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서울 강동구 상일동 변두리 한 주택가.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인 이곳에 미처 재개발에 들어가지 못한 낡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빨간 벽돌로 된 다세대주택과 세탁소, 어린이집, 배달 음식점 등이 들어서 있다. 오래된 골목길을 걷다 보면 동네와 어울리지 않는 작은 카페가 하나 나온다. 6평 규모의 카페 이름은 '에클레시아(EKKLESIA)'. 카페 사장 양광모 목사(바로세움정립교회)는 이 작은 카페에서 매일 기적 같은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에클레시아는 그리스어로 '밖으로 불러 모으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기독교에서 '교회'를 가리킬 때 이 단어를 쓴다. 양광모 목사는 2012년 카페를 만들 때, 지역 주민을 섬기고 신앙의 본질을 추구하기 위해 이름을 에클레시아라고 지었다. 여기서 교회가 꼭 건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카페에서 만난 12명의 동네 아주머니 모임 이름도 '에클레시아'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모두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 카페 단골로, 양 목사를 통해 지금은 서로의 애환을 허물없이 나누는 이웃사촌으로 지내고 있다.

6평 남짓한 카페 에클레시아. 동네 아주머니들이 매일 같이 이곳을 찾는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대형 교회 부목사 거쳐 중형 교회 담임목사로
새로운 목회 방식 찾으려 2년 만에 사임
"기성 교회, 커지고 영향력 확대하려 해"

양광모 목사는 한때 잘나갔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동안교회(김형준 목사)에서 수석부목사를, 기독교한국침례회 이동원 목사가 시무하던 지구촌교회에서 비서실장과 사역조정실장을 역임했다. 2010년부터 예장통합 정릉제일교회에서 담임목사를 지냈다.

탄탄대로를 달리던 양 목사는 정릉제일교회에 부임한 지 2년 만에 사임했다. 그리고 서울 변두리에 있는 상일동에 카페와 교회를 세웠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안정된 목회지를 그만두고, 젊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었다. 1월 26일, 카페 에클레시아에서 만난 양 목사는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세우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틀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어요"라고 말했다.

정릉제일교회는 이전에 1000명 넘게 출석하는 중형 교회였다. 양광모 목사는, 교회가 지역사회에 가진 것을 내놓고 헌신하길 원했다. 교회가 수적으로 부흥하기보다 내적으로 성숙하는 걸 중요하게 여겼다. 이런 고민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겠다는 생각에서 담임목사직을 내려놓았다.

"부목사 시절에는 제가 책임져야 하는 역할에만 몰두했어요. 담임목사가 되고 나니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진정한 신앙 공동체가 무엇인지, 건강한 교회가 어떤 건지 깊이 고민했어요. 교인 수가 많다는 이유로 건강한 교회다, 건강한 공동체다 규정할 수 없어요. 하지만 기성 교회에서는 이런 인식을 벗어던지기 어려웠어요. 교인들도 교회가 커지고 지역 안에서 영향력이 확대되길 바랐죠. 한계를 느꼈어요. 아예 기존과 다른 새로운 방식의 목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담임목사직을 내려놓은 이유에요."

형편 어려워 택시 운전대 잡아
힘들게 살아가는 소시민 삶 이해
바리스타·로스팅 자격증도 취득

양광모 목사는 2012년 11월 바로세움정립교회를 개척했다. 미국 세이비어교회가 지역 주민을 섬기기 위해 만든 포터스하우스를 롤모델 삼아 카페 에클레시아도 창업했다.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가게 영업은 전문 지식과 경험이 필요한 영역이었다. 초기에는 계속 적자가 났다. 양 목사는 카페 수익을 개척 멤버 부목사, 전도사에게 사례비로 줬다. 대신 자신은 택시를 몰았다. 새벽에는 법인 택시기사로, 저녁에는 바리스타로 일했다.

주변에는 택시 운전을 한다고 알리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매일 새벽 4시 30분 택시 운전대에 오를 때마다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 동안교회·지구촌교회·정릉제일교회 교인들은 제발 만나지 않게 해 주세요.' 택시 운전은 수많은 소시민의 일상을 엿보는 경험이었다. 양 목사는 택시기사로 일할 때만큼 자신의 영성이 반짝였을 때가 없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택시기사와 목사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다르다는 걸 실감했어요. 택시를 운전했던 그 짧은 기간 힘들게 살아가는 택시기사의 삶을 경험할 수 있었죠. 동시에 세상 수많은 사람이 오늘날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지 잠깐이나마 엿볼 수 있었어요.

이후 교회에서 옷 차려입고, 거룩한 목소리로 설교할 수 없었어요. 교인들에게 '여러분 지난 한 주 어떻게 살았어요' 하고 물으며, 같이 힘들었던 일을 얘기하고 함께 울면서 위로하고 격려하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카페 영업에도 열심을 냈다. 사람들이 돈을 주고 사는 상품이니, 그에 걸맞은 가치를 제공하자고 다짐했다. SCAE(유럽스페셜티커피협회)에서 공인한 바리스타·로스팅 자격증을 취득했고,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다고 알려진 미국 CQI 공인 Q-Grader(커피품질평가사) 자격을 따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입소문과 함께 단골도 하나둘 생겼다.

양광모 목사는 지역사회를 섬기기 위해 카페 에클레시아를 만들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한국교회 위협하는 '돈'
"자비량 목회, 교회 개혁하는 하나의 수단"

오늘날 한국교회는 지탄의 대상이 됐다. 교회가 사회를 걱정해야 하는데,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는 상황이다. 양 목사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 지경이 된 건 '돈'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대형 교회에서 오랫동안 사역해 봐서 그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의 소지를 잘 알아요. 담임목사가 기득권, 특히 돈에 자유롭기가 어려운 구조죠. 교회는 이익집단이나 기업이 아니에요. 주님이 머리시고 그 주님의 몸이 교회예요. 목사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에 따라 말씀을 전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지, 자기 마음대로 교회를 좌지우지할 수 없어요. 결국 돈이 문제죠. 목회자가 재정을 마음대로 운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니, 시험에 빠지는 것이죠."

양 목사는 목회자들이 돈에서 자유로우려면 '자비량 목회'를 확산해야 한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모든 목회자가 자비량 목회를 할 수는 없지만, 하나의 대안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했다.

"목회자가, 교인들이 일주일간 고생하며 번 헌금을 사례비로 받아도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교회 예산을 봐도 대다수가 교회 유지비와 목회자 사례비로 지출되니까요. 사실 교회 헌금은 구제와 선교에 더 많이 써야 하지 않나요. 개신교에는 바울이 보인 좋은 전통이 있어요. 바울은 필요한 돈을 선교지에서 직접 벌어다 썼어요. 바울의 자비량 목회 정신을 회복하면 한국교회도 변화되지 않을까요."

양 목사가 벽에 걸린 자격증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커피가 동네에서 가장 맛있다고 자부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카페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 묶어
<고백 에클레시아> 출간

양광모 목사는 자신의 개척 이야기와 카페에서 겪은 경험을 정리해 최근 <고백 에클레시아>(선율)를 출간했다. 책에는 매일같이 카페를 찾는 단골들 이야기가 나온다.

남편이 운영하는 사업이 어려워져 집과 살림을 압류당할 뻔한 진영 엄마 이야기와 의붓어머니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다시는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한 가람 엄마 이야기, 단골손님 중 불교 신자였던 사람이 사업장을 예배 공간으로 쓰라며 제공한 이야기 등 여러 에피소드가 담겼다.

양 목사는 사람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교회에 출석하라고 권하거나 어설픈 논리로 개신교를 변호하지 않았다. 삶으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손님들은 다른 기독교인과 달리 예수의 '예'자도 꺼내지 않고 전도도 하지 않는 그를 이상하게 여겼다.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갈수록 양 목사와 주민들 간에는 신뢰감이 형성됐다.

"하나님과 교회를 외면하고 있는 저에게 카페 에클레시아는 하나님을 다시 생각하게 해 주는 공간입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여전히 교회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을 주저하고 있는 제게 하나님과의 끈만은 놓지 않게 해 주시는 분들입니다. 표현도 못하고 말도 예쁘게 하지 못하고 투정만 부리는 저지만, 마음속에 목사님과 사모님의 진심 어린 사랑을 항상 느끼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힘든 시간을 버티며 이겨 내고 있습니다. - 단톡방 에클레시아 멤버 노영심." (<고백 에클레시아>, 37쪽)

"어느 날 문득 가족들의 저녁상을 치우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왜 매일 카페 에클레시아에 가고 있는가?' 그리고 내린 답은 '그곳에 다 있으니까!'였습니다. 서로 돕고 섬기고 채워 주는 사랑스런 친구들이 그 공간에 다 있으니까요. - 단톡방 에클레시아 멤버 김진희." (<고백 에클레시아>, 111쪽)

"교회, 목사님, 사모님은 어렵고 불편한 존재라는 편견이 깨어졌습니다. 아메리카노의 향과 맛의 풍미를 알아 가는 것 이상으로 목사님과 사모님에 대해 깊이 알아 갑니다. 때로는 친정 오빠, 언니처럼 편안한 분으로, 때로는 고민을 상담하고 어떤 넋두리도 받아 주는 선생님 같은 분으로 두 분은 저와 가까운 곳에 항상 계십니다. 그렇게 카페 에클레시아는 제게는 '편견이 깨지는 곳'입니다. - 단톡방 에클레시아 멤버 김혜영." (<고백 에클레시아>, 246쪽)

양광모 목사는 그동안 교회 울타리 안에만 있다 보니, 교회 밖 사람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전무했다고 말했다. 그런 양 목사는 20년 목회 인생에서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카페에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 목사는 교인들에게 '찾아가는 교회'를 강조한다. 새벽 예배, 수요 예배, 금요 철야는 하지 않고 일요일 오전에 한 번 예배를 드린다. 교회 성장과 전도는 지양한다. 양 목사의 이름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도 종종 있는데, 그럴 때마다 정중히 사양하고 다른 교회를 안내해 줬다. 그래서 교인 수는 25명으로 개척했을 때 그대로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성장과 건축만 강조했어요. 이제는 달라져야 해요. 적은 수라도 생명령 있는 사람으로 길러내 각자의 일터나 가정에서 다른 사람을 섬기고 삶을 나누는 게 더 중요하죠. 교인들에게 늘 당부해요. 여러분이 각 현장으로 흩어져 교회를 세우라고."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