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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이후의 구약 읽기

[서평] 마이클 쿠건 <구약 - 문헌과 비평>(비아)

양지우   기사승인 2017.12.09  12:4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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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읽기의 역사는 역사비평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역사비평이 등장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성서를 하나의 관점으로 대했다. 즉 성서는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적은 경전이었다. 신자들은 그 권위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백성에게 하느님께서 베푸신 선물에 감사하면 그만이었다. 독서자들, 특히 훈련받은 성직자들을 통해 전례 중에 낭독되는 성서 본문들은 그 자체로 은총이고, 기쁨이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을 거치며 성서 읽기의 역사는 격변했다. 제도 교회의 힘이 느슨해지자 교회의 통제가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질문과 연구가 싹을 틔웠다. 그리고 근대과학, 철학이 만개하면서부터는 선입관 없이, 일반적인 책을 대하듯 성서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곧 역사학·문헌학·고고학 등 다양한 학문 방법을 활용해 지금까지 교회의 힘에 가려진 성서 본연의 의미, 고대 근동 세계에서 만들어진 '성서'의 본래적 의미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거기'의 의미 말이다.

<구약 - 문헌과 비평>(비아)은 여기서 시작한다. 마이클 쿠건(Michael Coogan, 1942~)은 기본적으로 역사비평의 측면에서 바라본 구약성서를 소개한다. 우선, 저자의 이력에 눈길이 간다. 그는 "고대 근동 지역의 언어와 문헌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으며, "고고학 발굴 작업을 기획하고 참여"한 인물이다. 역사비평의 이론과 실제 분야 모두에 대한 경험을 지니고 있다. 또한 여러 대학교에서 구약성서에 대해 가르친 교사이기도 하다. 그가 "하버드 셈족 박물관(Harvard Semitic Museum)의 출판기획자"이면서, 동시에 "온라인 옥스퍼드 성서 연구(Oxford Biblical Studies Online)의 책임편집자"로 일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구약성서에 대한 역사비평 연구자, 학자이면서 동시에 구약성서의 배경을 이루는 세계와 그 세계에서 적힌 문헌들의 내용을 일반인들에게 소개하는 데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책이 다른 구약성서 개론서들과 차별되는 지점이 있다면, 구약성서에 대한 역사비평학적 연구의 성과물을 간결하게, 핵심을 추려 내 안내하고 있다는 점이다('옮긴이의 말'과 추가로 붙인 참고 도서 소개는 좋은 보완물로 기능하고 있다).

<구약 - 문헌과 비평> / 마이클 쿠건 지음 / 박영희 옮김 / 비아 펴냄 / 240쪽 / 1만 3,000원

<구약>은 총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약성서란 무엇인가? △해석 방법 △구약성서와 역사 △구약성서와 신화 △이집트 탈출: 깊게 보기 △내 계명을 지켜라: 성서의 법 △야훼의 절기: 고대 이스라엘의 의례 △예언자와 예언 △히즈키야와 산헤립: 깊게 보기 △시 △이제 우리의 훌륭한 남성들을 찬양하자. 그리고 여성들도 △구약성서의 영속적인 중요성. 이러한 구성은 구약성서에 대한 정의(1장), 해석 방법 및 주된 장르(2~4장), 내용 요소들(4~11장), 결론(12장)과 같이 네 부분으로 모아 보는 게 가능하다. 역사비평의 전제들과 방법론, 공헌과 한계(그리고 이후에 등장한 방법론들에 대한 언급)까지 간략하게나마 정리해 내고 있다. 단순함과 명료함은 이 책의 미덕이다.

역사비평을 통해 바라본 구약성서란 무엇인가. 저자는 "구약성서는 고대 이스라엘과 초기 유대교 문헌들을 모아 놓은 일종의 선집"(9쪽)이라고 설명한다. 신앙적 의미를 제외한다면, 이 책 묶음이 특별한 이유는 그 배열 방식에 있다. 책이 쓰인 연대가 아닌, 책 속 내용의 배경이 되는 연대를 기준으로 삼아 배열되었다는 점이다. 마치 "존 밀턴(John Milton)의 <실낙원>(Paradise Lost)이 17세기에 기록되었지만 세계가 시작되는 사건을 기술하고 있다는 이유로 선집 1권이 되는 식"(10쪽)이다.

이와 같이 구약성서에서 두드러지는 배열 방식은 그 배열을 주도한 인물들, 즉 편집자, 그리고 이 책의 요소들을 결정한 종교 지도자 그룹을 주목하게 한다. 그들은 구약성서가 책들의 공식 목록인 "정경"으로 확정되기 전까지, 경전에 포함될 요소와 그것을 담은 책을 선별하고 배열한 인물들이다. 역사비평은 "누가, 언제, 어디에서 성서를 썼는가"에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동시에 "누가 이 책들을 이러한 방식으로 선택하고, 배열, 편집했는가"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방식 자체에 그들의 신학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2장부터는 본격적으로 역사비평의 방법론과 구약성서를 이루는 글들의 주된 장르에 대해 설명한다. 역사비평이 가장 활발하게 문제를 제기한 성서 본문은 '토라'(Torah)라 불리는 구약성서 맨 앞에 위치한 다섯 권의 책이다.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이어지는 이 본문들은 '모세가 썼다'고 전통적으로 이해되어 왔지만, 역사비평 이후에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읽히게 되었다. 문제는 하느님을 일컫는 '다양한' 이름 때문에 시작되었다. 야훼(여호와), 엘로힘 등의 이름이 본문들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하느님을 부르는 이름을 중심으로 본문들을 따로 구분해 보았더니, 토라를 구성하는 여러 자료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었다. 가장 논쟁적이었지만, 이제는 학계에서 상식이 된 "문서설"(Documentary Hypothesis)이 제기되었다.

역사비평은 토라를 이루는 자료 문제에서 더 나아가 주된 장르에 대해서도 탐구했다. 특히 문헌학, 고고학을 통해 구약성서의 자료들이 형성되었다고 추정되는 지역 주변의 '신화'를 파고들었다. 흥미롭게도 세상의 창조와 홍수로 인한 변혁 등 구약성서의 근간을 이루는 이야기들과 매우 유사한 고대 근동 세계의 신화들이 발견되었다. 신자들에게는 혼란스러운 발견일 수 있겠으나, 역사비평 학자들에게는 논리 정합적이고 추정 가능한, 구약성서를 만든 뿌리가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구약성서는 신앙의 맥락과 더불어 역사적이고 문헌학적인 맥락에서 새롭게 읽힐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5장부터 11장까지는 구약성서의 내용을 이루는 요소들, 즉 의례, 예언, 시, 핵심 인물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탐구한다. 특히 '깊게 보기'라는 부제가 붙은 장들에서는 마치 독자들이 쿠건과 함께 고고학 탐사를 하는 것 같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이스라엘 주변 세계의 문헌 자료들을 성서 자료들과 비교하고, 고대 이스라엘을 침략했던 제국의 기념비에 담긴 역사적 내용과 성서에 담긴 역사 자료들을 대조하여 '실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묻기도 한다.

12장, 결론에서 저자는 구약성서가 지닌 중요성에 대해 부연하면서도, 구약성서가 지닌 복잡함에 대해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구약성서는 단순히 한 명의 저자가 저술한 책도 아니며, 하나의 관점으로 다듬어 낸 균일한 책도 아니다. 저자는 '그때, 거기'의 의미를 읽어 내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며 여기에 바탕해야만 새로운 읽기도 자의적인 읽기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현실에서 우리는 성서를 읽고 싶은 대로 읽으려 한다. 내가 사는 맥락에 맞춰 성서 구절들을 발췌하여 증거 본문(Proof-Text)으로 삼는다. "자, 여기 증거가 있잖아요!"라고 외치고 싶어 한다. 역사비평적 성서 읽기, 성서 본문의 '그때, 거기'의 의미를 드러내는 읽기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우리가 무심결에 행하는 자의적 성서 읽기라는 태도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의 성서 읽기를 '그때, 거기'에로만 제한할 수는 없다. 우리가 성서를 읽는 이유는 '그때, 거기'의 사실을 확인하거나, 발견에 만족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그때, 거기'의 의미가 '지금, 여기' 우리의 삶과 만나게 하기 위해 성서를 읽는다. '지금, 여기'라는 맥락이 없다면 '그때, 거기'의 의미는 박제가 되어 버린다.

'그때, 거기'의 의미 되살리기와 '지금, 여기'의 의미 찾기는 양자택일의 대상이 아니다. 두 요소는 집을 지을 때 나타나는 과정, 혹은 사용되는 요소에 비견할 만하다. 집을 지을 때 지붕부터, 외관부터 매만지는 건축가는 없다. 먼저 지반을 다지고, 기초가 될 뼈대를 심어 넣는다. 비와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단단한 집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그 위에서야 벽과 지붕을 세워 갈 수 있다.

역사비평적 성서 읽기, '그때, 거기'의 의미를 찾는 성서 읽기는 지반을 다지고, 뼈대를 세워 넣는 작업이다. 마음 가는 대로, 상황에 따라 성서를 취사선택하지 못하도록 단단한 지반과 뼈대를 만든다. 독자들은 지반과 뼈대 위에서만, 이를 딛고 서야만 벽과 지붕을 상상할 수 있다. '지금, 여기'의 성서 읽기, 우리에게 적실한 의미 찾기는 역사비평적 성서 읽기 위에서 더 풍성한 결실을 얻는다. <구약>은 이를 위해 준비된 책이다.

양지우 /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신학 석사 학위를 마쳤으며, 성공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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