정치적 진보로 대표되는 사회적 가치를 붙잡으면서도 기독교가 갖는 종교적 심미에로의 집중 역시 중단 없이 독려한 인물이다. 그는 또한 개신교가 말씀의 종교란 특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교회 공간과 역사를 지탱해 온 교회력을 중심으로 한 성례전(sacrament)의 예술적 가치를 강조해 왔다. 그런 이유로 경동교회는 진보적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그 위에 개신교의 사회적 참여, 개신교만이 갖는 독특하고 신비로운 영적 심미의 조화가 지속 가능한 교회로 자리매김했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두 번째 인물이 떠오른다. 경동교회가 영적 심미의 태동과 지속이 가능한 교회로 자리할 수 있는 배경에 한국 근현대사의 건축 거장이 펼쳐 낸 건축 철학이 녹아들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한국 근대건축의 대표로 평가받는 건축가 김수근이 그렇다.

건축가 김수근은 모더니즘의 미학적 우월성을 추구하면서도 한국 사회란 독특한 지정학적 특성 사이에서의 지속적인 충돌과 사건의 지점을 끊임없이 발굴해 낸 건축가로 평가받는다.

경동교회는 태생부터 획일적일 수밖에 없는 설교 위주의 개신교 건축물을 공간 자체만으로도 종교적 사유가 가능한 공간으로 전환한, 이른바 전환 논리의 선봉에 서 있는 건축물로 존재한다. 본 칼럼은 건축가 김수근의 종교 건축 개념과 그 개념을 수용한 강원용 목사의 철학, 그 행간을 지배한 한국 근현대사 속 종교와 역사의 모순과 화해란 지점을 살펴보는 데 집중하고자 한다.

경동교회 예배당 외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교회 건축물의 심미적 극한,
어머니의 자궁

서울시 중구 장충단로 도로에 면해 있는 교회라면 어떤 이미지가 생각날까. 중구라는 도심 밀집 지역이란 답답한 느낌과 수많은 차 소리, 서울특별시란 특성에서 비롯된 번잡함의 일부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장충단로 도로길에 면한 경동교회는 도로에 면해 있으면서도 견고한 조적조組積造의 벽돌로 쌓아올려진 벽이 언뜻 보기에 고성을 떠올리게 한다. 부조화의 극치로 보이는 고성처럼 우뚝 선 교회는 도로에서 보이는 정면이 아닌 뒤편에 예배당 문을 배치해 놓았다. 세속 도시에서 신성으로의 몰입이라는, 일종의 정신 이동 경로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벽돌로 촘촘히 마감돼 있는 건물 외벽에 창문이 거의 없는 것에서 신성으로의 몰입, 그 극한적 이미지가 강조된다. 밖의 시선, 곧 도시의 눈으로 볼 땐 이러한 이미지가 폐쇄된 공간의 갑갑함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이는 갈수록 복잡해지는 현대인들의 속도와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로 맞서는 이물異物로 보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뒤편에 위치한 정문을 열고 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이 공간이 존재의 정신을 얼마나 황홀한 경이로 끌어올리는지 실감하게 된다.

고성처럼 우뚝 서 있는 경동교회 예배당. 수도원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본당으로 가려면 옆으로 난 계단으로 돌아 올라가야 한다. 골고다의 길을 상징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본당으로 들어가는 입구. 도로가 보이지 않는 곳에 문이 설치돼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건축가 김수근의 심혈을 기울인 설계의 승리는 건물 내부가 하나의 고요한 방주처럼 들리고 보이고 느껴진다는 데 있다. 예배가 없는 평일 낮, 관계자의 허락을 얻어 교회를 방문한 필자는 교회 내부가 태고적 침묵으로 충만한 절대 침묵에 빠져들게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부에서 한 발자국만 밖으로 나서면 도심의 생활 소음들이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교회 내부는 현대로 대표되는 세속 도시의 어떤 부분도 범접할 수 없는 지상으로부터 철저히 격리된, 신성의 요람에 함몰되는 듯 한 시청각의 변이를 일으킨다. 이는 단지 물리적으로 소리가 차단되는 방음 시설의 장점을 말하는 게 아니다. 외부로부터 소리를 차단하는 것은 이 공간이 신성의 요람이길 끊임없이 갈구하는 의지 펼침의 첫걸음에 불과하다.

고개를 들면 예배당 정면에 십자가가 비추고 그 십자가의 틈새로 자연광선이 스며든다. 밖의 날씨가 궂으면 궂은 대로, 햇살이 비추면 비추는 대로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빛의 스밈은 필자로 하여금 인간의 시간을 망각한 이른바 카이로스(καιρος), 신의 시간과 마주하게 한다. 이 경우 십자가 형태의 수직과 수평의 교차는 참으로 절묘한 것이어서 빛의 스밈이 때로는 씨줄로, 때로는 날줄로 예배자의 시선 위에 불규칙적으로 부유하면서 존재의 의식을 침묵과 절대의 요람 속에서 생명의 약동을 보고 느끼고 참여하게 해 주는 심미적 황홀을 선사한다.

예배당 내부는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느낌이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예배당에 들어서면, 파이프오르간과 십자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천장의 유일한 창문을 통해 자연광선을 받고 있는 십자가. 뉴스앤조이 박요셉

또한 경동교회 예배당엔 종교 양식을 대표하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오직 하나뿐이다. 화려하거나 다채롭게 활용할 법한 장식 도구로서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최소화하는 대신 경동교회는 그 내부를 투박한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시멘트 외벽에 못 자국들을 새겨 놓은 것으로 장식해 인간의 존재론적 고뇌를 내적 형상화하는 데 집중했다. 구획 구별의 최소 기능으로만 소비되던 벽 마감은 투박한 질감을 통해 인간과 신의 언제나 낯설지만 또 언제든 경이로운 만남을 이끌고, 벽 사이사이에 스며든 못 자국은 모호한 윤곽으로 형상화해 신성의 요람에서 존재가 경험할 수 있는 한계와 초월적 성찰을 동시에 가능케 하는 예배의 장을 지원해 주는 지원체로 구성된 점이 놀랍기만 하다.

노출 콘크리트의 질감을 그대로 살린 내부 모습. 뉴스앤조이 박요셉
예배당 입구 쪽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여러 개의 십자가가 표현돼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아울러 경동교회 외관은 장식물로서의 십자가가 없다. 대신 지상으로부터 수직으로 일관되게 솟구친 20개의 매스로 마감된 외벽이 있고, 교회 정면에 그보다 더 높게 돌출된 2개의 매스를 포진해 놓아 십자가의 상징적 의미를 대신한다.

이렇듯 안팎으로 파고드는 짜임새 있는 심미성의 돌입은 경동교회를 거대한 모성의 출현으로 읽을 것을 요구하게 한다. 신성의 요람을 떠올리게 하는 경동교회의 안팎은, 밖으로는 거세게 휘몰아치는 번뇌로부터의 보호막으로 기능하고, 절대 침묵으로 무장한 예배당은 보이지 않는 하지만 극도로 강렬한 신의 임재를 체험하는 노아의방주와 같은 어머니의 자궁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교회를 나오는 길에 질문 하나가 생겼다. 침묵과 낯섦, 편리보단 사유와 성찰을 우선하는 공간을 빚어낸 경동교회는 과연 이곳에서 어떤 행동을 원하는 걸까. 경동교회를 대표하는 정신의 원류인 강원용 목사는 그 답을 기독교의 한국화에서 찾았다.

돌아 내려가는 길. 뉴스앤조이 박요셉

기독교의 한국화,
역사 속에서 종교의 길을 찾다

기독교의 한국화는 민족 정체성 회복과 그리스도교 정신 회복, 두 가지 맥을 같이 붙잡으려 한다. 지구촌엔 다양한 민족이 존재하며, 민족 간 다툼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민족 정체성을 제대로 회복한다는 것은 자기 민족만의 배타적 우수성을 추구하는 게 아니다. 각자의 고유한 특성을 인정하면서도 보편적 인간 가치의 회복을 위한 공통의 노력을 경주하자는 다짐을 동시에 제시하는 윤리적 보편성이 곧 민족 정체성의 회복인 것이다.

독재와 부패에 맞서 인권과 민주화를 부르짖는 게 종교인의 길임을 천명한 강원용 목사는 윤리적 보편성의 입장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 곧 민족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기독교적이란 주장을 견지했다. 그 정체성의 회복 안에 역사가 있다. 경동교회 건축물이 쏟아 내는 안팎의 메시지가, 이른바 단절과 성찰이란 주제로 대표되는 세속 세계로부터의 단절이 아닌, 세속 세계로 대표되는 현실 속에서 태고적 시원인 기독교적 성찰을 추구하는 데 할애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으리라.

2004년 6월,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수련회에서 발언 중인 故 강원용 목사(1917~2006).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그런데 이 지점에서 필자는 한 가지 고통스러운 모순과 마주하고 말았다. 경동교회와 남영동 대공분실이란 역사의 비극 앞에 멈춰 선 것이다.

경동교회와 남영동 대공분실,
그 얼룩진 아이러니를 읽으며

우리는 한 근대건축의 거장이 남긴 발자취에서 비극에 가까운 아이러니를 읽지 않을 수 없다. 경동교회가 설계되기 4여 년 전, 건축가 김수근은 한국 현대사의 치욕으로 기억될 만한 건축물을 설계한다. 현재는 경찰청인권센터로 불리는, 1970~1980년대 군사정권 치하에서 남영동 대공분실로 악명을 떨치던 건물이 그것이다.

현 경찰청인권센터 건물. 군사정권 치하에는 남영동 대공분실로 악명을 떨쳤다. 뉴스앤조이 강동석

불법으로 정권을 찬탈한 군부의 체제 유지를 위해 악용된, 민주 투사들을 향한 가혹한 고문이 자행된 대공수사본부. 사람이 사람을 겁박하고 처참하게 인권을 유린한 그 건물이 가진 특징 역시 외부로부터의 단절과 내부에로의 침잠이란 메시지로 가득 차 있다.

빛 한 점 제대로 스며들지 못할 정도 크기로 나열된 5층의 좁은 세로 창문들은 안에서 밖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는 폐쇄 구역을 떠올리기에 충분해 보인다. 또한 층과 층을 오가는 계단들이 모두 나선형 계단으로 구성돼 있어 이성이 마비된 암흑 공간으로의 함몰을 기획하는 착란으로 가득하다. 섬뜩한 것은, 같은 건축가의 세심한 설계의 숨결에 배여 든 공간 구성이 어느 건물은 종교적 심연으로 상징되는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종교 감정을 지원하는가 하면, 또 어느 건물은 인간으로선 하지 말아야 할 최악의 인권유린을 자행하는 부역자 역할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폐쇄적인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 다른 층들과 달리 5층은 좁은 세로 창문으로만 구성돼 있다. 뉴스앤조이 강동석

필자는 이 칼럼을 통해 김수근 건축가의 패착이나 한국 근대건축의 굴욕적 부역 행위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싶지 않다. 그럴 능력도 없다. 단지 할 말이 있다면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땅의 역사와 종교, 그 얼룩진 아이러니를 함께 들여다보자는 제안이 전부다.

공간은 존재를 압도한다. 우리를 둘러싼 공간의 힘은 그것이 시간의 풍상이란 역사의 도도한 물결 속에서 모든 것을 기억하거나 모든 것을 은폐하는 힘과 의지의 용광로로 지속된다는 데 두려움과 황홀의 감정을 함께 느끼게 한다. 이때, 존재를 압도하는 공간은 그 존재를 종교의 가장 깊은 곳,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생명 신비의 극한으로 견인한다. 동시에 이성을 철저히 마비시키고 역사와 종교를 야만과 정신 학살의 장으로 기능하게 하는 암흑천지의 아수라로 화해 버리는 곳 역시 공간이다.

필자는 경동교회가 품은 기독교적 존엄을 지지한다. 또한 희망한다. 우리를 압도하고 이끌어 가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공간이 우리네 역사를 겸허한 성찰과 반성의 광장으로 인도해 주기를.

그렇기에 더 간절히 기도한다. 경동교회의 미래, 한국교회의 미래가 계속되는 성찰과 반성의 보루로 남아 주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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