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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수와 예배당 내려놓자 '비로소' 동네가 보였다

[인터뷰] 군산 지곡동 '착한 일' 거점, 문화 공간 '착한동네' 박훈서 목사

최승현 기자   기사승인 2018.02.05  19: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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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 '거점' 역할을 하는 카페가 있다. 군산 지곡동에 있는 '착한동네'다. 지역 주민을 하나로 모은 박훈서 목사를 2월 2일 만났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박훈서 목사(행복한교회)는 9년간 중국 선교사로 생활했다. 난징에서의 선교사 생활은 비교적 만족스러웠다. 한국 기업이 많아 주재원으로 온 한국인들이 신앙생활했다. 유학생도 많았다. 남경한인연합교회를 맡으면서 약 400명이 박 목사 교회에 출석했다.

그러나 정주하는 한국인은 많지 않았다. 유학생은 졸업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난징을 떠났고, 주재원도 시간이 지나면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 자리를 대신할 사람이 계속 유입되니 목회는 인원이나 재정 모두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공허함이 찾아왔다. 박 목사는 이런 목회가 '논산훈련소' 같다고 생각했다.

마침 한국에서 목회할 기회가 생겼다. 당시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는 상대적으로 교세가 열악한 호남 지방 선교를 위해 '호남 선교 대회'를 열고, 본부에서 호남선교연회 내 8개 지방마다 교회 1개를 개척 지원해 주기로 했다. 없어서 못 가는 개척지인데 재정까지 지원해 준다니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법했다. 선교 이력이 높은 점수를 받았는지, 박 목사가 개척자로 낙점됐다. 1991년 신학교 입학 후 22년 만에 한국에서의 첫 단독 목회가 시작됐다. 교회 이름은 '행복한교회'로 지었다.

박훈서 목사는 교단 지원을 힘입어 군산시 지곡동에 있던 기존 예배당과 땅을 인수했다. 여기에 중국 선교사 생활 중 베이스캠프로 쓰려고 싼값에 산 아파트가 환율 영향으로 크게 오르면서 1억 원 정도의 돈이 생겼다. 이 돈도 고스란히 개척에 쓸 수 있었다. 교회와 땅이 있는 개척교회 목사. 스스로도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어린이·청소년·청년을 중심으로 한 목회를 꿈꾸고 군산 땅에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불행이 시작됐다. 먼저 한 업자에게 예배당 리모델링을 맡기고 한국에 들어왔는데, 들어와 보니 '사기'였다. 돌아와 보니 공사는 마무리되지 않았고 업자는 사라졌다. 일꾼들은 임금을 못 받았다며 박 목사에게 항의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박 목사는 돈을 이중으로 지출해야 했다.

시련은 또 찾아왔다. 어느 주일 아침, 차량 운행을 위해 나와 보니 차가 없어졌다. 전 재산을 탈탈 털어 2600만 원을 주고 산 그랜드스타렉스가 1년도 되지 않아 사라진 것이다. 그즈음, 뉴스에는 전문 털이범들이 군산·서천 지역 일대에서 그랜드스타렉스 5대를 훔쳐 동남아와 중국에 팔아넘기다 잡혔다는 소식이 나왔다. 5대 중 1대가 박훈서 목사 교회 차였다.

여기서 끝나면 좋았을 텐데, 이번에는 교회 공터에 세워 둔 안전펜스의 십자가 구조물이 문제가 됐다. 한 부동산중개업자가 지나가다가 머리를 찧었다며 손해배상을 요구한 것이다. 그는 평생에 걸쳐 흉터를 성형해야 한다며 박 목사에게 3000만 원을 요구하고, 감리회를 상대로 1억 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교단 자문 변호사들은 1억 원은 공갈이니 그냥 합의해 주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1년 후 500만 원에 합의했지만 그것도 개척교회 목사에게 적은 돈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좋은 조건에서 개척을 시작했다고 생각했지만, 연달아 터지는 사건 때문에 박훈서 목사는 그야말로 정신이 나갈 정도였다.

"처음 개척하러 들어왔을 때는 '하나님 만세' 외쳤어요. 이런 좋은 환경이 어디 있겠어요. 선교 9년 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보너스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개척하자마자 사건들이 벌어지니까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죠."

중국 주재원 선교사 9년 차에 한국으로 들어온 박훈서 목사. 모든 호조건 속에서 개척을 시작했다고 여겼지만 시련이 연달아 찾아왔다. 그 시련은 박 목사가 '코털 목회'를 시작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하나님 만세' 외쳤는데 연이은 시련
좌절 중 발견한 '코털 한 가닥'
"코털도 우리 몸 지체구나" 생각에
작은 마음으로 이웃 섬기는 목회 시작

'중국에 가만히 있어도 됐는데 왜 굳이 개척하겠다고 해서 이런 일을 당할까.' 박훈서 목사는 무엇보다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너무 미안한 마음에 함께 못 자겠다며 강단에서 먹고 자겠다고 했다. "울며불며 따졌어요. 기도하고 찬송하고, 별거 아닌 별거를 했죠." 며칠이 지난 후, 화장실에 가기 위해 강단에서 내려온 박 목사는 거울을 보게 됐다.

"폐인처럼 지내서 머리가 부스스하고 수염도 안 깎은 상태였어요. 거울을 봤는데 왼쪽 콧구멍에서 하얀 코털 한 가닥이 자라나 있는 거예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슬프고 화도 나고 자괴감도 들고 복잡한 감정이었는데 거울을 보나 '훗' 하고 웃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어 코털이 있었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각 지체가 연합해서 한 몸을 이룬다'는 성경 말씀이 떠오르더라고요. 코털도 한 몸을 이루는 지체였던 거죠."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지만 작은 웃음을 준 코털, 박 목사는 여기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목회론·교회론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지기 시작했다.

"코털의 역할을 하는 교회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군산에 와서 이 동네 여러 교회에 인사하러 다녔는데, 작은 상가 교회에 있든 자가 건물이 있든 여의도순복음교회(이영훈 목사)나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 같은 대형 교회를 꿈꾸는 곳이 많더라고요.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목회의 성공은 그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제가 좋은 조건에서 개척을 시작하니 시샘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왜 목사가 목사를, 교회가 교회를 경쟁자로 생각할까요.

군산에서 개척한다고 하니까 알고 지내던 주변 목사님들이 '한국 목회는 이렇게 배워야 한다'며 온갖 컨퍼런스에 엄청 데려갔어요. 무슨 트웰브, 무슨 코스 같은 데를 갔어요. 그런 대형 컨퍼런스에 갈 때마다 강사만 바뀔 뿐 다 똑같이 '성장주의'더라고요. 공장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저게 부흥일까' 하는 의문이 있었어요. 그런데 '코털'을 보며 깨달음을 얻었을 때 이런 질문들이 모두 연결되더라고요."

박훈서 목사의 '코털 목회'는 그렇게 시작됐다. 코털 목회가 무엇이라 정의할 수는 없지만, 일단 기존의 관행, 관념을 거부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원 증가에 혈안이 되고, 프로그램 만들어서 등록 절차를 밥아야 멤버십 주는 목회를 배격했다.

"사도행전 11장에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는 구절이 있어요. 이전에는 '그리스도인'에 방점을 찍었는데, 이제는 '비로소'라는 눈이 가더라고요.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해 교인을 삼는 것이 열매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먼저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고 정체성을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 목사는 교인들만의 교회,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웃들에게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었다. 박 목사는 교인과 예배당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목회에서 교인과 예배당을 내려놓으니까 동네와 지역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고 말한 존 웨슬리처럼, 동네를 교구 삼아 이웃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박훈서 목사는 '미리내 운동'을 시작했다. 다음에 올 누군가를 위해 '미리 내는' 것이다. 익명의 이웃이 자신을 위해 나눔을 베풀었다는 사실은, 지역에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왔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언제 전도할까' 불안해하는 이웃에게
커피 내밀며 "착한 마을 만들자" 제안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 박훈서 목사를 경계했다. '결국 전도하려는 것'이라고 의심했다. 박 목사는 핸드 드립 세트를 들고 동네 PC방, 미용실, 컴퓨터 수리점을 찾아갔다.

"믹스 커피 말고 원두커피 한번 드셔 보세요. 에티오피아 시다모라고 하는 원두예요." 설명을 더하면서 눈 앞에서 원두를 갈고 커피를 내려 예쁜 잔에 내어 줬다. 대접받는다는 생각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교회 얘기 언제 꺼낼까' 긴장하는 주민들 앞에, 박 목사는 교회 얘기 대신 '동네' 얘기를 꺼냈다.

"우리 동네가 이웃이 이웃을 돌보는 착한 동네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다들 동의해요. 이 동네 원룸촌에는 가출팸, 동거하는 아이들, 미혼모도 많이 살거든요. 낮술 취한 사람도 돌아다녀서 종종 아이들이 위험에 처하기도 하고요. 이런 약자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의 가치를 회복하는 '착한 동네'를 만들자고 하니까 다들 좋아했어요."

함께하겠다는 동네 주민이 있다는 사실에 용기를 낸 박 목사는, 이웃들과 교회 뒤 공터에 '착한 동네'를 위한 건물을 세우기로 했다. 흔히 말하는 카페 목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동네의 '착한 일'들이 이뤄지는 거점을 만들고 싶었다. 건축 사기 때의 아픔을 스토리로 승화해, 인터넷 목수 카페에서 '돈 떼인 목수' 6명을 모아 그들과 6개월간 먹고 자면서 카페를 지었다.

착한동네 안에는 기부 운동을 하면서 수익을 내기 위한 ‘기부카페Give’가 있다. 또 독서로 실천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자 목회 초기 설립한 ‘무지개작은도서관’과 전시와 묵상 공간으로 마련한 ‘품’이란 갤러리가 있다.

카페는 지역주민들이 이웃을 위한 선행을 도모하는 거점으로 변화했다. 사진 제공 박훈서

카페 '착한동네' 만들자
지역사회 선행 거점으로 자리
주민들이 직접 '미리내 운동' 시작

'공간을 통해 이웃이 선한 일을 도모하게 하자'는 박훈서 목사의 바람은 공간을 마련한 후 현실이 됐다. 박 목사는 이름을 '착한동네'라고 지었다. 그는 착한동네가 곧 '하나님나라'를 뜻한다고 했다.

박 목사는 '미리내 운동'을 시작했다. 미리내 운동은 '미리 낸다'는 뜻으로, 손님들이 자신의 음료값만 지불하는 게 아니라 일정액을 다음에 올 누군가를 위해 먼저 지불하는 것이다. 8000원어치 음료를 구매하고 1만 원을 내면, 2000원은 나중에 방문할 누군가를 위해 쓰인다.

"자기 음료만 먹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누군가에게 선의를 베푸는 거잖아요. 사실 어렸을 때 부침개 부치다 옆집 아이가 혼자 있으면 집에 데려와서 먹이는 게 미풍양속이었는데, 그런 걸 회복하자는 거였어요. 1000원 남은 거 모아서 환경미화원, 집배원, 택배기사들에게 음료 하나 주면 그분들 하루가 행복해져요. 이웃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격려한다는 사실에 힘을 얻는 거죠."

박훈서 목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착한 일 미리내' 운동도 시작했다. 착한 일 미리내 운동은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일정액을 기부한다. 교회로 치면 구제를 위한 '목적 헌금' 같은 것이다. 박 목사는 교회 아이들과 지역 12가정 정도를 돌보는데, '착한 일 미리내' 후원금으로 이들에게 반찬을 제공하거나, 난방비, 빨래 비용, 청소 비용을 지원하는 데 쓰고 있다.

"처음에는 '효도 세탁'으로 시작했어요. 어르신들 집에 가면 아이들이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해요. 가장 큰 원인은 몇 년 지나도 빨지 않은 이불에 있는데, 어르신들이 빨래할 여력이 없고 지출 순위에서도 빨래 비용이 맨 뒤로 밀려요. 그래서 어르신들 이불을 세탁해 드리기 시작했어요. 동네 세탁소와도 협의했죠. '세탁기 돌아갈 때 이불 하나만 같이 집어넣어 주시면 생활 기부하시는 거예요'라고 했더니 흔쾌히 동의하셔서 섬기는 분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빨래를 가지러 오가면서 노인들의 밥상이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음식을 못하는 할아버지들은 맹물에 라면 스프 넣고 국물 만들어서 식사하기도 했다. 어르신들 반찬 기금을 마련하다 보니 '효도 세탁'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이름을 '효도 미리내'로 바꿨다.

'착한 일 미리내'는 지역 노인들 반찬을 챙겨 주는 데서부터 시작했다. 취지에 공감한 주민들이 조금씩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지금은 12가정을 돌보고 있다. 사진 제공 박훈서

지역 주민도 미리내 운동에 호응하기 시작했다. 채소 가게 주인은 나물거리를 내놨고, 어떤 주민은 음식 할 때 1인분씩 더 만드는 '+1 반찬 나눔' 운동을 시작했다. 거창한 기부가 아니었지만 나눔에 동참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웃들이 뭉치는 효과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역 노인뿐 아니라 미혼모 가정, 조손 가정까지 범위를 확대하면서 '효도 미리내'는 현재 '착한 일 미리내'로 이름이 바뀌었다. 지원 가정이 늘어나면서 지원금이 적어지면 반찬 봉사가 중단될까 걱정이 됐다. 안정적인 기금 확보를 위해 정기회비를 내는 비영리단체도 결성했다. 지금은 운영 4년 차에 회원이 55명이다. 운영위원 9명이 단체를 이끈다. 박 목사 외 나머지 위원들은 모두 교회 바깥의 지역 주민이다.

'착한동네' 카페가 이웃을 위한 일을 모의하는 거점이 되면서, 주민들은 시도 때도 없이 '배워서 남 주자'는 모토로 자체 강좌를 열기 시작했다. 카페는 사진 잘 찍는 법, 천연 화장품 만드는 법 등 자기가 잘하는 것들을 남들과 나누는 장이 되었다.

매년 5월에는 카페 앞 골목에서 정기 공연을 개최한다. 삭막한 동네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외부 예술가들을 초청해 마을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다. 지역 주민들은, 팸플릿에 3만 원짜리, 5만 원짜리 광고를 실어 준다. 박 목사는 공연 때마다 주민센터에서 의자와 천막을 지원해 줘, 200석의 훌륭한 야외 공연장이 생긴다고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이웃들의 난방비 마련을 위한 '착한 장터'를 열었다. 이웃들이 기증한 물품을 바자회 방식으로 판매해 수익 430만 원을 남겼다. 이 돈은 어려운 이웃의 난방비와 반찬값, 명절 선물 등으로 쓰일 것이라고 했다.

'선행'에 동참하는 이웃들이 많아지면서 지역은 하나가 됐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고독사 막고 미혼모 돌보고
"같이 있어 주는 게 봉사"
시각장애인 점자 시집 출판하고
시 낭송 프로젝트까지

주위 이웃을 돌아보다 보니 '사고'를 막기도 했다. 봉사 활동차 방문한 학생들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노인들을 세 번이나 발견해 모두 살렸다. 3년 전에는 한 미혼모가 아이를 두고 외출했는데, 5살짜리 아이가 일어나 엄마를 찾다가 출입문을 잘못 만져 밖에서 열 수 없게 해 버렸다. 이를 봉사하러 간 학생들이 발견하고 119에 신고해 구출한 일화도 있다.

거창한 의미의 봉사 활동이라든지, 또는 반대로 시간만 때우기 위해 억지로 하는 봉사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삶과 생존을 위한 봉사였다. 박훈서 목사는 함께 있는 것 자체가 봉사라면서, 봉사자들도 그 사실을 알아 가는 것 같다고 했다. "요즘은 학생들이 할머니들 만나서 화투도 치고 옵니다"라며 웃었다.

최근에는 교회 고등학생들이 다른 의미로 '사고'를 쳤다. 매주 찾아가 봉사하는 시각장애인 아저씨가 시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점자 시를 한글로 옮겨 '시집'을 출판한 것이다. 학생들은 시집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이 아저씨에게 전달했다. 아저씨가 계속 시를 쓸 수 있도록 응원하고, 아저씨는 시집을 판매해 반찬 봉사를 돕기로 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학생들은 미담을 들은 어른들은 시각장애인들에게도 희망을 주기 위해 '배리어 프리(barrier-free)' 시집을 만들기로 했다. 시낭송협회 회원들과 지역 주민의 목소리 기부를 받아 시를 녹음하고, 누구나 편하게 들을 수 있도록 시집에 QR코드를 넣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CD 방식으로 하면 플레이어도 있어야 하고 조작도 해야 하는데, QR코드만 있으면 옆에서 누가 휴대전화로 켜 주기만 하면 된다는 데 착안했다.

QR코드가 담긴 시집을 만들기 위해, 학생들은 텀블벅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월 5일 현재 목표액은 다 달성했지만, 지금대로라면 기존에 인쇄된 책에 QR코드를 스티커로 붙여야 한다. 300%가 모여야 시집을 재인쇄할 수 있다.

박훈서 목사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이 일에 보람을 느끼고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 시집뿐 아니라 다른 읽을거리도 봉사해서 만들어 드리자고 의견을 내더라고요. 선한 일이 확장되는 것이죠. 교회가 (착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 주니까 아이디어가 막 나옵니다"라며 흐뭇해했다.

지난해 5월 카페 앞 '착한동네 골목 광장'에서 요들송 공연을 여는 모습. 사진 제공 박훈서

이제 착한동네는 타도시에서도 사회복지 단체나 마을 공동체에 관심 있는 이들이 꾸준히 찾아오는 곳이 되었다. 박 목사는 세상 단체들도 이런 일에 관심이 있어서 일부러 시간을 내어 탐방하는데, 목회자들과 선교 단체도 자신의 지역에 관심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몇몇 목회자가 '잘되는' 비법을 묻기 위해 착한동네를 찾아온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박훈서 목사는 동네를 변화시키는 비법 같은 건 없다고 말했다. 그보다는 자기가 '코털'에서 깨달았던 것처럼 본질적인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여기 프로그램을 똑같이 한다고 해서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거예요. 저는 코털인데 다른 분들은 무엇으로 부름을 받았는지, '콜링'을 진지하게 고민하면 좋겠어요. 한국 대부분의 교회는 현수막을 내걸고 자기를 드러내려는 일을 많이 해요. 교회가 하려 하지 말고, 지역과 함께하면 좋겠어요. 굳이 직접 하지 않아도, 응원하고 격려하는 역할을 맡을 수도 있잖아요.

중요한 건 '지역의 신뢰'예요. 지역이 교회를 믿으니 미리내 운동에 동참하고, 기부하고, 어깨동무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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