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는 매년 12월 1일을 '에이즈의 날'로 지킵니다. 1981년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신고된 AIDS(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는 의학의 발전과 함께 더 이상 공포스러운 질병이 아닌, 고혈압·당뇨와 같은 치료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객관적 변화에도, 한국 사회에서 HIV/AIDS 환자를 향한 시선은 따갑기만 합니다. 특히 최근 한국교회 반동성애 운동 진영에서는 AIDS 환자에게 '비윤리적'이라는 낙인을 찍고 있습니다. 그들의 목표 중 하나도 AIDS 퇴치일 텐데, 과연 이런 방식으로 AIDS가 사라질까요.

<뉴스앤조이>는 한국교회 내 커져 가는 AIDS 반감을 보면서, 'AIDS'라는 질병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조명하고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①HIV/AIDS란 무엇인가 ②한국교회는 어떻게 AIDS 공포를 퍼트렸나 ③'AIDS 혐오'와 감염인의 삶 ④미국과 프랑스의 HIV/AIDS 대응을 주제로 기사를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사회 전반에 HIV/AIDS 차별이 만연하다. HIV 감염인은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권마저 박탈하면 어떻게 살 수 있나. HIV/AIDS 환자는 수술·치료도 못 받고 요양·재활도 못 한다. 일도 못 한다. 왜 우리에게 살라고 하나. 차라리 죽으라고 하라."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윤가브리엘 대표(HIV/AIDS인권연대 나누리+)의 외침은 절규에 가까웠다. 그는 HIV 감염인이다. 최근 보건복지부 소속 국립재활원이 HIV 감염인 입원을 막은 행태에 항의하기 위해, 11월 6일 열린 '장애인 차별 진정 기자회견'에 참석해 이같이 발언했다.

그는 HIV/AIDS 환자를 향한 차별과 낙인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로 이런 차별과 혐오, 낙인이 AIDS 환자를 점점 더 숨게 한다. 낙인 때문에 HIV 감염인은 감염 사실을 숨겨야만 한다. 감염에 취약한 사람들도 혹시나 양성반응이 나오면 받을 차별과 혐오가 두려워 검사를 받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가 만난 감염내과 의사, 인권 활동가들은 최근 2~3년 사이에 'AIDS 혐오'가 심해져, HIV/AIDS에 대한 인식이 30년 전으로 후퇴했다고 입을 모았다. AIDS 혐오는 HIV 감염인을 차별하고 배제하고 낙인찍는 모든 행위를 가리킨다. 한국교회가 본격적으로 반동성애 운동에 뛰어들면서, HIV/AIDS 관련 거짓 정보를 마구잡이로 유통하기 시작한 때와 일치한다.

개신교 반동성애 세력은 동성애자와 AIDS 환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사랑'은 이들에게는 '혐오'가 되고, 그 혐오는 이들의 삶을 망가뜨린다. 이번 기사에서는 HIV/AIDS 혐오가 실제로 사회에서 어떻게 드러나며, 감염인 당사자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본다.

2017년 반동성애 집회는 퀴어 문화 축제처럼 거리 행진도 진행했다. 행진에서 만난 시민.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교회서 유통되던 혐오 정보
'국회'에 진입

2017년 10월 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현장에 염안섭 원장(수동연세요양병원)이 등장했다. 자유한국당은 염 원장을 질병관리본부 질의 차례에 참고인 자격으로 불렀다. 염 원장은 올해 8월 자유한국당 부대변인으로 임명됐다.

이 자리에서 염안섭 원장은 자유한국당 성일종·윤종필 의원의 질문에 답했다. 그는 "AIDS 환자를 7만 번 이상 만났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의원들 질문에 염안섭 원장은 준비해 온 자료를 들어 보이며 답했다. "AIDS 환자 말로는 처참한데, 이걸 잘 모르는 10~20대 남성이 동성과 성관계를 갖고 있다", "AIDS 환자를 관리하고 추적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그동안 개신교계 반동성애 진영에서 꾸준하게 이야기하던 내용이다. 동성애는 항문 섹스로 연결되고 항문 섹스는 'AIDS 감염'과 직결된다는 논리다. 이 논리가 국회 국정감사 시간에 공개적으로 소개됐고 몇몇 언론은 염 원장 발언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특히 올해는 '부산 HIV 감염인 성매매', '용인 여고생 HIV 감염 사건'이 터지면서 AIDS 혐오가 증폭됐다. 언론은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HIV 감염인을 정죄했다. 국가의 'AIDS 환자' 관리·감독이 허술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흡사 30년 전 한국에서 AIDS 확진 환자가 처음 발견됐을 당시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AIDS는 문란한 성관계를 벌이는 사람이 걸리는 '죽음의 병'이라는 인식이다. 일부 언론이 "HIV 감염인과 1회 성관계 시 감염 확률 1% 미만"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며, AIDS에 대한 공포가 오히려 AIDS를 확산한다고 보도했지만, 자극적인 기사들이 훨씬 잘 퍼져 나갔다.

인권 활동가 A는 "현장에서 느끼기에는, 최근 3년간 AIDS 혐오가 상당히 심해졌다. 이는 감염인뿐만 아니라 감염을 우려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AIDS 낙인찍기'는 사람들에게 공포만 준다. 감염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현실에서 감염인이 혐오와 차별받는 모습을 보며 검사를 기피하게 된다. 드러내지 않고 숨어 버리는 역효과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올해 10월 열린 질병관리본부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정은경 본부장에게 AIDS와 동성애의 상관관계를 왜 명확히 히지 않느냐며 질타했다. 국회방송 갈무리

HIV/AIDS 환자가 '귀족 집단'?
현실에서는 1급 기피 대상

염안섭 원장은 10월 13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HIV/AIDS 환자를 '귀족 집단'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에이즈 환자는 거의 무상으로 치료받고 있다. 고가의 치료 비용, 간병 비용도 전액 국민 세금으로 조달한다. 최고의 귀족 집단이다. 다른 불쌍한 집단도 많은데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HIV/AIDS 환자의 현실은 귀족과는 거리가 멀다. 유엔 경제·사회·문화적권리규약위원회(사회권위원회)는 올해 10월, 한국 사회 전반적인 인권 상황을 점검해 정부 권고안을 발표했다. 이 권고안에는 "정부는 HIV/AIDS 감염인이 그 어떤 차별 없이 치료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현실에서 HIV/AIDS 감염인을 향한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방증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6년 11월 'HIV/AIDS 감염인 의료 차별 실태 조사'를 발표했다. 한국 사회에서 HIV 감염인이 경험하는 의료 차별을 드러내는 자료다. 이 자료에 따르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장기 요양이 필요한 AIDS 환자를 받아 주는 요양 병원은 '없다'.

정부는 2015년 12월 법 개정을 통해, 요양 병원 입원 제한 대상에서 HIV/AIDS 환자를 제외했다. 여기에 '요양 병원 환자군 급여 목록, 상대 가치 점수 및 산정 지침'에 AIDS 환자를 포함했다. AIDS 환자가 입원하면 정부에서 환자 한 명당 지원하는 보조금도 인상했다. AIDS 환자를 요양 병원에서 받을 수 있도록 법적 조치를 취했는데도, 그들이 입원해 치료받을 수 있는 요양 병원은 없다.

HIV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수술을 거부당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A병원은 좌측 고관절 전치환술이 필요하다고 진단한 HIV 감염인에게, 특수 장갑이 없다는 이유로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요구했다. B병원은 중이염 수술이 필요한 HIV 감염인에게 "튀는 피를 막아 줄 가림막이 설치돼 있지 않아 수술을 할 수 없다"며 수술을 거부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두 경우 모두 합리적인 이유 없이 HIV 보유자를 배제한 행위로 "차별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HIV/AIDS 환자를 향한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AIDS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HIV 감염인들은 늘 불안과 공포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미디어·인터넷을 통해 AIDS에 대한 각종 잘못된 정보를 접한 감염인들은, 자신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자신이 감염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질까 봐 불안에 떤다.

끊임없는 불안은 감염인을 죽음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한 인권 활동가는 <뉴스앤조이>와 대화에서 "HIV 감염인 자살도 증가하고 있다. 내가 직접 들은 것만 해도 작년에만 10명이 넘는다. 올해는 6명이다. 일개 활동가인 나한테 연락 오는 게 이 정도인데 감염인 전체로 보면 어떻겠나. 그러나 정부는 아직 감염인 자살률 통계를 내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동성애 운동'으로
HIV 감염 막을 수 있나

한국교회가 반동성애 운동에 열심이던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자료를 놓고 보면, 같은 기간 HIV 감염인은 증가했다. 한국에서 발병한 이래 꾸준하게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AIDS 혐오가 사회 전반에 퍼지면 아이러니하게도 AIDS가 확산되는 결과를 낳는다. HIV 감염인을 향한 낙인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당사자들은 음지로 숨을 수밖에 없다.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를 하더라도, 본인이 짊어질 낙인이 두려워 검사를 기피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대한에이즈학회는 11월 3일, 10주년 기념 학술 대회를 열었다. 이날 만난 학회 관계자는 보수 개신교의 에이즈 혐오를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선량한 환자들이 너무 큰 피해를 입는다. 의사로서 환자들을 보호해야 해서 그동안 말을 아껴 왔는데, 개신교의 에이즈 혐오가 너무 심각한 수준이다.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감염인, 환자들에게 내가 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HIV 감염인을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 중 한 명인 그는 "남성 동성애자가 HIV/AIDS에 더 쉽게 노출된다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예방 방법도 분명히 존재한다. HIV 감염은 성관계 시 콘돔만 착용해도 예방할 수 있다. 의사라면 예방 방법을 얘기하는 게 맞지 않나. 'AIDS 혐오'는 절대 에이즈 확산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AIDS 혐오는 감염 위험에 있는 사람들이 더 빨리 진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앗아 간다. 감염내과 의사 A는 "낙인을 찍을수록 병원에도 안 오고 관리에서 멀어진다. 감염인이 약을 잘 먹어야 격리가 안 되는데, 무조건 나쁜 사람들이라고 낙인을 찍으면 도망가고 숨는다. 결국은 더 많은 사람이 감염될 수밖에 없다. AIDS 혐오는 결과적으로 감염을 증가시킨다"고 말했다.

활동가들은 국립재활원이 여러 차례 다른 이유로 HIV 감염인 입원을 거부했지만, 결국 HIV/AIDS에 대한 혐오 때문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에이즈 환자가 숨어드는 것은 차별과 낙인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극심한 차별 속에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배려를 요구하는 게 아니다. 비감염인처럼 치료받고, 일하고 어울려 살고 싶을 뿐이다."

감염인 당사자 윤가브리엘 대표 말이다. 한국교회가 반동성애 운동을 당장에 멈출 리는 없다. 그렇지만 그들이 던진 말 한마디 한마디에 HIV/AIDS 환자의 삶은 더 안 좋은 쪽으로 변화한다. 이게 과연 사랑인가. 백 번 양보해 반동성애 진영의 진정성은 인정하더라도,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한국은 OECD 가입 국가 중 유일하게 HIV 감염이 증가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해외 여러 선진국은 2000년대 들어오면서 HIV 감염이 감소 추세로 접어들었다. 그들은 어떻게 조치하기에 감염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것일까. 다음 기사에서는 미국과 프랑스의 HIV/AIDS 대처 과정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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