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브리서 4장 12절)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운동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생하게 날뛰는 순간은 언제일까. 그 말씀이 듣는 자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 있을 때라고 생각한다. 말씀이 역사한다고 표현할 수 있는 시점이 바로 이때다.

구약성서의 예언서들을 읽다 보면, 그곳에 담긴 예언자들의 직설이 활어(活魚)처럼 팔팔하게 튀어오른다는 착각에 사로잡히는 순간이 있다. 예언서들이 당대 현실을 실감 나게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외치는 소리'의 정념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설교는 어떠해야 하는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겠는데, <사건 그리고 말씀>(뉴스앤조이)이 어느 정도는 적절한 대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 부제는 '역사와 호흡한 한 설교자의 기록'이다. '역사와 호흡하는 일'이 구약시대 예언자들의 정체성이라는 점에서 이 설교집은 예언자 전통에 서 있다. 김회권 교수(숭실대)는 이 설교집을 읽고 이렇게 썼다.

"예언자적 설교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각 시대사적 사건들 속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동선을 추적하고 있다. 이런 예언자적 설교들은 특정한 개별 교회의 회중을 돌보려는 목회적 관심을 넘어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까지 호소력을 갖는다." (11~12쪽)

<사건 그리고 말씀> / 유경재 지음 / 뉴스앤조이 펴냄 / 327쪽 / 1만 7,000원. 뉴스앤조이 김은석

구약 예언서들은 당대의 정치·사회·문화(역사)를 이야기한다. 부패한 위정자들을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아픈 백성들을 거칠게 보듬어 안는다. 말씀이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을 향해 선포된 말씀들에는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하는 약소국의 현실이 담겨 있다. 이는 한반도의 현실과도 닮았다.

성서의 서사에는 힘이 있다.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민족 가운데 섭리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현재의 메시지로 되울려 오기 때문이다. 예언자들의 말이 역사 가운데 지나간 비극을 돌아보고, 다가올 약속을 기억하고, 당면한 현실을 저항하게 했던 것처럼, 성서를 읽어 내는 오늘날 목사들의 설교 또한 그러해야 한다. 즉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 설교라는 말이다.

"교회는 예언자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기관이며, 그 말씀을 따라 행동하는 기관입니다. 교회가 세속적 집단과 구별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워지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 말씀을 선포하고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의 미래를 제시하는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이 사회에서 바로 이런 예언자적 사명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사회는 타락하고, 국가권력은 부패하게 됩니다." (136쪽)

어떻게 설교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

<사건 그리고 말씀>에 담긴 설교는 27편이다. 팔순을 맞는 설교자 안동교회 유경재 원로목사가 했던 설교 1,300편 가운데 2% 정도를 골라냈다. 시월유신부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까지, 40년간 역사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설교에 담으려 노력했던 흔적들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는 성경 문자 자체에만 천착해 역사적 현실을 외면한 설교나 개인주의에 함몰돼 사회정의와 당대의 과제에 무관심한 설교가 적지 않다. 저자 유경재 목사는 말한다.

"목사가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있을 때마다 거기에 적절히 대응하는 설교를 하기는 쉽지 않다. 스스로 신학적 확신이 없거나 교회 분위기가 경직되어 있으면 대체로 목사는 역사적 현실을 외면한 채 무의미한 설교를 되풀이하기 쉽다." (14쪽)

"한국교회 설교가 역사 현장을 외면한 채 너무 일반론에 치우치거나 원론적인 성경 이야기로 끝맺는 경향이 짙기 때문에, 역사적 사건 혹은 이슈들을 말씀으로 풀어낸 설교들을 묶어 출판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13쪽)

이 설교집은 전범(典範)이라기보다는 이정표다. 유경재 목사는 서문에서 밝힌다. "다시 목회를 하게 된다면 인문학 서적을 두루 섭렵하여 더 폭넓은 시야를 가지고, 역사를 바라보면서 말씀으로 제대로 해석하고 조명하는 설교를 하고 싶다. 그러나 그런 기회가 내게 다시 올 리 없을 테니 결국 뒤에 오는 후배들에게 건네는 당부가 될 수밖에 없다."(15쪽) 부록에 실린 '바른 교회를 위한 한국교회 설교의 진단과 대안'에는, 한국교회 설교들의 문제점과 유경재 목사 나름의 대안이 정리돼 있다.

현시대 눈으로 봤을 때, 유경재 목사가 말씀으로 해석한 역사에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격변의 시대, 더욱이 서슬 퍼런 독재 정권 치하를 비롯해 여러 현실적 제약을 통과하면서 설교로 당대 역사와 마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책의 모든 설교는 큰 틀에서 성서를 조망하며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역사를 살아 내야 하는지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시사점이 크다. 예언서들이 그러했듯이, 오늘날 신자의 삶을 변혁하는 데 충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교회는 바로 왕으로 상징되는 모든 지배 체제에 대해서 심판을 선언합니다. 하나님나라의 새 질서를 거부하는 모든 이 땅의 지배 문화를 거부합니다. 이 땅에 가난한 사람들이 생겨나게 하고, 저들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 모든 체제, 모든 권력에 대하여 종말을 선언합니다. (중략) 교회는 그 지배 체제가 낳은 버림받은 민중의 상처를 싸매며, 그들의 고통을 같이 아파하면서 함께 울고, 함께 호흡함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나라의 임재를 선포합니다." (232~233쪽)

유경재 목사는 하나님나라를 꿈꾸는 자가 되라고 이야기한다. "너무 약아져서 이상보다는 현실을 택하고, 고난받는 시인이기보다는 돼지처럼 안주하는 현실주의자가 된"(90쪽), "역사의 지평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거기로부터 오는 미래에 기대를 갖기보다는, 충혈된 눈으로 지금의 조그마한 안일과 이익을 위해 급급한"(90쪽) 이들을 다독이면서, 역사 속에서 하나님나라를 살아 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건 그리고 말씀>(뉴스앤조이) 저자 유경재 목사. 사진 제공 유경재

6월 민주항쟁을 염두에 둔 설교 '새 역사를 위한 교회의 사명'(1987년 7월 12일)에서 이 설교집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목회자의 설교와 신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유경재 목사는 이 설교에서 이사야 58장 6절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한다. 아래 인용구에서 '기도'는 '설교'로 바뀌어도 무방하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바로 정치와 관계있습니다. 군사독재가 이 땅에 펼쳐 놓은 흉악의 결박과 멍에와 압제를 제거하고, 해방과 자유를 가져오는 일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라고 하십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역사와 상관없이 그저 교회당 안에 엎드려 금식하며 기도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역사와 상관없이 무엇을 기도하며 무엇을 위해 금식하는 겁니까? 고난의 역사에 담긴 의미를 물으며 함께 고통하면서 기도할 때 그것이 참된 기도가 됩니다." (62쪽)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