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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교회 세습 반대 교인들이 뭉쳤다

[좌담] '명성교회정상화위원회' 만든 교인들 "세습이 불법인 건 다 알고 있어"

박요셉 기자   기사승인 2018.01.04  17:5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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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명성교회 일부 교인은 김하나 목사가 제2대 담임목사로 오지 않을 거라고 끝까지 믿었다. 지난해 3월, 청빙위원회가 후임자를 정하고 공동의회가 위임 결의를 했지만, 그래도 김하나 목사를 신뢰했다. 조병길 집사(명성교회정상화위원회)는 "위임 예식 바로 전주만 해도 김하나 목사가 새노래명성교회에서 계속 사역할 것처럼 설교했다. 그런데 그 다음 주 갑자기 사임했다.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부자父子 세습이 사실이 되자 이들이 느끼는 실망과 분노는 작지 않았다. 이들은 잇따라 세습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명성다윗아카데미 졸업생 62명청년부(80기)·대학부(19기) 출신 44명교인 416명, 현직 교회학교 교사 105명이 세습 철회를 촉구했다.

세습을 반대하는 명성교회 교인들은 '명성교회정상화위원회'를 지난해 12월에 조직해 세습 반대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2017년 예·결산 공동의회를 앞두고 재정 의혹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고, 교회학교 교사 성명을 이끌어 냈다.

교회에 계속 남아 세습 반대 목소리를 내며 활동하는 교인들을 1월 3일 명성교회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반대 활동을 하는 이유와 이들이 원하는 교회 정상화가 무엇인지 들을 수 있었다.

교회 안에서 담임목사를 반대하는 일은 교회를 떠나는 것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힘들다. 한때 젊음과 열정을 바쳐 교회에 헌신하고 김삼환 목사를 존경하며 사랑했지만, 지금은 비리와 불법의 표상이 된 교회와 김삼환 목사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심정도 이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에는 4명이 참여했다. 2명은 명성교회정상화위원회를 만든 조병길·이기정 집사이고, 다른 2명은 익명을 요구했다. 이들과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세습에 반대하는 명성교회 교인들은 교회를 떠나는 대신 남아서 바른 소리를 내기로 다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명성교회에서 시작한 신앙생활
김삼환 목사 설교 들으며 희망 품어
상가 교회서 한국교회 대표로 성장

- 언제부터 명성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지 소개해 달라.

이기정(이) / 1981년부터 명성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교회가 창립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당시 교회에는 젊은 교인이 많았다. 다들 굉장히 열정적이고 순수했다. 일요일 저녁 예배를 2~3시간씩 했다. 자리가 비좁아 교인들이 강대상 앞뒤, 좌우까지 둘러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예배를 했다.

교회가 성장하는 걸 보는 건 큰 기쁨이었다. 홍은 상가에 있던 교회가 예배당을 마련하고 건물을 확장하는 걸 보면서, 마치 내 집이 커지는 것처럼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조병길(조) / 1991년,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의 전도로 명성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교회는 내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곳이었다. 하나님을 처음 알았고, 배우자도 이곳에서 만났다. 교회를 다니면서 내 삶도 많이 달라졌다. 성적이 눈에 띄게 올라갔고 원하는 대학과 직장에 갈 수 있었다. 어려웠던 가정 형편도 좋아졌다.

그때는 이게 신앙생활을 하면 자연스럽게 얻는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교회에서 봉사하면 복 받는다고 생각한 거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기복신앙이었지만, 실제로 명성교회를 다니면서 삶이 달라졌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A / 어릴 때부터 어머니 손을 잡고 명성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명성교회에서 자란 거나 다름없다. 어릴 때는 김삼환 목사에게 안수 받는 것을 좋아해, 특별 새벽 기도회가 열리면 졸더라도 강대상 바로 앞에 앉아 설교를 들었다. 예배가 끝나면, 성경에 김삼환 목사 서명을 받기 위해 줄을 서기도 했다.

명성교회 교인이라는 게 자랑스러웠다.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하니, 대학도 좋은 곳으로 갔다고 생각했다. 부인과 자녀가 교회에 가는 걸 반대했던 아버지도,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 생각을 고치고 가끔씩 교회에 갔다. 그런데 이번 세습 문제가 터지면서 교회에 발길을 아예 끊어 버렸다. 지금은 명성교회 교인이라는 게 부끄럽다.

B / 고등학생 때 예쁜 여학생이 많다는 친구의 말에 장난처럼 명성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기 시작한 건 성인이 됐을 때다. 주일학교 교사로 하계 선교 활동을 갔다. 그때 하나님을 경험하고 신앙을 얻었다. 지금까지 주일학교에서 20년 가까이 봉사했다. 주일학교에서 얻은 사랑과 은혜가 크다.

내게도 교회에 다니지 않는 어머니와 형제가 있다. 이전에는 부활절이나 성탄절에만 예배에 참석했는데, 뉴스에서 명성교회 세습 소식을 알게 된 이후 다시는 명성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하더라. 어머니를 전도하기 위해서는 교회를 떠나야 하는데, 이곳에서 경험한 은혜, 여기서 만난 동료들이 아쉬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이들은 한때 누구보다 명성교회와 김삼환 목사를 사랑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 얘기를 들어 보면, 다들 김삼환 목사를 향한 존경심이 컸던 것 같다.

이 / 명성교회 교인이라면 누구나 김삼환 목사에게 갖고 있는 애정이 굉장할 거다. 김삼환 목사가 젊었을 때는 심방을 많이 다녔다. 안장에 성경을 매달아 놓고 자전거를 타며 집집을 돌아다녔는데, 그런 모습을 보며 '순수하신 분이구나' 생각했다.

조 / 당시 부모 세대에게는 김삼환 목사가 어떤 상징과도 같았다. 모두가 경제적으로 힘들어하던 시기였다. 김삼환 목사의 설교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신앙생활하면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소망 말이다. 이미 김삼환 목사의 삶이 하나의 설교였다. 굉장히 어려운 형편에서 성장해 작은 상가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대형 교회를 일군 김삼환 목사를 보면서, 많은 교인이 존경하고 따랐다.

이 / 명성교회가 어떻게 보면 서울 외곽에 사는 사람들이 개척한, 이주민 교회라고 볼 수 있다. 당시 명일동에는 버스 종점이 많아, 사람들이 '종점 인생'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그런 '종점 인생'들에게 김삼환 목사가 던지는 메시지는 특별했다.

매년 교회에서는 지방으로 하계 선교 활동을 떠났다. 보통 열흘 이상 사역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휴가를 받지 못한 교인들은 직장을 관두면서까지 봉사에 참여했다. 그만큼 열정이 대단했다. 그런 에너지와 헌신이 모두 김삼환 목사의 설교에서 나왔다.

A / 우리 같은 청년들도 김삼환 목사를 굉장히 좋아했다. 대형 교회 목사답지 않게 교인들 앞에서 솔직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자주 드러냈다. 설교도 감성적이고 순수해서 청년들이 좋아했다.

조병길 집사는 2000년대 후반부터 김삼환 목사 우상화 작업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2000년대 후반부터
김삼환 목사 우상화
교회 행사, 절기 예배마다
김삼환 목사 일화 다뤄

- 지난해, 명성교회에 설치된 김삼환 목사 등신상과 생가 모형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교인들이 등신상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외부에서는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컸다. 김삼환 목사를 떠받드는 분위기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A / 다윗아카데미에 있을 때, 그런 분위기를 종종 느꼈다. 교사들이 김삼환 목사를 너무 강조해서 불편했다. 다윗아카데미에 들어간 건 성숙한 신앙을 배우고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인데, 교사들은 당회장 목사님을 향한 존경심을 강요하는 것 같았다.

이 / 대학부에서 책갈피를 만든 적이 있다. 그 안에 기도 제목을 담았는데, 첫 번째 기도 제목이 김삼환 목사를 위한 내용이었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각각 예수님·하나님과 관련한 내용이었다. 그걸 보면서 황당했다. 아무리 당회장 목사를 위해 기도한다고 해도, 예수님·하나님보다 우선시하는 건 부적절해 보였다.

조 / 김삼환 목사 우상화 작업은 2000년대 후반부터 일어난 일이다. "하나님 사랑해요, 목사님 사랑해요" 같은 문구가 나오기 시작했고, 부활절 같은 절기 예배나 교회 행사에서 김삼환 목사의 일화가 소재로 꾸준히 등장했다. 지난해, 예배당 안에 김삼환 목사 등신상과 생가 모형이 설치된 것처럼 말이다.

이전에는 김삼환 목사에게 절제력과 판단력이 있었다. 교인들도 잘 단속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기 절제를 놓치기 시작한 것 같다. 주변에도 김 목사에게 아부하는 이들만 남고 바른말 하는 이들은 모두 교회를 떠나거나 교회 일에 나서지 않고 있다.

- 2014년에는 김삼환 목사를 둘러싸고 비자금 논란이 일었다. 재정장로가 이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세습과는 다르지만 상당히 충격적인 사안이었는데, 그때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다가 지금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A / 비자금 논란은 외부에서는 반향이 컸던 반면 내부는 잠잠했다. 모르는 교인이 많았다. 그리고 그런 얘기를 꺼내면 좋지 않은 눈초리를 줬다. 교회 안에서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B / 나 역시 당시 교회 일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었지만, 비자금 관련 얘기는 자세히 듣지 못했다. 어느 장로님이 돌아가셨다는 말만 들었고, 그게 다였다. 세습 사태 이후 뉴스를 보고 나서야 비자금 논란을 알게 됐다.

이 / '우리 김삼환 목사님이 설마 그랬을리가' 하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당회장 목사에 대한 신뢰가 상당했으니까. 나이 많은 교인들은 교회 명성에 누가 되는 일을 발설하는 것 자체를 꺼린 것 같다.

조 / 내가 그런 말이 도는 걸 막는 역할을 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못된 이야기를 퍼뜨리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돌아가신 장로님이나 그 가족들이나, 모두 동료 교인이자 친구이자 이웃이었다. 비자금을 떠올리는 거 자체가 미안했다.

이기정 집사는 잘못된 일에 침묵할 수 없어 세습 반대 활동에 나섰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A / 하지만 이번 세습은 비자금 논란과 달리 실체가 명확하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세습은 위법이라는 사실을 안다. 성경에서는 다른 이를 실족하게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명성교회 부자 세습은 비기독교인이나 기독교인 모두를 실족하게 했다. 한국교회 전체가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들었다. 이건 엄연히 죄다.

이 / 세습이 잘못된 건 누구나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불법한 일이 버젓이 우리 교회에서 벌어졌다.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2016년, 촛불 집회를 경험하면서 사람들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 대통령도 바꾸는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는데, 잘못된 일에 대해 어떻게 침묵할 수 있겠나.

조 / 만약 10년 전, 세습 사태가 일어났다면 아무런 동요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교회 안에서 김삼환 목사 우상화 작업이 시작했고, 이에 불편을 느끼는 교인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세월호 망언을 비롯해 박근혜 대통령이 교회에 오는 등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교인들이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다. 여기에 정점을 찍은 사건이 부자 세습이다.

세습은 엄연히 불법
갈등하며 헤매는 청년들
궁극적인 목표는
교회·재정 운영 투명화

- 세습 이후 교인들 반응은 어떤가.

조 / 우리처럼 교회에 남아 반대 활동을 하는 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오랫동안 다닌 교회를 등지고 떠난 이도 많다. 사실 명성교회는 2012년 새 예배당에 입당할 때부터 하강기였다. 2012년 장년 교인 예배 출석수가 3만 9000명이었고, 지난해에는 1만 9700명으로 줄었다.

B / 작년 3월, 세습이 진행될 때 정말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청년들이 이 일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고민을 나눌 만한 곳이 없었다. 반대해야 하는지,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아니면 믿고 기다려야 하는지 얘기해 주는 이도 없었다. 나와 친구들을 보면 길 잃은 양 같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교회학교는 난리가 났다. 해가 바뀌었는데, 아직까지 반주자, 성가대 지휘자, 교사를 구하지 못한 부서가 많다. 교회학교 교사 세습 반대 성명이 발표된 12월 31일, 교회는 교회학교 교사 임명장을 발표했다. 내용이 엉망이었다. 교사를 관뒀는데도 이름이 실리거나 중복으로 게재된 이도 있었다. 그만둔 교사들은 대부분 20~30대 청년들이다. 세습에 반대하지만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이런 식으로 교회에 항의하는 거다.

A / 여러 언론에서 우리 교회 세습 사태를 보도했기 때문에, 이번 일을 다들 잘 인지하고 있다. 아쉬운 건 고민에 그친다는 거다. 다들 교회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걸 알고 있으면서, 일단 기도해 보자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자란 청년이 많다. 대부분 교회에 순종적이다.

조 / 나도 6개월 전만 해도 교회를 완전히 맹신하고 있다가 지금은 세습 반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런 청년들이 이해가 된다. 위임 예식 전주까지만 해도 김하나 목사가 안 올 거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변화하려면 어떤 계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청년들도 조금씩 변하고 있을 거라고 본다. 이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게 우리들 역할일 것 같다.

- 명성교회정상화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명성교회 정상화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조 / 우리가 말하는 교회 정상화는 크게 네 가지다. 명성교회가 한국교회에 사과하고, 이번 세습 사태 책임자를 징계하며, 대책위(혁신위)를 설립해 교회 운영을 정상화하고, 김하나 목사가 담임목사직에서 사임하는 것이다.

이제 한 걸음 뗐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조직이 만들어지고 교회에 반대 의견을 내는 것 자체가 정상화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성명만 냈던 교인들이 한 달 사이 조직을 만들고 세습 반대 활동을 본격화하고 있다.

교회 안에 이런 움직임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교회도 교인들 사이에서 반대 활동이 있다는 걸 인식하고 긴장하는 분위기다. 이전처럼 교회를 자기들 마음대로 주무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명성교회가 투명한 의사 결정과 재정 운영 구조를 갖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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