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는 매년 12월 1일을 '에이즈의 날'로 지킵니다. 1981년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신고된 AIDS(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는 의학의 발전과 함께 더 이상 공포스러운 질병이 아닌, 고혈압·당뇨와 같은 치료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객관적 변화에도, 한국 사회에서 HIV/AIDS 환자를 향한 시선은 따갑기만 합니다. 특히 최근 한국교회 반동성애 운동 진영에서는 AIDS 환자에게 '비윤리적'이라는 낙인을 찍고 있습니다. 그들의 목표 중 하나도 AIDS 퇴치일 텐데, 과연 이런 방식으로 AIDS가 사라질까요.

<뉴스앤조이>는 한국교회 내 커져 가는 AIDS 반감을 보면서, 'AIDS'라는 질병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조명하고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HIV/AIDS란 무엇인가 ②한국교회는 어떻게 AIDS 공포를 퍼트렸나 ③'AIDS 혐오'와 감염인의 삶 ④미국과 프랑스의 HIV/AIDS 대응을 주제로 기사를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동성연애자로 감염됐다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차마 얘기할 수 없었습니다. AIDS 감염 자체가 부끄러운 일일 뿐더러 더욱이 동성연애라는 것은… 그래서 매춘부와의 한때 실수로 감염됐다고 거짓말했습니다."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경향신문>이 1996년 11월 20일 보도한 "'어머니 살고 싶어요, 살려 주세요' 에이즈 청년의 절규"에 나온 내용이다. 약 20년 전, 'AIDS'는 '죽음의 병'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AIDS는 불치병이 아닌 난치병이며, 잇따른 신약 개발로 당뇨·고혈압과 같이 관리가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분류된다는 발표가 해외에서 나온 뒤였는데도 그랬다.

최신 연구 결과를 봐도, AIDS가 더 이상 죽음과 직결되는 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AIDS를 유발하는 HIV에 감염된 사실을 초기에 발견한 사람이 꾸준히 약을 복용하면, 건강한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은 기대 수명을 누릴 수 있다는 게 AIDS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의 공통 의견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유독 AIDS를 향한 낙인이 무겁다. B형간염, C형간염과 마찬가지로 혈액을 매개로 감염되는 감염병 중 하나인데도, 문란한 성(性) 접촉이 주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낙인은 AIDS라는 병 자체를 향한 공포와 감염인 혐오를 동반한다.

AIDS에 대한 오해는 용어 자체에도 존재한다. 이번 기획은 'AIDS 감염', 'AIDS 환자', 'HIV', 'HIV 감염인' 등 오용되고 있는 AIDS 관련 용어를 명확하게 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번 기사에서는 용어 설명과 함께 의학적으로 AIDS가 어떤 질병인지, 어떻게 하면 예방할 수 있는지 소개할 것이다.

한국교회 반동성애 운동의 중심에 AIDS가 있다.  사진은 2015년 퀴어 문화 축제 반대 집회. 뉴스앤조이 이은혜

"HIV/AIDS는 관리 가능한 질병"

'HIV 감염'과 'AIDS'의 차이점은, AIDS를 이야기할 때 꼭 알아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다. 반동성애 진영에서는 HIV 감염이 곧 AIDS인 것처럼 'AIDS 환자', 'AIDS 감염'이라고 혼용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AIDS를 말하기 전 먼저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를 살펴봐야 한다. HIV는 특정한 경로를 통해 몸에 침투한 뒤 우리 체내 CD4라는 세포를 공격한다. CD4는 림프구의 일종으로 우리 몸에서 면역 체계를 관리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 림프구는 외부에서 나쁜 균이 들어오면 그것을 없애기도 한다. 의사들은 혈액 1마이크로리터 중 CD4 세포 수가 200 이상이 돼야 정상 면역 체계를 갖고 있다고 본다.

HIV에 감염된 사람들을 가리켜 'HIV 감염인'이라고 부른다. 일반 감염 질환과 마찬가지로 '감염병'이다. HIV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은 감염내과에서 약을 처방받고 관리에 들어간다.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바이러스가 몸의 면역을 점점 떨어뜨린다. 특정 면역 수치 이하가 되면 몸이 약하기 때문에 올 수밖에 없는 다양한 질병이 수반된다. 그때를 가리켜 '후천성면역결핍증' 즉 'AIDS'라고 부른다.

AIDS의 첫 발견은 지금으로부터 3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견된 이 병은 당시만 해도 치료 방법이 없고, 치사율이 높기 때문에 '죽음의 병'으로 불렸다. 

1990년대 중반 '칵테일 요법'이라 불리는 고강도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법이 개발됐다. 체내에 있는 HIV 증식을 억제하면서 몸의 면역 체계가 약해지는 경우도 현저히 줄었기에 감염인의 생존율이 급상승했다. 이미 체내에 숨어 버린 HIV를 아예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꾸준히 병원에 왕래하며 약만 잘 복용하면 얼마든지 관리가 가능한 질병이 되었다.

HIV에 감염된 사실이 발견되면, 조기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에 돌입하는 게 의학계 정설이다. 감염인이 복용하는 약도 크게 진화했다. 1990년대 중반에만 해도 여러 성분이 담긴 알약 20개가량을 여러 차례 나눠 복용해야 했다면, 이제는 하루 1회, 단 1개의 알약(Single Tablet)으로 HIV 치료가 가능하다.

HIV 감염인이 복용하는 트루바다(Truvada). 과거 감염인들은 매일 알약 여러 개를 한꺼번에 복용해야 했지만, 이제는 기술의 발전으로 이 알약 하나만 복용하면 된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하지만 병원에서 관리받지 않으면, 몸의 면역 체계는 무너지고 결국 AIDS가 발병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HIV가 "무서운 바이러스"라는 데 동의한다. 한 번 몸에 침투하면 대장·뇌 등 장기 곳곳에 숨었다가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 그곳에서 발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기에 발견하고 꾸준히 약을 복용하면 얼마든지 관리가 가능하다"는 말에도 동의한다. 미국에는 20대에 HIV 감염을 인지하고 관리하면 기대 수명이 50년이 넘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HIV 감염인 중에서도 이제는 AIDS 때문에 죽는 환자보다 비감염성 질환으로 사망하는 환자가 더 많다. 최재필 과장(서울의료원 감염내과)은 "감염인의 60%는 이제 HIV 감염인이 걸릴 수 있는 기회 감염병(HIV에 감염된 후 이 바이러스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질병 - 기자 주) 때문에 사망하지 않는다. AIDS와 관련 없는 심혈관·간·뇌혈관 질환이나 잘못된 식습관, 생활 패턴 등에서 오는 질병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HIV 전파 막는 간단한 방법 
'콘돔 사용한 안전한 성관계'

다시 AIDS가 발병한 1980년대로 돌아가 보자. 당시에는 AIDS가 어떤 병인지, 치료가 가능한지조차 불확실하던 시대였다. 미국에서 발견됐을 때만 하더라도 환자 중 남자 동성애자가 많다고 해서 '게이 캔서'(Gay Cancer·남자 동성애자 암)라고 불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는 남성 동성애자'만' 걸리는 질병이 아니라, 혈액을 매개로 감염되는 감염성 질병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성별을 막론하고 HIV 감염인과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 주사 바늘을 공유하는 등 혈액 접촉, 모자감염 등이 HIV 바이러스의 주된 감염 경로라는 것이 밝혀졌다.

주된 HIV 감염 경로가 나라별로 다르다는 점도 HIV/AIDS가 남성 동성애자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방증한다. 캄보디아는 여성 감염인이 남성 감염인보다 많은데, 이는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여성이 많기 때문이다. 서부 사하라 이남 지역에서 HIV 감염은 대개 엄마와 자녀로 이어지는 '모자감염' 형태를 띤다.

HIV/AIDS가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 된 지는 이미 꽤 오래됐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것을 '남성 동성애'와 연관 지어 죽음의 병이라는 인식을 퍼트린다. 한국교회 반동성애 운동 진영은 최근 3~4년 사이 '동성애 = 항문 섹스 = AIDS 발병'이라는 공식을 집중적으로 홍보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남성 동성애자 사이에 HIV 감염인이 급증하고 있는 사실은 맞지만, 이 또한 예방이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11월 3일 열린 대한에이즈학회 학술 대회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를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 된다. HIV는 이미 오래전부터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분류됐다. 콘돔을 사용하는 성관계에서는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을 확률이 높다. 간단한 예방법을 지키면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결과를 발표했다. CDC는 2017년 9월 "HIV 감염인도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법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고, 체내 바이러스 양이 미비한 수준이라면 콘돔을 사용하지 않은 성관계에서도 HIV가 전파되지 않는다"는 정보를 공개했다.

전 세계는 12월 1일을 '에이즈의 날'로 정해 AIDS 퇴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홈페이지 갈무리

HIV/AIDS 전문가들은 "HIV는 관리 가능한 질병이며 충분히 예방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매년 HIV 신규 감염인 숫자가 증가하고 있다. OECD 국가 중 유독 한국에서만 감염인이 늘고 있다. 이론과 다르게 현실에서는 충분한 치료와 예방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의학 기술은 발전하는데, 왜 감염인이 늘어날까. 김대희 교수(인천성모병원)는 "약을 먹으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걸 알면서도 감염인은 약을 먹지 못한다. HIV 감염인이라는 것이 알려지는 것에 더해 동성애자라는 낙인이 찍힐까 두렵기 때문이다. HIV 감염인은 다 동성애자라고 하며 이 사람들을 정죄하는 게 이 사람들을 점점 더 숨게 만든다"고 말했다.

의학적으로는 당뇨·고혈압과 같은 관리 가능한 질병이지만, 한국 사회에 퍼진 반감 때문에 감염인들이 치료를 망설인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유독 AIDS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한국교회 반동성애 운동과 관련 있다. 다음 기사에서는 한국교회가 어떻게 AIDS 낙인찍기를 시작했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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