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전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특성 중 하나를 '항상 개혁하는 교회(Ecclesia Semper Reformanda est)'라고 내걸었다. 개혁을 멈추는 순간부터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는 뜻이다.

종교개혁을 생각하면서 과연 한국교회가 자신의 내부를 정화하면서, 사회를 향하여 늘 개혁의 입장에서 있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명성교회 세습으로 드러난
신학적 목회적 오류

10월 24일 서울동남노회 73차 정기노회에서 명성교회가 제출한 김삼환 목사 아들 김하나 목사의 위임목사 청빙안이 통과되었다. 노회가 파행하면서 노회원 130명이 회의장을 떠난 상황에서 의사정족수가 부족한 가운데 전격 청빙안을 허락해 큰 물의를 일으키고 말았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일을 며칠 앞둔 시기에 이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자 교계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리고 11월 12일 김하나 목사의 위임 예식으로 세습을 완료했다.

일반 사회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사기업도 기업 경영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세습을 엄격하게 다룬다. 사회에서도 세습을 그리 좋지 않게 본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아무렇지 않게 이 일을 추진하고 말았다.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 상황인데, 명성교회와 같이 사회적 영향력이 만만치 않은 대형 교회에서 불법적으로 세습을 자행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교회 위기는 더욱 심화할 게 분명해졌다. 앞으로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다. 개신교 단체들은 성명을 발표하는 등 반대 운동을 강하게 펼칠 것으로 예상한다. 기자회견은 물론 법적 대응까지 하려는 것으로 봐서 이 문제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다.

왜 담임목사들은 아들이나 사위 등에게 담임목사직을 물려주려 하는 것일까. 이 문제가 대두한 이유는 어디 있을까. 교회 세습 문제가 대두하는 이유는 한 가지이다.

시골 작은 교회, 이름도 빛도 없어서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초라한 교회에서 아들 목사가 아버지 목사 뒤를 이어 목사직을 수행하려 했다면 이렇게 문제가 발생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권력과 돈이 집중된 대형 교회에서 세습이 일어났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습 반대 이유는 단순히 자녀가 부모의 담임목사직을 물려받았다는 단순한 사실에 있지 않다. 세습은 권력과 돈의 집중에 관한 이야기이다.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계승하는 곳이지, 권력과 돈을 계승하는 곳이 아니라는 신학적 이유가 세습 반대의 가장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세습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몇 가지 이유를 든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교회의 안정이다. 다른 사람이 담임자로 오면 교회가 혼란을 겪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들이 간과하는 게 하나 있다. 교회는 안정적 운영을 최고의 목적으로 하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최우선으로 하는 곳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나라를 위한 것이라면 혼란도 마다하지 않는 곳이라는 의미다. 안정돼 있는지, 안정돼 있지 않은지가 한 교회의 진정성의 근거가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가 진정성의 근거여야 한다.

권력과 돈이 집중된 제왕적 목회를 한 사람의 자손이 그 뒤를 계승하고 있다면, 사회가 그 교회와 개신교를 바라보는 시선은 따가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시선은 하나님을 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종교개혁을 말하면서, 교회 세습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명성교회 세습 문제로 드러난 신학적 목회적 오류를 지적하지 않고서는 종교개혁의 의미를 말할 수 없다. 이번 명성교회 세습은 교회 규모를 떠나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여러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11월 12일 저녁에 열린 '김삼환 원로목사 추대 및 김하나 목사 위임 예식'에서 김삼환 목사가 자신이 30여 년간 입었던 낡은 가운을 김하나 목사에게 입히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공공성 상실

먼저 한국교회는 사사화, 개인화해 있다. 교회의 공공성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교회는 사적 영역이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택으로 은혜에 의한 믿음을 통해 구원받은 새사람들이 하나님나라를 이 땅 위에 이루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그 사명을 수행하고자 모인 곳이다.

교회는 사적 영역이 아니다. 교회가 하고자 하는 일은 사적일 수 없다.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이 사회를 향한 공적 임무를 수행하는 곳이다. 하나님의 대사로서 하나님의 일을 이 땅에서 수행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교회 일을 사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교회 내부 일은 교회에서 알아서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들에게, 혹은 딸에게 담임목사직을 물려주든지 말든지, 개교회 교인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밖에서 떠들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이 그렇지 않다. 공공성을 잃어버린 교회는 사교로 전락하게 된다. 개신교에서 그렇게 비판하고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신천지, 하나님의교회, 천부교 등 일련의 이단과 사교는 공공성을 무시했다.

교회는 공공성을 유지하는 한도 내에서 교회의 본질을 유지할 수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우리는 잃어버린 교회의 공공성을 하루빨리 회복해야 한다. 힘 있는 몇 사람과 주변 사람이 사사화한 교회는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번 명성교회 세습을 "세습이 아니라 목회 대물림이다", "교회 안정을 위해서 한 것이다", "개교회는 담임목사를 청빙할 권리가 있으니 상관하지 말라" 등의 변명으로 정당화하려 할지라도, 분명한 점은 이것이 교회가 공공성을 상실했다는 확실한 증명이라는 것이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크게 회개하고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야 한다. 명성교회뿐이겠는가. 크기와 상관없이 우리는 교회의 모습을 돌아봐야 한다. 과연 우리가 속한 교회가 공공성을 유지하며 목회하고 있는지 말이다.

돈의 노예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돈과 권력이 교회 세습의 핵심이다. 무엇보다 돈이 관련돼 있지 않았다면, 굳이 세습하려는 시도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돈은 교회 개혁을 말하고자 할 때 피할 수 없는 주제다. 돈의 노예가 돼 버린 한국교회 모습을 회개하지 않을 수 없다.

2007년 발표한 연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문화학 전공 석사 학위논문 '신자유주의적 사회 변화와 기독교'(이은영)는 미국 교회 영향을 강하게 받은 한국교회가 신자유주의 경제와 조우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 논문은 한국교회가 신자유주의 담론의 기독교적 적용(성공주의, CEO 모델)을 통한 소비자 친화적 교회이며, 자본주의에 사로잡힌 모습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교회가 자본주의 종교의 우상인 시장을 신앙하지 않는다고, 오직 하나님만 신앙하고 있다고, 자본주의의 포로가 아니라고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을까.

물질의 번영이 하나님나라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치인 것처럼 선전하는 한국교회는 돈의 노예인지도 모른다. 한국교회는 오직 생명과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나라를 핵심 가치로 삼아야 한다.

진정한 교회 개혁은 돈과 권력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진정한 교회 개혁은 맘몬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것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잃어버린 성경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왜 발생하는가. 교회 사람들은 왜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목사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명성교회 세습이 무슨 문제인지 반문한다.

세습 문제뿐이겠는가. 일반 사회에서 상상할 수 없는 부조리하고 비상식적인 일들이 교회에서 버젓이 발생한다. 그것에 대해 별로 문제의식이 없다. 중세 가톨릭교회에서 면죄부 판매 등 말이 안 되는 일이 버젓이 일어났던 것과 같은 상황이다. 면죄부를 판매하면서 사용했던 문구를 읽어 보면 어안이 벙벙해진다.

면죄부는 11세기 말부터 판매됐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극에 달했다. 교황 레오 10세는 베드로대성당을 짓기 위해 1506년 대량의 면죄부를 일괄적으로 세일한다. 1500년대 초, 마인츠의 알브레히트 대주교는 초입세(初入稅)를 내기 위해 면죄부 판매에 열을 올렸다. 알브레히트는 도미니크회 수도사 테첼에게 면죄부를 팔게 했다.

테첼은 "면죄부를 산 돈이 금고에 떨어져 짤랑거리는 소리를 내는 순간, 면죄부를 산 사람의 죄가 사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부모 친지의 영혼조차 연옥에서 튀어나온다"고 과대 선전하면서 면죄부 판매에 열을 올렸다. 면죄부 판매원들은 "면죄부를 사는 순간, 그만한 교회의 영적 은혜를 얻기 때문에 자기 죄를 회개할 필요가 없다", "죽은 사람을 위해서도 면죄부를 살 수 있는데, 이때도 고해성사나 회개 없이 돈만 가져오면 연옥의 영혼이 구제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면죄부가 엄청나게 팔려 나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한마디로 말하면, 당시 백성들에게 성경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은 성경을 몰랐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이 아니라 교회의 가르침에 자신의 믿음을 의존하고 있었다. 성경 없이 사제들 가르침만 듣고 있었기에 면죄부 판매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일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 같은 불의를 참다못해 들고일어난 이들이 있었다. 루터를 비롯한 개혁가들이었다. 루터는 '오직 성경'을 주창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중세 가톨릭의 부패를 막고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루터는 종교개혁의 성패가 성경에 달려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가 먼저 한 일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해 사람들에게 보급하는 일이었다. 성경 말씀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개혁은 있을 수 없고, 개혁이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왜 세습을 비롯한 말도 안 되는 일을 그대로 용납하는가. 성경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성경에 의존하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떠도는 이야기나 유명 목사가 했다는 가르침에 의존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신앙 지식은 진지하고 깊은 성경 공부를 통해 점검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교정해야 한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 (시 119:105)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 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냅니다." (히 4:12)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다. 살아 있어서 오늘도 우리 속을 꿰뚫어 본다. 우리의 숨은 생각까지 드러내어 우리 자신을 제대로 보게 만든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오늘 우리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어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만들 수 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은 삶의 길을 밝히 밝혀 준다. 등불과 빛이 되는 성경 말씀에 의지할 때, 우리는 오류를 넘어 올바른 신앙의 삶을 살 수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말씀을 잃어버렸다. 온갖 교리와 전통, 관습 그리고 문자와 천당, 지옥이라는 틀에 갇혀 살아 있는 하나님 말씀을 죽은 말씀으로 만들어 버렸다.

항상 개혁하는 교회

우리는 말씀을 회복해야 한다. 틀에서 벗어나 삶의 현장에서 역동적으로 우리와 만나시는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진지한 성찰만이 위기에 처해 있는 한국교회를 구해 낼 것이다. 오직 성경만이 신앙의 지표다. 바울은 이렇게 말힌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딤후 3:17)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 뜻을 제대로 알게 하고, 실천할 수 있게 한다. 오직 성경을 신앙의 중심으로 삼아 올바른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서 진정한 교회 개혁을 이루어야 한다.

종교개혁 500주년에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명성교회 목회 세습 문제에서 드러난, 공공성을 상실했고 돈의 노예가 되었고 성경을 잃어버린 한국교회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항상 개혁하는 교회'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홍인식 / 순천중앙교회 담임목사,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연합신학대학교(ISEDET)에서 해방신학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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