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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의 '불사조', 김영우는 누구인가

15년간 이사·이사장·총장 재임, 도덕적·법적 문제 무시하고 총신 '사유화' 의혹

구권효·최승현 기자   기사승인 2017.12.20  15:3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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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까지 임기가 보장된 김영우 총장은 2003년부터 18년 동안 총신대에 재임하게 된다. 마포삼열 선교사 이후 최초로 총장·이사장을 역임하는 그는 어떤 인물일까.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뉴스앤조이-구권효·최승현 기자] 제7대 총장으로 선출된 김영우 목사는 총신대학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되었다. 2003년부터 총신대 재단이사로 재임한 그는 14년 넘게 총신대에서 공직을 맡고 있다. 2021년까지 늘어난 그의 임기를 감안하면 18년을 총신대에 머물게 된다.

김영우 목사는 12월 15일 열린 이사회에서 제6대 총장직에 사표를 낸 후, 곧바로 총신대학교 제7대 총장으로 선출됐다. 총장이 되기 전 그는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제16대, 제17대 재단이사장을 지냈다. 중간중간 이사장·총장직을 박탈당할 만한 상황이 몇 번이나 있었지만, 그는 불사조처럼 살아 돌아왔다.

그는 총신대가 4년제 대학교로 승격해 총장제가 실시된 1995년 이후 최초의 재선 총장이며, 총신대 전신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 1901년 개교 이래로 따져 봐도 제3대, 제5대, 제6대 교장과 초대 학장을 지낸 박형룡 박사 이후 처음이다. 김영우 총장 이전에 이사장과 총장을 모두 역임한 사람은 총신대 역사상 평양신학교 이사장과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 교장을 지낸 마포삼열(사무엘 모펫) 선교사뿐이다.

총신대 총장이면서 충남 서천군에 있는 서천읍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김영우 목사는 내년이면 만 69세가 된다. 결혼한 남성만 목사 안수를 주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교단에서 '군목'으로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미혼이라는 특이한 이력도 있다. 김영우 목사가 교단에서 어떤 이력을 가지고 있는지, 7대 총장 선임에 맞추어 다시 한 번 정리했다.

<기독신문> 주필로 총회 등장
편집권 침해로 노조와 갈등
직원들, 집단 반발 및 퇴진 요구

김영우 목사가 처음 맡은 교단 중직은 예장합동 교단지 <기독신문> 주필이다. 주필은 논설을 게재하는 등 교단지 논조를 대변하기에 교단에서도 영향력 있는 자리로 꼽혔다. 그가 주필 때 쓴 '김영우 칼럼'은 지금도 <기독신문>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 목사는 2000년 1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만 2년간 주필로 활동하고 물러났다. 그리고 불과 5개월 후인 2002년 5월, 다시 주필이 됐다. 이때부터 <기독신문>에 분란이 생겼다. <기독신문> 노조는 김영우 목사가 논객 직무를 넘어 경영과 편집에까지 관여한다고 비판했다. 김 목사 본인이 규정에도 없는 특별 상여금을 받았다는 의혹에 관한 문장이 삭제된 채 신문이 발행된 일도 있었다.

노조와의 마찰로 <기독신문>은 혼란에 빠졌다. 이사장은 사장과 김영우 주필을 비호한다는 의혹을 샀다. 2004년 5월 <기독신문> 이사회에는 사설 경호 업체 직원까지 출동했다. 이들은 "이사장 측의 의뢰를 받고 고용됐다"고 했다. 총회 회관에 용역 업체가 들어온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여론이 악화해 김 목사는 주필 재임에 실패하고 물러났다.

그러나 김영우 목사는 2007년 다시 주필로 돌아왔다. <기독신문> 노조는 편집권을 침해했던 김 목사의 복귀를 반기지 않았다. 이사장·사장 선임 문제로 총회와 <기독신문> 노조의 반발이 일던 2008년, 총회가 설치한 기독신문정상화를위한특별위원회가 김 목사의 주필 사퇴를 요구했다. 김 목사는 반발했으나 곧 주필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영우 목사가 주필로 있던 2004년, <기독신문> 노조원들은 그를 반기지 않았다. 기사 삭제를 지시하는 등 편집권을 침해하고 공금을 유용했다고 주장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2010년부터 총신대 이사장으로
뇌물 수수 의혹부터 보복 인사까지
총회와 총신, 끈질긴 갈등

김영우 목사는 이후 주 무대를 총신대로 옮겼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총신대 이사회에 관여해 왔다. 2001년 예장합동 총회 85회기 때 운영이사가 된 것을 시작으로, 2003년에 재단이사로 선출됐다. 2007~2008년에는 운영이사와 재단이사를 겸하면서, 운영이사회 부서기와 재단이사회 서기를 맡았다. 이어 2009년 공석이 된 재단이사장의 직무대행을 맡더니, 2010년에는 정식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김영우 이사장 체제하의 총신대는 말 그대로 바람 잘 날 없었다. 2011년, 김 목사는 뇌물 수수 의혹에 휘말렸다. 총신대 직원 ㄱ 씨가 인사 청탁을 대가로 김 목사를 포함, 당시 정일웅 총장과 김길성 부총장에게 금품을 제공했다. ㄱ 씨는 2010년 2월, 김영우 목사를 찾아가 500만 원에 상당하는 그림을 주고, 그해 9월에는 국민은행이 발행한 100만 원짜리 수표 5장을 주었다고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그러나 재단이사회는 ㄱ 씨만 파면하고 김 목사에게는 아무런 처벌이나 불이익도 주지 않았다. 이에 반발한 학생들은 재단이사회 퇴진을 요구하면서 2011년 수업 거부에 들어갔다. 당시 신대원생 1,600명 중 100여 명을 제외한 모든 학생이 수업에 불참했다. 학생들은 기말고사까지 거부하는 등 학내 사태는 극으로 치달았다.

학교 전체가 파행하고 있는데도, 당시 김영우 목사는 "뇌물 수수 의혹은 국가기관에서 판단할 일"이라며 요지부동이었다. 이사회는 도리어 원우회장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고, 김 목사를 비판하는 학생들의 기자회견에 참여한 교수들을 전보 조치하는 등 '보복성 인사'를 단행했다. 일부 교수가 학생들을 선동했다는 프레임을 짰다.

김영우 목사는 개강 1주일 전, 김지찬 교수를 신대원에서 학부로, 이한수 교수를 신대원에서 평생교육원으로 발령했다. 감봉 1개월 징계도 내렸다. 김 교수와 이 교수는 "당사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보복성 좌천"이라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징계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소청을 제기했다. 두 교수는 징계·발령과 관련한 소송에서 모두 이겼다. 김영우 목사가 끈질기게 항소해 모두 3심까지 갔다.

김영우 이사장 체제의 재단이사회는 그의 뜻에 좌우지됐다. 뇌물 수수 혐의를 받아도, 보복성 인사 조치를 해도, 아무도 그를 막지 못했다. 2012년에는 김영우 목사가 제주 탐라대 부지를 매입해 총신대를 종교 대학을 넘어 종합대학으로 만들려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생뿐 아니라 교수, 직원까지 반대 운동을 벌였다. 수십억이 드는 일을 학생·교수 및 교단 총회와 한 번의 논의도 없이 밀어붙였던 것이다. 탐라대 인수는 결국 그해 9월 총회 결의로 무산됐다.

2012년 11월, 총신대 학생들이 뇌물 수수 사건 등에 대항해 학내 사태를 벌였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2013년 말에는 길자연 목사(왕성교회 원로)가 총신대 총장으로 입후보하면서 다시 학생들이 들고일어났다. 학생들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때 금권 선거 의혹에 휘말리고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한 길 목사를 원하지 않았다. 당시 길 목사를 추천한 총장후보추천위원회는 김영우 목사를 포함한 재단이사들과 운영이사회 임원들로 구성돼 있었다. 학생들의 격한 반대에도 길 목사는 총신대 5대 총장에 당선됐다.

예장합동 총회는 김영우 목사를 벼르고 있었다. 2014년 9월 열린 99회 총회는 "총신 재단이사 임기는 4년이고 한 번만 연임할 수 있다"는 96회 총회 결의를 재확인하고, 당시 이사들에게 소급 적용하기로 결의했다. 2003년부터 재단이사로 재직한 김영우 목사는 10년 넘게 이사를 했기 때문에 당장 물러나야 했다. 이 결의는 사실상 김 목사를 겨냥한 것이었다. 총회 현장에서는 김영우 목사에 대한 총대들의 적개심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총회 결의에 따라, 학생들과 교수들도 김영우 이사장 퇴진을 다시 한 번 요구했다. 학부생들은 김영우 이사장과 길자연 총장을 규탄하며 종교개혁 주간에 '개혁주의 장례식' 퍼포먼스를 치르기도 했다. 신대원생 1,360명 중 88%에 달하는 1,195명이 총회 결의를 지지한다는 성명에 동참했다.

그러나 김영우 목사는 이번에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외려 교단을 상대로 '총회 결의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총회를 상대로 승소했다. 법원은 사립학교의 권익을 총회가 무리하게 침해한다고 봤다. 교단 총회가 사립대학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김영우 체제하의 총신대는 예장합동 총회의 골칫거리였다. 지난 수년간 총회가 열릴 때마다 총신대 문제는 뜨거운 감자였다. 총회는 몇 번이나 김영우 목사와 재단이사들의 목사직을 박탈하겠다며 지도에 따르라고 했지만, 김영우 목사는 사회 법을 등에 업고 아랑곳하지 않았다.

2015년 7월, 총회는 총신대와 극적 합의했는데, 대가는 김영우 목사가 '총장'이 되는 것이었다. 길자연 목사가 총장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스스로 물러나자, 김영우 목사는 당시 총회장 백남선 목사와 "길 총장의 잔여 임기(2017년 12월)까지 총장직을 수행하겠다"고 합의하고 총신대 제6대 총장에 취임했다.

김영우 목사가 2013년 부총회장 정견 발표를 하고 있다. 그는 부총회장에 두 번 입후보했다가 모두 고배를 마셨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부총회장 '재수'했지만 실패
입후보 대가로 돈 건네 기소
정관 변경으로 '사유화 의혹'

김영우 목사의 꿈은 총신대에 머무르지 않았다. 총신대 재단이사장이었던 2013년, 그는 예장합동 총회 부총회장에 출마했다. 당시 총회 선거 규정에 따르면, 김 목사는 부총회장에 출마할 자격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권한도 없는 총회 선거법개정위원회가 자격 없는 김 목사는 출마할 수 있게 하고, 당시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던 인물은 출마할 수 없게 규정을 멋대로 고쳐 버렸다.

당시는 김영우 목사가 총회 내에서 워낙 정치적으로 유명하니, 입후보만 되면 총회장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간 총신대에서의 김 목사의 전횡과, 무리하게 선거법을 뜯어고친 일의 최대 수혜자가 김영우 목사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총대들의 반감을 샀다. 그는 결국 투표에서 고배를 마셨다.

2016년, 3년 만에 한 번 오는 부총회장 출마 기회가 돌아왔다. 1949년생인 김영우 목사에게는 교단장이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2019년에 만 70세가 되므로 이번을 놓치면 총회장직을 수행하지 못하고 은퇴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영우 목사가 부총회장으로 입후보하는 과정은 또다시 논란이었다. 이번에는 서천읍교회 당회장과 총신대 총장, 두 개의 직을 가지고 있어 '이중직' 논란에 휩싸였다. 총회 선거관리위원회는 2016년 9월 총회가 열릴 때까지 김영우 목사의 부총회장 입후보 여부를 결론짓지 못했다. 총회 현장에서 총대들이 김 목사를 비롯해 다른 후보까지 부총회장 후보로 인정할 수 없다고 결의하면서, 그의 총회장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총회가 끝난 후, 당시 총회장이었던 박무용 목사(황금교회)는 김영우 목사로부터 2,000만 원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총회가 열리기 직전, 김 목사가 2,000만 원을 건네며 자신이 후보로 등록될 수 있도록 힘써 달라고 청탁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검찰이 김 목사를 배임증재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면서 현재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 김 목사는 병원비와 선교비 명목으로 박 목사에게 돈을 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2016년 11월, 김영우 총장이 퇴진 시위 중인 학생들을 뚫고 이동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2017년이 되면서 김영우 목사가 총신대를 사유화하고 있다는 의혹이 점점 짙어졌다. 재단이사들의 임기가 모두 끝나, 예장합동 총회는 규정에 따라 운영이사회가 추천하는 후보 중에서 이사를 선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김영우 목사를 지지하는 재단이사들은 운영이사회와는 상관없이 새 이사들을 선출했다.

총회의 지도를 받는다는 정관 문구를 삭제하고 정년 조항을 없앤 것도 김영우 목사의 총신대 사유화 의혹을 키우고 있다. 2017년 9월, 총신대 재단이사회는 정관을 변경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지도하에" 문구를 삭제한 것은 물론, 교단 내 목사·장로가 아니어도 총신대 이사가 될 수 있게 고쳤다. 또 형사사건으로 기소돼도 직을 잃지 않게 정관을 고쳐, 일주일 후 배임증재로 기소된 김영우 목사는 총장직을 박탈당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또다시 들고일어났다. 이번에는 교수들과 교단 목사·장로들도 함께였다. 신대원생들은 다시 한 번 집단으로 수업 거부를 선언했다. 기말고사는 물론 졸업을 거부하겠다는 신대원생들도 속출하고 있다. 김영우 목사가 배임증재로 기소되어도 총장직에서 버티자, 학생·교수, 교단 구성원들은 김 목사에게 애초 약속대로 길자연 총장의 잔여 임기인 2017년 12월 말까지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아랑곳하지 않던 김영우 목사는 2017년 12월 15일, 돌연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그의 커리어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재단이사회는 곧바로 제7대 총장 자리에 김영우 목사를 앉혔다. 이대로라면 그의 임기는 2021년 12월까지다. 2003년부터 20년 가까이 총신대에 머물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영우 목사가 총신대 이사장·총장으로 있는 동안, 총신은 한 해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김 목사에게 도덕적으로 치명적인 사건이 몇 번이나 일어났는데도, 그는 끝끝내 자리를 지키고 지금까지 왔다. 학생들은 매년 다른 사건으로 시위를 이어 갔지만, 제대로 처리된 것은 별로 없다. "존경할 만한 이사장·총장을 원한다"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그렇게 무리한 요구일까.

김영우 총장의 임기는 2021년까지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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