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미국을 방문 중이던 함석헌은 필라델피아 근교 펜들힐이라는 퀘이커 수련원에 머물면서 '누에의 철학'이라는 짧은 글을 썼다(그곳은 이후 '펜들힐의 명상'이라는 글의 배경이 될 정도로 함석헌에겐 의미 있는 곳이었다). 함석헌이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인 이름의 철학을 사용해 표현한 것은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그는 한국과 미국의 거리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멀게 느껴지던 시절, 귀양살이를 하는 심정으로 미국을 돌아보고 있었다. 이 글은 그가 미국 퀘이커들의 정신적 안식처였던 펜들힐에 묵으면서, 한국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철학적 고민과 또 자신의 상황에 대한 성찰을 기록한 것이다. 빈곤한 시대에 글을 쓸 수 없는 심정을 토로하면서 시작하지만, 곧 자신의 사상을 누에와 비교하고 누에의 철학을 말했다. 함석헌은 '누에의 철학'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형상화하고 한국의 철학을 모색한 것이라 읽을 수 있다. 더 나아가 누에를 통한 철학의 자기반성까지 요구한 것으로도 볼 여지가 있다.

'누에의 철학'은 함석헌의 글에서 가끔 보게 되는 글쓰기에 대한 망설임을 토로하면서 시작한다. 글보다는 말을 선호했고, 말의 근원을 (생명의) 소리로 이해했던 함석헌은 쓰자마자 과거형이 돼 버리는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해 언제나 반성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래서 그의 글은 연설문이 아니어도 말로 들리는 경우가 많았고, 소리의 울림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도적인 노력을 자주 엿볼 수 있다. 망설임이나 주저함을 함석헌 글의 성향으로도 읽을 수 있다. 그의 글에서 철학적 이상과 정치적 현실 사이의 고민을 읽을 수 있고, 그 때문에 스스로 절제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 글에선 철학적 함의가 큰 '말씀의 집'과 같은 개념을 더 발전시키지 않은 것을 그 한 예라 하겠다. 함석헌이 '누에의 철학'에서 글쓰기에 대한 관찰을 하게 된 동기를 먼저 살펴보자.

함석헌에게 당시 한국의 상황은 말이 말라 버려 글이 나올 수 없는 상태였다. 생각이 막힌 빈곤한 시대에 살림의 글이 나올 수 없었다. 그에게 생각은 살림 혹은 생활에서 나왔고, 말은 생각이 영근 상태였고, 글이란 말이 닦이어 되는 것이었다. 그에게 글이 있을 수 없는 나라의 상태에서 글을 쓴다는 건 거짓말을 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 자체로 심판과 형벌이었다. 심판과 형벌은 생각이 막히고 말이 말라 버린 시대가 지은 죄의 대가였다. 따라서 말이 말라 버린 시대에 글을 쓰는 것은 저주받은 행위였고, 저주받은 글쓰기는 죄의 대가를 치르는 행위였다. 하지만 죄는 한 개인이 따로 짓는 게 아니었고, 그 대가의 짐도 전체가 지어야 했다. 20세기 중반 미국 정신사의 한 뿌리를 이어 가는 곳에서 외로운 고민을 하면서 쓴 그의 글을 한국의 상황만을 묘사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개인과 전체가 분리될 수 없다고 믿었던 함석헌의 글에서 자기반성과 시대의 반성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누에의 철학'은 자신의 철학을 드러내거나, 한국이란 상황에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반성을 넘어 철학 그 자체에 대한 반성으로 볼 수 있다. 살림을 추구하지 못하고 말과 영혼이 빈곤해진 시대의 사유에 대한 그의 성찰로 볼 수 있다.

생각이 막히고 말이 말라 버린 시대와 누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함석헌에게 누에는 죽은 듯이 느리고 약한 비웃음의 존재였다. 누에는 비단의 영광을 위해 죽임을 당해야 하는, 권력과 도덕과 종교에 의해 희생된 씨알들의 상징이었다. 긴 잠을 자듯 '내일과 모래'를 먹으며 꿈지럭대는 누에는 결국 '죄의 몸'이란 허물을 벗고 끝내 나비로 솟아오른다. 함석헌은 자신의 모습을 변신을 위해 침묵하는 연약한 누에에 비유했고, 자신의 철학을 이런 누에에서 찾았다. 누에가 자신의 살을 뱉어 내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죽고 또다시 살아나는 과정을 함석헌은 말이 살아나는 모습으로 비유한다. 누에가 지은 집은 '말씀의 집'이었고, 그 집을 깨치는 것은 또다시 '내 입의 말씀'이었다. 죽어서 나비가 된 누에는 새 시대를 여는 말씀으로 다시 태어난다. 존재가 언어로 구성되었다는 뜻의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말이 있다. 함석헌의 누에가 지은 말씀의 집은 존재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곳이 아니라, 존재를 변화시키기 위한, 죽음에까지 이르는 언어적 성찰의 공간이었고 새로운 존재와 새로운 언어를 탄생시키는 집이었다.

함석헌의 누에 철학은 죽음을 준비하는 철학이 아니라, 죽음으로 이루는 철학이었다. 나의 죽음이 아니라 약자의 죽음, 억압의 구조를 정당화하는 철학이 아니라, 신음하는 생명을 위한 고난과 생명의 철학이라 할 수 있다. 함석헌의 누에는 스스로 죽어야 살 수 있다. 누에가 몸을 뱉어 내 집을 짓는 과정을 말을 뱉어 내 말씀의 집을 짓는 것이라 했다. 말이 말라 버린 시대에 글을 써야만 하는 상황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런 죽음을 거치지 않으면 새로움을 맞을 수 없었다. 함석헌은 누에가 죽음을 통해 나비로 변신한 것을 새로운 말씀을 하기 위한 것이라 했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말과 새로운 언어를 요구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저주받은 시대의 글쓰기가 아닐까. 여기서 마음에 칼질을 해 시를 썼다는 그의 표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철학의 형상화란 관점에서 '누에'라는 단어를 살펴보자. '누에의 철학'이라는 말은 우선 두 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누에라는 동물이 드러내는 철학적 습성이 있다는 의미와 철학 그 자체를 누에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다. 누에를 통한 철학의 형상화는 후자를 말한다. 철학을 형상을 통해 이해하려는 노력은 철학의 역사에서 꾸준히 볼 수 있다. 빛과 비전이나 지혜를 터득한 현인 또는 숫자나 기하학의 형상을 통해 철학의 본질을 드러내려 했던 철학의 역사는 길다. 비교적 최근에 프랑스의 뒬러즈는 '친구'와 '노인'으로 철학의 단면을 형상화시키기도 했다. 동물을 철학의 형상으로 제안한 예로는 헤겔의 글을 통해 널리 알려진 희랍신화에서 지혜를 상징하는 부엉이가 있다. 함석헌의 누에를 철학의 형상이라 말할 수 있을까. 함석헌은 누에를 한국의 지형과 닮았다는 말을 했다. 누에는 한국 철학의 형상일 수 있을까.

함석헌의 누에를 헤겔의 부엉이와 비교해 보자. 헤겔의 부엉이는 황혼이 찾아와야 비로소 날개를 펼치고 날지만, 누에는 새벽에 고치를 뚫고 날아오른다. 부엉이가 밤에 활동하는 이유는 하루의 역사가 끝났지만 그에 적응하지 못한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서다. 헤겔이 부엉이라는 철학의 형상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역사에 대한 이해가 역사가 종결된 상태가 되어서야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철학은 과거에 대한 사유가 된다. 그 사유는 밤에 나는 부엉이처럼 공격적이고 심판적인 것이었다(함석헌과 헤겔의 비교가 가능하다면, 니체는 어떨까. 니체는 다가올 미래의 철학에 관심이 많았고, 생명의 순환성과 역동성을 담아내는 미래의 철학을 '망치'로 형상화시켰다). 반면에 새벽에 날아오르는 누에는 미래지향적이고 예언적인 철학의 형상이었다. 나비는 누에라는 자아의 죽음을 뒤로 하고 날아오른다.

누에의 죽음은 부정이라는 변증법의 상징도 아니고, 동일한 것의 반복도 아닌, 죽음으로 생명을 이루는 순환적인 가치관을 반영한다. '내일'을 먹고 긴 잠을 자는 누에에게 시간이 빨리 끝나야 한다는 조바심은 없다. 누에의 철학은 사후의 사건이 아니라, 내일이 현재에 진행 중인 삶 그 자체였다. 한국을 누에와 같이 생겼다고 한 함석헌은 자신의 모습, 자신의 가능성을 누에를 통해 발견했다. 그리고 누에의 철학, 나비의 철학을 자신이 품었노라 선언했다. 함석헌에게 누에는 자신의 형상이었고, 한국의 형상이었고, 철학의 형상이었다 말할 수 있다.

그 형상의 의미는 미래적인 것이었지만, 그 미래는 현재의 고난을 전제로 한다. 함석헌에게 누에는 민중의 고난을 상징하는 표현이기도 했다. 누에는 인간이 원하는 비단을 생산하기 위해 키워지는 생물이다. 누에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만든 '말씀의 집'은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고 파괴되고 만다. 그런 누에의 죽음은 누구도 슬퍼하지 않는 생산을 위한 희생이다. 바로 여기서 함석헌의 철학이 시작하지는 않을까. 바로 고난을 통해 새로운 생명의 말씀을 잉태하는 미래의 철학이다. 누에가 민중의 상징이라면 그의 철학은 고난받는 민중의 미래와 가능성을 묻는 철학이었다. 함석헌에게 철학은 미래를 위해 필요했다. 그리고 철학의 미래는 이런 미래를 생각하고 질문을 전제하는 것이었다. 함석헌은 철학과 미래는 분리될 수 없다고 믿었기에 한국에 미래가 있으려면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글은 웹진 <제3시대>에도 실렸습니다.
웹진 <제3시대> 바로 가기: http://minjungtheology.tistory.com/

서보명 / 시카고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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