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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은 '덕후'처럼

[빅퍼즐의 기독 인문학 칼럼] 직장에서 나의 의미 찾기

김효주   기사승인 2018.02.24  12:4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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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퍼즐문화연구소'가 격주 간격으로 기독 인문학 칼럼을 연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뷰 기사(바로 가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직장인 여러분, 살아 계십니까?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장혜선 선생님께서 곡을 쓰시고 양희창 선생님께서 가사를 붙이신 '꿈꾸지 않으면'이라는 노래의 시작 부분입니다. 간디학교 교가이기도 한 이 노래는 가슴 뭉클한 서정적 멜로디에 감싸여 있는, 정신이 번쩍 드는 선명한 가사가 일품입니다. 이 노래에 따르면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는데요. 대한민국 직장인 여러분, 어떠신지요. 살아 계십니까?

직장 생활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진부하면서도 간단한 질문, 하지만 결코 무시하고 지나가기 힘든 이 질문에, 우리는 과연 어떤 답을 내놓고 있는지요. 저는 정기적으로 특정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교인인데요. 직장 생활의 의미라는 것이 '교인'과 '비교인'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인지 항상 궁금했습니다. 저는 교인이자, 사회생활이라고도 하는 직장 생활을 12년 정도 하고 있는 직장인이기도 합니다. 교회를 정기적으로 출석하지 않는 비교인 직장인들과 저는, 직장에서의 의미를 뭔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요.

교인들이 소위 '신우회', 그러니까 같은 직장 내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별도로 모여 예배하고 교제를 나누는 모임에서만 직장 생활의 의미를 찾는 분위기가 요새는 좀 줄어든 것 같습니다. 교인들이 비교인 직장인들에게도 모범이 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려면 일도 잘해야 하고 정직해야 한다는 생각을 이전보다는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모범이 되고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하는지를 얘기하다 보면, 가장 쉽고 흔하지만 충분하지 않은 두 가지 대답으로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전도, 그리고 고지론高地論입니다.

직장 생활의 의미가 전도의 좁은 의미, 즉 교회에 다니지 않는 직장 동료를 교회에 나갈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에 그친다면 직장 생활이 너무 초라해질 것 같습니다. 마치 삽으로 밥을 떠먹는 것 같습니다. 교인이 직장에서 인정받고 성공해서 높이 올라가면 선한 영향력을 더 많이 끼칠 수 있다는 고지론의 논리는 더더욱 조악합니다만, 대놓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많이 없어도 우리 삶 속 구석구석 깊이 뿌리내린 믿음이기도 합니다.

고지론이 직장 생활의 의미가 되기 어려운 이유 세 가지를 언급하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첫째, 기독교에서 말하는 여호와는 결과물만이 아니라 결과를 내기까지의 과정과 진실한 마음을 같이 요구합니다. 둘째, 사람들도 과정 전체에서 드러나는 진정성을 보고 판단합니다. 셋째, 성경에는 높은 사람의 권위와 권한으로 무엇을 이루는 경우보다 약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과 하나님이 컬래버레이션을 이루는 경우가 훨씬 많이 나옵니다.

요약하자면, 직장 생활을 무언가를 위한 수단으로 보기 시작하면 그 의미가 좁아진다는 겁니다. 어쩌면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는 직장 생활이 사실은 다른 무언가를 위한 수단이 된다면, 그게 생계유지든 상품 구매든 혹은 전도나 선교라고 하더라도 직장생활 자체가 무언가의 하위가 되고 초라해진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일을 잘한다는 것
'덕후'처럼 직장 생활하기

최근 '덕후'라는 개념이 많이 보편화됐습니다.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오타쿠'라는 일본어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오덕후'를 줄인 말이지요. 초반에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였지만 이제는 특정 취미에 대해 전문가 수준의 사람을 뜻하는 긍정적인 의미도 생겼습니다. 이 '덕후'들의 특징은 자신의 취미 자체가 목적이라는 겁니다. 남들이 보기에 전혀 이해가 안 되거나 생산적이지 않아 보이는 일이더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취미 그 자체를, 그리고 그것을 하고 있는 자신 자체를 행복해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취미로 마라톤을 하는데, 지금까지 풀코스를 6번 완주했습니다. 몇 번 뛰다 보니 기록 욕심도 나서 열심히 연습했더니 3시간대 기록도 가지게 됐습니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려면 몇 만 원의 참가비를 내야 하는데, 한번은 지인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깜짝 놀라는 겁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길래 돈 받고 뛰는 줄 알았어요. 돈 내고 그런 힘든 일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지." 그분에게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일입니다. 다만 저는 마라톤을 하면서 느끼는 쾌감, 고통, 건강의 변화(좋아지기도 하고 안 좋아지기도 합니다) 그 모두를 좋아할 뿐입니다. 그 자체가 목적인 사람에게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직장 생활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가치가 있습니다. 무엇을 위한 직장 생활이 아닌, 직장 생활 자체에서 성장과 보람, 재미를 느끼고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안에서 시행착오와 배움, 지식의 확장과 숙련, 관계의 갈등과 극복, 그로 인한 성취들이 있다면 매일 출근하는 것이 행복하지 않을까요.

'덕후'처럼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네, 우리 회사 사장님 말고 떠오르는 사람이 없을 거라는 점 압니다. 하지만 힘들더라도 한번 상상해 봅시다.) 사장이 아닌 직원인데도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 자기 일뿐 아니라 타 부서의 일도 궁금해하는 사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고,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사람. 고객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면서 재밌어하는 사람. 딱히 누구에게 보여 주려는 게 아니더라도 학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은 직장 생활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됩니다. 덕후니까요.

주변에 덕후 친구가 있으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사진 덕후가 있다면 언젠가 사진에 대해서 궁금하거나 카메라를 사려고 할 때 그 사람을 찾게 됩니다. 문구 덕후가 있다면 문구점에서 신기한 펜을 봤을 때 그 친구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 친구가 세계 최고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 분야에 있어서는 나보다 '잘'한다는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 생활 덕후'인 사람은 직장 생활 자체로 즐거워하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일을 '잘'할 가능성이 큽니다. 직장이라는 단어를 어느 사전에서 찾아봐도 그 뜻에 '일한다'는 개념은 빠지지 않습니다. 직장은 '일'을 하는 곳이고, 사내 정치나 부정·착복·횡령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직장에서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단순해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악기를 배우거나 운동을 하거나 게임을 하더라도 6개월 연습한 사람과 1년 연습한 사람이 기량이 다를 텐데, 몇 년에서 몇십 년 동안 일을 했는데도 일을 잘 못하거나 일을 잘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직장 생활이 재밌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일을 잘할 수 있을까요? 아니 그전에 '일을 잘한다' 혹은 '일을 못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합의점을 찾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일을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의(definition)하려면, 어떻게(how)가 아니라 왜(why)라고 물어야 합니다. '왜' 일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목적이 뚜렷하기 때문에 일을 잘할 수밖에 없고, 그 목적을 유지하는 한 점점 잘하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일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방법론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일 자체를 자신의 목적 아래 재정의하게 됩니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결국 삶을 잘 살아 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일에는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계발은 스스로에 대한 깊은 성찰과 학습, 성장입니다. 보고하고 보고받는다는 것은 소통하는 삶을 직장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도 살아 내는 것입니다. 조직 문화라는 것은 일하는 사람들과도 공동체를 만들어 가치 있는 삶을 일궈 가겠다는 결심입니다. 통합적이고 성숙한 사람이 그렇듯이, 일을 잘하는 사람도 결국 삶에서 만나는 모든 상황과 사람들을 진지하게 대하고 목적을 향해 멈추지 않는 한 걸음을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일을 '잘'해서, '직장에서 나의 존재 의미'를 찾고, 직장 생활을 행복하게 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돕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이 가능할까요. 생계도 해결될 뿐 아니라 연봉과 보너스도 더 두둑해지면서 성장하는 나를 즐거워하고 더 큰 기여를 해내는 직장인, '꿈'의 직장에 다니는 게 아니라 '꿈의 직장'을 만들어 가는 그런 직장인이 되는 건 정말 꿈일까요. 저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책에서 배웠고, 그게 너무 멋있어서 믿기로 했습니다. 책이 시키는 대로 살겠다고 다짐한 후 이직도 하게 되었습니다.

'꿈의 직장'으로 가는 길

'꿈의 직장'이라는 평을 받는 곳에는 어떤 특성이 있을까요. 연봉이 높거나 복리 후생이 잘돼 있는 회사를 떠올리실 겁니다. 구글은 뷔페식 점심이나 자녀 학자금 지원으로 유명합니다. 한국에서는 제니퍼소프트라는 회사가 사옥 내 수영장이나 탄력 근무제, 수평적 문화로 주목받은 적이 있죠. 이런 회사들의 공통 특성이 있습니다. 미국 경제학자 라비 다르에 따르면, 사람들이 선택할 때 공통 특성, 좋은 특성, 나쁜 특성을 고려하는데, 공통 특성은 지워지고 나쁜 특성은 배제된다고 합니다. 신입사원 면접 자리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이 선택의 고려 요소가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죠.

꿈의 직장들의 공통 특성은 대충 일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상대를 존중하고 시간을 지키며 완벽하게 마무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니퍼소프트의 사내 금지 항목에는 "대충하지 마요. 디테일이 중요해요", "사유와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아요. 공동체의 의무예요" 등의 항목이 있습니다. 또 꿈의 직장들에는 교육과 학습을 권장하고 지원하며 독려하는 문화가 자리 잡혀 있습니다. '배민'으로 알려진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대표는 직원들이 원하면 얼마든지 책을 사 주는 것으로도 유명하죠.

일을 잘하는 방법은 책을 통해서 상당 부분 학습이 가능합니다. 요약하면, 꿈의 직장은 일을 즐거워하고 끊임없이 도전해서 성장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현대사회에서 비즈니스를 할 때 학습과 성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꿈의 직장'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준비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북 클럽이라는 형태의 모임이 매우 유용합니다. 혼자보다는 함께할 때 효과도 크고 또 더 재밌으니까요. 많은 꿈의 직장에서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습을 아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빅퍼즐문화연구소(빅퍼즐·강도영 소장)에서 7개의 강좌를 개설했습니다. 북 클럽(경영서, 육아서, 기독교 고전), 영화와 사진, 음악, 기독교 문화, 글쓰기 등 재밌는 주제가 많습니다. 저는 경영서 북 클럽의 진행을 맡았는데, 6번의 모임을 통해 7권의 책을 같이 읽습니다. 각 모임마다 책을 읽으면서 일의 의미, 보고, 자기 계발, 피터 드러커, 기업 문화에 대해 생각해 보고 또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 보기도 할 겁니다. 거창하지 않고 아주 작게, 깨작깨작, 다양한 시도를 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메시아를 축하하고 싶은 이방의 박사들에게 가닿을, 변방에서 쏘아 올리는 신호탄이 되고 싶습니다.

글머리에 언급했던 '꿈꾸지 않으면' 노래의 다음 구절로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대한민국 성인은 책을 한 달에 한 권도 안 읽는다고 합니다. 책 읽는 시간이 평생 동안 화장실 가는 시간과 비슷하다고도 하고요. 책을 읽어서, 일을 잘해서 직장 생활의 의미를 찾으려는 분들이라면 없는 길을 가고 계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그 길에 하나님의 은혜가, 좋은 동료가, 그리고 좋은 책이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김효주 / 리디아알앤씨 전략기획팀장, 빅퍼즐문화연구소 경영서 읽기 북 클럽 강사

빅퍼즐 인문학 클럽 참가 신청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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