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박근혜를 진정한 여성 리더십이라 할 수 있는가.' 유례없는 국정 농단으로 대통령에서 탄핵당하고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되어 있는 지금에야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지만, 15년 전 박근혜가 국회의원일 때 이 질문은 여성주의 운동계에서도 논란거리였다.

"여성운동은 민주화운동과 같이 시작했기 때문에 사실 말이 안 되는 거거든요. 박근혜 씨를 여성주의라는 이름으로 지지하는 건."

조이여울 편집장(<일다>)은 그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당시 그는 <여성신문> 기자였다.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매체에서, 이 이슈를 기계적 중립, 찬반 논란으로 보도했다. 왜 이럴까.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당시 <여성신문> 이계경 사장이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된 것이다. 조이여울 편집장은 2002년 말 <여성신문>에서 사직했다.

여성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매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길로 뜻이 맞는 사람들과 온라인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를 창간했다. 14년간 줄기차게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사건을 보도했고 많은 필진을 발굴했다. 특히 '성소수자'라는 말 자체가 어색했던 10여 년 전부터, <일다> 홈페이지에 성소수자 섹션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그들의 인권을 이야기했다.

2017년, 그 어느 때보다 한국 사회에 페미니즘과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물론 그에 반대하는 활동도 그만큼 활발했다. 특히 보수 개신교계는 올해도 동성애 반대에 열과 성을 쏟았다. 페미니즘과 성 평등, 성소수자 인권 보호가 '종북 좌파'들의 책략이며, 결국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공산주의자들의 소행이라는 이야기가 아직도 돌고 있다.

페미니스트로, 저널리스트로 살아온 조이여울 편집장에게 여성 및 성소수자의 인권과 개신교계의 대처에 대해 물어보았다. 때로는 비개신교인의 시선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한국교회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진단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인터뷰는 11월 30일 서울 홍대 인근에서 진행했다.

<일다> 조이여울 편집장과 1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페미니스트 저널에서 '성소수자' 다룬 이유
"가부장제가 억압하는 존재"

- 페미니즘 논의가 어느 때보다 활발한 시기다. <일다>를 창간했을 때 20대 후반의 영페미니스트였는데, 지금의 영페미니스트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나.

2003년 <일다>를 창간했을 때부터 '효(孝)를 버려라'와 같은 담론을 다루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취재원이나 독자들도 이런 논의가 좋다고 했고, 당시 진보 진영에서 우리 기사가 많이 회자됐다.

그때만 해도 예상하기를, 페미니즘은 더 이상 뒤로 갈 게 없기 때문에 앞으로 점점 젊은 층에게 확산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참여정부 이후 인권 담론이 후퇴하면서 '페미니즘이 죽었나' 싶을 정도로 논의가 전무해졌다. 언론에는 여성 논객 자체가 없었다. 그런 시기가 10년 갔던 것 같다.

지금 '제2의 물결이다', '리부트다' 이러면서 온라인 중심으로 젊은 여성들이 대두했지만, 이들은 이전 페미니즘 역사와는 별로 상관없는, 이전 담론들을 접해 본 적 없는 이들이다. 다시 또 출발하는 식으로 가는 것 같다.

온라인 세대들이 '격투하다시피' 나왔던 시기 문화를 보면, 그들이 학교에서 인권을 따로 배웠다든지 한 건 아니다. 온라인 세계가 익숙하긴 한데, 너무 마초적인 것이다. 억울하고 스트레스 받던 게 어느 날 분출된 것 같다. 미러링이 맞냐 틀리냐 이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들 입장에서는 더 밀려날 데가 없었던 것이다.

그냥 바로 링 위에서 싸우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때는 방법론을 많이 고민했다. 인권·평화도 생각해야 하니까. 지금 같은 경우는 애초에 어떤 운동을 하겠다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온라인상에서 폭발한 에너지다. 그냥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 그런 현상으로 봤다. 우리 때와는 또 다른 문화다.

- <일다>는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논의를 빨리 시도했다. 그 당시에는 '성소수자'라는 말도 생소한 시절이었다.

언론에서는 '동성애'를 '동성연애'라고 가십성으로 다루던 때였다. TV 드라마 정도에서 가끔 차용되는 정도였다. 언론인들과 동성애자를 포함한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게 무슨 말이냐'며 알아듣지도 못하는 정도였다.

'<일다>에서 얘기하는 페미니즘이 뭐냐' 고민했을 때, 나는 페미니즘이 남성·여성이 있고 서로 싸우는데 누가 우위를 점할 것이냐, 아니면 어떻게 두 성이 화합할 것이냐는 차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것들은 지나치게 단편적이다.

나는 페미니즘이 이 사회를 조금 더 평등하고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가부장제를 부수는 건 필수적이다. 가부장제는 가족 제도, 그리고 가족 제도에서 파생된 국가와 연결돼 있다. 한국은 특히 가부장 중심으로 국가가 설계됐다. 호주제가 폐지됐지만 여전히 '가족'은 가장과 그에 딸린 식솔 느낌이다. 이런 세상에서 여성은 여전히 이등 시민이다.

가부장제가 억압하는 또 다른 존재가 성소수자다. 동성애 반대하는 세력이 '가정'과 '혼인'을 신성화하지 않나, 개인의 존재를 얘기하기보다는. 혼인하고 그 안에서 아이를 낳아 대를 잇는 것이 목적인 존재로 인간을 본다는 거다. 이런 세상에서는 성소수자가 들어설 틈이 없다. 제도적으로 막혀 있다.

나는 당연히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운동은 같이 가는 것은 물론 맞닿아 있다고 봤다. 실제로 페미니스트가 성소수자 인권 운동하는 경우도 많고. <일다> 시작할 때부터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성소수자라는 말 자체가 생소했던 환경에서도, 성소수자 당사자가 70명 넘게 칼럼으로 참여했다. 그때에도 그들은 없었던 게 아니다.

보수 개신교, 현실과 동떨어진 성 담론
자유한국당과 손잡고 더욱 정치화 전략

- 한편으로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논의가 많아지면서, 보수 개신교계는 더 극단으로 가는 느낌이다. 아직도 동성애자를 '문란한 사람', '쾌락을 좇는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교인이 많다.

한국은 많이 서구화하기도 했지만, 성 문화는 아직도 보수적이다. 어린 시절부터 궁금했던 게, 한국 성 문화는 답답하고 보수적인데, 실제로는 성매매·성폭력·불륜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하다는 것이었다. 성 문화 규범과 실제 상황이 괴리가 너무 커서 그런 건가 싶기도 했다.

교회는 더 심하지 않나. 가톨릭 같은 경우 전통적으로 낙태를 반대한다. 그런데 가톨릭 신도들의 낙태율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비신도의 낙태 비율과 똑같다. 교회는 낙태를 금하고 있는데, 실제로 신도들은 낙태를 한다. 이 간극이 얼마나 심한가.

교회는 성에 대해 잘 이야기하지 않고, 이야기해도 아주 보수적이다. 그런데 목회자 성폭력은 계속 터진다. 가해 목사들은 잠깐 악마의 유혹을 받았다는 식으로도 얘기하던데, 나한테는 무슨 호랑이가 담배를 피웠다는 말로 들린다. 교인들이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나 궁금하다.

보수 개신교를 보면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성에 대해 '문란함'이나 '사탄의 유혹'이라고 관념적으로 이야기한다. 마치 자신들은 성관계도 안 하고 사는 것처럼. 동성애자들이 항상 하는 얘기가 "이성애자들은 서로 좋아하고 섹스도 하고 애도 낳고 그러면서, 왜 우리가 서로 좋아하고 섹스하는 거는 그렇게 특별하게 보느냐"는 것이다.

관념 속에 있는 것들을 밖으로 투사하기 쉬운 상대가 성소수자인 것 같다. 혐오하면 두려워하게 돼 있다. 실체를 보기보다는, 괴물처럼 무섭거나 괴상하고 음란 마귀 같은 이미지를 붙여 넣는다.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를 자꾸 덧씌우는 것 같다. 교회 내 성 담론 부재가 관련이 크다고 본다.

- 차별금지법 제정뿐 아니라, 각 지자체 인권조례 등이 보수 개신교의 조직적 반발로 번번이 무산되고 있다. 개신교인이 아닌 시민으로서 이런 행태를 어떻게 보는가.

예전에 <일다>에서 외국 언론을 인용한 보도 중 "교회는 섹스 얘기 그만하고 예수에 대해 얘기하면 어떨까"라는 내용이 있었다. 한국 상황과 똑같다. 지금 보수 개신교인들이 하는 걸 보면 '교회가 지금 여기밖에 매달릴 게 없나', '여기에 계속 매달려야만 운영이 되는 뭔가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전에는 성소수자라는 존재가 드러나지도 않았고 애써 지워 버리려 했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됐다. 하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이 수면 위로 오르면서, '만약 저 법이 통과되면 동성애를 인정해 줘야 한다. 거기에 반대하면 잡혀 간다' 등의 위기론을 퍼뜨렸다. 그동안 내재해 있던 혐오가 실력 행사로 드러났다.

내가 느끼는 건 교계는 돈이 많다는 것이다. 버스 대절해서 신도들 동원하는 거 보고 '교회는 이런 게 가능하구나. 다른 집단들은 다 먹고살기 바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는 신도를 종교의 이름으로 동원할 수 있는 구조다. 목회자들이 이런 걸 기회로 구심점으로 삼으려 하나 싶기도 하다.

다른 나라도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해서 교계의 반발이 있지만, 그나마 나은 것은 교계 안에 그걸 상쇄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점이다. 성서를 다르게 해석하는 다양한 학자들, 인권에 대해 어느 정도 공부가 돼 있는 교인들도 있다.

한국 교계는 성서를 비판적으로 읽는 것도 안 되고, 그렇게 하면 이단이라고 한다. 나도 어렸을 적 교회를 다녀 봤지만, 그냥 무조건 믿으라고 하지 그걸 분석하게 두지 않더라.

한국 상황이 좀 더 염려되는 부분이다. 교계 안에 다양한 목소리가 있으면 논쟁의 여지가 있는데, 지금은 그게 아니고 마치 한목소리인 것처럼, 교인이면 누구나 그래야 하는 것처럼 되어 있다. 그러면서 왜곡된 이미지를 씌우고, 사람 동원해서 반대하고… 이렇게 나오니까 정말 보수 개신교는 어떻게 하기가 어렵다.

성소수자와 관련한 이슈는 정치화하고 있다. 중앙일보 유튜브 갈무리

- 동성애와 함께 퍼지고 있는 것이 '에이즈'에 대한 잘못된 정보들이다. 보수 개신교계에서만 통용됐던 주장들을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의 진짜 의도는 뭐라고 보나.

다 망한 줄 알았던 자유한국당이 다시 꿈틀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하고 있다. 이번 대선 토론회에서도 동성애 찬반 질문으로 공격하지 않았나. 그걸 자기들 생명줄로 가져가겠구나, 그러면 교회 정도는 업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구나, 자유한국당의 수구적 정치 세력과 성소수자 인권 반대하는 수구 개신교가 만났고, 이 사안은 또 정치화하겠구나, 그렇게 본다.

자유한국당과 보수 개신교는 이미 그렇게 만난 상황이다. 그렇다면 관심은,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어느 만큼 역할을 할까 하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세계적인 추세가 많이 바뀌었다.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오르려면 성소수자를 생각 안 할 수 없다. 인권의 지표가 됐기 때문에.

사실 차별금지법은 노무현 정부 때 제정하려다가 그때도 보수 개신교 반발에 부딪혀 못했다. 이 정부는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그에 따라 지방선거 등에서 성 평등 논의가 더욱 정치화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신의 사랑' 이야기하는 한국교회
왜 혐오 세력 됐나

- 한편으로, 개신교인들은 어쨌든 성경에 문자적으로 동성애는 죄라고 나오기 때문에, 동성애를 받아들이자는 주장을 선뜻 수용하기 힘들어한다. 비개신교인으로서 이런 정서는 어디까지 용납할 수 있겠나.

성서는 족장 시대, 왕정 시대 이야기인데, 그걸 지금 시대에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건가. 당시는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하던 시대인데,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하면 - 물론 거기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 많은 사람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구약에는 여성 혐오와 차별이 너무 많다. 여성을 희생시키고 강간하고 죽여도 아무 상관없이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걸 지금 규범으로 인정하자면 못 산다. 노예제가 있고 여성은 인간도 아니던 시대였다. 개신교인들도 그런 걸 원하는 건 아닐 텐데, 왜 유독 소돔과 고모라만 아직까지 언급하며 동성애가 문제라고 할까.

인권의 개념이 정립된 것은 '모든 인간은 신 앞에 동등한 존재'라고 천명한 기독교 영향이 크다고 본다. 이런 게 성서의 근본정신 아닌가. 성서를 통해 그 시대 신을 믿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의 역사를 지금 여기에 바로 대입하자는 건 무지 아닌가. 성서를 보는 잘못된 방식인 것 같다.

종교의 순기능이 있다고 본다. 이 생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소진하고 마는 무의미한 생이 아니라 영적인 것을 생각하게 한다는 점이 사회에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 신 앞에 동등하다는 것, 뭘 더 가졌든 못 가졌든 신은 똑같은 존재로 봐 주신다는 것. 예수는 신의 사랑을 이야기했고, 신의 사랑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 아닌가. 이 정도는 비기독교인들도 알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정말 예수와 같은 삶을 산다면 왜 '개독교' 얘기를 듣겠나. 그런 이웃이 있으면 아주 좋지. 자기 몸처럼 나를 아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 교회가 예수 믿고 천당 가라고 하기보다 예수처럼 살라고 말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혐오 세력'까지는 안 되지 않을까. 참 이상하지, 왜 신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혐오 세력이 됐을까.

어쨌든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조금은 더 괜찮은 가치를 추구해야 맞는 것 아닌가. 그런데 최근 개신교는 상식 이하로 얘기되고 있다. 성소수자들만 개독교라고 말하는 게 아니지 않나. 교인들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이게 신앙인지 집단이기주의인지 조직 보호 같은 건지….

- 성소수자나 여성 문제 등을 인권 측면에서 접근하는 시각이 최근 개신교인, 특히 젊은 세대에서 많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관점과 여러 질문들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기성 교회 문화 속에 있다. 오랜 시간 소수자 문제를 다뤄 온 사람으로서,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여성 인권과 관련해서 파헤치기도 개혁하기도 힘든 데가 종교계, 연예계, 스포츠계다. 전에는 군대도 꼽았는데, 오히려 교회보다는 더 드러날 수 있는 구조다. 그동안 계속해서 NGO 등에서 개입이 이뤄졌다. 또 군대는 국가가 터치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정책만 제대로 짜면 좋아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물론 직장 안에 성 문제가 드러나도 덮으려 하고 그런 문화는 다 있다. 그래도 사회에는 제도적인 발판도 있고, 문제를 제기하려는 움직임도 있고, 그것도 안 되면 최소한 다른 직장으로 가면 된다는 선택지가 있다.

그런데 종교계는 갑자기 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덮으려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상식적인 과정을 훌쩍 뛰어넘어 버리는 것이다. 언어부터 상식적이지 않다. 이렇게 되면 피해자는 감당하기 힘들어지고, 자기 탓하게 되기가 쉽다.

만약 교회 안에서 자정 노력을 한다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여전히 설교 중에 여성 혐오나 성차별적인 말이 무수히 나오고 아무 제재받지 않는 걸 보면 힘들겠구나 싶다.

어쨌든 교회 생활도 사회생활과 동시에 하는 거니까. 교인들은 계속 사회 영역과 주거니 받거니 한다. 지금 사회 흐름이라면 교실 안에서 차별적인 것에 문제의식을 갖듯이, 당연히 교회 안에서도 문제의식이 생길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이 어떤 식이든 모임을 만들면 좋겠다. 그동안은 문제의식을 느낀 사람이 너무 소수여서 교회를 떠나 버리는 식이었다. 지금은 함께 모여서 세미나라도 할 수 있다면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이런 식의 공감이 생겨날 것이다.

조이여울 편집장은 인권에 관한 사안은 중립적으로 보도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인권 보도의 방향, 피스 저널리즘

- 성소수자 관련 보도를 하면, 왜 반대 측 입장은 보도하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사람이 있다. 언론이 객관적인 사실을 보도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일다>가 추구하는 저널리즘이 뭔가' 많이 고민했다. 지금 <일다> 출판 담당하는 분이 이라크 분쟁 지역에 다녀온 경험이 있다. 그분은 '피스(peace) 저널리즘'에 관심을 갖고 자료를 모으고 관계자들도 만났다. 우리는 "여성주의 저널리즘과 피스 저널리즘을 통합해 보자. 그게 결국 우리 저널리즘일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피스 저널리즘이 이거라고 정리된 건 없었다. 다만 분쟁 지역에서 저널리즘 활동을 했던 기자들이 몇 가지 제언한 건 있더라. 그중 하나가, 인권에 대한 사안을 보도할 때, 그것을 양측 세력의 싸움으로 보도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분쟁 지역에서 언론은 '미국과 이라크의 싸움', '어느 족과 어느 족의 싸움' 이렇게 보도해 버린다. 그러나 현장에는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커다란 집단 두 개의 싸움으로 보도하는 것이, 이들의 인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분쟁 지역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이 그렇다. 한국에서는 언론들이 주로 모든 영역에서 '보수와 진보의 싸움'으로 보도했다. 비정규직 여성을 대량 해고한 이랜드 사태를 민주노총과 대기업의 싸움인 것처럼 보도했다. 이 여성들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는 듣지 않은 채, 그렇고 그런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보는 것이다. 그 사람들의 인권에는 관심 없다.

성소수자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언론 보도가 인권 운동 측 주장 하나, 개신교 측 반대 주장 하나, 그리고 끝이다. A와 B가 경기하고 있다는 정도의 보도다. 독자들은 인권이 필요한 사람을 자기와 가까운 사람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냥 멀리서 관전하는 거리감을 만든다. 인권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는 인권 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 인권에 대해 보도하면서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기사를 볼 때마다, 이걸 쓴 기자는 도대체 뭘 원하는 건지, 무슨 변화를 바라는 건지 궁금하다. 그냥 그날 써야 할 기사를 채우는 용도라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여성이나 성소수자와 관련한 이슈는 더욱 첨예하게 정치화할 것이다. 보수 개신교의 압력도 더 커질 텐데, 언론도 압박을 느끼고 더 그렇게 기계적 중립으로 가지 않을까 걱정된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