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명심보감에 "한마디 말이 딱 맞지 않으면, 천 가지 말이 쓸데없다"는 말이 있다. 다석(多夕) 유영모 선생은 이 말을 두고 "참으로 하느님의 말씀이라 하겠다. 한마디 말을 맞춰야지 그렇지 않으면 쓸데없는 말이다"고 했다.

말 한마디에 울고 웃는 세상이다. 지키지도 못할 말을 했다가 비난과 눈총을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습하지 않겠다"던 명성교회 부자(父子) 목사가 대표적인 예다. 말 한마디는 그만큼 중요하다. 한마디가 어긋나면 지금까지 뱉어 온 수백 수천 마디 말이 어그러질 수도 있다.

청주주님의교회 주서택 목사가 11월 19일 은퇴했다. 주 목사는 2002년 12월, 교인 7명과 함께 교회를 개척했다. 당시 주 목사는 교인들에게 △교회 재정 50%는 반드시 교회 밖을 위해 쓰겠다 △목사·장로 임기제(6년)를 시행하겠다 △65세에 조기 은퇴하겠다 △세습하거나 친인척에게 담임 자리를 절대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쉽지 않은 내용들이지만, 그는 15년간 약속을 모두 지켰다. 청주주님의교회는 개척한 지 10년 만에 출석 교인 1,000명을 넘어섰다. 교회에 빚이 있었지만, 해마다 재정 50%를 구제·선교·봉사에 사용했다. 15년간 교회 밖으로 내보낸 돈을 합산해 보니 96억 원이었다.

목사와 장로 임기 제도를 교회 정관에 못 박았다. 주 목사는 지금까지 두 차례 재신임을 받았다. 65세에 조기 은퇴하고 세습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도 지켰다. 청주주님의교회는 부목사 최현석 목사를 2대 담임목사로 청빙했다.

말은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참 어렵다. 주서택 목사도 그러지 않았을까. 주 목사를 11월 23일 청주주님의교회에서 만났다. 주 목사는 "목사가 강단에서 내뱉은 말은 생명처럼 지켜야 한다. 목사는 삶으로 증명해야 하는 존재다"라고 말했다. 주 목사와 나눈 대화를 정리했다.

청주주님의교회를 개척한 주서택 목사가 65세에 조기 은퇴했다. 주 목사는 15년 전 교회 개척 당시 교인들에게 조기 은퇴, 세습 금지 등을 약속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강단서 한 말 목숨처럼 지켜
교회가 젊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조기 은퇴
"교회 세습은 사유화·기업화"

- 청주주님의교회를 개척하며 선포한 약속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실현했다. 그 원동력이 궁금하다.

내 인생에 영향을 준 세 분이 있다. 어머니로부터 희생과 섬김의 삶을 배웠고, CCC 고 김준곤 목사님을 통해 비전과 꿈을 품었다. 마지막으로 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한 고 김용기 장로님으로부터 '한마디의 약속을 어음처럼 지켜야 한다'고 배웠다. 덕분에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작은 약속 하나라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칠 수 있었다. 특히 강단에서 내뱉은 말은 목숨처럼 지키려고 노력했다. 개척 초기에 한 교인들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고자 했다. 목사로서 한 말에 책임을 지려고 했다. 약속은 물 흐르듯 이뤄졌다.

- 65세에 조기 은퇴는 약속한 사항이지만, 반대하는 교인도 있었다던데.

교회가 젊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즘 어떤 목사님들 보면 70세, 아니 그 이상이 돼도 시무하기도 한다.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후배들이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줘야 한다. 나이 많은 사람이 진을 치는 모습은 좋지 않다. 이런 이유에서 65세에 조기 은퇴했다. 정년 70세 또는 75세에 연연하는 목회자들에게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15년간 함께해 왔기 때문에, 서운해하고 섭섭해하는 교인들도 있다. 그러나 교인 대다수는 담임목사가 강단에서 했던 약속을 그대로 실행한 것에 감사하고 감격해한다. 목회자의 설교는 웅변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해야 한다.

- 명성교회 세습으로 한국교회가 시끄럽다. 목사님은 개척 당시 세습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가족뿐 아니라 친인척에게 세습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세습은 성경적으로 정당하지 않다. 교회를 사유화하고 기업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어느 개인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아무도 오지 않는 시골 교회에 아들이나 사위가 가는 건 문제 될 게 없다고 본다.

명성교회가 이렇게 비판을 받는 데는 부자(父子) 목사의 입장 번복도 한몫했다고 본다. 차라리 처음부터 세습하겠다고 말했다면 실망은 덜 했을 거다. "세습 안 하겠다"고 해 놓고, 하루아침에 판을 뒤집었다. 한국교회가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 왜 목사들이 자식이나 사위에게 교회를 물려줄까.

불안감 때문인 것 같다. 대형 교회를 제3자에게 넘겨주면 과연 유지될까, 평생 해 온 사역들이 지탱이 될까 걱정하는 것이다. 이런 불안감을 떨쳐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세습이다. 굉장히 인간적인 생각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인데, 너무나 인간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청주주님의교회에 1,000명이 출석한다. 재정 50%를 밖으로 내보내지만, 살림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교인 5,000명, 1만 명 이상 되는 교회는 어떨까. 이런 대형 교회는 기업이나 마찬가지다. 인적·물적 자원이 걸려 있다 보니 다른 누군가에게 넘겨주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개교회는 한국교회라는 나무의 '열매'라고 생각한다. 목사가 목회를 잘해서 성장한 게 아니라, 순교자·선교사·교인 등의 헌신을 통해 열매를 맺은 것이다. 명성교회든 어느 교회든 한국교회 안에 있는 열매일 뿐이다. 교회의 공공성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 교회 일이니까 상관하지 말라"고 해서는 안 된다. 앞서 말했지만, 교회는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하나님의 것이다.

한국교회가 세습의 장벽을 뛰어넘지 못하면 계속 추락할 것으로 본다. 막지 않으면 시골 교회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작은 목회를 하든 큰 목회를 하든, 내 교회만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한국교회와 함께 가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청주주님의교회는 재정의 50%를 이웃을 위해 쓰고 있다. 주 목사의 뒤를 이어 최현석 목사가 담임을 맡는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담임목사 은퇴와 함께 원로목사로 추대됐다. 사역은 계속하는 건가.

당장 오는 주일부터 청주주님의교회에 나가지 않을 거다. 멀리서 응원하고 기도해 줄 것이다. 원로가 교회 일에 개입하면서 분란을 겪는 곳이 적지 않다. 원로는 후임 목사를 믿고 지지해야 한다. 이러쿵저러쿵 관여하는 건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공동체'를 할 생각이다. 이름은 '예수공동체'다. 원래 목회를 시작할 때 공동체적 교회를 지향했다.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데리고 살았던 것처럼 교인과 함께 지내고 싶었다. 그런데 교인 숫자가 갈수록 늘어나니까 안 되더라. 예수공동체는 대전에 있는 '내적치유센터'에 있다. 이미 함께하겠다고 찾아온 이들도 있다.

25년간 진행해 온 내적 치유 사역도 계속할 예정이다. 주위에 번아웃(Burnout)돼 주저앉아 있는 작은 교회 목회자가 많다. 이들을 살리기 위한 프로그램을 해야 한다. 목사 하나를 살리면, 교회 하나가 살아난다.

- 교회가 준 퇴직 예우금 2억 원을 헌금으로 내놓았는데.

이미 교회에서 주는 게 많다. 보통 원로가 되면 담임목사 사례비의 70%를 지원해 준다. 나는 50%만 적용해 달라고 했다. 기존에 살던 사택도 지원해 줬다. 충분히 노후를 보낼 수 있는데 추가로 받는 건 욕심이다. 승용차도 바꿔 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은퇴하는 목회자의 뒷모습은 아름답고 덕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 11월 19일 마지막 설교에서 "어떠한 삶에 처해 있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아가자"고 독려했다. 마지막이라고 지난 목회 과정을 추억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오직 예수'를 강조했다. 

유언 같은 설교였다.(웃음) 목회하며 즐겁거나 힘들었던 부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교인들 가슴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각인시키고 물러나고 싶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인생이 존재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때, 가장 멋지고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될 줄 믿는다"고 전했다.

- 15년간 목회하며 아쉽거나 후회되는 점이 있다면.

첫 번째는 공동체적 교회, 가족 같은 교회를 하고 싶었는데 그게 안 됐다. 아쉬움으로 남는다. 두 번째는 목사 임기제다. 후배 목사들에게 권면하고 싶지 않다. 나는 두 번 재신임을 받았는데, 각각 98%, 97% 지지를 받았다. 지지율이 높으면 괜찮을 것 같지만 막상 그렇지 않았다.
재신임을 반대한 교인 2~3%는 결국 교회를 떠났다. 반대표를 던졌으니 마음이 어려워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교인을 잃는다는 건 목사에게 큰 아픔이다. 2%, 3%가 떠나는 아픔… 목사로서 교인 전체를 끌어안아야 하는데, 정말 마음이 아팠다. 이런 면에서 임기제를 쉽게 도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후임자를 선정할 때 참여하지 못한 것이다. 청빙위원회에 전권을 위임했고, 외부에서 목사님을 모시기로 했다. 사택도 마련하고 모든 걸 준비했는데, 부임 일주일을 앞두고 "못 오겠다"고 하더라. 교회는 큰 혼란을 겪었다. 누구보다 교회를 잘 아는 담임목사가 함께 청빙 과정에 참여했더라면 이런 전철은 밟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후임자를 청빙하는 과정을 보니, 이력서를 통해 스펙을 확인하고, 설교 한 번 듣는 형식이었다. 언뜻 보면 민주적인 것 같은데 굉장한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는 그 사람의 인격, 영성, 삶을 확인할 수 없다.

다행히 두 번째 청빙 과정은 잘됐다. 교회가 잘 아는 사람을 뽑자는 의견이 나왔고, 부목사님 중 한 분을 담임으로 세웠다. 다른 교회를 보면 부목사를 담임으로 세우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듯하다. 꼭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진주가 가까이 있을 수 있는데, 스펙 좋은 사람만 찾아 세우려 하는 건 큰 실수다.

세습을 강행한 명성교회를 안타까워했다. 주 목사는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다. 사유화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CCC에서 25년간 사역한 다음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일반 목회자가 느끼지 못하는 지점도 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선교 단체에 몸담고 있으면, 한국교회의 문제점이 눈에 보인다. 그렇다 보니 교회를 개척하면, 프런티어 정신을 가지고 뛰어들게 되고 섬김의 목회를 하려고 애를 쓴다. 내 목회만 신경 쓰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주변도 생각하게 된다.

교회 재정 50%를 밖으로 내놓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척 10년 만에 교인이 1,000명을 넘었다. 내가 잘해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골 교회나 다른 교회들이 교인들을 키워서 우리 교회에 보내 줬다. 그래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헌금을 우리만을 위해 쓰면 안 된다. 구제도 하고 국내·해외 선교도 하고 학원 사역도 해야 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CCC에서 25년, 청주주님의교회에서 15년 전임 사역을 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했다. 부족하고 불충함에도 긍휼함을 입었다. 남은 생애도 붙잡아 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국교회 차원에서 바라기는,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교계 어른이 나왔으면 한다. 김삼환 목사님이 (세습을) 털어 버렸다면 어른이 됐을 텐데 너무 아쉽다. 한국교회에 어른이 없다는 것은 굉장한 아픔이다.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도 있지만 그래도 몇몇 분을 어른으로 옹립해 가는 과정이 있었으면 좋겠다. 존경하고 따를 만한 분들이 한국교회를 대표해서 메시지를 전할 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

주 목사는 원로목사로 추대됐다. 그러나 주 목사는 "후임 목사와 교회를 위해 앞으로 교회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사진 제공 청주주님의교회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