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한국YMCA전국연맹이 1월 31일부터 2월 2일까지 개최한 '평창 동계 올림픽 개최 기념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세계 평화 대회' 첫날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가 '한반도 평화와 선제적 평화 만들기 운동'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기조 강연문이다. - 편집자 주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뉴스앤조이 강도현

1. 지금은 카이로스(Kairos)의 때

근현대 세계사는 서세동진西勢東進의 역사였다. 과학기술과 그것에 기초한 군사력을 앞세워 서구 열강이 후진 지역인 아세아와 아프리카 등을 점령해 왔다. 대체로 바다를 지배한 세력이 당시의 세계를 지배했다. 이를테면 지중해를 장악했던 로마가 그 당시 세계를 지배한 것이 하나의 본보기라 하겠다

지중해보다 더 큰 바다는 대서양이다. 로마 지배 체제(Pax Romana)가 허약해지면서 대서양을 장악하기 시작한 나라들이 세계 패권 국가로 등장했다. 드디어 영국이 대서양을 최종적으로 지배하게 되면서 대영제국의 세계 질서(Pax Britanica)가 나타났다. 이 Pax Britanica는 지구상에 해가 지지 않는다는 세계 패권 국가(Global Hegemonic Power)가 되었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큰 바다는 태평양이다. 이 바다를 장악한 국가는 세계 패권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20세기 들어와 마침내 미국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모두 관리해 내는 최강의 세계 지배 체제(Pax Americana)를 구축했다. 그 지배 체제가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이 지배 체제는 지금 강력한 대륙 세력의 도전을 받고 있다. 세계 최대 해양국 미국이 마침내 세계 최대 대륙 국가인 중국의 도전을 받게 되면서 지난 수백 년간 진행되어 오던 서세동진 흐름이 멈칫거리고 있다. 두 지배 세력이 마주치는 지역이 바로 동아시아요, 이 지역의 중심부에 바로 한반도가 놓여 있다. 그러기에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새로운 세계 중심축(pivot)으로 인식되고 있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이 되고, 나아가서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정이 된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MD)의 주요 부분인 사드(THAAD)의 한국 배치가 거대 두 세력 간의 긴장과 대립을 촉발하고 있음에 주목할 때, 한반도는 새로운 시각에서 세계 불안과 분쟁의 화약고임과 동시에 세계의 평화와 안정의 새로운 발판이 될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데 지금 한반도는 북한의 핵개발을 둘러싸고 미국 트럼프 정부와 북한 김정은 정부는 첨예하게 서로 맞서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미국과 북한 간의 긴장 뒤에는 미중美中 간의 대립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중 간 대립과 모순이 주 모순이라면, 미북 간의 모순은 부모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국은 중국이라는 최대 경쟁국을 더욱 효과적으로 옥죄고 견제하기 위해서 북핵 문제를 전술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우리 민족은 또 다시 부당하고 억울한 전쟁 고통을 겪을 수도 있기에 무엇보다 먼저 한반도 평화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우리 민족의 과제인 동시에 대한민국의 국운을 올곧게 보장해 주는 국가적 과제임을 정부와 시민사회는 선언해야 한다. 그간 첨예하게 맞부딪쳤던 미국과 북한은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완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지난 2년간 꽉 막혔던 남북관계는 남북 당국 간 대화국면으로 들어가면서 개선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한미 간의 군사훈련도 올림픽 기간 일단 중지하기로 합의하면서 북한은 적극적으로 평창 올림픽에 대규모로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남북 간의 화해 흐름에 적극 동조할 조짐이다.

낙관하기는 이르지만 올림픽 기간에 남북 간 해빙 흐름이 더욱 따뜻해지고 북미간의 대화의 길도 열리게 된다면 한반도의 긴장은 급속하게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국면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주변 강대국, 특히 중국이 이 화해 흐름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이런 따뜻한 흐름이 올림픽 후에도 지속되길 우리 모든 민족과 국민, 그리고 세계는 바라고 있다. 그러기에 이 바람이 역사 현실이 되기 위해 이 평화 세미나에서 몇 가지 문제를 꼭 짚어 보고 싶다.

첫째, 지난 백여 년 간에 우리 민족이 겪은 독특하게 억울한 고통과 역사적 트라우마를 간단히 짚어 보고 싶다. 다시는 이 같은 고통을 우리 후손들이 겪지 않게 하려 함이다. 한마디로 일제강점기에 겪은 민족의 고통이 태평양 전쟁 종식으로 마땅히 끝나야 하는데도 세계 최대 해양 세력 미국의 세계 패권 전략에 의해 그 민족 고통이 분단 고통으로 부당하게 이어지게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우리는 새삼 주목해야 한다. 분단이 제도화하고 내면화하면서 민족 고통이 국민 고통으로 이전되어 민주주의가 크게 훼손되었다는 역사적 비극에 주목해야 한다.

둘째로, 이 분단 고통을 지속해 온 메커니즘에 우리는 또한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적대적 공생 관계(antagonistic symbiosis)가 그간 남북 간에 매우 철저하게 작동되었다. 그만큼 민족고와 국민고가 심화되었다. 이 적대적 공생 관계 작동을 통해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보는 지배 세력이 있기 마련인데 남북의 냉전 수구 세력이 바로 그 세력이며, 미국의 보수 우익 정치 세력이 바로 그들이다.

셋째로, 이 같은 비극적 메커니즘을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한 한국 시민 혁명의 의미, 즉 촛불 시민 명예 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간단히 조명해 볼 것이다. 세계 언론과 세계 평화 우호 시민들이 적극 평가해주는 한국적 시민 평화 운동 또는 비폭력 시민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성찰해 보면서, 한국 시민사회가 지금 막 움트고 있는 한반도 화해 흐름을 끄지 않는 평화 촛불의 역할을 가속화해 주기를 촉구할 것이다. 이 촉구와 더불어, 올림픽 기간에 조성되는 남북 간 대화가 미북 간 대화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할 것이다. 나아가 한반도 주변의 강대국들도 한반도 평화 구축 작업이 더욱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들 간의 다자간 대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북한 지도부의 핵개발과 경제 발전이라는 이른바 병진 정책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강조점이 이 두 개 중 어느 곳에 있는지를 정확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따.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의 이른바 '최대 압력과 관여' 중 그가 어느 곳에 더 방점을 찍고 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문재인 정부가 취해야 할 이른바 적극적 균형자 역할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구현하는 일에 주도적 역할(운전대 잡는 역할)을 해낼 수 있는지도 성찰해 보아야 한다.

끝으로 한국 시민운동과 세계 평화 시민운동이 어떤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이미 중동 지역에서 감동적인 평화, 화해 운동을 모범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제러미 코트니의 운동 사례에서 우리는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선제적 사랑 운동은 우리 한반도에 매우 창조적이고 적절한 대안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래서 한반도 주변에서 세계로 번지고 있던 불길한 위기의 먹구름을 물러가게 하고, 평화와 사랑의 새날이 동터 오기를 우리 모두 기대한다. 얼마 전 오프라 윈프리가 외쳤듯이, "a New day is on the horizon." 새날이 동터 온다. 우리도 평화의 새날이 이 비극의 땅, 분단의 땅 한반도에서 동터 온다고 외칠 수 있기를 바란다.

2. 백 년에 걸친 우리 민족의 억울한 고통, 그 민족적 트라우마

지난 백 년간 너무나 억울하게 겪었던 우리 민족의 고통을 모르고 오늘의 한반도 평화의 절박성을 제대로 논의할 수 없다. 이 민족의 트라우마에서 우리는 왜 오늘 한반도 평화가 우리 민족, 우리 국가뿐 아니라 전 세계에도 절박하게 필요한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그 고통은 강대국들의 일방적 조치로 생겨난 억울한 고통이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동양의 패권국이 되었다. 동양 평화를 앞세우면서도 일본 제국주의는 대만을 식민지로 삼았다. 꼭 10년 뒤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면서 일본은 서구 열강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고 판단하였다. 여전히 동양 평화를 앞세웠으나 본격적으로 한반도 강점과 식민지화를 도모하였다. 우선 당시 일본 제국주의는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먼저 박탈했다. 이때 일본의 한반도 침략에 동조해 준 나라가 있었다. 그것은 20세기 들어와 해양 강국으로 부상되기 시작한 미국이었다.

미국은 이때 태평양 서쪽에 있는 필리핀을 식민지로 이미 지배하고 있었다. 필리핀 식민지의 최고 통치자였던 태프트(Taft)는 일본 수상 가츠라와 비밀 협약을 맺었다. 일본은 필리핀을 넘보지 말라는 미국의 요청을 수용하면서 그 대가로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화를 인정해 주었다. 두 해양 세력의 비밀 결탁으로 우리 민족의 비극적 고통은 제도화하기 시작했다. 을사조약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트라우마를 우리 민족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미일 결탁 또는 동맹이 지금도 북핵 위협을 빙자해서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한국을 미일 동맹의 하부 체계로 편입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같은 미일 동맹은 종국적으로는 세계 최강 대륙 국가인 중국을 포위하고 견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10년 일본은 마침내 한반도를 병탄하였다. 36년간의 억울한 민족 고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고통은 태평양전쟁 기간(1941.12.~1945.8.) 더욱 처절하게 증폭되었다. 청년들은 강제 노동으로 징용되었고, 대학생들은 제국 군대로 징병되어 총알받이로 고통당했다. 그리고 젊은 여성들은 이른바 '위안부'라는 이름 아래 성 노예로 징발되었다. 그런데 1945년 8월로 일본은 미국의 핵폭탄 두 발을 맞고 마침내 항복하고 말았다.

우리 민족의 아픔은 일제의 패전으로 더욱 억울한 트라우마로 악화되었다. 이것이 진실로 억울하고 부당한 고통이었다. 공식적으로는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은 일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났다고 하나, 실제로는 우리 민족은 분단으로 새로운 부당한 고통을 강요받게 되었다. 그것은 당시 미국이 소련을 새로운 주적으로 간주하여 그 영향력을 제한하려는 새로운 세계 패권 전략을 펼치려 했기 때문이다. 두 방의 핵폭탄을 맞은 일본 관동군이 혼비백산하여 전의를 상실한 상황에서 소련군은 소만 국경을 넘어 파죽지세로 남하했다.

회고해 보면 아쉬운 점이 있다. 이때 미국 트루먼 정부는 소련의 참전을 강력히 만류했어야 마땅했다. 여하튼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소련군을 저지해야 하는 위급한 상황을 맞은 미국 정부는 황망하게도 38선을 잠정적으로 소련군 남하 저지선으로 성급하게 결정했다. 이것이 한반도 분단의 첫 번째 조치였다. 이때 미국은 한국이 일본에 식민지로 떨어지기 전의 국경선이었던 압록강과 두만강을 소련 남하 저지선으로 채택했어야 마땅했다. 참으로 아쉽고 억울하다.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전범국 일본의 식민지로 이미 36년간 총체적 고통을 겪었던 우리 민족은 이때 마땅히 일본의 패전과 더불어 우리의 국토와 주권을 회복했어야 했다. 그래야 비로소 해방과 광복의 감격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미국은 매우 짧은 시간에 소련 남하를 막는 선으로 38선을 잠정적으로 결정해버렸다. 이 잠정적 결정은 오늘까지 실제로 한반도를 분단 체제로 남아 있게 하였다. 우리 민족의 해방될 권리, 광복을 누릴 권리는 바로 이 국토의 잠정적 분단으로 처참하게 유린되고 말았다.

둘째로 1948년 8월 15일 이승만은 남한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했다. 김일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승만의 정부 수립 후 불과 25일 만에 조선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마치 조국 분단의 일차 책임은 이승만에게 있음을 알리고 싶어 한 것 같다. 이 두 번째 분단은 국토 분단이 국가 분단으로 넘어가는 가슴 아픈 분단이 되고 말았다. 한민족은 두 국가로 분열되면서 서로 주적으로 증오하고 대립했다. 이런 상황에서 6·25전쟁은 '필연적'이었다. 1950년 6월 25일 북의 남침으로 분단은 민족에게 엄청난 전쟁 고통을 안겨 주면서 더욱 고착되고 말았다.

분단의 셋째 계기는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휴전 체제였다. 남과 북이 열전에서 냉전으로 대결하게 되었다. 휴전 체제하의 냉전은 열전에 못지않은 비용이 들어가게 되었다. 냉전 기간 남북은 상대를 더욱 악마화하는 일에 열중했다. 악마화에도 비싼 비용이 든다. 국토의 분단(1945년 8월)이 국가의 분단(1948년 8월)으로 이어지면서 열전 3년간 무려 삼백만 명의 인명 피해가 생겼고, 민생고는 처참했다. 그런데 한국전쟁 기간 미국은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을 성급하게 추진했다. 이 조약 체결(1952)로 마침내 일본은 전범국 지위에서 미국의 최대 우방국으로 승격되었다.

날로 힘을 키워 가는 소련을 새로운 주적으로 낙인찍은 미국 정부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전범국 일본의 범죄를 부당하게도 추궁하지 않았다. 심지어 일급 전범자들도 복권시켰다. 나아가 일본을 강력한 경제 대국으로 키웠다. 지금 일본 총리 아베의 외조부가 그때 일급 전범이었으나 사면되어 총리로 나서게 되었다. 그의 외손자는 지금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국방 강국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결국 미국의 세계 전략으로 전범국 일본은 통일된 자유국가로 그리고 경제 대국으로 크게 굴기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던져야 할 심각한 질문이 있다. 다름이 아니라, 전범국인 일본이 마땅히 분단되어야 하거늘, 어찌하여 전범국의 식민지로 36년간 이미 온갖 고통을 부당하게 겪은 우리 민족이 분단이라는 엄청난 징벌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분단이 오늘의 한반도 위기의 근원적 이유라고 한다면 다시 말해, 한반도상의 전쟁 먹구름을 불러일으키는 근본적 원인이라면, 미국 정부는 한반도 분단의 일차적 책임이 있는 국가로서 역사적 반성을 해야 하고, 일본은 식민지 만행에 대해 겸손히 자성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 이 두 해양 강국은 이 같은 메타노이아(metanoia) 없이 지금도 굳건한 군사동맹 체계를 강화하면서 북핵 문제를 구실로 중국을 옥죄는 정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두 나라는 지금 우리 민족이 70년 이상 겪고 있는 분단 고통과 열전 고통과 냉전 고통, 그리고 냉전권위주의에서 오는 정치 고통을 역지사지하고 역지감지易地感之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가 절박하게 필요하다면, 무엇보다 미국 정부의 메타노이아가 요청된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평화 헌법의 정신을 준수하려고 더욱 더 노력해야 한다. 70여 년간 너무나 부당하게 고통받아 온 우리 민족과 우리 국민의 아픔에 동고하지 못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함께 논의한다는 것은 우리를 다시 아프게 하는 일임을 그들은 깨달아야 한다. 그렇다면 70년 이상 남북 간의 대결이 지금까지 지속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우리는 우리 스스로 반성하기 위해서라도 진지하게 묻고 성찰해야 한다.

3. 적대적 공생적 관계의 비극

분단이 이토록 오랫동안 한반도에 지속되는 것은 이 분단으로부터 엄청난 이득을 보는 정치 세력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먼저 남북한의 냉전적 지배 세력은 모두 말로는 분단 극복 또는 평화와 통일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분단이 지속되어야 그들의 정치·경제·문화·사회적 기득권이 보호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적대적 공생 관계의 작동을 이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두 체제가 극단적으로 대립하게 되면 두 체제를 이끌어 가는 지배 집단은 대체로 극단적 정치 세력으로 변질된다. 자기들의 지배 권력은 상대 주적을 악마화해야만 유지되고 강화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일에 익숙해지면 자기들의 권력에 도전하는 체제 내의 모든 세력을 절대로 용인하지 않는다. 엄격한 법률로 다스리려 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지배 세력은 비민주적 극단 세력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상대방을 악마화하면서 스스로 악마적 권력을 강화한다. 그래야만 적대적 공생이라는 요상한 기제(mechanism)가 유효하게 작동하게 된다.

왜 요상하다고 말하는가. 공식적으로는 지배 세력이 타방을 주적이나 악마로 낙인찍으면서도,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공식적 언명과 달리 그리고 그들의 의도와 달리 상대방의 기득권을 강화해 준다. 이것이 두 번째 특징이다. 그래서 요상한 작동이라고 말한다. 겉으로는 그리고 의도적으로는 주적인 상대방을 초전에 박살 내려고 하면서도, 그 결과를 보면 항상 서로가 상대방의 권력을 강화해 주고 있기 때문에 요상한 것이다.

한마디로 북한의 강경 세력 또는 극좌모험주의 세력은 남한의 지배 집단을 공식적으로는 신랄하게 비난하면서도 남한의 극단적 친일 반공 세력의 북한 비난과 반북 행동을 결과적으로 반긴다. 결과적으로 체제 내 자기 권력 기반을 더 탄탄히 다지게 됐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들의 정치·경제·문화적 기득권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한의 수구 냉전 세력 역시 북한의 강경 좌파 세력을 공식적으로는 극도로 증오하면서도 그들의 거친 준동이 있어야만 더 쉽게 남한 내의 자기들 권력 기반을 공고히 다질 수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남북의 비민주적 지배 세력 간에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상호 도움을 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적대적 공생 관계다. 적대 세력 간의 의도하지 않은 공생 협력 관계가 이루어진다.

이 요상한 역설적 관계가 지속되는 한두 가지 비극은 거의 필연적이다. 하나는 남북 간의 관계가 계속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비극이다. 둘째로 각 체제 안에서 인권·민주주의·정의 등의 소중한 가치는 계속 짓밟히게 된다는 비극이다. 우리의 지난 70여 년의 정치 현상에서 우리는 이 같은 요상한 정치적 공생 관계가 꾸준히 작동해 왔음을 눈 부릅뜨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국민 고통이 그만큼 심각해졌음을 유의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남남 간에 흔히 보게 되는 '상대방에 대한 색깔론적 낙인과 통제'의 본질을 새롭게 이해하게 된다. 남북 간의 화해를 주장하는 지식인과 종교인들에게 냉전 수구 세력은 흔히들 '친북 좌파'라는 딱지를 서슴지 않고 붙이고 있다. 요상한 사실은 이 같은 낙인을 주저 없이 정치적 이견자들, 특히 자유주의적 진보 세력에게 찍어 온 수구 냉전 세력이야말로 따지고 보면 결과적으로 진짜 친북 세력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눈여겨보거나 눈 부릅뜨고 볼 수 있어야 한다.

최근 <한겨레> 신문의 그림판이 흥미롭다. 서로 험한 막말로 긴장을 고조하는 김정은과 트럼프 간에도 이 같은 적대적 공생 관계가 작동함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림 왼쪽에는 트럼프의 왼쪽 귀가 크게 드러나 있다. 그 귀에 대고 속삭이는 똥똥한 어린 수호천사가 날개 달고 메시지를 보낸다. 무엇을 알려 주는가 하면, 무기 구매와 FTA, 그리고 방위비를 많이 얻어 낼 수 있다고 속삭이고 있다. 이렇게 속삭이는 수호천사는 누구인가. 바로 북한의 최고 지도자다. 이런 수호천사가 있기에 트럼프 정부는 결과적으로 이득을 본다는 것이다. 마침 미국 대통령이 일본과 한국을 방문한 후 엄청나게 비싼 미국 무기를 각 정부에 구매하도록 했다는 기사가 알려진 직후에 나온 그림판이었다.

최근 흥미를 끈 영화 '강철비'에서도 이 같은 요상한 적대적 공생 관계의 진실을 깨닫게 한다. 이 진실을 깨달은 북한 주인공이 북으로 돌아가 이 요상한 관계를 정치적으로 악용한 북한 군부 실세를 타격하는 스토리가 흥미롭게 펼쳐지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이번 겨울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간만 아니라, 미북 간에도 이 적대적 공생 관계가 파격적으로, 그리고 감동적으로 우호적 공생 관계로 진화하고 발전하게 되길 간원한다.

4. 촛불 시민 혁명의 역사적 의미와 우호적 상생 관계로 전환

2016년 늦가을에서 다음 해 이른 봄까지 펼쳐진 한국의 촛불 시민 혁명은 세계사에 남을 만한 감동적인 시민운동이었다. 그것이 감동적 변혁 운동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비폭력 평화 시민운동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 그간 깊이 뿌리내렸던 친일 냉전 정치가 이 평화 시민운동으로 청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0년간 한국의 지배 세력이 끈질기게 국민 가슴속에 내면화했던 친일 냉전 문화가 드디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 뿌리내린 친일 냉전 체제도 이제 본격적 도전을 받게 되었다. 조용하게 그러나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는 적폐 청산을 통해 이 간은 낡고, 부당한 지배 체제(가치관, 문화, 그리고 제도)는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다. 여기서 이 같은 바람직한 변혁을 가능하게 해 준 촛불 시민 혁명의 특징을 살펴보면서 그것이 한반도 평화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촛불시위는 한국적 비폭력 평화혁명이었다. 그것도 밑으로부터 자발적으로 터져 나온 시민 혁명이었고 그것이 철저하게 자율적 비폭력 운동이었기에 시민 명예 혁명이라 할 수 있다.

둘째로 시위는 감동적으로 질서 정연하게 펼쳐졌다. 시민들의 성숙한 절제력에 시민 스스로 자긍심을 느꼈고 세계가 감탄했다. 대체로 집합행동(collective behavior)은 집단 폭행으로 변질되기 쉽다. 정치 선진국에서도 축구 시합 결과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은 때때로 폭도 같이 행동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의 촛불시민들은 6개월 동안 그 열악한 겨울에 연 1700만 명이 시위에 참가했지만 단 한 건의 폭력 일탈이 생기지 않았다. 나는 이 같은 절제 있는 촛불시민들의 행동에서 '한국적 집단 지성과 한국적 집단 감성'의 성숙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뿌듯한 자긍심을 느꼈다.

셋째로 촛불 시위는 따뜻한 시민 축제였다. 시민들의 외침 속에는 분노가 있었다. 하나 그 분노는 사사로운 개인 분노가 아니라 공공적 분노였기에 의로운 분노였다. 정의의 함성이었다. 이 같은 의분이 있었기에 따뜻한 공동체적 축제로 승화될 수 있었다. 그 축제는 놀라운 사회 통합적 위력을 발휘했다. 축제 분위기 속에서는 계급의 벽, 지역의 벽, 세대의 벽, 성의 벽들이 없었다. 차이는 차별의 구실이 될 수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손잡고 걷는 손주들, 아빠 어깨 무등을 타고 신나게 외치는 어린이들, 젊은 남녀가 다정하게 손잡고 힘 있게 외치는 모습 속에서 나는 성숙한 민주적 사회 통합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다. 자랑스러운 내일의 민주 사회의 모습과 감동적인 내일의 민족 화합의 모습을 미리 보는 듯했다. 색깔정치의 공세, 갑질하는 추한 강자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70여 년간 우리를 옥죄었던 냉전정치, 억압정치가 아침 안개처럼 사라지는 것 같았다. 적대적 공생 관계를 악용하여 정치경제적 기득권을 불리는 추한 모습도 볼 수 없었다. 적대적 공생 관계는 그 위선적 가면을 벗어 던지며 우호적 상생관계로 나아가는 듯했다. 흐뭇했다.

넷째로 세계 언론이 촛불 시민들을 아낌없이 격려해 주었다. 지난날 군사독재 시절, 한국인을 들쥐라고 혹평했던 서양인의 평가는 없었다. 오히려 성숙한 민주주의를 오늘의 서방 민주국가에 수출할 수 있는 최선진 민주국가로 한국이 놀랍게 발전했다고 칭찬했다. 그뿐 아니라 김치 없는 한국인의 삶을 생각할 수 없듯이, 이제 한국인은 촛불 시민운동을 그들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려 내고 있다고 했다. 생활화된 민주주의를 이제 한국인들은 누리고 있다고 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시위 다음날, 모든 광정은 너무나 깨끗하게 청소되었다. 시민 스스로가 환경미화원이 되어 온 거리와 광장을 말끔하게 정리해 놓았다. 이미 일상적 삶 속에 깊이 녹아내린 성숙한 사회적 민주화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섯째로 2016~2017년 한국 촛불 시민운동은 1919년 3월 만세 운동을 연상시켰다. 태극기를 들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터져 나온 평화적 민족 독립운동에서 촛불 시민운동이 비롯되었다고 나는 인식했다. 우리 민족의 3·1 시위운동에 자극받아 중국의 5·4 운동이 터져 나왔다. 그러니까 우리의 3·1 운동은 아시아의 반제국주의 평화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이다.

이때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우리의 3·1 운동을 일찍이 아시아에서 빛났던 등불이라고 평가했다. 그 등불이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희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고 예언했다. 그 예언은 꼭 99년 후 적중했다. 1,700만 명의 한국 촛불시위로 이어지면서 이 촛불은 아시아의 밝은 빛이 될 뿐 아니라 이제는 세계 전체를 밝혀주는 평화의 횃불이 될 것이다. 촛불의 힘은 스스로 태우고, 스스로 비워 부당하게 고통당하는 민중에게 따뜻함과 밝음의 길잡이가 되는 힘이다. 바로 그것은 살신성인의 힘이다. 남을 해치고 남의 생명을 빼앗아 안정을 만들어 내는 힘이 아니다. 무력으로 지켜내는 평화의 힘이 아니라 자기를 비우고 낮추고 지워서(Cross out) 남을 살려 내는 엄청나게 감동적인 힘이다. 그러기에 평화를 만드는 이 힘을 영원히 꺾어 낼 국가의 힘, 시장의 힘은 있을 수 없다.

마침 작년(2017년)은 볼셰비키 혁명의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이 혁명에서 배울 수 있는 최고의 가치는 무엇인가. 아무리 혁명의 가치가 고귀하다 하더라도 그 가치를 실현시키는 힘이 폭력일 때, '성공적 혁명' 속에는 이미 혁명 실패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교훈 아니겠는가. 바로 이 교훈을 오늘 전쟁의 먹구름이 감돌고 있는 한반도에서 우리는 온 몸으로 깨달아야 한다. 지금 무력으로는 결코 한반도 평화, 동북아의 평화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이룩할 수 없다는 진시를 우리는 새삼 깨달아야 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대안은 선제적 폭격이나 선제적 예방 전쟁이 아니라 선제적 평화 만들기(preemptive peace making)가 아니겠는가!

5. 선제적 평화 만들기

선제적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하는 경우 바로 뒤따라오는 주제 명사는 대체로 공격적인 행위를 의미하는 명사들이다. 이를테면 선제적 타격, 선제적 제거, 선제적 숙청 따위가 그러하다. 상대방을 힘으로 미리 무력화하거나 제거하거나 멸망시키려 할 때 선제적이란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무리한 선제적 타격으로 평화 목적을 달성하기란 무척 어렵다. 이 같은 무모한 행동을 하다간 먼저 당할 수도 있고 함께 패배할 수 있다. 특히 가장 가공할 폭력인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하여 목적을 달성하려할 경우 공멸의 가능성이 아주 높다. 핵무기가 전쟁 억지 수단으로 평가받게 되는 것은 바로 이 공멸의 현실적 위험 때문이다. 최근 한반도 위기 상황은 일차적으로는 미북 간의 핵무기 단추 누르기 싸움으로 인식되었다. 북한이 사실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을 미 본토에까지 보낼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다고 한다면 선제적 타격 전략 전술은 어느 쪽이 시도하든 그 결과는 공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냉철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비록 우리가 김정은 위원장의 핵 무력 완성 선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국의 주요 언론에서는 이미 북핵 문제 다루는 방식에 변화를 촉구하는 의견이 나타나고 있음에 우선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금년 1월 1일 자 Eugene Robinson 논설인의 글을 통해 한반도 평화 실현을 위한 현실적 선택(realistic option for peace)을 심각하게 고려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북한이 이제 핵 국가가 된 것을 인정하라고 다음과 같이 촉구했다.

"나는 미 행정부가 왜 북한을 핵보유국 지위로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지 이해한다. 하지만 트럼프와 그의 보좌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여지없는 사실이다."1)

이 같은 미국 언론의 입장이 한반도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매우 유익한 현실 인식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올림픽 참가 제의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게 된 것도 북한이 이제 핵보유국이 되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의 조부가 북한을 사상 강국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그의 부친은 군사강국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서, 김정은 위원장 자신은 북한을 마침내 핵보유국으로 만든 것을 큰 역사적 공적으로 내세우고 싶어 한다. 그래서 7년 전 최고 지도자가 되었을 때 그가 제시한 핵개발과 경제개발 병진 노선의 진의를 새삼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는 조부와 부친의 고민을 공유하고 있다. 즉 북한 체제를 어떻게 미국의 핵 위협에서 보호할 수 있을까를 고심하고 있다. 먼저 그는 거의 조부가 왜 연방제 방안을 내세우게 되었는지를 또한 이해한 것이다. 무력으로 남쪽을 이길 수 없고 적화 통일 할 수 없음을 깨달은 조부를 그는 이해한 것이다. 그러니 미국과의 무력경쟁에서 이길 수 없음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임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의 진정한 안보는 대화를 통한 외교적 방법 밖에 없다는 조부의 판단을 그는 더욱 존중한다. 그렇다면 미국을 어떻게 대화의 마당으로 끌어올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북한의 과제다. 그래서 부친인 김정일 위원장은 미국이 신경 쓰는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생산해 내는 일에 매달렸다. 핵무기를 가져야 비로소 미국이 북한과 협상하려 할 것임을 그의 부친도 알고 있었지만, 정작 핵무기는 생산해 내지 못했다.

그런데 김정은은 조부와 부친과 달리 집권 7년 기간에 핵실험을 여러 차례 하였고 핵탄두 제조에 심혈을 기울였을 뿐만 아니라, 결국 핵탄두 소형화와 함께 그것을 대륙 간 탄도미사일에 실어 미 본토를 공격할 수단마저 마련하게 되었다고 지금 공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와서야 비로소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올 수 있다고 그는 자신하는 듯하다.

그는 작년 12월 화성 15호 미사일 발사 성공과 함께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로 미 본토를 공격할 핵 능력을 갖추었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그가 집권하며 내세운 핵개발과 경제발전의 병진정책이 성공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뜻한다. 이 병진 정책에서 그의 강조점은 경제개발에 있다. 이것은 조부의 소망이기도 했다. 주민에게 쌀밥과 소고기국을 먹일 수 있는 수준의 경제개발을 김일성 주석은 간절히 바랐다. 주민을 굶기면서 군사 강국이 되는 것은 의미 없다는 것을 김정은은 부친의 고난의 행군시기 주민의 참상을 통해 확신했던 것 같다. 그래서 병진 정책에서 핵개발의 목표가 달성되면, 오로지 경제개발에 올인할 계획을 세운 것 같다.

하기야 핵 국가가 되었다고 선언하기 전에도 이미 그는 민생 경제를 그전에 비해 상당히 향상시켰다. 그런데 이제 화성 15호의 성공적 발사를 이룩했으니 이제부터는 경제개발에 매진할 것 같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제의(peace-overture)에 그는 적극 호응한 것 같다. 그가 미국 당국과 대화를 하게 되면, 그의 경제개발 의지를 더욱 분명하게 강조할 것 같다. 이제부터는 핵 개발보다 민생 경제에 집중하도록 한국과 미국이 도와주기를 요청할 듯하다. 그간 미국 주도의 국제 공조로 북한의 경제 상황은 매우 악화된 듯하다. 그런 만큼 남쪽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절박한 경제문제부터 해결해 나가고자 할 것이다.

이런 때 우리 정부와 시민사회는 선제적 평화 만들기의 중요 프로그램으로서 남북 간 경제 공동체 구상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선제적 평화 만들기는 선제적 공동 번영 실천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이번 회의를 통해 제러미 코트니의 경험, 곧 선제적 사랑실천연합의 활동에서 많이 배워야 한다. 그리고 남북 대화가 북미 대화로 이어진다면 김정은의 경제개발 정책과 트럼프의 관여(engagement) 시도가 선순환 작용을 통해 지난 2005년 합의된 9·19 선언(6자 회담)에서 여섯 나라들이 합의한 사항을 이제 본격적으로 실천하는 기회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런 가운데 2007년 10·4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항들을 이제는 남북 실무 수준에서 하나하나씩 실천하는 일도 병행하여 추진해 나가야 한다. 이 일에 미국과 중국, 일본 그리고 러시아가 적극 나서도록 우리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외교적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하여 평화를 만들어 내는 평창 프로세스가 작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되도록 한국 촛불 시민운동이 뒷받침해야 한다.

지금은 적폐 청산과 함께 한반도 평화 만들기에 시민사회와 국가가 힘을 모으면서 한반도 주변의 강대국들의 협력을 끌어내야 한다. 그러할 때 비로소 지금 한반도 위에 드리워진 핵전쟁 위기의 먹구름을 걷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평화와 번영의 밝은 내일을 오늘부터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우리도 "평화의 새날이 동터 온다"라고 세계를 향해 외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미 동맹이 냉전 동맹 수준을 넘어 평화 번영 동맹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여기에 중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도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6자 회담은 새롭게 동아시아의 평화 구축을 6자 협력체로 자리 잡아 나가게 될 것이다. 이 일에 문재인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운전대를 힘차게 잡을 수 있도록 한국 촛불 시민은 적극 도와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선제적 평화 만들기 운동이 선제적 타격 정책을 감동적으로 대치해 나가는 모습을 세계 앞에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면 세계도 뜨겁게 한국의 평화 만들기 운동과 평창 프로세스에 박수를 보내 줄 것이다.

한완상 / 전 통일부총리, 새길교회 신학위원

각주

1) "I understand why no administration wants to be the one to accept the fact that North Korea has joined the exclusive club of nations with nuclear arsenals. But this is indeed, a fact. Trump and his advisers need to deal with reality as it is rather than as they would like it to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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