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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역사신학

[서평] 우병훈 <처음 만나는 루터>(IVP)

이정규   기사승인 2018.01.10  17: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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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신학은 겸손합니다. 아니, 최소한 겸손을 추구합니다. 역사신학은 과거로부터 배우려고 할 뿐 아니라, 현재 우리가 믿고 있는 모든 교리와 우리가 행해야 할 윤리들이 어떻게 우리의 선배들에게서 왔는지 추적합니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미래 후배들에게 무엇을 물려줄지 고민합니다. 그래서 역사신학은 겸손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역사신학의 과제가 성공적으로 수행될 때, 역사신학은 이 모든 역사의 인물들 가운데 주인이신 삼위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나 역사신학은 쉽게 교만의 도구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과거의–그것도 유명한 과거의–목소리가 가지고 있는 권위와 힘을 알기에, 자신이 주장을 담기 위해 과거를 비틀어 인용합니다. 혹은 현재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입지를 활용하고 굳히기 위해 과거의 목소리를 사용합니다. 본래 위대한 과거의 인물은 "한 사람의 해석으로는 다할 수 없는 (중략) 전체적인 위대성"1)을 가지고 있기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하여 자신의 상상력을 투영시켜 그를 바라보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때 역사신학은 가장 교만해집니다.

종교개혁은 (로마 가톨릭을 포함한) 기독교에서 가장 유명한 과거이며, 루터는 그중 가장 밝게 빛나는 별입니다. 그렇기에 루터 같은 이의 초상을 한 사람이 완벽하게 그려 내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게다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그에게 매료되고, 그에 관한 많은 말을 쏟아 냈기에, '처음 루터를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루터에 관한 많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종합·정리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지요. 이것이 수많은 루터 연구서가 있음에도 또 다른 루터 연구서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병훈의 <처음 만나는 루터>(IVP)는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효과적이고 유용한 루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지요. 저는 이 책의 몇 가지 특징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책이 말해 주는 루터와 더불어 참된 역사신학의 가치를 말해 보려 합니다.

<처음 만나는 루터 - 개혁과 건설에 온 삶을 건 십자가의 신학자> / 우병훈 지음 / IVP 펴냄 / 320쪽 / 1만 5000원

통합적 인물 해석

루터 같은 인물을 연구하는 이의 자격은 그가 어느 출신인가에 있지 않습니다(물론 이 문제는 중요하지요). 그것이 루터 연구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면 연구자는 필히 독일인이며 루터파에 속하고 루터 연구가 아래에서 배운 사람이어야겠지요. 중요한 것은 다양한 자료(1차 자료인 루터 전집을 포함해서)를 해석하고 이해하며 종합하는 능력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가급적 원전을 근거로, 다양한 학자의 연구를 참조하여, 다각적이고 균형 잡힌 인물에 대한 상(狀)을 그려 내어 현대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통합적 연구 능력 말이지요.

뜻밖에도 이것은 성경 연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성경 주해는 성경 본문의 원문(히브리어와 아람어와 헬라어)을 근거로, 본문에 대한 다양한 학자의 연구를 참조하여, 다각적이고도 균형 있게 본문을 이해하여 저자의 의도를 잡아낸 후, 현대의 관점으로 어떻게 본문을 적용해야 하는지를 고민합니다.

여기서는 통합적 사고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예컨대 "우리에게는 성경 본문의 의미만 중요하지, 교리나 조직신학 따위는 필요 없다. 과거의 학자들이 본문에 대해 뭐라고 말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성령의 도움으로 본문을 이해하면 된다"라고 말하는 성경 주석가가 있다고 합시다. 이런 주장은 얼핏 들으면 솔깃하지만, 이 사람의 본문 연구는 거의 가치가 없을 것이 확실합니다. 자신의 선입견 가득한 생각에 본문을 투영해 자기 의견을 하나님 뜻이라고 억지 주장 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이 연구에는 성령의 도움이 없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우병훈의 루터 연구는 이런 측면에서 역사신학의 모범에 가깝습니다. 저자는 루터의 독일어 원전[필요한 경우 영역본(英譯本)]을 근거로 루터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해 주고, 공시적·통시적 방법을 모두 사용하여 루터의 생애를 분석합니다. 그 가운데 신뢰할 만한 학자들 의견과 연구를 소개하고 평가하며 자신만의 결론을 도출합니다. 정확한 사료에 근거해서 말이지요. 게다가 루터의 생애는 그의 신학과 절대 분리할 수 없기 때문에, 그가 했던 일들과 당시 상황에 어떤 신학적 배경이 있었는지, 그리고 루터가 주장했던 신학의 어떤 면이 당시의 상황을 만들어 냈는지를 이야기해 주지요. 그리고 현대의 눈으로 적용점과 의미를 찾아내어 우리에게 전달해 줍니다.

이러한 특징은 이 책 구성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저자는 루터의 생애를 시기별로(통시적) 나누어 모두 12장으로 구성합니다. 각 장에는 시기별 루터의 생애가 담겨 있고, 해당 시기의 신학 이슈에 대한 설명이 있고(여기서 공시적 접근이 사용됩니다), 학자들의 논쟁이 요약되며, 저자의 결론 및 적용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즉, 매 챕터에 '역사/신학/적용'이 존재하지요(사견이지만, 이것은 저자가 집중적으로 공부했던 17세기 개혁파 신학, 그리고 지도 교수였던 리처드 멀러의 영향이 다분한 것 같다). 통합적으로 생애와 신학이 함께 나타납니다. 이로써 루터는 단순히 격동의 시기에 흥미로운 삶을 산 옛날 사람인 것을 넘어, 현대의 세계에 의미를 가지는 인물로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최신 연구에 바탕한 일관된 해석

물론 이러한 방법론을 가진 루터 연구서는 본서가 처음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몇 가지 특징 덕분에 본서는 자체의 가치를 가지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본서는 다른 책들에는 없는 최신의 정보들, 또한 독특한 정보들로 가득합니다. 예컨대, 그 유명한 비텐베르크 탑에서의 루터의 회심이 사실은 화장실에서의 경험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하거나[(루터가 회심할 시기에는 비텐베르크 탑이 건설되기 전이었습니다(70~71쪽)], 다른 데서 보지 못했던 음악에 대한 루터의 관점, 그리고 그 독특한 신학(42~44쪽), 루터의 두 왕국론과 만인제사장 이론이 사실상 1523년 이후로 보수적 변화를 겪게 되었다는 사실(7장 전체) 등은 이 책만이 전달해 주는 루터에 대한 새로운 정보입니다(실제로 필자는 부산에서 저자를 만나 Wolf-Dieter Hauschild의 루터 연구서를 읽으며 내용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둘째, 루터의 모습을 다면적으로 바라보되,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그를 향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제거하고 루터를 보여 주려 노력합니다. 예컨대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루터의 모습은 저항가요 독설가일 것입니다. 하지만 본서는 아주 자주 루터를 목회자로 바라봅니다. 면벌부에 저항했던 루터는 단순히 '그릇됨'에 저항한 사람 이상이었습니다. 그는 면벌부 때문에 고통당하는 양 무리를 불쌍히 여겼던 목자였지요(79쪽). 또한 대부분이 당시의 타락한 교회를 용납하지 못하는 전사로서 루터만을 생각하지만, 본서는 불완전한 교회를 따뜻한 사랑의 눈으로도 바라보는 목회자 루터를 소개합니다(261~267쪽).

셋째, 이 책은 주로 루터를 이야기해 주지만, 루터를 홀로 빛나는 영웅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가 신앙 인물을 읽을 때 그를 홀로 빛나는 영웅으로만 안다면 우상숭배의 위험이 더 커집니다. 저자는 루터가 아우구스티누스 영향 아래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56~58쪽), 또한 중세 신학의 연장선으로서 루터도 이야기해 줍니다. 그는 '이신칭의'라는 독창적 사고의 사상가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과거로부터 배워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충실한 청지기였지요. 그에게는 시대를 초월하는 탁월함이 있었지만, 그 탁월함의 근원이 자기 자신의 전유물은 아니었습니다.

넷째, 이 책은 루터의 삶과 더불어 종교개혁의 중요한 신학적 테제들을 잘 요약해 줍니다. 특히 1520년에 출간된 루터의 중요한 세 논문은 아주 자세히 소개되고 있는데, 핵심 주장을 당대 정황에 맞추어 충실히 해석해 줍니다(88~97쪽). 또한 루터를 통해 드러난 (소위 5개의 '솔라'라고 불리는) 종교개혁의 원칙들 역시 충실히 소개해 줍니다(98~103쪽). 이러한 요소들은 처음 루터를 만나는 사람에게 유용한데, 루터를 사람의 초상을 넘어 종교개혁의 배경에서 완전하게 이해하게 하기 때문이지요.

겸손한 역사신학

이러한 의미에서 처음 이 책으로 루터를 접한다면, 통합적·종합적으로 루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역사신학이 그저 과거의 사실을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의 우리를 이해하는 데 소용되며, 미래의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좋은 모델이 되지요. 따라서 본서는 루터를 처음 만나는 사람이 읽어도 될 만큼 쉽게 쓰였지만, 이미 루터를 많이 만나 본 사람이 읽으면 더 큰 유익을 얻을 것입니다.

좀 씁쓸한 말을 꺼내 보자면, 종교개혁 500주년은 기독교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자기주장을 펼치는 데 쓰기 좋은 구호가 되어 버렸습니다. 예컨대 "종교개혁 500주년인데, 한국교회는 이러저러 해야 한다"라거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서 이러저러한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 "루터의 정신을 본받아서, 이러저러한 것에 저항하자" 같은 것 말이지요. 물론 모두 소중한 이야기이지만, 어떤 주장들은 실제 16세기의 종교개혁과 마르틴 루터와는 별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해야 한다면 왜 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한다면 왜 하지 말아야 하는지, 저항해야 한다면 저항할 대상이 왜 문제가 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과 루터의 생애에는 이 모든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한 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2000년 동안 당신의 교회들을 돌보셨고, 역사 가운데 이미 많은 것들에 대한 답을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물론 종교개혁과 루터는 그 좋은 예이고요.

무엇보다 겸손히 배우고, 배운 바를 깊이 실천할 생각이 없는 개혁은 무의미합니다. 루터가 말해 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보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요(267쪽),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일을 풍성하고 충만하게 누리는 교회였습니다. 루터의 모든 개혁과 저항은 이 위대한 그리스도를 위한 헌신이었지, 개혁 자체를 위한 헌신이 아니었지요. 그렇다면 루터의 생애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 추구해야 하는 최고 우선순위는 "말씀과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268쪽).

그리스도를 아는 것보다 먼저 등장하는 개혁은 오히려 (루터가 그토록 증오하고 피하려 했던) 율법주의로 나아가는 지름길일 뿐입니다. 그리스도가 먼저 등장하지 않는 윤리는 악행을 반복하자는 주장만큼이나 공허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악행뿐만 아니라 선행 역시 회개해야 하는 죄인이고,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그리스도뿐입니다. 이것이, 이것이 루터를 연구하는 역사신학자의 결론이라면, 그 역사신학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교회를 행복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병훈의 <처음 만나는 루터>에는 바로 그런 역사신학이 담겼습니다.

"내 이름은 숨겨 주십시오. 루터파라고 부르지 말고 그냥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십시오. 도대체 루터가 무엇입니까? (중략) 저는 그 누구를 위해서도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만 더러운 구더기 부대 자루와 같을 뿐입니다. (중략) 우리의 주인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이정규 / 시광교회 담임목사, <회개를 사랑할 수 있을까>·<야근하는 당신에게>(좋은씨앗) 저자

각주
1) 본서 24쪽에 있는 게오르그 짐멜의 말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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