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일을 당했을 때 가르치는 종교인이 아니라 곁에 머무는 종교인이 필요하다. 지난 3년 동안 나 역시 많이 배웠다. 팽목항이나 목포신항을 방문한 종교인들이 가족들 곁에 머물고 손잡아 주면 되는데, 위로한다고 하는 말에 가족들은 상처를 받았다. 팽목항에서 어떤 분은 '인양 없어. 그러니까 바다에 마음을 묻어'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그 말 때문에 상처받아도 그냥 견뎌야 한다. 그 말을 받아들이고 그래도 감사하다고 한 다음, 그 사람들이 떠나면 엉엉 운다. 그걸 보는 게 정말 힘들었다."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오현선 교수(호남신대)가 애써 울음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 한국여성신학회(이숙진 회장)가 12월 2일 개최한 '여성 신학자의 눈으로 본 세월호'에서 발표를 맡은 오 교수는, 지난 3년 동안 세월호 희생자 조은화·허다윤 양 엄마들과 함께한 일들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참석자들은 그가 전하는 팽목항·목포신항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미수습자 가족과 보낸 3년,
'동행'의 기록

오 교수는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 이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은화·다윤 엄마와 함께한 신학자다. 2014년 7월, 학생들과 함께 진도체육관에 발을 들인 이후 엄마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엄마들의 마음이 괴로울 때 함께 울고, 말 없이 손잡아 주는 게 오 교수의 일이었다. 오현선 교수는 2017년 9월 두 학생의 이별식이 열릴 때까지 그 곁을 지켰다.

두 엄마의 마음을 제일 잘 알고 있는 오현선 교수(호남신대)는 2017년 9월, 두 학생의 이별식 때 설교를 맡았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약 3년 2개월의 기록을 오 교수는 '동행'이라 표현했다. 세월호 선체 인양이 미뤄지고, 안 될 것처럼 보일 때 엄마들과 함께 아파했다. 2014년 8월, 세월호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신학생들과 팽목항에서 안산까지 걸었다. 두 엄마가 전국을 돌며 인양 필요성을 알릴 때도 연대했다. 그는 세월호 3주기 목포신항 기도회, 인양 당시 4대 종단 기도회, 아이들을 보내는 이별식에 목회자로 함께했다. 그만큼 두 엄마는 오 교수를 믿고 의지했다.

준비해 온 사진을 넘기며 동행 기록을 전하던 중 두 엄마가 부둥켜안고 있는 사진이 나왔다. 오 교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남들이 보기에는 우는 표정으로 찍힌 사진인데, 오 교수는 엄마들의 심경을 읽어 냈다. "이 사진은 세월호 선체 인양이 불확실할 때 찍힌 사진이다. 슬퍼서 우는 것 같이 보이지만 서러워하는 표정이다. 소외당한 얼굴이 보인다"고 말했다.

"하나님은 스스로 희생자 되시는 분"

3년 2개월 동안 엄마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오현선 교수. 그는 은화·다윤 가족과 동행하면서 교회란 무엇인지, 하나님은 누구신지 다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두 가족은 모두 개신교인이다. 평범하게, 교회 잘 다니던 교인이었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더 이상 교회에 나갈 수 없었다. 오현선 교수는 다윤 아빠 허흥환 씨가 한 말을 들려 줬다.

"(참사 발생하고) 2년 만에 아빠들도 함께 성탄 예배를 드렸다. 그때 다윤 아빠가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까 나도 개신교인이지만, 개신교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구원의 종교가 아니더라. 나 같은 한 사람을 교회가 품지 못하고, 은화·다윤이를 품지 않더라. 내가 다시 교회로 돌아갈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오현선 교수는 조은화·허다윤 양 가족들과 함께한 3년을 설명했다. 뉴스앤조이 경소영

다윤 아빠는 기성 교회를 향해 한 말이었다. 하지만 팽목항에 찾아오는 종교인이라고 해서 가족들을 힘들게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오 교수는 "목포신항에 와서 격려도 위로도, 따뜻해지지도 않는 말을 종교인이 제일 많이 한다. 가르치려 하지 말고 그저 손 한번 잡아 주고, 밥 한번 먹으면 되는 건데…"라고 말했다.

신학자로서 엄마들이 질문해 올 때 답하는 것도 오 교수의 몫이었다. 2015년 12월, 은화 엄마 이금희 씨와 나눈 이야기는 오 교수가 다시 한 번 하나님을 성찰하는 계기가 됐다. 엄마는 은화와 열심히 교회를 다녔는데, 왜 하나님은 아이 시신도 안 건져 주시냐고 물었다. 결국 질문은 "대체 하나님은 누구신가"로 이어졌다.

"아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는데,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나의 하나님은 은화가 죽는 순간 그 안에서 같이 머문 분이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고백하지만 그 배를 번쩍 들어올리는 게 전지전능한 게 아니다. 인간이 따라할 수 없는 것을 행하는 게 전지전능한 것이다. 가장 고통받는 자와 일치가 되고 연대하는 건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예 희생자가 되신다. 돌보는 자를 위해 일체가 돼 주신다. 은화가 되시고 다윤이가 되시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고통받는 자와 함께하는 삶. 오현선 교수는 그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라고 했다. 희생당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예배 자리를 제공하고, 누가 와도 함께 예배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서의 교회. 오현선 교수는 "세월호 이후의 교회는 이런 사람들이 와서 어떤 표현을 해도 판단·정죄하지 않는 안전한 공동체로서 존재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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