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법률가회 국제국장 이병주 변호사가 '명성교회의 교회적 파탄과 평신도 신앙의 함정'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보내왔습니다. 세 차례 나눠서 싣습니다. - 편집자 주

명성교회의 영적 파산

명성교회가 망했습니다. 명성교회는 2017년 불법적이고 무도한 부자父子 세습 과정을 통해서 영적으로 파산했습니다. 지금도 명성교회에서는 김삼환·김하나 부자 목사가 설교를 하고 신도들이 아멘, 할렐루야로 화답하고 있습니다. 명성교회 건물 내부의 사람들은 그 교회가 아직도 살아서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명성교회의 건물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압니다. 명성교회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영적으로는 이미 죽은 교회라는 것을(계 3:1).

명성교회 사람들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정말로' 의미 있게 끝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2017년의 마지막 두 달 동안 명성교회의 두 목사는 한국 사회와 한국 시민에게 한국교회의 기독교적 위선과 욕망과 무법의 상징으로 그 '명성'을 확고하게 굳혔습니다. 그리고 자기 교회의 안정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세습 강행을 결의한 명성교회의 교인들은 나머지 한국교회와 기독교인 모두에게 치명적인 오명과 수치와 괴로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1517년 독일에서 '면죄부'로 상징되는 로마교회의 교회적 파탄을 비판하면서 '종교개혁의 주체'로 등장했던 개신교가, 2017년 한국에서는 '명성교회의 불법 세습'으로 상징되는 한국교회의 교회적 파탄을 보여 주면서 '종교개혁의 대상'으로 자기를 드러냈습니다. 명성교회가 만들어 준 멋진 피날레입니다.

교회로 모인 은과 금의 힘

교회로 모인 은과 금의 힘은 참으로 큽니다(사도행전 3:6). 2017년 10월 24일 명성교회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서울동남노회의 명성교회 세습 찬성파들은 막무가내로, 그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김'하나' 목사의 세습 청빙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명성교회는 교회 세습을 금지하는 교단의 헌법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그 헌법이 위헌적이니 무시하고 세습을 해도 된다고, 개별 교회가 교회 헌법을 어겨도 법률상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교단의 노회도 총회도 명성교회의 은과 금과 힘 앞에 무릎을 꿇릴 수 있다는, 참으로 대단한 믿음입니다.

애매하게 침묵하던 예장통합은, 예상을 넘는 교계와 사회의 강한 반발에 망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명성교회가 가진 은과 금의 힘과, 한국교회와 예수님의 이름과 명성이 서로 힘을 겨루는 양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출애굽기 20:7).

교단 총회에서 명성교회 세습을 무효라 판결하면 '명성교회만 혼자 망할 것'이고, 교단 총회에서 얼렁뚱땅 명성교회 세습을 묵인하면 교단마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면서 '명성교회도 망하고 예장통합 교단도 함께 망할 것'입니다. 어느 쪽으로 가든, 교회로 모인 은과 금과 힘의 함정에 빠진 명성교회가 이미 영적으로 망하고 파산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명성교회 사태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각

1. 한국 사회(비기독교인)의 시각 - 한국 사회보다 후진적인 한국교회

첫째, 정치권력의 사유화를 탄핵으로 쫓아낸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앞에서, 목회 권력의 사유화를 감행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은 부끄러움과 시대착오적 퇴행 그 자체입니다. 탄핵 이전의 한국 시민은 한국 사회나 한국교회나 마찬가지로 썩었다며 절망했지만, 탄핵 이후의 한국 시민은 자정 능력을 보여 준 한국 사회보다 한국교회가 더 후진적이고 퇴행적이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역설적으로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 사회의 불신자들은 '기독교 신앙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이 기독교 신앙을 제대로 따르지 않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한국 사회 비기독교인의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에는 도리어 '기독교인 모두의 기독교적·신앙적 회개를 촉구'하는 건강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그들이 입을 다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눅 19:40)"].

2. 한국교회 목회자의 시각 - 목회자라는 이름의 오염

둘째, 명성교회 사태로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추상적이고 영적인 피해뿐만 아니라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피해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명성교회의 만행으로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얼굴에도 오물이 뿌려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의 직무는 소중하고 거룩한 일입니다. 그런데 명성교회 사태로 목회자라는 이름이 교회의 안팎에서 위선적 권력 세습과 세속적 욕망의 상징처럼 오염되고 더럽혀졌습니다.

메신저가 존중을 받지 못하면, 그 입에서 나오는 메시지도 힘을 잃고 허공중을 떠다니게 됩니다(시편 1:4). 결국 부자간에 다정하게 교회의 은과 금과 힘을 주고받은 명성교회 사태는, 은도 금도 힘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만 간신히 붙잡고 있는 대부분의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천재지변급의 변고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이전의 세습에 비해서 이번의 명성교회 세습이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신학생들로부터 보다 광범위한 비판과 항의 운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나마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피해를 줄이려면, 교단의 세습 무효 판결이나 김하나 목사의 자발적 사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명성교회의 세습 철회만으로 이 사건으로 드러난 한국교회의 위기가 원상회복될 것인가. 이것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이미 목회자 수급 조절 실패로 목회자의 생존이 개별 목회의 성패에 달리게 된 '한국교회의 시스템적 고장(malfunction)'이, 명성교회 사태의 기본적인 배경과 기초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한국교회 평신도의 시각 – 명성교회 사태의 '평신도적 보편성'

셋째, 명성교회 사태의 진범은 김삼환·김하나 부자 목사가 아니라 명성교회 교인들입니다. 명성교회 세습 사태의 최종적·법적 책임은 김하나 목사 청빙안을 압도적 찬성(3/4)으로 결의한 명성교회 평신도들에게 있습니다. "목사가 반복하여 강권하는데, 교인들이 어쩔 수 있었겠느냐"는 변명은 "나는 바보요. 바보니 어쩌겠는가"라는 무책임한 어리광에 불과합니다. 명성교회 교인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오히려 명성교회 교인 다수는 '교회의 안정과 평안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존경하는 아버지 목사를 따르다가, 사랑하는 아들 목사를 모시는 청빙안'을 받아들이기로, 스스로의 의지와 이익에 따라 판단했다고 주장합니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생깁니다. 막상 '내가 명성교회 교인이라면' 과연 개별 교회의 안정이라는 이익을 버리고 한국교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세습을 반대하고 저지하는 방향으로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솔직히 저조차도 확실하게 대답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한국교회 평신도'로서는 명성교회 세습 사태에 분노하지만, 동시에 '개별 교회 평신도'로서는 명성교회 같은 세습 사태를 적극 방조하거나 소극적으로 묵인할 만한 집단적 공범의 신앙적 정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명성교회 몰락의 직접적 주범은 명성교회 평신도이지만, 명성교회 몰락의 잠재적 공범은 한국교회의 평신도 모두라고 자백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입을 모아 김하나 목사 하나를 욕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교회 평신도는 자신 있고 당당하게 명성교회 평신도를 욕하기 어렵습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욕이 내 머리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명성교회 위기의 평신도적 본질
- 개교회주의에 빠진 기독교적 충성의 결말

1. 교회에 대한 충성이 만들어낸 교회의 독

누구도 정확한 내막은 모르지만, 명성교회에 절실한 '세습의 필요성'이 생긴 것은 몇 해 전 드러난 800억 원대 교회 비밀 적립금 문제와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합리적 의심이 있습니다. 이것은 명성교회에 과도하게 쌓인 '교회의 은과 금'으로 인한 것입니다. 명성교회가 교단의 헌법과 노회의 전통도 무시하고 무리하게 '세습을 강행'한 것도 예장통합 교단 최대 대형 교회로서 명성교회가 가지는 힘과 영향력에 대한 자신감을 반영합니다. 이것도 명성교회에 과도하게 쌓인 '교회의 힘과 권세'로 인한 것입니다.

명성교회에 쌓인 은과 금이 없었다면 세습의 절실한 필요성도 생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고, 명성교회에 쌓인 은과 금의 힘이 없었다면 교단과 노회를 무시하는 개별 교회의 난행亂行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정당한 질문들이 생깁니다. 결국 명성교회에 대한 평신도들의 '지나친 충성'이 명성교회를 망친 것이 아닌가. 명성교회에 돈과 힘이 조금만 적었더라면 이런 일이 생겼을까. 교회에 너무 많은 은과 금과 힘을 쌓은 평신도들의 무분별한 충성이, 결국에는 명성교회에 독을 만들어 내고 한국교회에 독을 뿜어내는, 이 모든 파탄의 원인이 된 것이 아닌가.

2. 개별 교회의 과잉으로 생긴 전체 교회의 암 – 표적을 벗어난 평신도 신앙

결국 명성교회 사태의 본질은 개별 교회인 명성교회와 전체 교회인 한국교회의 대립으로 나타납니다. 한국교회 평신도들은 그동안 개별 교회를 섬기고 충성하는 것이 곧 전체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에게 충성하는 길이라고 배워 왔고, 이 가르침에 착하게 열심으로 순종해 왔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 왔고 그렇게 행동해 왔습니다.

명성교회 교인들은 이런 방향의 '개교회주의 평신도 신앙'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명성교회 교인들은 개인적으로 열심히 믿고, 집단적으로 열심히 전도하고, 구역 모임에서 초심자를 양육하고, 교회에 열심으로 헌금하고, 많은 돈으로 구제 활동을 하고, 성공한 교회를 만든 성공한 평신도 신앙의 챔피언입니다. 그런데 이제 명성교회 교인들의 개별 교회에 대한 지나친 섬김과 충성은 한국교회 전체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불충과 모욕이 되었습니다.

개별 교회가 아무리 크고 잘나간다 해도 전체 교회의 일부분, 한 세포에 불과합니다. 명성교회 같은 개별 교회가 자기 분수를 모르고 전체 교회의 질서와 이익을 무시하면서 자기만을 주장하고 자기에 대한 충성과 존중만을 요구하면, 그것은 바로 과잉 증식으로 다른 세포를 죽이고 생명 전체를 잡아먹는 우리 몸의 암세포처럼 전체 교회를 죽이는 암세포가 됩니다.

이제 우리들의 마음속에 심각한 질문들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교회에 충성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까지 해 오던 것처럼 개별 교회에 충성하고 섬기는 것이 절대적으로 좋은 일인가. 만일 개별 교회에 대한 사랑과 충성의 끝이 명성교회 사태라면, 우리는 교회에 대해서 제대로 믿고, 제대로 가르치고, 제대로 배워 온 것인가. 내가 지금 믿고 있는 평신도로서의 신앙, 내가 지금까지 해 온 교회에 대한 충성이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한국교회를 제대로 섬긴 것이 맞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고쳐야 합니다. '지나친 사랑과 충성'이 교회를 망쳤다면, 우리는 '덜 사랑하고 덜 충성하는 방법'으로 교회를 살려야 합니다.(계속)

이병주 / 변호사, 기독법률가회 국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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