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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억 기독교인 중 예수의 제자는 극소수"

[인터뷰] 이라크서 구호 사업 펼치는 '선제적사랑연합' 제러미 코트니 대표

강도현   기사승인 2018.02.13  17:4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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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YMCA전국연맹이 주관한 평창 동계 올림픽 개최 기념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세계 평화 대회' 기조 강연자로 나선 '선제적사랑연합'(Preemptive Love Coalition) 제러미 코트니(Jeremy Courtney) 대표는 오직 사랑만이 평화로 가는 길이라고 강하게 말했다. 코트니는 ISIS 같은 급진적 이슬람 폭력주의자들이 난무하는 현장에 커뮤니티를 세우고 무슬림들 삶을 복구하는 일에 삶을 바치고 있다. 함께 기조 강연자로 참여한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는 '선제적 사랑' 사역 때문에 ISIS 모병 활동이 어려워질 정도로 코트니의 사역이 큰 변화를 일으키는 중이라며 치켜세웠다.

제러미 코트니는 남침례교단에서 성장한 전통적 복음주의자였다. 그랬던 그가 중동 한복판에서 무슬림과 함께 살아가는 시민운동가가 됐다. 무엇이 그를 변하게 만들었을까. 코트니는 미국 복음주의 교회가 현실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기독교 가치를 관철하려 한다며, 이것이 미국식 복음주의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교회가 강력한 정치 세력이 됐지만, 폭력으로 국제 권력을 장악하는 미국 정치의 행태를 바꾸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선제적사랑연합 제러미 코트니 대표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강도현

평창 동계 올림픽을 맞아 오랜만에 평화로 가는 걸음을 시작한 지금,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이 관념이 아니라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코트니는 보여 주고 있다. "정말 예수의 제자가 맞느냐"고 묻는 그에게 한국교회는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2018년 1월 31일부터 2월 2일까지 진행된 세계 평화 대회 첫날, 철원의 한 호텔에서 기조 강연을 끝낸 코트니와 진행한 인터뷰를 정리했다.

- '선제적사랑연합'은 어떤 사역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위기 상황에 처한 이들을 인도적으로 지원하는 비영리 기관이다. 우리 정체성을 설명할 때 자주 쓰는 용어가 '가장 먼저 들어가고 가장 나중에 나오는'(first-in, last-out) 기관이라는 것이다. 위기가 발생할 때 신속하게 반응하고 위기에 처한 커뮤니티와 마지막까지 문제를 해결하는 그룹이 되고 싶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의사 결정을 빠르게 못 하거나 완벽하게 준비하고 들어가려 하면 도움이 가장 절실한 때를 놓치고 만다. 잠시 머무르다 다른 위기 지역으로 떠나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단체가 벌이 꽃을 찾는 것 같이 돌아다닌다. '가장 먼저 들어가고 가장 나중에 나오는' 단체가 되겠다는 원칙에는 그 지역에 의미 있는 영향력을 미치겠다는 의지가 들어 있다.

- 기독교 정체성이 있는 단체인가.

엄밀히는 기독교 단체가 아니다. 구호단체들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UN 같은 비종교적 단체다. 이들은 신앙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종교 역할에 대해서도 기대하는 바가 없다. 때때로 문화 자체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비종교 구호단체는 식량 지원이나 일자리 창출 같은 프로그램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종교, 신앙, 이데올로기, 그 지역 역사와는 무관하게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갈등 국면에서 문제를 일으키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깊이 들어갈 수 없다.

또 다른 모델은 종교 단체들이다. 그들은 교리나 신념 체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함께하려면 어떤 신념에 동의해야 한다. 이슬람 지역에서는 이런 면이 부정적으로 작동한다. "우리는 무슬림을 돕는 기독교인"이라고 마케팅하지만 실제로 그런 정체성을 고수하면 가장 깊은 무슬림 커뮤니티에는 접근할 수 없다.

'선제적사랑연합'은 모든 종교적 배경을 환영한다. 종교와 신앙을 테이블 위에 꺼내 놓는다. 비종교 단체처럼 종교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다. 하나의 종교만 고집하지도 않는다. 기독교인, 무슬림 할 것 없이 함께 동역할 수 있다. 동역하면, 각자의 신앙이 더 풍성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 대표님은 스스로 복음주의자라고 생각하나. 강연에서 사용한 언어가 복음주의적이라고 느껴졌다.

복음주의 서클과는 아주 복잡한 관계다.(웃음) 아주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20세기 미국 복음주의 배경을 갖고 있다. 남침례교단 교회를 다녔다. 내 신앙은 미국식 국가주의에 매몰돼 있었다. 정치적 견해도 결을 같이했다. 이라크에 와서 이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지 깨달았다. 천천히 기존의 신앙과 신학, 국가주의적 정치 체계와 분리됐다.

사람들은 지금의 나를 진보주의, 자유주의 신앙이라고 평가한다. 나는 뿌리가 복음주의라서 나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고 정의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내가 사안별로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느냐를 따지면 진보에 더 가까울 수는 있지만, 나는 내가 성장한 복음주의 교회가 내 집이라고 생각한다. 복음주의 관점에 다 동의하지는 않아도 내 정체성이 만들어진 곳이니까. 비판해도 밖으로 나가서 외부자 입장이 아니라 안에서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복음주의 서클 내부 비판자다.

제러미 코트니는 1월 31일, 철원에서 열린 '세계 평화 대회' 기조 강연자로 나섰다. 뉴스앤조이 강도현

- 전통적 미국식 복음주의에 충실했다는 말은 타 종교에 배타적 태도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타 종교와 함께 일할 수 있는 태도를 갖게 된 계기가 있는가.

가장 큰 계기는 이라크에 간 것이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정말로 좋은 그리스도인들 많이 만났다. 그들은 복음주의와 거리가 멀다. 정교회, 동방교회 전통에 있는 분들이었다. 그들의 신앙을 보고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됐다. 내가 속한 남침례교단은 전체 기독교 전통에서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라는 사실을 경험했다. 이슬람도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종파가 있다. 이슬람이라고 다 같은 이슬람이 아닌 셈이다. 마음을 열고 여행만 해도 기존 생각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

처음 이라크에 왔을 때 나는 아주 공격적이었다. '나는 이미 답을 갖고 있다'는 태도를 갖고 있었다. 신학적으로도 명료했다. 그런 신학과 신앙을 전파하는 것이 내 목표였다. 그런데 기도 중에 특별한 영적 경험을 했다. 기도하다가 어떤 환상을 봤다. 내가 주먹 쥔 손을 하늘로 뻗고 있었는데, 기도하면서 손이 펴지고 점점 낮아지는 것이다. 그 기도 이후 내 태도가 완전 바뀌었다. 신념, 신학적 입장이 핵심이 아니라 관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내 신앙 색깔도 바뀌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내 신앙의 많은 부분은 두려움에 더 가까웠다. '그동안 믿어 왔던 신념이 흔들리면 내가 어떻게 될까', '내 신앙이 100% 맞다는 확신이 사라지면 내 세상이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 기도 이후에 두려움이 사라졌다. 내가 100% 맞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다. 이후로 더 좋은 친구, 더 좋은 이웃이 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 이라크에는 어떤 동기로 갔나.

2001년에 일어난 9·11 테러가 내게 큰 충격이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결혼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9·11이 일어나고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친구들은 군대에 입대하기도 했다. 나와 몇몇 친구는 선교사가 되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중동에서 교회를 세워야겠다는 목표가 있었고, 인도적 차원에서 가고 싶기도 했다. 그런 동기가 있었기에 '내가 착한 편에 서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군인들은 전쟁을 위해 가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평화를 위해 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동에 가서 내 동기가 군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슬람을 무너뜨리는 것'이 내 목표였다. 나는 이것을 신앙으로 하려고 했던 것이다.

처음 이라크에 갔을 때 평화를 세우겠다고 했지만, 내가 만나는 무슬림들에게 그들의 삶, 그들의 신앙, 그들의 꿈이 아닌 나의 신앙, 나의 관점, 나의 태도를 관철하려고 했다. 이것은 평화가 아니다. 전쟁이다. 이런 태도가 극단으로 가면 집단 학살로도 연결된다.

미국에는 엄청난 경제력과 군사력이 있다. 나는 그것을 몰랐다. 이라크인들이 가해자고 미국이 피해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 중동에 있는 우리가 취약한 상황에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실은 이라크인들이 취약한 상황에 있다는 것을 그곳에 가서야 알게 됐다.

- 많은 사람이 현장을 경험하면 대표님과 같은 관점을 갖게 될까. 많은 사람이 현장을 보고서도 기존 입장, 미국이 옳고 중동이 문제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 대표님의 생각이 전환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모르겠다.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답을 못 주겠다. 실제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미국인을 꽤 만난다. 나와 함께 선교사로 이라크에 온 친구들도 그렇다. 내 경험으로 말하면, 그중 5% 정도가 관점의 변화를 겪는 듯하다. 95%는 여전히 미국이 옳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나의 경우, 앞서 말했던 기도 경험이 컸던 것 같다. 그 이후 근본적으로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기도가 모든 것을 바꾸지는 않았다. 그래도 방향을 바뀌었다. 방향이 조금 바뀌어도 오래 걷다 보면 상당히 다른 길로 가게 된다. 내 신앙적 경험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내가 태도를 바꾸고 좋았던 것은 근본주의적 무슬림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많은 선교사가 열심히 사역하지만 실제로 그분들이 만나는 사람들은 이미 이슬람이라는 종교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다. 이슬람에도 아주 열성적인 분들이나 불만이 많은 분들이 있을 것이다. 이미 탈출구를 찾고 있는 사람들이 선교사의 사역 대상이 되기 쉬울 것이다. 그것도 의미 있는 사역이다. 이슬람 안에 강압적인 부류가 있고,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다만 나는 이슬람 신앙에 충실한 분들과 만날 기회가 더 많다.

미국인들이 갖고 있는 중동 이미지가 대체로 강압적이고 부정적인 이유는, 이슬람에 대해 긍정적 경험보다 부정적 경험을 갖고 있는 무슬림을 많이 만나는 데 있다. 선교사들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심어 주는 것이 미국의 정치적 이득에도 부합한다. 그러니 미국의 일반 복음주의 교회들이 이슬람에 대한 다른 경험을 갖기가 쉽지 않다. 내가 중동에 가서 만난 무슬림들은 그렇지 않았다. 나만큼 본인들 신앙에 충실했다.

- 관점을 바꾸는 일은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대표님처럼 살아가는 것은 다른 차원의 결단이 필요할 것 같다.

글쎄, 중동에 가서 만난 사람들과 이웃이 됐기 때문일까.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멀리서 봤을 때는 적으로만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이웃이었다. 그들을 만나면서 나 자신도 바뀌었다. 그분들은 단순히 우리 사역의 수혜자가 아니다. 우리도 그들에게 도움을 받는다. 그들과의 관계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운다. 우리도 다 그분들 덕분에 성장한 것이다.

관점을 조금 바꾸면 ISIS나 알카에다와도 이웃이 될 수 있다.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할지라도 말이다. 그들은 다른 차원의 적에게 포로가 된 사람들이다. 잘못된 신학, 이데올로기, 제도의 피해자일 수도 있다.

코트니는 선교를 위해 방문한 이라크에서 변화를 경험했다.

- 앞으로 사역을 통해 어떤 열매가 있기를 기대하는가.

가장 쉬운 잣대는 우리를 통해 얼마나 많은 이가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느냐, 얼마나 많은 이가 의료 혜택을 받느냐일 것이다. 난민 지역에 학교, 병원을 세우고 새로운 사업이 일어나도록 돕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렇게 숫자로 나타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서로 적이었던 관계가 이웃으로 변하는 것이 우리 사역의 본질이다. 완전히 다른 것 같은 사람들이 모여 문제를 함께 해결하면서 공통점을 발견한다. 빈곤 퇴치, 교육, 의료 사업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하다. 거기에 더해, 사람의 관점이 달라지는 사건이 일어난다면 본질적 변화를 이끌 수 있다.

- 진보와 보수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인도적 지원을 지지한다. 그래서인지 특정 정치 집단을 비판하거나 정치 프로세스에 참여하면 지지 기반이 줄어들기 때문에 일부러 정치적 발언을 삼가는 시민단체도 있다. 그런데 대표님은 기조 강연에서 트럼프 정부를 비판했다.

정치적 사안에 침묵하면서 뭔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나이브한 태도다. '나이브'라는 표현도 부족하다. 일종의 망상이다. 정치가 바뀌지 않고서는 근본적 변화가 있을 수 없다. 세상 모든 일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일이 정치와 관련 있다. '정치'(Politics)라는 단어 어원은 '도시'(Police)다.

정치를 건들지 않고 도시, 즉 우리 삶이 바뀔 수는 없다. 정치 자체를 피해서는 안 된다. 다만 특정 집단에 매몰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시민운동에 당파성이 있으면 안 되지만 정치 자체를 회피할 수는 없다. 당파성을 추구하지 않고도 정치 프로세스에 참여하려면, 시민사회가 공정하다는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런 신뢰는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증명돼야 한다.

- 최근 몇 년간 '이슬람'은 한국교회 주요 이슈였다. 한국교회가 이슬람을 보는 관점은 상당히 공격적이며 협소하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이슬람에 폭력성이 내재돼 있다고 주장하고, 이슬람이 문화 전체를 지배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문화를 지배하려는 성향은 종교 이데올로기의 특성이다. 그동안 기독교는 얼마나 심했나. 이슬람이 보여 주는 성향은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보여 왔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근 수십 년 미국 기독교 세력은 정치 문화적으로 미국 사회를 지배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는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렇게 형성된 미국 정부는 무력으로 미국 입장을 관철하려는 캠페인을 적극 펼쳐 왔다. 미국 복음주의자들이 기독교 이름으로 무력 행사를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나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 상황에서 이슬람이 폭력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현실 부정에 불과하다고 본다. 이슬람도 분명 그런 면이 있다. 그러나 기독교와 비교했을 때 크게 다르지 않다.

- 냉전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한반도를 지배 중이다. 많은 이가 이 땅에서 일어난 전쟁을 기억한다. 전쟁을 직접 경험한 이들에게는 사실 이데올로기라기보다 삶의 체험이다. 이분들에게 화해를 요청하는 일 자체가 어려운 문제다. 이분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 줄 수 있겠는가.

어려운 문제다. 그분들 경험을 우리가 재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도 그런 분을 많이 만난다. ISIS 압제로부터 탈출한 분에게 그들을 이해하라고 바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치유의 시간이 지나면 사안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그 고통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여전히 시스템의 압제 아래 고통받는 사람들을 돌볼 의무가 주어진다.

특별히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이들에게 그 의무가 분명하게 부과된다고 믿는다. 기독교 신앙을 그저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정말 예수의 제자라면 말이다. 신앙을 천국 가는 티켓으로 여기지 않으면, 비참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코트니는 기독교인에게 시스템의 압제 아래 고통받는 사람들을 돌볼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이라크에서 구호 사업을 펼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앙은 무엇일까. 제러미 코트니가 인터뷰 말미에 던진 한마디가 마음에 꽂혔다. "기독교인이 20억 명이라고 하는데, 예수의 제자는 극소수인 것 같다." 유일한 분단국가에 사는 우리에게 예수의 제자로서 남겨진 선택지는 분명하다. 오직 평화만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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