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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냄비, 구세군의 역사가 숨 쉬는 곳

[그림으로 만나는 한국교회] 구세군중앙회관

이근복   기사승인 2017.12.15  17:2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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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마다 자선냄비 종소리에 훈훈한 마음을 품고 새해를 준비합니다. 각자도생의 세상에서 나눔의 가치를 상징하는 자선냄비는 90년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정동의 호젓한 길을 따라가면 르네상스풍 건물 구세군중앙회관이 나옵니다. 구세군중앙회관은 1926년 한국을 방문한 구세군만국본영 2대 사령관 브람웰 부스(Bramwell Booth, 1856~1929) 대장의 70세 생일을 기념해 지었습니다. 1928년 완공했습니다. 동시대 서울 장안의 10대 서양 건물 중 하나이며, 구세군대한본영의 혼과 정신이 담긴 역사적 건물입니다.

구세군중앙회관. 그 옆 구세군 서울제일교회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근복 그림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구세군중앙회관은 건축학적으로도 의미가 깊습니다. 르네상스 양식은 수평적 안정감을 강조한다고 하는데, 이는 이웃을 섬기는 구세군의 특성과 잘 어울립니다. 건물의 단순한 구성에는 검소의 미학이 담겼습니다. 좌우대칭 균형감이 돋보이는 입구의 네 기둥은 고대 그리스 건축에서 따온 것입니다. 르네상스 문화의 체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정면 중앙 상부에 박공(Pediment)도 보입니다. 예배실로 썼던 강당에 있는 서까래 형태의 목조 트러스(Truss)는 화려하면서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구세군중앙회관은 1985년까지 사관을 양성하는 구세군사관학교로 쓰였습니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1938년에 구세군사관학교 28기생 전원은 신사참배 거부 결의문을 작성해 항거하다가 체포, 투옥됐습니다. 1943년에는 구세군사관학교가 폐교됐습니다. 6·25전쟁 때 이곳은 인민군에게 접수당하기도 했습니다. 수난의 역사가 이 건물과 함께하고 있는 셈입니다.

근대 건축물로서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2년 '서울특별시기념물 제20호'로 지정됐습니다. 구세군사관학교는 과천으로 이전해, 구세군중앙회관은 이제 구세군대한본영 본부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소박해 보이는 박물관에서는 구세군대한본영의 선교 및 사회봉사 활동 역사, 그리고 구세군 사관들의 신앙과 삶을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구세군(救世軍)은 영문 명칭 'The Salvation Army'(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군대)를 한자로 번역 표기한 것입니다. 1865년 영국 감리회 월리엄 부스(William Booth, 1829~1912) 목사가 런던 슬럼가에서 소외받는 빈민층을 전도하고 구제 운동을 펼친 것이 이 선교회의 출발이었습니다.

구세군대한본영은 고난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1908년 10월, 서울에 도착한 로버트 허가드(Robert Hoggard, 1861~1935) 일행은 곧바로 거리 전도와 구호 사업에 나섰고, 100여 명의 개심자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평양·개성·대구·광주 등에 영문을 세웠는데, 많게는 500명씩 모이게 됩니다. 선교사 자신들도 크게 놀랐습니다. 이는 구세군이라는 명칭과 직제 때문이었습니다.

구세군은 1907년 일제가 강제해산한 대한제국 군대 용어와 계급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교인이 되는 것을 '병사 입대', 선교 사업을 '전투', 헌금을 '탄약금'이라고 불렀습니다. 찬송가는 '군가', 교회는 '영'(營), 성직자는 '사관'이었습니다. 사관이라고 불리는 성직자는, 구한말 군대 계급을 따라 참위·부위·정위·참령·부령·정령·참장·대장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당시는 강제해산한 군대 병사들이 의병을 조직해 항일 투쟁을 벌이는 상황이었습니다. 영국인들이 군복을 입고 들어와 입대를 권유하자, 독립군에 가담한다는 생각으로 구세군으로 들어간 사람도 있었던 것입니다.

조선인 통역은 영국 선교사의 전도 설교를 일부러 잘못(!) 통역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선교사가 영어로 '하나님나라'와 '영혼 구원'을 외치면, '국권 회복'과 '나라 독립' 등으로 통역한 것입니다. 추후 일제 정보 당국에 발각돼 곤욕을 치르고서는 선교사들이 용어를 바로잡으면서 실제 전투가 아닌 전도라는 사실을 알고 빠져나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자선냄비는 구세군중앙회관 완공과 같은 해인 1928년, 한국 최초로 시작돼 이웃 사랑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빨간 냄비는,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라는 표어로 복음 전도 운동과 사회정의 운동을 통합해서 선교 활동을 하는 구세군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자선냄비는 별도 관리하며, 외부 기관 감사를 받아 모금한 전액이 복지사업에 사용됩니다.

제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 시절, 여러 신학교 학생들과 연합해 교육을 진행할 때 구세군사관학교 학생들이 보여 준 반듯한 태도가 좋은 분위기를 만들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12월 10일, 이보탁 사관의 바른 생활 신앙에 대한 힘찬 설교가 선포된 구세군과천교회 주일예배에 은혜롭게 참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글은 구세군역사박물관장 황선엽 사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림으로 만나는 한국교회'는 매월 2차례(첫째 주, 셋째 주 금요일) 업데이트됩니다.

이근복 / 목사,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을 거쳐 현재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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