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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순간에 희망을 움켜잡는 대항적 종말론의 시작

캐서린 켈러 한국 방한 강연 후기

박일준   기사승인 2017.11.09  11:4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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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종말론이 한반도를 뒤덮고 있는 요즘,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전쟁의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켈러 교수는 예정된 한국 방문을 주저하지 않고 강행했다. 이 전쟁의 소문들은 종말론을 상품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상품으로 만들어 다른 상품들의 소비를 촉진하는 미끼 상품이 되든지, 군사적 상품이 되어 무기 판매를 촉진하든지 말이다.

켈러 교수는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신학적 메시지, 즉 종말(apocalypse)이 아니라 '종말에 대항하는 종말'(counterapocalypse) 개념을 기초로, 기후변화 위기에 우리가 깨달아야 할 진리의 한 자락은 우리 관계성의 얽힘(entanglement)이며, 이 위기에 대한 대안은 예외적인 초강력한 힘을 과시하고 드러내려는 트럼프류의 낡은 방식이 아니라, 매 순간 우리들의 성화를 일구어 가는 '상호 육체화'(intercarnation) 과정에 있다는 점을 'com-pli-cation'(together-to-work-diligently-for-becoming)이라는 말로 풀어내면서, 매 순간을 새로운 카이로스적 시작(inception)의 순간으로 만들어 가는 것임을 역설했다.

드류대학교 캐서린 켈러 교수.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켈러 교수는 '얽힌 희망: 트랜스페미니스트 신학의 불/가능성'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우선 '희망'의 복잡성과 중층성 그리고 얽혀 있음을 강조한다. 희망은 문제가 담지한 복잡성과 중층성의 얽힘을 회피하거나 우회함 혹은 외면함으로써 도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복잡성을 관통해 나아가, 얽힘을 희망의 엮임으로 풀어 나가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혹자들이 보기에, 얽혀 있는 복잡한 문제들은 단순히 '희망'을 선포하는 것으로 해결할 성질의 것이 아니며, 그 얽힌 타래들을 풀어 나가기에는 또한 너무나도 시간이 부족해 보이기에 우리는 차라리 절망을 품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것이 바로 수많은 형태의 차별과 기후변화 위기 그리고 한반도 전쟁 위기 등에 담겨 있는 심각한 측면이다.

문제가 복잡해지고 중층적으로 얽혀 있음을 알게 되면, 합리적 생각에 의존하기보다는 맹목적 신앙이나 믿음, 즉 맹신에 의존하는 성향이 인간에게 있다. 이런 상황에서 4년 혹은 5년마다 도래하는 선거는 이번이야말로 낡은 모순들을 해결하는 정권 교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맹목적 믿음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단지 대통령 한 명이 바뀌었다고, 단번에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안은 '함께 성실하게 노력해서 무언가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 즉 '되기'(becoming)의 과정을 구축해 나가는 데 있다.

욥이 절망 중에 내뱉는 탄식 속에 희망의 근거가 노출된다. 즉 그의 탄식 중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라는 말은 히브리어 tiqva를 담고 있는데, 이는 실과 같은 것을 엮어서 무언가를 짜내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희망은 복잡성과 중층성을 통해 절망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그 타래들을 엮어 희망의 실타래를 짜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희망은 얽힘(entanglement)과 동의어로 다가온다. 과정신학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관계적 엮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이 관계성은 절망의 근거가 되기도 하고, 희망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21세기 트랜스페미니즘은 바로 이 얽힘을 '상호 의존성'(interdependence)으로 풀어 나가자는 외침이다. 초기 페미니즘 운동은 남성을 극복하기 위해 여성의 독립성과 주체 됨을 강조하면서, 역설적으로 남성적인 이상을 여성적인 이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는 가부장제의 여/남 이분법에 대한 완전한 극복이 될 수 없었다.

포스트페미니즘은 이 억압의 담론이 단지 여/남 이분법에서만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인종과 민족과 자본주의, 인간 중심주의 등 다양한 억압의 담론과 얽혀 있음을 밝혀 주었지만, 그러면서 마치 페미니즘이 밝혀 주는 여성 억압의 현실이 해소되거나 극복된 듯한 잘못된 메시지를 전하는 잘못을 범하였다.

트랜스페미니즘은 상호 의존성과 얽힘(entanglement)의 실재를 풀어 나가는 대안적 사유를 모색하는데, 특별히 한국적 사유들 즉 미국에서 활동하는 조원희의 '정(情)의 신학'이나 오지아의 살림의 신학은 관계의 중층성과 복잡성과 얽힘을 충분히 탐색하면서, 아울러 페미니즘의 여성 이슈가 우리 시대의 경제·생태·민족·종교·인종·전쟁 등의 이슈들과 얽혀 있음을 잘 조명해 주고 있다.

특별히 우머니스트들은 교차성(intersectionality)에 대한 사유를 통해 대안적 사유를 모색해 나가면서, 단순한 여성성(feminity)을 넘어, 여성들만의 운동을 넘어, 혹은 하나의 이슈나 관점에 매몰되지 않고, 그를 넘어 복잡성과 중층성이 담지한 상호 관계성과 얽힘의 측면을 조망해 나아가고 있다.

따라서 트랜스페미니즘은 지구촌 자본주의 시대에 약한 자의 자리에 놓인 수많은 이와의 교차성과 연대성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성찰한다. 몰트만의 용어를 차용하자면, 이를 "희망의 연대"를 구축하기 위한 약자들 혹은 비존재들의 연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은 난국을 앞에 두고, 그 엄청난 복잡성에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얽힌 타래들을 대안적으로 엮어 나갈 수 있다는 발견이다. 지난해 이어졌던 한국의 촛불 시위나 "Black Lives Matter"를 외치며 일어났던 미국 흑인들의 시위 등은 다양한 문제들의 사안마다 우리가 어떻게 연대를 결성해서 풀어 나갈 수 있을지를 보여 주는 희망의 징표들이다.

또한 켈러 교수는 '지금(now)의 정치신학: 인간의 예외성인가, 행성적 얽힘인가'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바로-지금-이-순간'이 정치신학의 핵심적 성찰 주제임을 역설한다. '바로-지금-이-순간'의 나를 예외적 존재로 선포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추구하는 근대의 제국적 자아를 추구할 것이냐, 아니면 '바로-지금-여기'의 순간을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시간 개념의 출현으로 보면서, 그 '나'(the 'I')의 새로운 시작을, 새로운 상호 관계성의 시작을 열어 나갈 것이냐의 선택의 기로에 우리가 놓여 있다고 통찰한다.

칼 슈미트가 통치 권력의 예외성을 강조하면서, 권력의 핵심을 선포한 자리에서, 켈러는 아감벤의 카이로스적 응축(contraction)의 개념을 제시한다. 슈미트의 예외적 권력은 언제나 내부의 불화와 긴장을 가상의 외부로 투사하여, 우리/그들의 이분법을 견고히 구축하는 데 있으며, 바로 이것이 트럼프가 미국의 내부적 위기를 외부의 적 문제로 치환하는 데 사용하는 정치적 기법이다.

하지만 카이로스적 시간의 도래는 결코 그 순간의 예외성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inception)을 선포하는 것이며,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었음을 켈러는 밝혀 준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 유행하고 있는 포스트휴먼이라는 담론은 인간이 기술의 힘으로 모든 생물종 가운데 예외적 상태와 권력을 확보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서구 근대가 주창한 휴머니즘에 의해 규정된 주권적 인간의 상이 언제나 권력 지향적임을 고발하면서, 그 근대적 인간상을 넘어서는 인문학적 운동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곧 기존의 자신으로부터 탈자(脫自, ecstasy라는 말의 원래 뜻, ec-stasy)하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성육신(incarnation) 사유에 담긴 '상호 육체성'(intercarnation)의 측면을 상호 의존성(interdependence)의 사유로 풀어내면서, 하나님과 세계와 인간과 생물과 모든 물질과의 관계와 얽힘의 사유로 풀어내는 새로운 시작을 촉구하는 선언이다.

촛불 혁명 이후, 우리 사회의 적폐 청산 문제가 관심 현안으로 부각하고 있는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는 이를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어렵게 쟁취된 정의의 노력들을 무산하려는 정치적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우리는 사람이나 대상 중심으로 선과 악을 갈라놓으면서, 이분법적 대안의 모색이라는 쉬운 길을 찾는 경향이 없지 않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추구하는 더 나은 사회와 교회라는 과제는 쉬운 길이 결코 아니다. 지난 한 세대 동안 지구적 대안을 모색하는 모든 운동의 공통 과제는 바로 근대가 물려준 이분법적 사유 방식의 청산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 낡은 이분법을 극복하려고 할수록, 우리는 그 이분법의 수혜자에 대립하는 자리에 대안을 설정하고 무조건 그 기존 권력의 반대를 대안으로 모색하는 '이중 구속'(double bind)의 족쇄에 걸려들었던 것 같다. 그 이중 구속의 덫을 넘어 우리가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는 첫걸음은 바로 '페미니즘적 사유가 가르쳐 준 유산에 대한 성찰'일 것이다.

당신들이 '인간'이라고 규정하는 그 범위에 '나'는 들어 있지 않다는 주체적 자각, 그리고 그 가부장적이고 예외적인 권력의 위계질서를 격파해 나가는 투쟁은 결코 세계를 여/남 이분법으로 단순하게 설정하지 않고, 성/젠더 이분법으로 구조화하지 않고, 민족·인종·계급 등의 차별적 구분에 발목 잡히지 않고, 억압받는 모든 이의 함성들에 귀 기울이며, 약자들의 연대 혹은 비존재들의 연대를 구성해 나가는 길일 것이다.

아직 페미니즘적 사유가 현실적으로 자리 잡기도 전에 포스트페미니즘의 사유를 넘어 트랜스페미니즘의 사유를 성찰하자는 켈러 교수의 제안은 한국 사회에 너무 성급하게 빠른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근대의 합리성이 미처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우리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이 도래하였고, 휴머니즘의 이상들이 사회 곳곳에 자리 잡기도 전에 우리에게는 포스트휴먼 시대의 과제가 던져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중층적이고 복잡하고 얽혀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켈러 교수의 트랜스페미니즘은 어쩌면 우리 시대가 당면한 과제들을 어떻게 대안적으로 사유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진정한 단초가 되는지도 모른다.

켈러 교수의 방한 강연은 10월 23일(월) 감리교신학대학교와 10월24일(화)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얽힌 희망: 트랜스페미니스트 신학의 불/가능성'이라는 제목으로, 그리고 10월 26일 연세대학교에서 '지금(now)의 정치신학: 인간의 예외성인가 행성적 얽힘인가'라는 제목으로 이루어졌다. 일정의 마지막에 켈러 교수는 향린교회 예배에서 '종말의 한(恨), 희망의 살림'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마치고, 미국대사관 앞에서 향린교회 주관으로 열린 전쟁 반대 예배에 참석하여 '전쟁 반대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박일준 / 감리교신학대학교 종교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신대원을 거쳐 보스턴대학교(S.T.M.)와 드류대학교(Ph.D.)에서 학위 과정을 마쳤다. 안산 광야교회 담임목사, 감리교신학대학교 <신학과세계> 편집연구원, 희망철학연구소 연구원, <에큐메니안> 신학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정의의 신학 - 둘의 신학>(동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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