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을 하면서 한번쯤은 이런 문제로 고민해 보았을 것이다. 가해자인 상대방이 나에게 잘못했다고 인정하지도 않는데 무조건 용서해야 하는가. 분명히 나에게 죄를 지었는데도 자신의 범죄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상대방을 무조건 덮고 용서해야 하는가.

주기도문에 나오는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한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라는 말씀은 상대방이 나에게 큰 상처를 주고 용서를 구하지 않는데도 무조건 먼저 용서해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주님의 용서를 구하기 전에 먼저 우리에게 죄를 범한 모든 사람을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는 말인가. 죄를 범하고도 전혀 뉘우치지 않는 파렴치한 사람들도 무조건 용서해야 하는가.

영화 '밀양' 빼닮은 안태근 사태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회개와 용서에 대해서 오해하는 부분이 바로 이런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상당한 자극을 준 '밀양'이란 영화는 그리스도인들의 잘못된 회개와 용서를 꼬집고 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자식을 죽이고도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은 사실을 감사한다면서 피해자에 대해서 전혀 미안한 마음이나 사죄의 마음 없이 뻔뻔스럽게 자신이 용서받은 사실을 스스럼없이 상처받은 피해자에게 말한다. 이런 가해자를 보면서 피해자의 가슴은 무너진다. 피해자 자신은 이 사건을 통해 기독교 자체에 대해서 회의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 이런 가해자의 회개는 진정한 회개인가.

최근 서지현 검사가 8년 전에 성추행당한 사실을 검찰 내부 전산망에 폭로한 내용을 듣고 온 나라가 함께 분노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서 검사의 가해자인 안태근 씨가 작년에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세례를 받고 눈물을 훔치면서 한 간증을 피해 당사자가 보았다. 과거에 서 검사는 안태근 검사에게 성추행당한 사실을 상부에 알리고 사과를 요청했으나 묵살당하고 오히려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안태근 씨와 같은 경우에 그의 회개를 진실한 것으로 받아야 할까. 어쩌면 안태근 씨의 회개는 서지현 검사의 입장에서 볼 때 이는 '밀양'의 내용과 꼭 닮은꼴이다. 피해자인 서지현 검사에게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고 자신은 예수를 믿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하게 되어 과거의 무거운 마음이 가볍게 되었다고 얘기한다.

안태근 씨는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듣고 자신이 당시 술 취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렇게 했다면 미안하다고 때늦게 사과를 했다. 이 사건을 통해 예수 믿는다는 게 얼마나 큰 책임이 따르는지 새삼스럽게 생각나게 한다. 그가 과거에 서 검사의 항의를 받았고 자신이 진정으로 회개하길 원했다면 반드시 서 검사에게 사과를 한 후에 세례를 받는 것이 합당한 절차였을 것이다. 비신자가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하기 위해서 모든 피해자에게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피해자가 죽거나 멀리 떠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타인에게 심각한 상처를 입힌 범법 행위들에 대해서는 먼저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과 관계 회복 전에 이웃과 관계 회복해야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한다는 것은 단지 하나님과의 관계만 해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웃과 뒤틀어진 관계도 해결되어야 한다. 회개는 동시에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구약시대에 남의 물건을 훔친 자가 회개하려면 훔친 물건을 되돌려 줘야 할 뿐 아니라 훔친 것의 1/5을 더해서 갚아야 했다. 회개 후에는 때로는 보상이 따르고 때로는 사과가 따르고 때로는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이 따라야 한다. 이것은 회개에 대한 보편적인 성경의 원리이다. 그리스도께서도 만약 예배자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으면 먼저 화해부터 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라고 가르쳤다(마 5:23-24).

그런데 현실적으로 가해자들이 심각하게 피해를 입힌 경우에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살인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는 목숨을 잃은 당사자가 아니겠는가. 그들의 피는 죽어서도 하늘을 향해 하소연하고 있을 것이다. 가족과 친척들은 이차적인 피해자들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심각한 죄를 지은 가해자들은 용서를 빌 일차적인 대상을 잃었으니 하나님께 회개할 길도 막히는 것인가. 이런 심각한 죄인들에게는 회개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가.

성경의 가르침은 이에 대해 결코 부정적인 답을 하지 않는다. 성경은 어떤 죄인도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 일가족을 도끼로 죽인 고재봉이 사형을 당하기 전에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일화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가 사형당하기 전에 진정한 회개의 증거를 보인 여러 정황이 드러났다. 그는 많은 죄수에게 복음을 전하고 죽었다.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죽었다. 그가 가장 즐겨 부르던 찬송의 가사는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였다. 자신의 죄인 됨을 누구보다 깊이 통감하고 죽었다.

그렇다면 고재봉의 이런 변화는 언제 일어나게 되었는가. 그가 믿기 전에 이런 변화가 일어났는가? 아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일어난 변화이다. 고재봉에 비하면 안태근 씨의 범죄는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그의 성추행이나 돈 봉투를 건넨 범죄행위가 결코 가볍다는 말이 아니다. 나의 요지는 그도 진정으로 회개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사과와 함께 처벌도 달게 받겠다는 솔직함 필요

어느 기독교 단체에서 안태근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날리는 이유는 바로 이런 진정한 회개의 증거가 미약해 보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자신이 한 일이 취중이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변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서지현 검사가 나중에 사과를 요청했고, 그럼에도 그는 사과하기를 거절했다. 서 검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권력을 이용하여 그녀를 더욱 어렵게 만든 전력을 그가 과연 모르고 있는 것일까.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상당수의 문제는 바로 이와 유사한 문제라고 본다. 상대방에게 피해를 준 당사자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버티기 때문에 관계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피해자는 너무나 분명하게 당했고 이에 대해서 분명하게 항의하는데도 아니라고 버티는 교인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자들에 대해서도 피해자는 무조건 입 다물고 용서해야 하는가. 주님 가르친 기도를 문자적으로 적용해야 하는가? 이런 경우에 단순하게 주기도문만 외친다면 성경의 문자주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성경에는 이에 대한 또 다른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 내 뻔뻔한 가해자들, 어떻게 다룰 것인가

교회 안의 뻔뻔한 가해자들을 위해서 주님은 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가르쳤다(마 18:15-17).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자가 다른 형제에게 죄를 지었을 경우에는 피해자는 당사자와 먼저 얘기하라고 한다. 분명하게 죄를 지은 사실을 지적하고 사과를 요청하라는 말이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두세 사람을 함께 데리고 가서 회개를 촉구하라고 한다. 만약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교회 공동체에 얘기하고, 교회 공동체의 얘기도 듣지 아니하면 그를 이방인으로 여기라고 가르친다. 이 말의 뜻은 형제에게 입힌 상처에 대해서 사과하길 거부한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권징의 절차가 교회 안에서 얼마나 제대로 작용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가해자가 교회의 권징을 받아들이고 회개하면 문제는 해결되지만 상당수 가해자들은 그 공동체를 뛰쳐나가 다른 교회로 가버린다. 교인 하나가 아쉬운 다른 교회는 그를 '웰컴'하면서 받아들인다. 이러니 교회의 질서가 땅에 떨어지게 된다. 아니 어떤 썩은 집단은 교회와 교단에 심각한 손상을 준 중범죄자도 돈과 권력이 있다고 징계조차 하지 않는다. 이런 집단의 위계질서가 제대로 세워지겠는가.

안태근 씨가 어려움을 당해 아내를 따라 교회에 다니게 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그런데 그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들이 아직 남아 있다. 이는 그의 회개의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서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일들이다. 피해자에게 진정한 사과가 먼저 있어야 한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식의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인정해서 감옥에 가는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범죄에 대해서는 솔직할 필요가 있다. 만약 자신이 부당하게 압력을 행사한 일이 있었다면 이도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를 해야 한다. 그래야 진짜 회개가 이루어질 것이다. 회개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아뢰는 것이다. 솔직하지 못하면 결코 회개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누구든지 용서받을 길을 열어 두었다. 그러나 용서받지 못할 사람이 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할 수 없다. 복음의 은혜는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용서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죄인들에게만 주어지는 은혜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수많은 안태근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안태근 씨와 비슷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안태근 씨만 비난할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수없는 범법 행위를 하고서도 뉘우침도 회개도 없다. 그러면서 마치 의인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피해자들이 약자인 경우에 그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하면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피해자들은 이들을 볼 때마다 '밀양'의 가해자 모습이 생각날 것이다. 이는 때로 기독교 신앙 자체에 회의가 들게 만든다. 정말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면 이런 가해자들을 그냥 두시겠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하나님의 시계는 천천히 돌아가는 것 같지만 성경의 역사는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셨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심판이 없어도 분명히 최후의 심판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교만한 가해자들이여, 지난 몇년을 돌아보라. 당신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될 것이다. 교만한 가해자들이여, 빨리 회개하라! 그래야 당신도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김진규 /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구약학 교수. <히브리 시인에게 설교를 배우다>(생명의말씀사, 2015), <온전한 사람 (영성편)>(생명의 샘, 2017) 저자. 에스라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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