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신학생이었다. 열심히 성경 연구하고 담임목사에게 순종하면 레벨업 할 줄 알았다. 파트타임 전도사에서 전임 전도사로, 부목사에서 담임목사로 한 단계씩…. 허황된 꿈이었다. 성골·진골이나 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우리 같은 흙수저는 '노오오오력'해도 안되더라."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파전행전>(선율) 저자 김정주 전도사(34)가 성골·진골을 거론하며 툴툴대자 사람들이 웃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을 들으면서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

"결혼하고 나서 돈이 떨어져 일을 시작했다. 택배기사를 처음 했는데, 퇴근하고 나면 녹초가 됐다. 왜 그렇게 교인들이 평일 말씀 한 장 읽기 힘들어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김 전도사는 3년간 일과 부교역자 사역을 병행했다. 교회에 갈 때마다 알 수 없는 이물감은 커져 갔다. 강단에서 나오는 설교가 일터를 전전하는 사람들 머리 위를 빙빙 돌고 있는 것 같았다.

이중직과는 또 다른 '비즈니스 목회'를 하고 있거나 준비하는 이들이 12월 20일 한자리에 모였다. 이른바, Re:Local Conference 모임.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중직 목회'는 목회자 세계에서 오랫동안 논의된 주제다. 이전에는 이중직을 안 좋게 보며 금지하는 교단이 많았지만, 지금은 대다수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초기 이중직을 금지하던 교단들도 태도를 바꾸고 있다(예장통합 2016년, 감리회 2016년 등).

전통적인 이중직 목회는 일을 생계를 위한 부업 정도로 여겼다. 교회 재정으로 자립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일을 한다는 의식이었다. 주일에는 공간을 예배당으로 쓰고 평일에는 영업 공간으로 사용하는 경향도 있다.

일부 30~40대 젊은 목회자는, 일하는 목회에 대해 근원부터 고민하고 있다. '이중직 목회'라는 표현부터 질문을 던진다. 김혁주 목사(Be Local·40)는 "'이중직'이라는 표현에는 목회와 일을 분리하는 단점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은 목회와 일을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다. 사업장이 지역에 공익적 가치를 창출하거나 주민에게 편의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면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어 다양한 사역을 펼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 또한 목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중직과는 또 다른 '비즈니스 목회'를 하고 있거나 준비하는 이들이 12월 20일 한자리에 모였다. 김혁주 목사가 주최한 'Re:Local Conference(리로콘)' 1회 모임이다. 서울·천안·아산·전북 등 여러 지역에서 목회자 11명이 모였다. 목회자 모임답지 않게, 서울 시내 코워킹 스페이스에 있는 파티 룸에서 열렸다. 은은한 조명 아래 잔잔한 경음악이 흘러나오고, 테이블에는 탄산수와 샌드위치, 소시지, 쿠키 등이 놓였다. 참석한 목회자들은 저마다 어디 대표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목회자 모임이라기보다는 사업 설명회에 온 것 같았다.

리로콘은 홈 파티처럼 진행했다. 참석자들이 5~10분 자신을 소개하고 나면, 저마다 음료와 과자를 들고 찾아다니며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이곳에서 현재 비즈니스 목회를 하고 있는 목회자 4명, 준비 중인 목회자 4명과 대화를 나눴다. 대부분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의 젊은 목회자였다. 이들에게서 왜 기성 목회와 다른 길을 선택했는지(가려고 하는지), 어떤 사역을 하고 있는지 들을 수 있었다.

박종현 목사는 심리 상담 센터를 운영하며, 남는 공간은 지역 주민에게 대여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전문성 고려해 상담 센터 개소
지역 주민에게 공간 임대
열린 밥상으로 나그네 환대

박종현 목사(함께심는교회·41)는 어린 시절 초대형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큰 교회에서는 모든 생활이 교회 안에서만 이루어졌다. 교회는 보냄받은 이들로 세워지는 곳인데, 왜 교인들은 교회 안에서만 안주하며 보냄받은 자의 삶을 살지 못하는지, 박 목사는 회의감이 들 때가 많았다. 그가 개척하고 싶은 교회는 그런 모습과 달랐다.

개척할 때 가장 많이 한 고민은 '무엇을 해야 전문성을 띠며 잘할 수 있을까'였다. 미술치료사였던 아내가 떠올랐다. 박 목사는 심리 상담 센터를 열었다. 그는 지차체가 운영하는 다문화 센터와 제휴를 맺어 다문화 가정을 위한 심리 상담을 진행했다. 시간이 지나자 센터가 지역사회에서 조금씩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센터에는 치료실 외 다목적, 카페 공간도 있었다. 이 공간은 주민에게 대여했다. 생활협동조합 회원들이 요리, 회의 등 모임을 열고, 인근 학교 학생들이 학습 코칭을 받을 수 있게 해 줬다. 처음에는 상담 센터였지만 점점 공간 대여를 목적으로 이용하는 그룹이 많아지자, 박 목사는 센터를 '동네거기'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코워킹 스페이스로 리모델링하고 있다.

예배는 일요일 상담 센터 안에서 진행한다. 형식이 특이하다. 매주 12~13명의 교인이 오는데, 인원 구성은 매번 다르다. 점심을 먹고 시작한다. 메뉴는 매주 일요일 오전 박 목사가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식사가 끝나면 2시부터 5시까지 예배한다. 그중 50분은 찬송(원래 20분이었는데 교인들이 좋다고 해서 늘렸다), 10분은 설교, 120분은 나눔과 교제다.

"여기 오는 분들은 열린 밥상이 필요하거나,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걸 불편해 하는 사람, 기성 교회에서 상처받은 이들 등 저마다 사연이 다양하다. 우리는 공동체나 멤버십을 강요하지 않는다. 근데 그게 역작용해 관계를 더 끈끈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들이 원하는 건 공동체나 멤버십 같은 허울 좋은 말보다는, 자신이 가감 없이 얘기해도 격려받을 수 있는 안전성이 아닐까 싶다. 그게 진짜 공동체인 거 같고."

남건호 목사는 천안에서 청년들 창업을 돕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청년 교인들 고민 듣다가
창업 지원에 나서다

남건호 목사(주는교회·33)는 2015년 천안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천안은 젊은 도시다. 인구 62만 명에서 약 19만 명이 20~30대다. 남 목사가 교회를 개척한 지 얼마 안 돼 60~70명의 청년 교인이 모인 것도 이런 환경 때문이다.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남 목사는 "그런 건 없다. 그냥 비기독교인에게 친숙한 교회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게 잘 맞은 것 같다"고 했다.

남 목사는 오늘날 청년들 고민을 생생히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전공과 상관없이 대기업 혹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진로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일찍부터 전공 공부를 포기하는 이들이 많았다. 남 목사는 청년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먼저 예배당을 정리하고 얻은 건물 1층에 청년들과 함께 '카페 노마드'를 차렸다. 같은 건물 3층에는 노마드 코와플 스페이스(복합 라이프 스타일 공유 공간), 노마드 디자인 연구실을 만들었다. 남 목사는 비용만 투자했을 뿐, 각각의 사업장을 경영하는 이는 청년들이다.

'노마드'는 철학 용어로,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는 창조적 행위를 의미한다(두산백과). 남 목사는 청년들이 이러한 가치를 품고 살라며 각 사업장 이름에 '노마드'를 붙였다.

"노마드에는 한 가지 뜻이 더 있다. 버려진 불모지를 새로운 생성의 땅으로 바꿔 가는 것. 우리 사업장들이 위치한 곳은 천안시에서 가장 후미진 원도심이다. 앞으로 교인들과 함께 특색 있고 개성 있는 공간을 창업해서 도시 재생 사업을 하고 싶다. 문재인 정부 이후, 천안시가 청년 창업자를 위한 지원 정책을 많이 하고 있어, 이를 잘 활용하면 좋은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을 것 같다."

홍승현 목사는 지역사회 공공성을 구현하는 교회를 고민하다 책방을 떠올렸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지역사회에서 공공가치 구현
책방과 교회로

홍승현 목사(살림교회·35)는 기성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지내면서, 늘 머릿속에는 선교적 교회를 그리고 있었다. 어떤 일을 해야 교회가 지역사회에서 공공 가치를 구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고민은 '서점'으로 귀결됐다. 요즘은 책방에서 주민들이 정기로 모여 강연회를 듣거나 독서 모임을 하니, 어찌 보면 교회와 역할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개척 청사진을 짜던 중, 사역하고 있는 교회 담임이 갑자기 바뀌었다. 부교역자들도 모두 사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홍 목사는 지금 안 하면 못 하겠다는 생각에, 올해 4월 전주에서 '살림책방'과 '살림교회'를 열었다.

아직 손익분기점을 얘기하긴 이르지만, 장사는 녹록지 않다. 홍 목사는 "요새는 책으로 돈 벌기 어려운 것 같다.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시범으로 작가 강연회와 독서 모임을 열었는데 지역에서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한번은 전교 학생 수가 150명 되는 인근 초등학교가 협조를 구해 7개 학급이 책방에서 그림책 읽기 모임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살림책방과 살림교회가 있는 전주 덕진구 하가1~4길은 다른 곳과 달리 주민 간 유대감이 강한 지역이다. 이곳을 제외한 주변 마을은 모두 재개발구역으로 선정돼 이미 착공했거나 공사를 앞두고 있다. 하가길 지역도 재개발구역에 포함됐는데 주민들이 반대했다. "유일하게 개발되지 않은 마을이 있다고 들어서, 특별히 이곳을 찾았다"고 홍 목사는 말했다.

홍 목사는 요새 동네 아이들을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이 지역에는 아파트 단지와 달리 아이들이 놀 만한 시설이 많지 않다. 젊은 부부가 도시로 떠나는 큰 이유다. 아이들이 책방에서 놀거나 재밌는 시간을 보낼 만한 프로그램이 없을까. 요새 홍 목사가 종종 하는 고민이다.

살림책방은 일요일이 되면 교회로 바뀐다. 아직 교인이라고는 가족뿐이다. "기성 교인은 아마 오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서점을 영업하는 목사, 평일에 서점으로 바뀌는 예배당은, 일반 교인이 경험해 온 교회와 다르니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홍 목사는 새로운 시스템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집사·장로·권사 직분을 없애고 같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교인들과 함께 세우는 교회다.

남양주에서 코워킹 스페이스를 운영해 온 김소망 목사는 내년부터 셰어 하우스를 시도할 계획이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청년 창업 지원하던 교회
청년 셰어 하우스 꿈도

김소망 목사(나무교회·37)는 지난해 7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남양주에서 '우리동네청년연구소'라는 코워킹 스페이스를 만들었다. 그가 우리동네청년연구소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단 하나, 청년들에게 좋은 공간을 저렴하게 나누는 것이다. 일요일에는 김 목사와 가족들이 이곳에서 예배한다.

사업이 생각보다 잘돼 내년에는 자기 건물을 가지려고 한다. 이를 기반으로 셰어 하우스를 만들 계획이다. 우리동네청년연구소가 청년들이 공부하거나 창업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면, 셰어 하우스는 청년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것이다.

"교단 선배 목사들은 이런 사역을 잘 생각하지 않는다. 교회가 크고 여유로워서 그런 것 같다. 급진적인 말처럼 들리겠지만, 한국교회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땅을 모두 팔아 집 없고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 주면, 하나님이 정말 기뻐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외에도 이날 리로콘 1회 모임에서는 사역 형태·성격·내용은 다르지만, 비즈니스 목회를 꿈꾸는 여러 목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모임을 주최한 김혁주 목사는 사당역과 이수역 사이 거리를 재생하는 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이 거리는 대개 원룸이나 술집밖에 없어 주민들이 이용할 만한 문화 시설이 부족하다. 그는 내년 초 사당역 인근에 코워킹 스페이스를 열 예정이다.

김 목사는 생각이 비슷한 목회자들과 함께 10여 개 사업장을 열 계획을 갖고 있다. 각 사업장이 비즈니스 교회가 되는 것이다. 첫 번째 파트너로 박민현 목사(37)가 합류했다. 박 목사는 내년 3월 서점을 열 예정이다. 유럽처럼 도제 시스템을 도입해 직원을 전문적으로 길러 내고, 작가 지망생을 지원하는 일들을 구상 중이다.

신의승 전도사(31)와 서명원 전도사(30)는 신학교를 졸업한 지 1년도 안 됐다. 서명원 전도사는 "솔직히 살아남고 싶다. 주요 교단 신학교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갈 만한 곳이 많지 않다. 또 교회가 제 기능과 역할을 상실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안 목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신학교에서 만난 두 사람이 떠올린 것은 세탁소. 지방에는 주택과 도심이 멀어 몸이 불편한 이들은 세탁을 자주 맡기기 어렵다. 신의승 전도사는 "아산에서 고령층이나 장애가 있는 이들, 혹은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대상으로 무료 빨래와 배달 서비스를 갖춘 세탁소를 준비 중이다"고 했다.

이들은 아직 1년 정도 더 고민하며 준비할 계획이라고 했다. 세탁소와 연관된 목회를 구체적으로 연상하기란 쉽지 않다. 세탁소에서 예배하는 것이냐고 물으니, 아직 정한 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두 전도사는 목회와 사업의 경계선을 헤매는 것 같았다.

참가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각자의 고민과 경험을 얘기했다. 김혁주 목사는 앞으로 리로콘을 토대로, 비즈니스 목회를 하고 있거나 준비하는 목회자들 모임을 열겠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김혁주 목사는 앞으로 리로콘을 토대로, 비즈니스 목회를 하고 있거나 준비하는 목회자들 모임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마치 영세 빵집들이 '우리동네빵집'과 같은 브랜드를 만들어 노하우를 공유하며, 프랜차이즈 빵집에 대항하는 방식이다. 새로운 실험과 도전을 바탕으로 대안 목회를 찾는 목회자들이 경영·마케팅·회계 등 전문적인 지식을 공유하고, 서로 교제하고 격려하는 모임이다.

김혁주 목사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다. 우리도 이게 맞는지 저게 옳은지 큰 확신은 없다. 다만, 기성 교회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새로운 목회를 시도하는 것이다. 젊고 개성 있는 목회자들이 서로 도우며 잘해 나갈 거라고 본다. 관심을 갖고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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