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주차할 공간을 찾게 해 달라고 하는 기도나 날씨가 맑았으면 좋겠다는 유의 기도가 아니었다. 생사를 오가는 절박한 기도였다. 그러나 세미의 얼굴은 점점 더 새파랗게 변해 갔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피가 섞인 침이 흘러나와 베개에 온통 얼룩이 졌다. 조금 뒤 드디어 구급차가 도착했다. 하지만 내 기도에는 즉각적인 응답이 없었다." (41쪽)

피티 그리그(Pete Greig)의 <침묵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미션월드라이브러리)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29세인 아내가 뇌종양으로 한밤중에 경련이 일어나 부들부들 떨고, 예쁘고 푸르던 눈동자가 아닌 희멀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지 않았지요.

<침묵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 / 피터 그리그 지음 / 윤혜란 옮김 / 미션월드라이브러리 펴냄 / 328쪽 / 1만 3,000원

이렇듯 이 책은 그의 아내와 자식들을 둘러싼 기도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렌지만 한 뇌종양을 수술해야 했던 그 당시 상황을 비롯해, 수술 후 병상에 있는 아내를 위한 기도, 퇴원 후 요양하다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 앞에서 아내가 쓰러졌을 때 그가 할 수 있었던 기도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요.

"기도 제목들은 널려 있었다. 세미와 아이들과 병원비에 대한 기도와 지금까지 내가 저지른 죄에 대한 회개 등등. 그러나 내 입에서는 '아, 하나님' 하는 단 두 마디의 기도만이 흘러나왔다. 이것이 정말 가치 있는 기도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때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기도는 그것뿐이었다." (51쪽)

"그때 당시 7개월이던 데니는 벌써 여섯 살이 되었고 허드슨도 이젠 여덟 살이다. 며칠 전에 그 아이들은 학교에서 나오다가 다른 모든 엄마들이 보는 앞에서 엄마가 온몸이 꼬인 채로 덜덜 떨면서 운동장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나는 늘 하던 것처럼 세미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경련이 멈추기만을 기도하고 있었다." (321쪽)

그가 겪은 삶을 통한 기도 내용은 이 책 주제에 맞는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진정한 주제 '예수님의 기도'에 맞는 내용이기 때문이지요. 이른바 세족 목요일의 '이런 고난을 어떻게 감당해야 합니까', 수난 금요일의 '왜 내 기도는 응답되지 않고 있는가', 성토요일의 '하늘이 침묵할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그리고 부활주일의 '모든 기도가 응답받을 때' 등이 그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이 책을 쓴 목적, 이른바 응답되지 않는 기도 때문에 실망하거나 상처받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라는 그 목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은, '수난의 금요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이 부분에서 우리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열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지요. 첫째 상식 즉 기도 자체가 터무니없기 때문에, 둘째 사소함 즉 다른 기도보다 사소한 문제라서, 셋째 자연법칙 즉 인류와 타인의 삶에 해를 줄 수 있어서, 넷째 고달픈 인생 즉 헛된 것에 복종하며 썩어질 것의 종살이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다섯째 신앙적인 교리 차원 즉 하나님께 잘못된 기대를 하고 있기 때문에, 여섯째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즉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예비해 놓고 있는 까닭에, 일곱째 기도의 동기 즉 영적인 기도처럼 들린다 해도 그것이 이기적인 동기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여덟째 관계 즉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와 더 깊은 관계를 맺고자 하기 때문에, 아홉째 자유의지 즉 하나님은 누군가 원하는 것을 강제적으로 하게 만드는 분이 아닌 까닭에, 열째 감동 즉 아주 천천히 효과를 내기 위해 아직도 응답되지 않는 기도가 있음을 알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 내용들을 읽다 보면, 내 기도가 왜 즉각 응답되지 않는지를 깊이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내 기도가 곧장 응답되지 않는다 해도 고통스러워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하나님 뜻을 묵묵히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른바 하나님은 내가 기도하며 매달리는 것보다 더더욱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는 것 말입니다.

그것은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와 <헤아려 본 슬픔>을 재해석하는 내용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게 하지요. <나니아 연대기>에 등장한 마법사의 조카 '디고리'라는 소년이 죽어 가는 엄마를 위해 사자 '아슬란'을 찾아가 '기적의 사과'를 달라고 간청하는데, 피티 그리그는 아슬란의 눈물에 초점을 맞춰 이를 해석하지요. 그 소년의 눈물보다 아슬란이 더 많은 눈물을 글썽이며 소년을 바라보는 그 모습에 말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하면서 예수님이 외칠 때, 그때 하나님의 심정과 눈물이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루이스의 어린 시절과 맞물려 있다고 하지요. 그의 나이 다섯 살 무렵 그의 엄마가 암으로 투병하다가 끝내 두 달 만에 죽게 되었는데, 바로 시절 겪은 아픔을 소설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말이지요. 더 안타까운 것은 그가 만난 사랑하는 연인 그레함이 암에 걸렸고, 결혼 후 5년 만인 45세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난 것도 더더욱 슬픈 일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아픔의 과정을 <헤아려 본 슬픔>에 담았다는 것입니다.

"1969년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ubler-Ross)는 환자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다섯 가지 단계로 분류하여 설명한 적이 있다. 1. 부정(Denial): 도저히 믿을 수 없어요. 나한테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어요. 2. 분노(Anger): 이건 너무 불공평하잖아요. 나는 그렇게 나쁘게 살아오지 않았어요. 3. 협상(Bargaining): 하나님 제 병만 고쳐 주신다면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다 할게요. 4. 좌절(Depression):이게 뭐예요? 내겐 아무 희망이 없어요. 5. 수용(Acceptance): 어떻게 해야 남은 삶을 가장 잘 보낼 수 있을까요?" (124쪽)

한 인간이 죽음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굳이 C.S. 루이스의 어머니나 아내와 관련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삶에 다가오는 죽음을 수용하는 모습이 이렇겠지요. 더욱이 기도로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전혀 뜻밖의 결과를 맞는다면, 이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수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쪼록 이 책은 개인적인 아픔과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의심을 여과 없이 드러내 줍니다. 읽는 이들이 당혹스럽게 여길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 책의 솔직한 민낯이자, 오늘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솔직한 단면이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꼭 응답받는 기도만으로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지요. 대신에 이 책에서 이야기하듯이, 그런 과정은 하나님의 또 다른 깊은 뜻을 얼마든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귀한 깨달음을 얻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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