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평범한 경비원이 염력으로 물건을 움직이는가 하면, 불멸의 삶을 사는 도깨비가 인간의 모습으로 현대사회를 살아간다. 타임슬립, 외계인의 지구 침공 등의 설정은 이제 진부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영상이 구현하는 '상상력'은 현실을 초월한 지 오래다. 기독교는 이 같은 상상력의 결과물들을 어떻게 받아들여 왔을까.

2년 전, 영화 '곡성'(2016)이 충무로를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을 때, "혼합주의", "가룟 유다 같은 영화"라는 비판이 일었다. tvN 드라마 '도깨비'가 선풍적 인기를 끌던 1년여 전, 인터넷상에서는 이 드라마가 사단과 종북의 정체를 교묘하게 숨기고 있다는 글이 나돌았다. 최근 개봉했던 '신과 함께'(2017)는 사후 세계를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때만 되면 특정 드라마나 영화가 반기독교적이라는 주장이 떠돈다.

기독교인은 드라마나 영화의 상상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할까. 영상문화연구소 필름포스[FilmPOS(People On Sunday), 공동대표 임세은·최은]가 '판타지는 믿음을 배반하는가'라는 주제로 2월 셋째 주 토요일부터 격주로 <뉴스앤조이>에 영화 칼럼을 연재한다. '신과 함께'부터 '블레이드러너2049'(2017)까지 총 6편의 작품을 다루는 칼럼을 통해, 상상을 특화한 판타지 장르 영화를 기독교적으로 어떻게 향유할 수 있는지 보여 주고자 한다.

빅퍼즐문화연구소에서 필름포스 멤버들과 만났다. 뉴스앤조이 강동석

필름포스는 임세은·최은 영화평론가, 류현 콘티작가, 유지은 영화 제작 강사, 장다나 영화칼럼니스트, 강도영 빅퍼즐문화연구소 소장 등 영상계에 종사하는 기독교인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이들이 한 꼭지씩 돌아가면서 글을 연재할 계획이다. 1월 26일, 빅퍼즐문화연구소에 모인 필름포스 멤버 6명과 만났다. 필름포스가 어떤 단체인지, 기독교에서 통용되는 문화 담론과 이번 연재를 두고 대화를 나눴다. 질의응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 필름포스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최은 / 영상 분야에서 활동하는 기독교인들은 다들 각개전투, 각자도생하는 중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어려움을 알고 있었고, 기댈 곳과 네트워크가 필요했다. 기독교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활동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모이면 의지가 되고 힘이 되지 않을까 싶었고,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연대'와 같은 느낌으로 2016년 초부터 모이기 시작해, 같이 영화 보고 책 읽고 이야기 나눴다. 2017년 11월, 연구소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 단체로 등록했다. 각자의 일을 존중하되 '연구'는 해 보자는 차원에서 올해 저널 한 권을 내는 것과 온라인에 글 쓰는 작업을 하려 한다.

문화 예술 분야에 다양한 담론을 형성하는 것이 우리의 장기 목표다. 기독교인들에게는 문화 예술의 어떤 이슈에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정답을 찾고 싶다는 생각에 권위 있는 사람의 말을 듣고 사안들을 판단하고 싶어 한다. 우리 멤버들만 해도 각자 활동하는 영역이나 관점이 다양하다. 다양한 목소리가 충분히 존중받으면서 믿음이나 우리가 신뢰하는 가치가 훼손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복음과상황>, 라디오 'CBS광장'에서 영화평론가로 활동 중인 최은 공동대표는 문화 예술 분야에 다양한 기독교적 담론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강동석

- 현재 기독교에서 통용되는 문화 담론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2016년 영화 '곡성'이 개봉하자 "혼합주의", "가룟 유다 같은 영화"라는 이야기가 교계를 떠돌았다. 최근 개봉한 '신과 함께', '코코'의 경우에도, 사후 세계 이해를 왜곡한다는 메시지가 돌기도 했다. 때마다 비슷한 이야기가 되풀이된다는 느낌이다.

최은 / (기독교 문화 담론이) 나름대로 다양하게 이야기됐다고 생각한다. 다만 각자의 자리에서 혼자 해 온 것이다. '코코'나 '신과 함께' 등에 대해서는 실제로 주변에서 물어보기도 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누군가 해석해 주고, 얘기해 주기를 바라면서 이슈화하는 것 같다.

기존 문화 운동에도 긍정적인 요소가 분명 있다. 다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논의가 발전적으로 나가야 하는데, 10년 넘게 쌓이지 못하고 흩어지는 느낌이다. 여전히 똑같은 문제를 두고 똑같은 이야기만 하고 있다. '곡성'이 왜 귀신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코코'는 왜 사후 세계를 다뤘으며, '신과 함께'는 왜 지옥을 그런 식으로 그렸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소모적 논의를 지속하면 담론이 더 나아가지 못한다.

예를 들어, 기독교를 비판적으로 그리는 영화가 있다고 치자. 그러면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역시 기독교는 저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저런 모습 말고 진짜 기독교가 말하는 복음의 삶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끄집어낼 수 있다. 그런 고민을 끄집어낸다면, 그 영화는 오히려 복음적일 수 있다.

교회를 욕하니까 이상한 영화라고 생각하고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냉소적으로 끝나지 않고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이야기해야 한다. '나쁜 영화'라고만 하면 의미 있는 텍스트가 버려질 수도 있다. 우리는 대중문화가 할 수 있는 일에 긍정하는 입장이다. 경계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얻을 수 있는 게 훨씬 많다.

류현 / 교회 안의 교육이 제 역할을 못 했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 '다빈치 코드'가 개봉했을 때 이 영화에 반대하는 이론서들이 출간되지 않았는가. 교회가 얼마나 신학이나 신앙 등 믿음에 대한 부분을 허술하게 가르쳤으면 영화 한 편에 그렇게 반응하겠는가. 영화 한 편에 흔들릴 정도의 신앙밖에 양산하지 못하는 가르침이 문제다. 성경과 하나님에 대한 부실 교육이 문화에서 특정 담론을 죄악시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듯하다.

그리고 제작 차원에서 교회 활동을 보면, 영화나 영상 자체가 목사가 하는 설교의 하위문화처럼 종속해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설교에 필요한 예화 영상을 만드는 정도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한계다.

류현 콘티작가는, '과속 스캔들'(2008), '인간 중독'(2014), '국가대표2'(2016) 등 영화 20여 편에 이름을 올린 영화 제작자다. 뉴스앤조이 강동석

임세은 / 서구의 경우, 세속화하면서 역사·정치·예술 분야가 종교 바깥으로 나오게 되는 역사적 맥락들이 있었다. 종교 안에 갇혀 있던 영역 중 예술·문화 분야에 국한해서 보면, 이 영역이 나름의 필연성을 따라 종교 밖으로 나오면서, 문화적 전통을 계승하기도 하는 등 논의가 진전돼 왔다.

한국의 경우, 기독교가 외부에서 들어오지 않았나. 서구의 긴 역사와 다른 상황이기에 종교와 문화가 구분하는 경향이 강하다. 종교 차원에서는 교계에서만 하는 활동으로 한정돼 다뤄졌다. 서구에서는 종교 전통이 문화를 비롯한 전문 영역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되는 측면이 있다. 다양한 문화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발견하는 식별 안이 필요하다.

최은 / 대부분 기독교인은 문화를 도구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문화를 일반 은총으로 본다. 우리가 일상생활하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문화 안에서 우리가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의 은총이자 선물인 문화를 그 자체로 누리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고, 도구적으로 어떻게 활용할까만을 생각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기독교인이 어떻게 영화와 같은 문화를 일반 은총으로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하고, 그 고민을 공유하는 일이 중요하다.

- 앞서 지적한 것처럼, 많은 교회가 도구적으로, 하위문화처럼 영상을 소비한다. 그리고 어떤 영화는 봐야 하고, 어떤 영화는 보면 안 된다고 쉽게 판단 내리고 검열하면서 반문화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최은 / 영화를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 특정 영화가 위험하다는 생각에는 문화가 힘이 세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영화를 굉장히 두려워하는 것 같다. 영화가 그만큼 굉장한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세대는 영상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이 나온다. 그런 흐름에 따라 교회도 영상에 투자하고 있다.

일상에서 날씨가 힘이 센 것은 사실이고 밥이 힘이 센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극도의 공포와 극도의 신봉, 극단적인 것은 통한다. 영화가 왜 선교로 쓰이지 못하느냐고, 영화에서 왜 성경 속 이야기를 이렇게밖에 못 다루느냐고 욕하는 것은 다른 의미의 맹신이다.

우리가 우리 믿음 안에서 영화를 비롯한 문화를 잘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해석되는 경험'이 자신감을 심어 주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겁만 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별것 아니라는 것. 영화가 엄청 힘이 센 줄 알았는데, 영화가 못 하는 것이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면서 우리 믿음 안에서 소화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히는 일이 중요하다. 이런 작업이 문화의 저변을 확대할 수 있다.

강도영 소장은 선교적 교회 맥락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과거 방송국과 영화사에서 수입 및 배급을 맡아서 일한 바 있으며, 신학 공부를 한 뒤 현재 주말에는 광교산울교회 청년부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강동석

강도영 / 교회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만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교회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가. 구원이다. 구원과 곧바로 연결되지 않는 다른 사역은 부차적으로 밀린다. 문화 사역이 구원과 연결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문화 사역도 구원과 직결되는 사역이라고 본다. 구원과 직결되지 않는 2차 사역이라고 생각하면 열등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다. 동일한 차원의 사역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도구적이지 않을 수 있다.

이는 '구원이 어떻게 오느냐', '구원 개념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일을 전통적 관점의 구원에서도 설명할 수 있겠지만, 성경 속 구원의 스펙트럼은 넓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을 봐도, 배타주의 기독교와 포괄주의 기독교 그리고 다원주의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 상당히 다르다. 그 스펙트럼이 넓은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어느 한 지점으로 귀결하는 경우가 많다.

여러 구원의 스펙트럼에서 문화를 통해 이뤄질 수 있는 구원의 일부분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확신과 논의가 있어야 한다. 내 생각과 다르니까 "저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보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며 새로운 지점을 발견해 나가는 작업이 중요하다.

유지은 / 인간은 다원적인 존재이고, 우리 삶은 총체적이다. 감수성과 가치관, 삶이 복잡다단하다. 인간에게 오는 구원을 한 방향에서만 생각하고 반응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거나 반응하는 것은 교회 교육을 비롯해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술은 삶의 다단한 부분, 다면적 부분을 건드리고 이야기하고 열어 준다. 다양한 예술에 대해 교회에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에서 편협하게 가르치는 부분이 많기에 기독교가 문화와 대립하고 갈등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제작 강사이자 독립 저널 <영상이몽> 발행인 유지은 씨는 교회가 복잡다단한 삶의 양상을 놓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중파와 종편방송에서 수백 편의 프로그램을 연출한 경력이 있다. 뉴스앤조이 강동석

류현 / 잘 만든 영화는 대부분 '화평'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범죄를 다루는 영화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교회는 이것들을 (액면 그대로) 무조건 '싸움'이나 '전쟁'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1980년대 이후 낮은 울타리 운동이 진행되면서, 모든 문화 관련 활동이 사탄과 관련돼 있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기독교가 완전히 문화를 적으로 만든 것 같다. 거기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교회 청소년 대상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 회사에서 설명회를 하면서 보여 주는 영상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우주 전쟁'에 나온, 외계인이 지구로 침투하는 장면이었다. 대표가 이 영상을 보여 주며 "상상력으로 만든 저 영화가 계시록에 나오는 지구를 멸망하게 하는 괴물들 형상과 닮지 않았느냐"며 적그리스도적이라고 말했다. 웃기는 이야기다. 저 캐릭터, 빌런을 디자인하면서 계시록에서 이미지를 가져왔다고 생각하지는 못하는 걸까. 적그리스도라는 규정이 합당한가. 이건 그냥 싸우자는 이야기 아닌가. 현재 기독교 기조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최은 / 동의한다. 많은 영화가 성경에서 상상력을 빌려 온다. 성경이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하고 있는데, 기독교가 오히려 그것을 끊어 내고 있지는 않은가.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질 때는 다양한 사회적 맥락과 많은 사람의 주관과 타협이 들어간다. 물론 적그리스도적 측면이 영화 속에 있을 수도 있다. 텍스트마다 다를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우리가 텍스트를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은 채로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는 부분이다. 결론이 어떻게 나느냐보다, 보이는 것만으로 너무 쉽게 단정 짓는 게 우리 문제다. 잘못된 선입견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필름포스는 '판타지는 믿음을 배반하는가'라는 주제로 <뉴스앤조이>에 칼럼을 연재하기로 했다. '블레이드러너2049'를 비롯한 판타지 장르 영화를 다룰 예정이다. '블레이드러너2049' 스틸컷

- 이번에 '판타지는 믿음을 배반하는가'라는 주제로 영화 칼럼을 연재한다. 연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최은 / 영화는 기본적으로 상상에 기초한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비성경적인가 성경적인가를 판단한다. 비성경적이라고 판단하면서 영화의 상상력을 금지하는 것이 과연 우리 믿음에 부합하는 일인가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특히 판타지 장르는 영화의 상상을 더욱 특화한 것이니까. 판타지 장르의 특징이 일부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거나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 주고 싶다.

류현 / 오늘날 교회에서 성경적이라고 전제할 때의 상상력은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을 벗어나면 안 되는 것이다. 태초의 이야기는 창세기를, 종말의 이야기는 요한계시록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것이 성경이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판타지다. SF 등 판타지 영화의 상상력은 요한계시록 바깥에 있다. 이를 사탄이 주는 상상력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단순하게, 그 틀에서 벗어나자는 측면에서 이 주제를 다룰 수도 있다.

임세은 공동대표. 그는 현재 <국민일보>에서 '임세은의 씨네-레마'라는 영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강동석

임세은 /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상상력을 위험한 것으로 치부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에스겔서나 요한계시록을 보면 굉장히 판타스틱한 얘기가 오간다. 시대를 읽는 사람, 시대를 읽어서 다음 세대를 이야기하는 사람을 선지자라고 한다. SF, 미래에 대한 상상은 현실에서 나온다. 지금의 현실에서 출발해서 미래에 대해 상상하는 것이다. 성경에 나와 있는 선지자들의 목소리가 그렇다.

판타지 영화에서도 우리가 들을 만한 이야기가 분명 있다. 영화 '노아'로 치면, 꼭 성경에 있는 대로 그려 내야만 성경적인 것인가. 다른 요소가 들어가면 비성경적인가. 아니다. 한 편의 텍스트가 보여 주는 주제와 메시지, 그것을 풀어내는 상상력이 지금 이 시대 현실을 향한 전언일 수 있다.

기독교인은 가능한 한 많은 것을 해석하고 확장해서 이야기하고, 다시 전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설교자 이야기도 들어야 하겠지만, 바람결에 흘러나오는 얘기, 세상에서 나오는 얘기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교회의 선교자만 진리를 독단적으로 점유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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