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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현주소를 비추는 거울, 종교개혁

[서평] 토마스 카우프만 <종교개혁의 역사>(길)

이원석   기사승인 2017.12.16  12: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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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답게 루터라는 캐릭터가 상품성을 획득했다. 루터가 쓰거나 그에 대해 쓴 서적이 2017년 한 해 동안 마흔다섯 권이 쏟아졌다. 그중 열두 권이 일반 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는 점을 나는 주목한다. 종교개혁(The Reformation)이 원래 종교적 범주에 한정되지 않는 광범한 변혁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일반 출판사가 루터와 그로부터 촉발된 종교개혁을 주목하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대(大)개혁 등이 아니라 '종교'개혁으로 옮긴 연유는 일본의 번역 방식을 그대로 답습(踏襲)하는 관행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각 출판사의 여러 저작을 면면히 살펴볼 필요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특별히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인문 서적 출판사로 명망이 높은 길 출판사의 기획이다. 길 출판사는 비중 있는 저작 세 권을 2017년 10월에 연달아 내놓았다.

첫째로, '코기토 총서'라는 이름의 '세계 사상의 고전' 시리즈 39권으로 출간된 <독일 민족의 그리스도인 귀족에게 고함 / 교회의 바빌론 포로에 대한 마르틴 루터의 서주 /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논설>(길)이다. 이는 일반 출판사 중에서는 유일하게 루터의 저작(1519년에 출간된 3대 논문)을 번역했다는 것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루터의 개혁 사상을 서구의 사상사적 맥락 안에 배치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국내 학자의 연구 저서를 내놓는 '인문 저서의 탐구' 시리즈 22권으로 출간된 <루터와 종교개혁>(길)이다. 이는 신학자나 사학자가 아니라 사회학자(김덕영)가 자신의 관점으로 루터의 신학을 조망한 저작이다. 기독교 외부자의 시각에서 꼼꼼하게 살펴본 문제작인지라 주목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지면[<기획회의> 2017년 마지막권인 454호]에 서평 원고를 기고한 바 있다.

셋째로, 독일 괴팅겐대학교 교회사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루터란 신학자 토마스 카우프만의 저서인 <종교개혁의 역사>(길)이다. 이미 2015년 말에 <루터 – 말씀에 붙잡힌 사람>(대한기독교서회)이라는 루터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간결한 입문서 저자로 국내 출판계에 소개되었으나, 그 책의 얇은 분량(144쪽) 탓인지 그의 진면목이 널리 알려진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역사신학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종교개혁을 서술한 이번 저작은 840쪽에 이르는 두툼한 분량에 그의 학문적 역량을 아낌없이 쏟아 놓은 노작이다(참고 문헌 목록은 작은 글씨로 42쪽을 채우고 있다). 루터보다 종교개혁에 방점을 찍은 이 저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종교개혁의 역사> / 토마스 카우프만 지음 / 황정욱 옮김 / 길 펴냄 / 840쪽 / 4만 5,000원

종교개혁은 대본 없는 연극

루터의 역사적 의의는 그가 종교개혁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는 데에 있다. 하지만 이는 그가 투사적 영웅으로 자원한 결과가 아니었다. 루터가 95개의 논제를 발표한 목적은 신학적 토론에 있었으나 실상 자기도 모르게 중세 가톨릭의 놀이터에 폭탄을 던졌다. 대성당 종탑의 끈을 잡아당겨 온 마을에 종소리가 퍼지게 하는 것처럼, 그의 신학적 논제는 교회와 사회의 개혁을 촉구하는 선지자의 고함(高喊)이 되어 온 유럽에 확산되었다.

이러한 루터 개인의 의도와 실제 발생한 결과 사이의 간격은 (루터 이전의/루터를 넘어선) 유럽의 정황에 대한 이해를 촉구한다. 카우프만은 이에 부응하고자 1부에서 종교개혁의 전제가 되는 다양한 항목들에 대해 포괄적이고 역사적으로 접근한다(사회·정치적, 교회사적·경건사적·신학사적, 문화사적·교육사적·커뮤니케이션사적). 이를 통해서 종교개혁이 만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이 준비되어야 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의도와 결과의 불일치는 종교개혁이 대본 없는 연극, 곧 즉흥극임을 보여 준다(카우프만은 종교개혁을 하나의 연극과 같이 파악한다). 그러나 이는 물론 루터 혼자 열연하는 일인극이 아니라 (황제나 제후들, 기사나 시민들과 같은) 다수의 연기자가 출연하는 대규모 즉흥극이다. 카우프만은 이러한 관점하에서 각 연기자들의 행위를 분석한다. 이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연극은 중세의 몰락을 반영한다(중세와 종교개혁은 연속적이면서 또한 불연속적이다).

카우프만은 2~3부에서 본격적으로 종교개혁의 역사를 서술한다. 2부는 루터가 95개 논제를 발표한 1517년부터 아우크스부르크 제국 의회(1530년)까지, 3부는 그 이후부터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종교 평화까지 다룬다. 루터가 (그의 고향이기도 한) 아이슬레벤에서 생을 마친 해가 1546년이지만, <종교개혁의 역사>에서는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의 운명을 암시하는 가운데 간단하게 언급될 뿐이다(672쪽). 루터가 아니라 종교개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터와 종교개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렇기에 1부 4장은 1517년 이전 루터의 지적/영적 수련을 간결하게 소개하며, 이후에도 <종교개혁의 역사>의 도처에서 루터의 사상과 결단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루터에 대한 언급은 중세 유럽과 당대 문화에 대한 큰 그림 속에서 배치되며, 루터라는 걸출한 한 사람보다 그가 태어나고 활약했던 시대와 세상이 강조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루터를 이해하는 데에 가장 필요한 항목일 것이다.

종교개혁의 결말과 한국교회

카우프만은 종교개혁의 결말을 어떻게 보는가. 이를 위해 먼저 종교개혁 발생 당대에 멜란히톤이 선언한 다음과 같은 발언을 인용할 필요가 있다. "이 시대에 신은 다시 교회를 그 원천으로 돌아가도록 부르셨다." 이에 대한 카우프만의 응답이자 <종교개혁의 역사> 전체의 마지막 문장에서 우리는 그 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름을 들은 교회는 더 이상 교황의 교회가 아니었다. 이 점에서 종교개혁은 실패했다."(724쪽)

옳건 그르건 종교개혁이 실패했다는 주장 자체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한데 그 논거가 모호하고 이상하게 들린다. 그 핵심은 정신(spirit)의 지속 여부에 있다. 이는 교황 교회(가톨릭)는 반(反)종교개혁을 통해 생존에 성공하였으나 개신교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은 정치(도구)화되고, 또한 각각의 교파로 분열되어 결국 실패하게 되었다. 840쪽의 방대한 분량을 통해 전하는 주장이 결국 이거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하지만 이게 500년 전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 안타까움이 배나 더하다.

두껍지만 흥미롭게 읽히는 <종교개혁의 역사>를 우리는 하나의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사를 여기에 비추어 볼 때에 한국교회의 어제와 오늘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더 크게 열리리라. 종교개혁은 오늘의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동시에 내일의 한국교회가 계승해야 할 미완(未完)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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