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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사건, 교계 반동성애 운동 한계 시사

"인권 무시하는 반동성애 운동, 한국교회 고립시킬 것"

이은혜 기자   기사승인 2017.11.27  20: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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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이 제작한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 강연 영상이 삭제됐다 복구되는 일이 발생했다. 한국교회 반동성애 활동에 앞장서 온 몇몇 개신교인의 문제 제기 때문이었다. 세바시 측은 당사자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영상을 내렸다가 시청자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논란 끝에 세바시는 영상을 재업로드했다.

세바시가 성소수자 활동가의 영상을 삭제하고 재업로드한 과정을 보면, 현재 보수 교계 반동성애 운동 진영이 처한 위치를 추측해 볼 수 있다. 보수 교계가 올인하다시피 열심을 내는 반동성애 운동에서는 성소수자가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는 인식이 사회에서 힘을 얻고 있지만, 반동성애 진영에서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세바시 사건은 이런 인식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 줬다.

세바시, 활동가 강연 일방적 삭제
유명 강사 및 누리꾼 반발 빗발치자 재게시
"소수자·약자 모든 폭력·차별 반대"

세바시가 11월 23일 강동희 씨(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활동가) 강연을 공개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이 강연은 세바시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과 함께 기획하고 제작한 것이다. '세바시 폭력 예방 특집 강연회 - 청년, 폭력과 혐오에 맞서다' 시리즈 중 하나였다.

강동희 씨는 '성소수자도 우리 사회의 분명한 구성원입니다'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그가 활동하고 있는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는 각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들의 연합으로 현재 60여 개, 약 3,000명이 가입돼 있다. 성소수자 당사자는 아니지만 인권 활동가인 강동희 씨는 자기 경험·감정을 바탕으로 강연을 풀어 나갔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지우려는 행동은 폭력이 된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강연은 특별할 게 없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폭력을 줄이고 다 같이 잘 사는 곳으로 만들 수 있을지, 활동가 시각으로 풀어낸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를 반대해 온 반동성애 진영은 가만있지 않았다.

세바시는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의 강연 영상을 삭제했다가 논란이 계속되자 영상을 재업로드했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반동연·주요셉 대표)는 방송 다음 날 '동성애 옹호 방송 내보낸 CBS, 세바시는 한국교회 앞에 사과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세바시가 기독교 방송국 CBS에서 출발했고 지금도 CBS TV에서 세바시를 방영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반동연은 "세바시를 신뢰했던 수많은 시청자를 실망시키고 우롱한 사건"이라며 "CBS가 한국교회에게 후원금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보는가"라고 으름장을 놨다.

반동연 성명은 반동성애 활동을 하는 개신교인들이 모인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제작진에 강력하게 항의해 달라는 말과 함께였다.

메시지가 퍼진 다음 날 11월 25일 오후 4시, 세바시는 "강동희 강연자의 강연은 세바시 채널에서 비공개 처리됐다"는 글을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렸다. "이 강연으로 CBS가 한국교회 일부 집단과 교인들에게 거센 항의를 받았다"고 했다. 강동희 씨에게는 일방적으로 이메일로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엄밀히 따지면 세바시는 CBS에서 독립해 운영하는, CBS와 별개 사업체다. 2011년 시작할 때는 CBS에서 시작했지만 현재는 독립 법인으로 운영하며 콘텐츠 기획·제작·유통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CBS가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어서 CBS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세바시가 강동희 씨 영상을 비공개로 처리하자 페이스북에서는 난리가 났다. 우선 같은 시리즈 연사로 나선 이들이 자신의 영상도 비공개 처리해 달라는 글을 공개적으로 올렸다. 손아람 작가, 이은의 변호사(이은의법률사무소), 최하란 대표(스쿨오브무브먼트) 등 강동희 씨와 함께 녹화했던 사람들은 세바시의 결정을 비판하며 자신의 강연 영상을 내리라고 했다. 모델 김지양 씨, 다큐멘터리 감독 이선희 씨 등도 자신의 강연 영상을 내려 달라고 요청했다.

강연자들은 혐오와 차별에 맞서기 위해 기획한 강연을 일부의 반발로 지워 버리는 것은 기획 의도와 정반대라고 비판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주제라는 이유만으로 강연을 삭제하는 것은 강연에서 말하는 소수자를 향한 폭력이라는 논지였다. 최하란 대표는 "만약 그가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박해받는다면 나도 성소수자가 되겠다. 이럴 거라면 강연회의 타이틀 '폭력 예방'이 무슨 소용인가"라고 썼다.

영상을 내리겠다고 한 세바시의 글에는 댓글 수백 개가 달렸다. "이런 식으로 해서 세상이 바뀌겠는가" 등 '세상을 바꾸는'이라는 프로그램 제목에 걸맞지 않은 처사였다는 댓글이 주였다.

주말 내 거센 비판을 받은 세바시는 11월 26일 오후 1시 33분 한 차례 더 글을 올렸다. "저희를 믿고 강연해 준 강연자와 그 강연에 공감해 준 분들에게 차별과 폭력을 저질렀음을 고백한다. 다시 마음 깊이 사과드린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강동희 씨 강연은 여전히 비공개 상태였다. 세바시는 결국 11월 27일 월요일 오전 11시 57분경 "강동희 씨의 강연을 원래대로 공개한다"고 공지하며 "세바시는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모든 차별과 폭력에 반대한다"고 했다.

CBS 공식 입장문 발표
"동성애에 대한 한국교회 우려 이해
성소수자 향한 차별·폭력 반대"

세바시가 강연을 원상 복구한 뒤 CBS도 공식 입장문을 발표했다. CBS는 "교계 일각에서 해당 강연을 동성애 옹호로 잘못 해석하고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해당 강연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거부하기 위한 취지로 제작했을 뿐 동성애를 옹호하거나 조장하는 내용은 없었다는 점을 밝힌다"고 했다. 또한 해당 강연이 CBS TV에서 방송됐다는 주장도 잘못된 것이며 이 같은 주장 때문에 CBS가 피해를 봤다고 밝혔다.

CBS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반대한다고 했다. 다만 한 남자와 한 여자로 이루어진 가족을 건강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한국교회 입장과 뜻을 같이한다고 덧붙이며 "동성애 논란에 대한 교계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CBS 관계자는 11월 2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번 영상을 놓고 교계나 교단, 대형 교회 목회자 차원에서 문제 제기나 항의는 없었다. 개별적으로 교인 몇몇이 항의한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교계 연합 기관 반동연이 성명을 발표했고 이것이 확산될 조짐이 있었다. 일차적으로 해당 영상을 내린 뒤, 11월 27일 오전에 관련 부서장들이 모여 원래대로 복구를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차별과 배제를 기반으로 한 반동성애 운동은 사회의 동의를 구하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다. 사진은 2017년 퀴어 문화 축제 로뎀나무그늘교회 부스. 뉴스앤조이 이은혜

"신앙 기준 안 맞는 사람 삭제,
기존 반동성애 운동 방식, 반발 불러올 것"

한국교회 반동성애 운동 진영은 자신들 기준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면 막강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반대 작업을 편다. 전화, 메일·문자 폭탄, 현장 점거, 1인 시위, 서명운동 등을 통해 어떻게든 상대를 굴복시켰다. 이들의 항의로 지방자치단체가 제정하는 학생인권조례는 폐기되거나 무기한 연기되는 일이 다반사고, 이미 제정한 인권조례도 폐기하라는 협박을 받고 있는 곳도 있다.

2011년 세바시가 시작할 당시, 기획을 함께한 양희송 대표(청어람ARMC)는 "개신교 일부 반동성애 그룹이 어떤 프로그램 자체를 내릴 만큼 영향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 여론 또한 그걸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굴복하지 않을 정도로 시대가 변하고 있다"고 이번 사건을 평했다.

세바시가 영상을 내린다고 발표했을 때까지만 해도 과거와 비슷한 양상이었다. 반동연은 규탄 성명을 냈고 세바시는 강연자에게 용서를 구하면서까지 강연을 내렸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세바시의 결정에 반대하는 의견이 훨씬 많았다. 양희송 대표는 "이 같은 논의의 장이 개신교 내부에 국한되지 않았고, 세바시의 결정이 부당하고 일방적이었기 때문에 시민사회에서 참아 줄 여지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자캐오 신부(길찾는교회)는 "(강동희 강연자 강의는) 성소수자도 사회 구성원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인권적 측면에서 접근해도 되는 강연이었다. 이걸 막기 위해 반동성애 진영에서 과거와 같은 방식을 택한 게 우려스럽다. 극우 개신교에서 자신들 신앙 기준에 어긋나는 사람은 삭제 대상이다. 사회적 소수자를 힘으로 제압하고 삭제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비기독교적이고 비성서적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였다고 평했다.

한국교회가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설수록 시민사회와 함께 갈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줄어든다. 자캐오 신부는 "지역에서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면, 교회는 '상식을 요구해야 할 때는 침묵하고, 배우면서 변화해야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배울 의지가 없고, 힘의 논리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는 곳'이다. 일반인들은 교회의 이런 점을 난감해한다"고 지적했다.

사회·문화가 변한다고 해서 한국교회 반동성애 운동이 갑자기 방향을 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 같은 운동 방식을 고수할 경향이 크다. 양희송 대표는 이럴 경우 사회의 반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반동성애 진영이 활동하면 할수록 한국교회를 향한 부정적 여론과 소수자를 동정하는 여론이 더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교회를 고립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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