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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그때는 교회가 민주 인사의 피난처

[인터뷰] 향린교회 김종수 집사 "사그라들던 민주화 운동, 박종철 고문치사가 불 지펴"

박요셉 기자   기사승인 2018.01.10  1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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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영화 '1987'에서 박처원 대공수사처장(김윤석 분)은 마지막 수단으로 김정남(설경구 분) 체포에 주력한다. 시민들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을 거세게 요구할 때였다. 박처원은 김정남 간첩 사건을 기획해 여론을 뒤집을 생각으로, 남영동 대공분실 수사관을 모두 풀어 김정남을 찾는다. 김정남은 조여 오는 포위망을 피해 은신처로 숨는다. 이때 영화에서 김정남의 피난처로 '향림교회'가 등장한다.

영화 속 '향림교회'는 명동성당 인근에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 '향린교회'(김희헌 목사)를 빗댄 것이다. 김정남이 교회로 피신한 장면은 픽션이다. 실제로 1987년 당시 김정남은 지인의 집에서 머물며 몸을 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향린교회가 6월 민주 항쟁에서 중요한 거점 중 하나였던 것은 분명하다. 1987년 5월 27일, 민주 항쟁을 지휘한 '호헌철폐및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의 발기인 대회가 경찰 감시를 뚫고 이곳 향린교회에서 열렸다.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절, 일부 종교인은 진실을 알리고 올바른 일을 하는 데 눈치 보지 않고 앞장섰다. 1987년 5월 18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명동성당에서 고문조사관 축소 폭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5월 23일 서울 종로 기독교회관에서는 고 박형규 목사(서울제일교회 전 담임목사)를 포함한 재야인사 134명이 6월 10일 범국민 규탄 대회를 열 것을 선언했다. 이어 국본은 6월 10일,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민주 항쟁의 시작인 '박종철 군 고문치사 조작·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를 개최했다.

영화 '1987' 스틸컷

김종수 집사는 당시 31세 청년으로, 향린교회 청년부 회장을 맡고 있었다. 그 역시 1987년 6월 10일 교회 청년들과 함께 국민대회가 열리는 서울 시내로 나가 '호헌 철폐'와 '직선제 도입'을 외쳤다. 그는 "1980년대 후반, 군부독재가 장기화하는 모습을 보며 민주화 운동에 대해 회의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이런 분위기를 반전했다.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이 들고일어났다"고 회상했다.

1987년에서 30여 년이 지난 지금, 6·10 민주 항쟁 당시 시위대의 한 사람이었던 김종수 집사는 오늘날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까. 1월 9일 경기도 파주에서 만난 김종수 집사는, 31년 전 6월 민주 항쟁이 못 이룬 일을 지난해 촛불 혁명이 해냈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가 성숙하는 것과 달리 종교는 거꾸로 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과거 시민 편에 서서 사회정의와 개혁을 외친 한국교회가, 지금은 개혁과 청산의 대상으로 퇴보한 것 같다고 했다. 자정 능력을 잃은 지금의 교회는 더 이상 사람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지 못할 거라고 했다.

정권의 학원 탄압 피해
교회로 모여드는 청년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가라앉는 사회참여 분위기 반전

'향기 나는 이웃' 향린교회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하는 학생들에게 유명한 곳 중 하나였다. 1970년대 경동교회·새문안교회 등이 사회운동을 이끌었다면, 1980년대에는 향린교회·서울제일교회 등이 학생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다. 당시 서울제일교회에는 손학규 고문(국민의당)이 있었고, 향린교회에는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 박노해 시인, 고 김병곤 투사 등이 출석했다.

김종수 집사는 "박기평(박노해 시인 본명), 김병곤 모두 비슷한 또래였다. 우리들은 교회에서 인문 서적을 읽거나 사회과학을 공부했다. 전두환 정권의 학원 탄압이 심했던 시기다. 학생들 서너 명만 모여도 경찰이 들이닥치는 분위기였다. 학생들은 자연스레 언더 서클이나 교회로 모여들었다"고 말했다.

민주화 운동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 양상이 달라지고 있었다. 1980년대 후반, 대학생을 중심으로 군부독재에 더 강경하게 맞서야 한다는 주장이 펼쳐졌다. 김 집사는 "이전보다 더 세게 싸워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했다"고 말했다.

운동은 강경해졌지만,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은 줄어들고 있었다. 전두환 정권은 박정희 정권에 이어 장기 독재 체제를 강화하고 있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청년들을 구속해 고문하는 일은 빈번했다. 군부독재의 무지막지한 탄압에 운동의 불씨가 꺼지는 듯했다.

"교회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 집사는 1980년대 후반 한국교회 내에서도 민주화 운동 열기가 가라앉고 있었다고 했다. 향린교회 내부에서 몇 번의 대립이 있었다. "청년들이 모여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있으면 교회 어른들이 안 좋게 봤다. 그런 거 해 봤자 나라가 바뀌느냐는 말을 수차례 들어야 했다"고 김 집사는 말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이러한 분위기를 반전하는 사건이었다. 김 집사는 "6월 민주항쟁은, 어떻게 보면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노력이 누적됐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공포와 절망에 지친 사람들이 젊은 청년들의 무참한 죽음을 목격하고 눈을 뜬 사건이다"고 했다.

1987년 5월 27일, 호헌철폐및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발기인 대회가 향린교회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전국 확산된 민주화 불길
경찰 감시와 통제 피해
향린교회서 국본 발족

전국에서는 항쟁의 불길이 솟구쳤다. 서울·광주·부산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연이어 시위를 벌였다. 1987년 5월 23일, 서울 종로에서는 대대적인 연와 시위가 있었다. 시위대는 길바닥에 드러누워 "박종철 고문 살인 진상 규명"과 "직선제 개헌"을 외쳤다.

6월 민주 항쟁을 이끈 국본은 경찰의 삼엄한 통제와 감시를 뚫고 탄생했다. 주최 측은 발기인 대회 장소로 네 곳을 물색했다. 후보지는 명동성당·기독교회관·서울주교좌성당·향린교회였다. 발기인 대회가 열리는 5월 27일 새벽까지도 개최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주최 측은 향린교회를 제외한 나머지 장소를 경찰 병력이 포위한 것을 보고 행사장을 급히 향린교회로 정했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주최 측은 전령과 쪽지로 재야인사를 소집했고, 재야인사 19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본을 결성할 수 있었다.

김종수 집사는 "당시 향린교회 담임이었던 고 홍근수 목사의 의지가 컸다. 정부나 교계에서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홍 목사는 '모든 책임은 혼자 다 지겠다'며 교회를 기꺼이 내줬다"고 했다.

홍근수 목사는 1987년 1월 향린교회에 부임했다. 내부 문제를 겪던 교회가 쇄신하자는 취지에서 미국에 있는 홍 목사를 청빙했다. 그는 부임 전까지 미국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에서 활동했다.

"곧은 분이었다. 어린아이처럼 복음에 순수한 분이시기도 했다. 홍 목사는 기독교인이라면 늘 개인의 이익보다 양심의 소리를 먼저 따라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민주 항쟁에서 보인 그분의 모습 또한 그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오늘날 6·10 민주 항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보면, 과거에 정말 군부독재에 맞선 인물이 맞는지 의심될 때가 있다. 그들은 어쩌면 사회운동을 정의나 양심의 소리가 아닌 사익을 위해서 했던 게 아닌가 싶다. 홍 목사의 삶을 많은 기독교인이 배웠으면 좋겠다."

김종수 집사는 오늘날 교회가 기본 정신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김종수 집사는 지금 한국교회가 그때의 정신을 잃고 있다고 했다. 그는 "종교는 인간이 기본권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민주 항쟁 당시, 많은 종교인이 그 정신을 지켰다.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예배당을 피난처로 내줬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이들을 소외하고 배제한다고 비판했다.

"1987년 이후 한국교회는 보수화했다. 사람들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다. 진리라는 이유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재단한다. 성소수자 문제에서 한국교회가 보이는 배타적인 태도가 대표적인 예다.

교회가 외부 문제보다 내면에 더 집중해야 할 때다. 지난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누구나 개혁을 외쳤지만, 개혁을 진지하게 연구하거나 실천하는 이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개혁은 말로만 되는 게 아니다. 자기 쇄신에서 시작한다. 요즘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교회가 진정한 자기 개혁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외면과 무시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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