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새해 벽두부터 일반 언론이 다시 명성교회 세습 문제를 다루었다. 명성교회가 공식 사과하며 교단지에 광고를 실었기 때문이다. 명성교회는 "교회 일로 한국교회와 많은 교우에게 큰 걱정을 끼쳐 드린 것에 대해 깊은 사과를 드린다"고 했다. 일반 언론의 눈에는 이것이 반쪽 회개로 보였다. 진정성 있는 회개라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명성교회세습반대를위한신학생연대는 사과문에 즉각 반박 성명을 내며 "진정한 사과는 세습을 철회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서초동 '사랑의교회'는 공공 도로를 점유해 교회당을 지으면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라고 찬양했다. 교회는 영적 제사법이 있다며 온갖 권력과 돈을 동원해 사회의 법을 무시하며 뻔뻔하게 지내다, 1월 11일 서울고등법원의 판결로 391억 원을 들여 교회당 지하 공간을 되돌려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 소식은 각 언론에 보도됐다. 법원은 도로점용이 위법이며, 점용을 취소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사랑의교회는 이번 판결을 존중하지만 대법원까지 항소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사회 섬김은 이어 가겠다고 화답했다고 한다.

두 교회의 모습은 너무도 닮아 있다. 불법을 당당하게 저지르고, 더 나아가 회개할 줄도 모른다.

우리는 여기서 참회개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회개는 신앙인에게 매우 중요한 열쇠다. 회개 없이 신앙의 길로 들어설 수 없다. 신앙의 길 위에서도 순간순간 잘못을 저지른 일을 회개하지 않으면 성숙할 수 없다. 죄는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한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기 마련이다. 또한 죄악이 발생하는 것에 영향을 끼치는 나쁜 구조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진정한 회개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 교회와 목사는 죄를 개인 내면의 문제로 치부한다.

이렇게 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죄에 대한 회개'를 종교 영역에만 가두어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들이고 성직자에게 맹종하게 하려는 종교 권력의 탐욕이다. 이 같은 교회는 끊임없이 신도 내면에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고 두려움을 심어 준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 회개하라고 하니, 교회의 각종 예배와 기도회에 빠지지 못하게 되고, 죄책감을 벗게 해 주는 헌금을 강요당한다. 가해자의 죄책감을 벗겨 주는 서비스를 잘해 주니 교회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이들은 사회에서 무슨 짓을 해도 무감각하게 된다. 이렇게 가르치며 설교하는 목사는 하나님의 대리자 역할로 신도들과 관계를 맺고, 신도들은 교회당만 들어가면 사회적 신분과 관계없이 바보 또는 노예가 된다.

문제는 그들이 죄를 범해도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단지 자신의 죄책감만 벗으면 된다고 생각해 울며불며 회개 기도를 하고 교회에 착실히 나가 하나님께 잘 보이기만 하면 된다고 여긴다. 피해자에 대한 생각과 왜 이런 악이 생겼는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는다. 이렇게 회개한 사람들은 뻔뻔스럽게 피해자 앞에서도 당당하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2007)에서 살인자가 아이를 잃은 엄마에게, 자신은 하나님께 용서를 받아 평안하다고 말한 것과 같다. 아이 엄마는 하나님께 그런 용서 권한은 없다고 울부짖고, 교인들을 혐오하며 집회 현장에서 '거짓말이야'라는 노래를 틀며 이를 고발한다.

회개는 관계 회복이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회복이고 사회적 관계 회복이다. 잘못을 돌이켜 관계 회복의 열매를 맺고 잘못된 가르침(신학)을 멈춰야 한다. 우리는 거짓 회개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거짓 회개를 자주 하면 양심이 마비된다. 이기심은 그대로 있고 탐욕은 더 커진다. 하나님을 속이려는 무서운 기만행위가 거짓 회개다. 명성교회가 세습을 회개하려면, 아버지와 아들 목사는 명성교회 교인들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세습을 철회한 뒤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우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노회와 총회 내 형제 교회들과의 관계도 세습 철회를 통해 회복해야 한다.

명성교회와 사랑의교회는 사회보다 못한 윤리 도덕 기준을 인정하고, 세습 철회와 불법 교회당 철거를 통해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사과하는 척하는 일시적 변화로 속이면 망하게 된다. 성경은, 그런 자들은 얼마 못 가 옛 상태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많이 경고한다. 그 예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거짓 회개를 반복하다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외친 것이다(눅 3:8).

방인성 / 함께여는교회 목사,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실행위원장, <뉴스앤조이> 이사장

방인성 목사.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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